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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2/死

영원한 테마-자기거짓말

 

 

황우석 교수의 자기기만에 의한 영웅적인 폭탄을 흥미롭게 주시하고 있던 며칠 전 또다른 재미있는 이야기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지난 날 집권여당의 사무총장과 원내총무를 지낸 바 있는 전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알력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삼십여 년 동안의 교육자 생활을 그만두고 자치단체장에 출마하기로 결심한 전직 교육장에 관한 것이다.


 (1) 전 국회의원은 나름대로 거물정치인임을 자임하지만 지난 번 총선에서 낙마했다. 현직 자치단체장은 낙마한 전 국회의원의 후원으로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전 국회의원은 정치에 노련하고, 현직 단체장은 노련하지 못한 정치초년생이다. 초년생은 정치판의 고질적인 관행에 익숙하지 못한 까닭에 비교적 순수하고 원칙에 충실한 편이다. 때문에 정치판의 오랜 관행을 요구하는 전 국회의원의 비위를 자주 거슬러 왔다.


 마침내 전 국회의원은 현직 자치단체장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다른 사람을 밀기로 했다. 지역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전국적 단위의 축제에 단체장이 전 국회의원을 초대했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내려오는 다른 유명인사(?)들까지 중간에서 회유하여 돌아가 버리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현직 단체장은 탈당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여기서 한 가지 근본적이면서도 원론적이고 상식적이며 너무도 상투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전 국회의원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사적인 감정을 공익으로 포장하는 기술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2) 과거 박정희 시대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유포된 바 있다. 그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 근거를 갖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사회학이나 인문학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실정이지만, 그놈의 이른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것의 실체랄까 뭐랄까 하여튼 그 희미한 그림자의 정체를 뜻밖에도 전직 교육장의 단체장 출마 이유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단체장을 넘본다는 건 오래 전부터 알려져 온 사실이다. 그는 교육계에 있으면서도 교육보다는 자기 얼굴 알리기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출판기념회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정견발표회를 가졌다. 그리고 측근들과 함께 가진 뒷풀이에서 당선 확률을 분석했다.


 그와 오랜 세월 가깝게 지내온 한 인사의 귀띔에 따르면 당선 가능성으로 첫째 종친회를 꼽았다고 한다. 종친회 차원에서 벌이는 모든 사업에 그 동안 적극적으로 임해 왔을 뿐만 아니라 주도하다시피 해 왔는데 그것이 다 <큰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아닌게 아니라 그는 종친회에서 작은 행사만 있어도 지역신문에 광고를 내고 그 광고에는 으레 자신의 얼굴을 실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육청 차원에서 벌이는 모든 사업을 지역신문에 광고하고 그 자리에 또한 자신의 얼굴을 실어 왔는데 이 또한 당선 가능성의 하나로 꼽았다.


 전직 교육장의 이러한 분석은 사실 틀리지 않다. 틀리기는커녕 너무도너무도 정확한 분석일 수도 있다. 정의다 평등이다 따위 관념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한, 사실을 면밀히 관찰한 자의 탁견이라고 말해줄 만조차 하다. 요컨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선거문화가 어느 수준에 있는가를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지역의 넘치는 것은 무엇이고 모자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를 살피고 분석해서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 본연의 자세의 충실하기보다는 그저 자기 얼굴이나 알리기에 전념했던 것이다.


 어쨌든 내게 그 사실(?)을 귀띔해준 사람은 비난이나 비판 차원에서 그 일을 언급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이를테면 상황이 이러저러하니 대세는 결정난 것이다, 고로 얼른 마음 정리하고 이쪽으로 붙어라, 뭐 그런 의도를 갖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물론 그는 그게 아니라고 펄쩍 뛰겠지만 말이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면, 그는 선거법에 전혀 저촉되지 않는 아주 지혜(?)로운 방법으로 내게 선거운동을 한 것이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년전에 나는 어느 토론회에서 우리에게 지방자치는 너무 빠르다는 얘기를 했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다. 우리의 정치문화는 매우 특수하다. 이 특수한 문화를 걷어내지 않는 한 지방자치는 지역 토호들의 사랑방으로 전락할 위험이 다분하다는 게 그때 내가 제기한 우려였다. 


 한국의 정치문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특수하다는 건 사실 내 생각이 아니다. 이것은 사회학계와 인문학계 심지어는 과학계까지도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진보든 보수든 따로 구별할 필요조차 없이 왕조시대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왕조시대의 특징은 수직주의와 혈연주의 그리고 연줄주의 혹은 끼리끼리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며 하나 덧붙이자면 감정주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수식어들을 하나로 정리하자면 사적인 욕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 사람이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왜 이러는 것이냐 나쁘다, 너하고 나하고는 사돈네 팔촌간이고 너하고 나하고 알고 지낸 지는 얼마고 너하고 나하고의 관계는 무엇인데 무엇이고 등등,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칼날 같은 이성을 강조하지만 돌아서면 물렁물렁 뜨뜻미지근한 감정주의로 도배를 해버리기 일쑤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성은 간 데 없고 감정만이 낙하산을 타고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춤을 추는 것이 우리의 특수한 정치문화인데 그것이 곧 왕조시대의 정치형태라는 것이다. 


 황우석 교수의 영웅적인 거짓말이 그토록 우리를 현혹시켰던 배면에도 이러한 감정주의는 깔려 있다. 그와 함께 연구를 수행한 연구원의 태반이 그의 제자였거나 결과만을 고려한 우정의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형태의 조직은 사실상 또다른 형태의 혈연관계이고, 혈연이란 좋은 것도 좋은 것이고 나쁜 것도 어느새 좋은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인 가부장제의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게 되어 있다.


 황 교수는 아마도 거짓말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을 게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거짓말을 하게 되어버린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첫째로 자신을 믿었고, 제자들을 믿었고, 자신을 인정해주는 주위 사람들을 믿었고, 그리고 관심을 가져주는 모든 사람을 믿었으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 모두에게 지상 최고의 선물을 안겨주고 싶다는 열망으로 자기가 하는 모든 일이 뜻대로 될 거라는 神과도 같은 자세를 갖고 있었다. 인문학에서는 이러한 심리상태를 자기기만이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자기기만의 역사라고도 하거니와, 이것은 인문학의 영원한 테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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