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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2/死

과학은 배우가 아니다

 

 

“황 교수의 연구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류의 큰 축복이다. 이런 데 인사하러 다니지 말고 연구에 몰두했으면 좋겠다.”


 

 2005년 1월 3일 황우석 교수가 부인과 함께 세배를 왔을 때 김대중 전대통령이 이렇게 충고했다고 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물론 거짓은 아니겠지만, 어쨌드 김대중 전대통령의 이 한 마디에 황우석 스켄들(?)의 모든 진실이 압축되어 있다고 여겨진다.

 

  김 전 대통령의 그 말을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왜 쓸데없이 정치권이나 기웃거리고 그러느냐?"하는 힐문이 될 것이다. "나한테 세배 오느라 투자한 시간도 최소한 두 시간은 될 거다. 하루 스물네 시간을 온통 연구에 쏟아부어도 모자랄 과학자의 두 시간이 어디 무슨 애들 껌값이냐."

 그렇다. 과학자는 연구가 본분이요 생명이다. 연구에 게으름을 피는 과학자는 이미 과학자이기를 포기한 거다. 김대중씨는 그것을 보았거나 최소한 우려를 하고 있었던 거다. 때문에 그는 황교수가 자신의 줄기세포 허브에 환자등록을 하면 이삼 년 내에 절룩거리는 다리를 명쾌하게 치료해주겠다는 호언장담에 장하다고 칭찬을 하면서도 차마 그 요청을 들어줄 수는 없었던 거다.

  보도에 따르면 황 교수는 지난 일 년 동안 오십 여 차례의 외부강연을 나갔다고 한다. 이때의 강연이란 다른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전공과목을 다룬 게 아니라 각종 기관이나 정치인 또는 기업체의 임직원들을 상대로 대한민국 최고다는 식의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교양강좌 수준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첨단도 아니고 최첨단을 달린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과학자에게 그런 교양강좌나 하고 다닐 시간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일까. 그런 강좌는 그가 소속된 학교나 혹은 그에게 연구비를 대주는 정부기관에서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과학자가 직접 나서서 자신의 업적을 홍보하고 다녔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둘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그가 소속된 학교 당국이나 연구비를 대주는 정부기관이 한 묶음으로 너무나 무지하고 무식하고 무성의해서 그가 직접 나서야 했고, 다른 하나는 과학자 본인에게 과학보다는 다른 욕망이 있었던 까닭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일단 그렇게 분석을 해야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료에 따르면 황우석 교수는 정치인들의 후원행사에 열심히 얼굴을 내민 것으로 되어 있다. 그저 얼굴만 내민 것이 아니라 백만원 혹은 삼백만원 정도의 후원금도 열심히 납부(?)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과학의 어떤 분야는 정치적으로 아주 민감해서 연구당사자가 열심히 로비를 하고 다닐 필요도 있기는 하다. 이를테면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지원 여부를 놓고 벌이는 미국 정계의 치열한 논쟁이 그렇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미국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일부 시민단체와 종교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책적으로 지원을 약속했고 실제로 열심히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굳이 정치인들의 후원행사장에 얼굴을 내밀고 대표나 고위간부들과 열심히 사진을 찍는 이유는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어떤 사람은 미국의 거대한 농간이 황우석을 죽인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늘도 놀라고 땅도 놀랄 엄청난 음모가 있다는 거다. 미련한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반복되는 황교수의 기자회견을 보면서 나는 문득문득 배우를 보았다.

 배우라는 존재는 물론 시시한 존재가 아니다. 배우의 표정 하나 손짓발짓 하나하나 말 한 마디에는 역사가 있고 철학이 있고 사회가 있다. 그러나 배우는, 배우는 과학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과학은 배우가 아니다. 배우가 되어서도 안 된다. 과학이 만일 배우의 모션을 취하기로 한다면 그 순간 과학은 정치 중에서도 가장 썪어빠진 정치로 변할 것이다.

 

 p,s

 적당한 피해의식은 때로 필요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모든 사람이 살인강도거나 혹은 천사로 보일 수도 있다는 거, 아울러 이름깨나 알려졌다 하면 덮어놓고 전공과는 상관도 없는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는 우리나라의 풍토가 얼마나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는가를, 황우석 스켄들은 엉뚱하게도 우리에게 그런 교훈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첨단도 최첨단을 달려야 할 과학자가 후진도 한참을 후진에서 비실거리고 있는 한국의 정치판이나 기웃거리고 있었으니 추락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후진스런 사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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