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린다.
비틀거린다.
넘어질까.
넘어질 듯 휘청이다가 도로 일어선다.
김수영의 풀 얘기가 아니다.
그런 거룩 엄숙한 얘기는 내 몫이 아니다.
오늘의 내 몫은 술이다.
술.
낮술에 취하면 세상이 참 다르게 보인다.
나도 나로 여겨지지 않고 타인으로 보인다.
이거 참 재미난 일이다.
그래서 어제 취하고 오늘도 낮에 취해봤는데 아닌게 아니라 재미있다.
어디든 가야겠는데 길이 안 보이거든 낮술에 취해볼 일이다.
머리가 꽉 막혀서 앞아 잘 안 보이거든 낮술에 취해볼 일이다.
아........
아까 누가 전화를 걸어와서 물었다.
술 마셨냐고.
안 마셨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거짓을 말했다. 아무 생각없이 그야말로 얼결에 한 말이었는데도 그것이 거짓이었다. 희한 요상하다. 나는 어째서 술을 마시고도 안 마셨다고 거짓을 했냐? 그이가 낮에 술 마시면 땅 파고 묻어버린다고 경고한 마누라나 뭐 그런 존재이기라도 한 것이냐?
내가 내게 묻고 나니 하나 의문이 생긴다.
그이는 왜 느닷없이 술 마셨냐고 물었지?
희한 요상이다.
지붕 위의 기병,.
아침부터 줄곧 그 o.s,t 를 듣는다.
패스트가 창궐하던 중세말의 유럽.
한 반정부 인사가 도망 중에 지붕이 무너지는 바람에 한 여염집의 거실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다.
그녀,
다들 피난을 했는데도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피난을 못 떠난 여인.
그녀는 일종의 부르쥬와 계급이고 반정부 인사의 입장에서는 적이다. 적.
적과 적이 마주 선다.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제아무리 적이라 해도, 신체 구조가 다를 때는 제3의 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적과 동지의 개념을 무위로 돌리는 인간사의 매력인지도 모를 터.
남자, 그리고 여자.
또는 여자 그리고 남자.
너는 왜,
나는 왜.
어찌 이리도 哀傷하단 말이더냐.
이 근원적인 슬픔을,
플라톤은 양성구유로 해결하고자 했던 모양이다.
플라톤의 이러한 생각을,
이십일세기에 법학 전공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반추하는 것이 소설 달이다.
아니 일식이던가.
어쨌든,
한 동굴 속에 한 존재가 있다.
존재는 하나인데,
그 기능은 둘이다.
여성의 생식기가 있고,
남성의 생식기가 또한 있어서,
언제든 필요가 느껴지면 들어가고 나오고 끌어들이고 내보내고를 하는데 그 형국이 참 자유자재하다.
우리는 그 자유자재함을,
통념상,
또는 관념적으로
변태라 이르기도 하고 천형이라 이르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오늘,
그 천형이 그립고 부럽고 또 그립다.
낮술에 취한 자의 주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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