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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15)

어떤 남자

그와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서로 약간의 안면이 있었을 뿐이었다. 길에서 어쩌다가 마주쳐도 목례조차 보내지 않고 지나치는 그런 안면이었다. 그와 나는 서로 인사를 나눌 기회도 없었지만 인사를 나눠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 무렵에 나는 그 고장에서 적어도 십 년 이상을 살아온 이를테면 터줏대감이었다. 반면에 그는 언제 어디서 굴러온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때문에 그가 나를 바라보는 마음이야 어떻든 나는 그를 거의 사람으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어깨에 헐렁한 푸대자루를 메고 다니며 수산물 공판장 주변에 버려진 미역이라든가 학꽁치 따위들, 그리고 수확이 끝난 뒤의 경작지에서 당근이니 고구마니 양파 따위 이삭을 주워서 먹고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거처는 방파제가 끝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되는 소나무 숲의 버려진 무당집이었다. 무당이 없는 무당집을 그가 자신의 거처로 살아온 기간은 일 년이 채 안 되었다. 일 년이 채 안 되었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수치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어느 날 문득 나타났다가 어느 날 문득 사라진 부랑자였다.

 

그가 그곳에서 머문 기간은 일 년이 채 안되었지만, 그가 사라지기 전에 뿌려놓은 이야기는 매우 복잡하고 다채로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본인이 거주하고 있을 때는 어느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보인 사람이 없었다. 그는 그곳에서 단지 하나의 불쌍한 거지일 뿐이었다.

거지도 그냥 거지가 아니고 미친 거지, 미쳐도 그냥 미친 게 아니라 집도 혈육도 없이 떠도는 들개 같은 존재, 사람들은 너나없이 그렇게 알고 있었고, 그런 테두리 내에서만 그의 존재를 마치 심심풀이 술안주처럼 입에 올리며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 주제에 어디서 그렇게 훌륭한 오토바이 솜씨를 익혔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병신도 한 가지 재주는 타고 나는 법이라니까어쩌고 한 마디씩 뱉아내며 키득거리는 사람들의 표정 어디에도 그 사내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나타나 있지 않았다.

하긴 진지한 관심을 가질만한 그 어떤 계기도 없었다. 그가 가령 남의 물건을 훔친다던가, 누구에게 해코지를 하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그의 삶의 방식을 문제 삼고 깊이 관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렇지가 않았다. 하루의 대부분을 어깨에 푸대자루를 메고 다니며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수산물 공판장 또는 수확이 끝난 들판을 헤매고 다니는 그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고 눈에 띄게 무슨 말썽을 일으키는 일도 없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다만 하나 그가 가끔 오토바이 묘기를 보여준다는 정도였다. 그것도 가까이에서가 아니라 멀리에서, 보나마나 버려진 것을 주웠거나 고물을 헐값에 사들여서 대충 수리를 한 것이겠지만, 주웠거나 어쨌거나 오토바이를 다루는 그 사내의 솜씨 하나만은 사실로 일품이었다.

그가 만일 여느 사람들처럼 골목길이나 대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다면 일품이니 뭐니 구태여 혀를 내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그랬다. 그는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길이 없는 갈대숲이나 억새가 무성한 산비탈을 멋대로 쑤시고 들어가서 길을 내고 다녔다.

 

사람들이 이용하는 탄탄대로는 자신의 길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무슨 윤리강령 같은 것이라도 그는 세워놓고 있었던 것이었을까. 남의 길을 멋대로 이용하다가는 그 고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아니면 탄탄대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그처럼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다녔던 것이었을까.

 

어쨌든 경사가 삼십 도는 넘는 험한 비탈도 그는 일이 아니게 올라채서는 소나무들 사이로 검은 연기와 함께 사라지고는 했다. 사람의 키도 훨씬 넘는 갈대밭에서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희끗희끗 야생의 동물처럼 부릉부릉 소리와 함께 갈대를 쓰러뜨리며 나아가다 어느 순간 산비탈을 향해 돌진하는 표범처럼 선연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드러냈다 싶은 순간 다시 소나무들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오토바이를 몰고 나타나는 시간은 대개 저녁 무렵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삼십 분을 넘지 못했다. 노을이 바다 위로 오렌지 쥬스처럼 몽혼하게 퍼지는 시간이면 거의 어김없이 오토바이 소리가 들렸다.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면 여기서 저기서 꿩이며 산비둘기 따위 새들이 날아올랐다.

 

그러면 저마다의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 고장 사람들의 흩어진 관심사가 오랜만에 한 곳으로 집중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밭에서 일을 하던 사람은 잠시 허리를 펴고, 좌판 위에 굴비나 오징어 따위를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던 사람은 가게 앞으로 한 걸음 나와서, 방파제 위에 그물을 늘어놓고 터진 자리를 손질하던 사람은 그 자리에 앉은 채로, 혹은 술집에서 혹은 해변에서, 술을 마시거나 일을 하거나 그냥 길을 걷거나 구별이 없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오토바이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 갑자기 싱싱해진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한두 마디씩 주고받는 것이었다.

 

어허 저 자식 또 나왔구만.”

그러고 보니 오늘도 날씨가 좋았지?”

 

그럴 때의 사람들 표정은 깜빡 잊고 있었던 뭔가를 방금 생각해낸 것처럼 생기가 돌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오래 전에 잃어버린 어떤 것을, 이를테면 그 동안 열심히 찾아온 그 어떤 것을 이제 영원히 포기하기로 방금 전에 결심한 사람과도 같은 아득한 선망(羨望)과 체념이 뒤엉켜서 어지럽게 흐르는 탁류의 이미지를 띠고 있기도 했다.

사람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는 대개 그 사내를 폄훼하고 비하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말이 감추고 있는 내면의 진실까지는 차마 숨기지 못하고 그렇게 보일 듯이 말 듯이 희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가령 병신도 한 가지 재주는 타고 나는 법이라고 누군가가 얘기했을 때, 이때의 병신이라는 것이 불쌍하다거나 꺼림칙한 존재인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어쩌면 병신이야말로 병신이 아닌 사람보다 더 대단한 무엇을 가진 존재일 수도 있다는 불안과 질투의 그림자가 그 말의 배경을 채색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병신을 가까이하지도 않고 멀리하지도 않고, 막연한 경외심과 우월감으로 복잡해진 심사를 병신도 한 가지 재주는 있다는 식으로 애써 얼버무리곤 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한 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조차도 없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인생의 수수께끼와 갑자기 직면해버린 까닭에 사람들은 그것을 피할 수도 없고 정면 대응할 용기도 없어서 그렇게나마 엄벙덤벙 수습을 해야만 했을 것이라고 하면 말이 좀 될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렇게 문득문득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끝내는 심난스럽게 만들어버리는 그 사내의 어떤 힘이랄까 분위기 때문이었겠지만, 사람들은 그 사내를 멀리서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자신들의 가족이나 이웃과 관련한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쪽으로는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했다.

자신들이 애써 감정을 죽이며 한가한 농담의 형식으로 그 사내의 살아가는 모양을 평가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또 다른 수많은 젊은 눈이 그 사내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 사내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다.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은 무슨 유행병처럼 갑자기 번지기 시작한 젊은 여자들의 이상한 바람기를 그 사내와 결부시켜서 생각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긴 젊은 여자들의 느닷없는 임신이나 가출이 그 사내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는 더 이상 오토바이를 몰고 산비탈을 오르지도 않았고, 푸대자루를 멘 초라한 미친 거지의 모습으로 수산물 공판장 주변을 배회하지도 않았다.

나중에야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가 사라진 시기와 그 고장 젊은 여자들 사이에 수상한 바람기가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거의 같은 무렵이었다. 대개 십오륙 세의 여학생이거나 이십 세 안팎의 발랄하면서도 따분한 처녀들, 또는 조숙한 탓으로 일찌감치 결혼해서 세상살이의 쓴맛이나 환멸 같은 것들을 알아버리기 시작한 어린 유부녀들이었다.

 

누이동생 혜수도 그 가운데 한 명이었고, 장차 칡넝쿨에 목이 졸려 숨지게 되는 나의 정혼녀도 역시 그 가운데 한 명이었다. 한 명일 뿐이었다.

이 마을 저 마을에서 젊은 여자들의 배가 불러 오르고, 근거를 알 수 없는 아이가 젊은 과부에게서 출생하고, 그리고 딸이나 손녀 심지어는 며느리가 집을 나가 버리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 어느 누구도 그 해괴한 사태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알아보려고 하는 노력조차도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말문을 잊은 채로 그저 어리둥절해할 뿐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비로소 오토바이의 그 사내를 범인으로 지목해내고는 이런 죽일놈 쳐 죽일놈, 길길이 뛰며 칼을 품고 대문을 나서기 시작했지만 죽여야 할 그놈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