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남자
남자들이나 어른들, 또는 노인들과는 전혀 다른 눈이 젊은 여자들에게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자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니고 젊은 여자들은, 그녀들은 남자들이나 여자라도 어른들은 미처 읽어내지 못하는 인생의 중대한 어떤 비밀을 발견하거나 혹은 찾아내서 저마다의 가슴에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나무들이 빽빽한 숲은 언제나 여자들을, 특히 홀로 걷는 여자들을 위협하는 무기를 감추고 있었지만, 인생이라는 것이, 아니 인생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삶을 조종하는 사회라는 것이 그때까치 감추고 있었던 비밀의 문을 발견해버린 그녀들은 더 이상 숲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숲이 비밀을 갖고 있을 때는 두려웠지만 그것이 드러나 버린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은 위험한 그 어떤 것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 괜히 폼만 잡고 이때까지 거들먹거려 왔구나 하는 가슴 뿌듯한 성취감과 세상의 질서에 대한 경멸감마저 그녀들은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한때 그토록 숲을 두려워했던 그녀들은 이제 숲이 두려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숲 자체가 되어가고 있었다.
창끝 같은 햇살과 나뭇잎들이 서로의 몸을 비벼대며 제법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낮의 숲은 말할 것도 없었고,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검은 아가리처럼 여겨지는 한밤중의 깊은 숲길조차도 이제는 더 이상 그녀들을 위협하지 못했다. 위협은커녕 어둠이 깊으면 깊을수록, 하늘에 그믐달이 바람소리와 더불어 그녀들을 위협하면 그럴수록 그녀들은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숲으로 들어갔다.
마치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음험한 어둠이야말로 자신들의 존재에 활력을 불어넣는 생명의 원천이기라도 한 것처럼, 키를 넘는 갈대숲 여기저기에 미로처럼 깔려 있는 오토바이의 흔적을 따라서, 찔레와 칡넝쿨이 무성한 돌밭을 가로질러 날카로운 억새가 살을 베는 비탈을 넘어서, 소나무와 잣나무 그리고 떡갈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의 무당이 없는 무당 집 주변으로 그녀들은 그렇게 각자 나름대로의 간절한 인생의 열쇠를 찾아서 가끔씩 남모르게 집을 나와 거기 어둠 속으로 다급하게 스스로의 육체를 던져버리곤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그랬을 것이었다. 노을이 바다 위로 오렌지 쥬스처럼 아늑하게 펼쳐지는 시간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오토바이의 굉음이 그녀들에게는 아마 이제 때가 되었다는 신호로 읽혀졌을 것이었다. 멀리서 잡힐 듯이 말 듯이 희끗거리다가 새처럼 사라지는 사내의 아득한 실루엣이 그녀들에게는 저마다 안고 있는 인생의 캄캄한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로 비쳐졌을 것이었다.
죽이기로 결심한 그 사내를 처음 본 순간에 내가 느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웃어도 웃는 것 같지 않고 울어도 우는 것 같지 않을 듯하게 생긴 두툼한 입술과 퀭한 눈동자, 어쩐지 그로테스크하게 생긴, 그러면서도 그 내면에서 금방 물 흐르는 소리라도 들릴 것만 같은 투명하게도 우울한 분위기, 아아, 그것을 멜랑콜리라고 하던가.
그랬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런 느낌이 들었다. 생의 아득한 기둥 하나를 겨우 부둥켜안고 있다는, 그 기둥은 벌써 전에 뿌리가 뽑혀버렸는데도 그는 그것을 부둥켜안고 있다는, 그 시절에 나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그 사내의 그것을 나의 누이와 정혼녀, 그리고 다른 수많은 젊은 여자들은 진작에 발견하고 그것에 빠져들었을 것이라는. 어쩌면 그 사내의 그것을 잡아주기 위해서 달려들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어렴풋이, 그러면서도 강렬한, 이를테면 절망적인 환희라고나 해야 할 그런 느닷없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세계와 자기를 완벽하게 분리시켜놓고, 자기만의 작은 세계에 들어앉아 다른 이들은 알 수 없는 특수한 망원경으로 거대한 세계의 곳곳을 유유히 누비고 다니는 사람의 이미지가 그에게는 확실히 있었다. 절망에 빠져 있으면서도 그 절망이 다른 사람에게는 절망으로 비쳐지지 않고 오히려 절대적인 힘으로 느껴지는 신비한 그런 어떤 것 말이다.
내가 그 사내의 그런 점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못난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었다. 그는 일정한 거처도 가족도 없이 떠도는 거지라고 하는, 거지도 그냥 거지가 아니라 실성한 거지라는 선입견 때문에 나는 그때까지 그를 알면서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이었다. 세월이었다. 칠 년여에 걸친 탐문과 추적,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오직 하나 그 사내를 찾아서 죽여야만 한다는, 죽이지 못하면 내가 세상에 태어난 아무 의미가 없다는 비장감으로 밤이면 달빛 속에서 문득문득 몸을 떨어야 했던 시간들, 극도로 고양된 오기와 인내의 그런 나날들을 거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도 한순간에 뒤통수를 치며 나를 사로잡아버린 낯선 세계와 조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살인을 위한 나의 긴 여행은 결국 새로운 세계의 발견을 위한 길이었던가. 구도의 길이었던가.
어쨌든 그때 내게는 살인자로서의 조건이 전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갖춘 것은 꺼내보지도 못할 칼 한 자루뿐이었다. 밤이면 달이나 별을 쳐다보고 낮에는 구름을 쳐다보는, 그러면서도 틈만 나면 읽을거리나 뒤적거려 온 나의 그런 행태는 애당초 살인에 도움을 줄만한 무기가 아니었다. 갖고 있는 무기조차 녹슬게 하는 게으름일 뿐이었다.
게으름, 봐야 할 것은 못 보고 허접한 것들에 집착하는 상태. 딴에는 비장한 마음으로 살해를 연습했던 그것조차도 나중에 돌아보니 내게 결락된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는 칼을 들고 살해를 연습한답시고 밤마다 일종의 칼춤을 추어 오고 있었던 셈이었다. 칼춤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며 내부에 도사린 고독을 끄집어내 절단을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마치 실연을 당한 여인이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자기 내부의 미숙한 것을 발견하고 입술을 깨물며 생의 의지를 다지듯이 그렇게 말이다.
조건을 구비하지 못하기는 그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도 역시 죽어야 할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다. 입으로는 죽어야 한다고, 죽여 달라고 말을 하면서도 오래 전에 이미 죽음의 끝을 봐버린 듯한 눈으로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그 퀭한 이미지는 결단코 죽음의 조건을 갖춘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다. 자기도 자기를 죽일 수 없고 타인도 그를 죽일 수 없는, 아무도 죽음을 불러낼 수 없는 절대의 고독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또한 드러내면서 그는 그렇게 날마다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자기도 어쩌지 못하는 사이에 온 몸으로 드러나는 그의 절대적인 고독은 어디에서나 쉽게 젊은 여자들의 눈에 띄었다. 생의 자질구레한 배반에 지쳐버린 그녀들은 유달리도 예민한 감각으로 그것을 발견하고는 그에게 다가와 인생의 비밀을 푸는 열쇠를 요구했다.
본인에게는 다만 하나 고통일 뿐이고, 그 고통마저도 어느새 무의미한 일상으로 굳어져 있는 그의 생존 자체가 그녀들에게는 유일무이한 신비의 열쇠로 비쳐지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그는 한 곳에서 일 년 이상을 머물지 못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디에서나 그는 자기 내부의 알 수 없는 고통을 달래기 위해 하루 한 번씩은 오토바이를 몰고 길이 아닌 길을 달려야만 했다. 그러고 있노라면 하나씩 둘씩 젊은 여자들이 그를 발견하고 그를 찾아왔다.
여자를 두려워하는 남자에게서 여자들은 마치 고구마 줄기를 잡고 고구마를 캐듯이 자기 생존의 어떤 의미를 캐내는 것 같았다. 그는 자기에게서 뭔가를 가져가고자 은밀히 찾아오는 여자를 거부하지 못했다. 죽음을 소망하면서도 죽지 못하는 이치와 똑같이 그는 여자를 두려워하면서도 여자를 거부하지 못했다. 여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더욱더 여자로부터 멀어질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여자를 피해서 거처를 옮기는 것도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더 많은 여자들과의 접촉의 계기가 되고 마는 헛된 몸부림에 불과했다. 그것이 헛된 줄을 알면서도, 아니 헛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더욱 그런 헛된 몸부림으로 스스로를 고단하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칠 년여의 게으른 추적 끝에 그를 찾아냈을 때도 그는 그곳에서 이제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갈 곳은 정하지 않았지만 바다와 산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은 정해져 있었다. 그 조건이란 것도 그가 무슨 의식을 갖고 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마을을 떠나온 이후 한 번도 바다와 산에서 멀어져본 적이 없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그러니까 바다와 산은 언제나 그의 곁에 있어야만 하는 유일한 가족이고 대화의 상대였던 셈이었다.
왜 부모를 일찍 잃어야 했는가는 그 자신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집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집이 왜 불타 버려야 했는가는 몰랐다. “죽여, 죽여!”하는 어머니의 악에 받친 비명소리와 “오냐 죽자, 죽자!”하는 아버지의 섬뜩한 고함소리만이 그가 기억하는 그날 밤 사건 내막의 전부라고 했다.
악에 받친 비명소리와 섬뜩한 고함소리가 슬레이트 지붕을 날려버릴 듯이 쟁쟁쟁 울려 퍼지던 어느 순간 집에 불이 붙었다. 아버지는 잠자리에서 뒤척거리는 아들을 번쩍 들어 마당으로 내던져 버리고는 문을 닫아걸었다. 어머니는 안쪽에서 뭐라고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뒤이어 아버지의 날카로운 소리가 군중 속에서 아이를 찾는 부모의 그것처럼 시끄러우면서도 선명하게 들렸다.
“됐냐, 됐냐?”
마지막 그 한 목소리, 됐냐고 묻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는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었을까. 어머니는 아버지를 또 그토록 사랑했던 것이었을까. 그래서 둘이서만 그렇게 꼭 부둥켜안고, 문까지 걸어 잠그고, 어린 아들은 마당에 내던져버리고,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둘이서만 그렇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 속에서 한줌의 재가 되어 승천하기로 했던 것이었을까.
불은 성실했다. 부엌에서 시작된 연기가 마당으로 빠져 나와 벙어리 무당처럼 춤을 추며 집을 휘어 감고 마침내 하늘로 높이 치솟아 올랐다. 이어서 불이 그 화려한 혀를 날름거리며 시뻘건 불꽃을 피워내며 시커먼 연기를 따라 하늘로 솟아올랐다. 불은 그렇게도 성실하게 자신의 소임을 마치고 소멸해갔다. 그리고 남은 것은, 생활고를 비관한 한 남자가 집에 불을 질러 아내와 동반자살을 했다는 한 줄의 짤막한 신문기사, 그것뿐이었다.
그의 나이 다섯 살 때의 일이었다. 졸지에 고아가 되어버린 그는 큰댁으로 갔다가 고모 댁으로 갔다가, 다시 이모 댁으로 갔다가 외삼촌네로 갔다가 그렇게 아무 곳에도 정처를 못 둔 채로 떠돌다가 열 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논에서 우렁을 잡던 사촌누님이 방죽에 빠져 죽어버린 사건이 계기가 되어 집을 나온 이후로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돌아갈 수가 없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것은 물론, 그냥 하나의 우연한 사건일 뿐이었어요. 사람이 살면서 목도하게 되는 이런저런 수많은 사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인 그런 사건 말이에요. 추수가 다 끝난 가을이었는데, 논에서 우렁을 잡던 누님이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방죽에서 바구니 속의 우렁을 물에 헹구다가 그대로 빨려 들어간 거예요. 방죽이니까 아무래도 가장자리에 이끼도 있고 해서 미끄러웠던 거죠. 그러니까 그건 그야말로 우연한 사건이었던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그게 계획된 살인사건이었겠습니까. 그런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참을 수가 없었어요.”
사촌누님의 죽음이 그를 영원한 가출의 길로 인도한 것은 아니었다. 죽음 자체는 그다지 충격적이지도 않았고, 그의 영혼에 무슨 대단한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지도 않았다. 죽음과는 얼마든지 담대하게 화해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를 분노하게 한 것은, 참을 수 없게 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죽은 이의 잊혀지지 않는, 살아 있을 때의 형형한 눈동자와 그리고 살아 있는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가늠하기 어려운 불온한 배반의 조짐 같은 것들을 그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깊은 방죽의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여자의 격렬하게 흔들리는 젖은 머리카락, 머리카락 사이로 언뜻 비쳐진 한순간의 이글이글 타는 듯이 형형하면서도 처연한 눈동자, 열네 살 사촌누님의, 그것을 보는 순간 와락 뛰어들어 누님을 건져내고자 했을 때 자신의 온 몸으로 마치 해면동물의 흡반처럼 찰싹 엉켜 붙으면서 같이 죽자는 듯이 물속으로 깊이 꼬나 박히던 순간의 공포, 물귀신을 만난 듯한, 엉겁결에 사촌누님의 목을 졸라 그 엄청난 포옹을 풀어버리고 뭍으로 올라왔을 때의 말할 수 없는 배신감, 마을 사람들이 달려와서 죽은 누님을 끌어올려 반듯이 눕혀놓는 순간에 시야를 가득 채우는 올챙이처럼 부풀어 오른 복부와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보시기를 엎어놓은 듯이 가지런히 자리한 두 개의 젖가슴, 열네 살 어린 처녀의 물에 빠져 죽어버린 젖가슴, 그 절박한 공포의 순간에도 어쩌면 그렇게 젖가슴은 확연하게 눈을 채우고 들어왔던 것인지, 그런 일련의 처절한 삶에의 욕망과 죽음 또는 살인, 그리고 찢어진 살점처럼 심장에 달라붙어 영혼을 억누르는 배반감으로부터 한 걸음이라도 멀어지는 최선의 방법이 그에게는 가출이었다. 절대 고독과의 만남이었다.
“물론 내가 누님을 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님이 죽은 결정적인 이유는 내게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누님이 나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누님이 내 목을 끌어안았을 때 나는 분명히 살해의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 근거 없는 공포가 누님의 목을 졸라버리게 했던 겁니다. 이게 대체 뭐냐는 거지요. 참을 수 있겠습니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도 사람이라고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와도 말이 안 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가 혼자라는 사실만이 강렬하게 부각되는 그런 상황을 견뎌낼 수 있겠습니까? 나는 그럴 수가 없었던 겁니다.”
그는 이를테면 죽음의 출발 지점을 목격해 버렸던 셈이었다. 그것은 누구에게 증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못 본 척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독이야말로 그를 죽이면서 또한 그를 살리는,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여겨졌다.
고독은 그의 존재를 이 세상에서 순식간에 제거해 버리기도 하고, 대지와 바다와 그리고 산의 중심으로 그를 안내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우주가 되게도 하는, 그의 피할 수 없는 적(適)이면서 동지인 한편으로 또한 그의 모든 것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없는 듯이 존재하며, 안 보이는 자에게는 별 의미도 없지만 보이는 자에게는 삶의 강력한 에너지로 존재하며 세상의 구석구석을 유랑하고 있었다.
그런 인생을 내심 동경하며 부러워하지 않는 자가 있을까. 막연하게, 그러면서도 격렬하게, 인생의 중대한 비의 같은 것을 알아버린 탓으로 그 자신이 하나의 바람이거나 구름 같이 되어버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그런 사람을 동경하고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동경하고 부러워할 것인가.
그러나 그런 동경과 부러움은 역시 가슴에 쓰라린 생채기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의 살아가는 방식이 내게 생의 깊은 맛을 알게 해준 것은 사실이었지만, 하지만 그 맛으로 인해서 나는 나 자신의 자유를 반납하거나 혹은 보류해야만 했다.
무엇을 해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야만 하는 나날들, 내가 죽이려고 했던 그 사내는 그렇게도 엉뚱하게, 전혀 뜻밖의 방식으로 나를 죽이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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