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독짓는 늙은이>의 작가 황순원 선생의 아들 황동규. 그는 1980년 광주의 학살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이후 죽음의 근원과 그 끝에 대한 탐구로 십사년 여 세월을 매달린다.
하나의 테마를 십사 년여 동안이나 붙잡고 사투를 벌이는 집요한 열정은 우리 시단에 일찍이 없었던 일로 충격적인 사건이라 할만하다. 인간의 주검을 바람에 날려 우주의 운행에 한 점 에너지가 되게 하고자 하는 의식으로서의 풍장(風葬). 그 궤적을 따라가는 황동규의 긴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통통 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뜨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튀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 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다오.
바람을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풍장(1)
2
개인적으로 나는 이 작품을 1987년 겨울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직후부터 시작된 "우리 사회는 희망도 무엇도 아무것도 없고 오직 감언이설과 기회주의만 있다"라는 식의 속되고도 어줍잖은 절망의 끝자락에서 무슨 우연처럼 혹은 필연처럼 마주쳤던 것 같다.
그때가 90년대 초반쯤 되려나. 그토록 절절하게 요구되던 자살이 한낱 악세사리로 추락하며 나를 또 한 번 암담하게 하던 무렵, 살거나 죽거나 아무렇게나 되거나 말거나, 두 눈 딱 감고 좌충우돌, 사람들이 흔히 불륜이라고 말하는 그런 것에나 탐닉하던 시절이었으니 정확한 년도를 기억하고 있을 리는 없다.
불륜이라는 것은 실로 맹랑한 단어라는 게 내 개인적인 소견이고, 따라서 그 문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고도 많지만 어쨌든 그 무렵의 나는 죽음을 생각하다가 그것을 포기하고 뜻밖의 사랑을 만난 다시금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랑의 메타포를 한갓진 용어로 표현하자면 정사(情死)쯤이나 되려나?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같이 죽어줄 수 있어?"
그때의 그녀, 가끔씩 눈빛을 유난히도 초롱초롱 빛내면서 진지하게 아주 심각하게 묻곤 하던 그녀, 드라마작가를 하다가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아서 미치겠다는 이유로 때려치웠다. 당당하게, 그야말로 당당하게 때려치고 소설을 시작했으나 그녀의 문법이 이미 드라마쪽으로 굳어져서 소설다운 소설을 쓰기는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 도대체 안 쓰여진다고, 애꿎은 남편에게 히스테리(?)나 부리는 걸로 겨우겨우 살아내다가 끝내는 미움을 받고 술집으로 어디로 거리를 방황하던 중에 나를 만났다.
가슴에 불이 들어 있는 여자였다. 그 불꽃에 내가 그만 태워져도 좋겠다는, 아니 태워질 수만 있다면 참으로 행복할 것 같았다. 그래, 오냐, 죽자, 같이 죽자.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죽자. 그리하여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꽃씨처럼 보이는 듯 안 보이는 듯 이 우주의 조용한 에너지로 편입해 들어가자.
처음에는 인도의 어느 골짜기에서 행해진다는 조장(鳥葬)이 우리를 사로잡았다. 내 육체를, 너의 육체를 새들이 쪼아먹고 그 양분으로 새새끼를 낳는다면, 그렇다면 너와 나는 새가 되는 것이니 이 얼마나 환장하게 바라던 바이냐.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도까지 가야만 한다. 사람의 시체를 먹고 사는 새는 그리 흔하지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 무렵의 우리에게는 그토록 먼 길을 가도 괜찮을 만큼의 인내도 없었다. 어서 빨리 죽어야 한다는 조바심으로 늘 떨고나 있었으니까.
그때 <풍장>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해서 알아낸 사실로는, 풍장은 원두막 같은 시체막을 지어놓고 거기에 시체를 올려놓는다고 했다. 그러면 바람에 육탈이 되고 뼈만 남게 되는데 그 뼈를 따로 모아서 화장을 하거나 땅에 묻거나 하여튼 어떻게 치우고 다른 주검을 다시 올려놓는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바로 그 시체막에 우리들 육체를 나란히 눕혀놓고 흐린날 그늘에서 빨래를 말리듯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말려가며 가끔은 사랑도 나누며 그렇게 사라져가자는 생각이었다.
무녀도와 장자도 그리고 선유도, 철교로 연결된 이 세 개의 섬에 풍장이 성했었다는 과거형 소문을 길라잡이로 우리는 군산에 가서 배를 타고 두 시간여를 달려 선유도에 도착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시체막은 없었다. 기독교가 들어와 교회를 짓고 선교를 하면서 청년회를 조직했는데 이 기독교청년회에서 시체막을 모조리 철거해버렸다는 소식이나 접했을 뿐이었다.
12월에서 이듬해 1월 어느 무렵쯤이었다. 정신을 놓고 있었던 까닭으로 날짜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그때 약 한 달여 동안을 우리는 섬의 구석구석을 그야말로 이를 잡듯이 뒤지고 다녔다. 시체막은 끝내 발견할 수가 없었지만, 생각지 않은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기는 이상하게 바람이 불어도 춥지가 않고 따뜻하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 파도를 스치듯이 혹은 유혹하듯이 나는 갈매기들, 그것들을 보며 방파제 앞 바위에 무연히 앉아있는 참인데 그녀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던가, 아니면 내가 그녀를 돌아보며 그런 말을 했던가.
정말이지 그곳의 바람은 아무리 거세어도 춥지가 않았다.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겨울바람이 머리카락을 날리고 이마를 스쳐가는 섬, 선유도, 그러고보니 그곳에서는 집집마다 개들을 몇 마리씩 기르는데 이 개들이 참 묘하게도 사람을 향해 짖는 법이 없었다. 그저 멀뚱멀뚱 쳐다보기나 하거나 아니면 언제 본 친구라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게다가 민박집의 주인들은 또 어찌나 친절하고 자상하고 계산성이 없이 무조건적인지. 남자가 바다에서 그물을 걷어 돌아올 때마다 귀하고 값비싼 생선이며 어패류들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돈 내라고 안 하니께. 그저 맛있게만 먹어주면 되니께 잉?"
사람이 귀한 곳이었다. 과거에는 새우젓으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지만 새우가 잡히지 않게 되면서 사람들은 태반이 떠나 버렸다. 그래서 누구라도 객지 사람이 들어오면 돈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이 없이 그저 반가워한다. 이런 곳에서 죽음을 생각했던 우리, 우리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둥글게 휘어진 초생달 같은 백사장, 그곳에서 하릴없이 물수제비를 뜨고 있는데 개들이 서너 마리 옆으로 다가와서 돌을 던질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달려간다. 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들었다가는 돌이 먼저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 다시 돌아선다. 그녀는 아까부터 내내 소나무 밑에 우두커니 앉아 나의 행동을 지켜만 본다. 숨막히는 긴장감, 무엇인가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 그날 나는 한나절 내내 모래밭에서 무수제비뜨기만 했다. 덕분에 개들은 아마 무지 피곤했을 것이다.
"애들이 보고 싶어."
썰물 시간, 물이 다 빠진 백사장 앞 바윗돌에 따닥따닥 붙은 굴을 까먹던 중인데 그녀가 문득 우는 소리를 낸다. 아아 이것이었던가. 나는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도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우는 소리를 내지도 않았다. 그녀는 뭐랄까, 자기의 소리에 자기가 아마 놀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미안하고, 자기에게는 미움이 돌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아유,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에, 이렇게 해야지."
갑자기 코먹은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그녀. 내 손에서 굴을 까는 호미를 빼앗아들고는 굴 하나를 까서 내 입에 넣어준다. 이게 무슨 맛이더라? 나는 그때 아마 하늘을 나는 갈매기들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 끝났다. 정사도 아니고 무엇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여행으로 귀결될 것이다. 아니다.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겼다. 그렇게 말해야 옳을 것이다. 적어도 그녀에게는, 그녀에게는 이번 여행이 삶의 귀중한 에너지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나는, 아아, 그래, 나에게도 뭐 아무것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금방 죽어버리지 않는 한, 이번 여행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좋은 지침이 되어줄 것만은 분명하다.
3
그 뒤로 십여 년, 십여 년만에 나는 선유도를 다시 찾아갔다. 그때 헤어진 그녀가 생각나서도 아니고, 그때의 추억을 연민해보겠다는 생각에서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은사라는 이름을 가진 암자를 가고 싶었더랬다. 그래서 길을 나섰는데, 기차표를 사들고 나서야 은사는 이미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래 다시 방향을 잡은 곳이 그곳, 선유도였다.
아마도 나는 그곳 선유도의 어디쯤인가에 웅크리고 앉아 울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아무도 아는 이가 없는 그곳에서, 아는 이를 찾고 싶어도 찾아지지 않는 그곳에서 실컷 울어보고 싶었던 것이리라.
세월이 무심하다고 했던가. 선유도는 이미 옛 선유도가 아니었다. 사방 도처에서 돈냄새가 물씬물씬 풍기는 그곳, 그곳에서 나는 단 하룻밤을 보내기도 고통스러웠다. 울음은커녕 내 영혼을 촉촉하게 적셔줄 단 한 방울의 물기도 내 안에서 만들어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내 개인적으로 매우 잘 된 일이기도 하다. 만약에 선유도가 십여 년 전의 인심/풍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곳을 그토록 쉽게 떠나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몇 달을, 어쩌면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주저앉아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생각들을 어루만지며 나는 지금, 다시, 황동규의 풍장을 펼친다.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 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풍장(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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