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우선은 이렇게나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아니, 이런 말조차도 실은 당신에게 전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해진다 해도 꿈이나 혹은 우연한 사건을 매개로 하는 상징의 체계를 갖게 되겠지요.
상징의 해석은 워낙 갈래가 다양해서 손에 잘 잡히지도 않지만 잡힌다 해도 그것이 누구의 애끓는 마음인지, 어느 시기에 전해져 온 것인지 알아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지요.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희망이 어떠한 날개를 달고 우리에게 다가와서 영혼을 포곤하게 감싸안고 괜찮다, 괜찮다, 죽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 하고 나직하게 속삭여주는 것인지 우리는 다 알고 있지요.
그러니까 서두의 죄송합니다, 이 말은 결국 내가 내 자신의 양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되겠네요. 내가 <나>라고 부르면서도 내 임의로 어떻게 하기는 어려운 저 깊은 곳의 은밀한 보물창고라고나 할까,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임에 틀림이 없는 신(神)과도 같은 존재로서의 언제나 숨어 있는 <나 자신>에게 말입니다.
이것은 물론 꿈이나 우연의 형식을 빌리는 희망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지금> 내가 <여기서> 하는 사죄의 말씀이 언제인가는 당신에게 꿈이나 혹은 우연한 어떤 사건의 형식을 통해 전해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편지 한 장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생각과 얼마나 많은 우연한 사건들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생각이 먼저인지 사건이 먼저인지 전후 맥락을 가르는 게 또 그리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와 부합되는 사건과 부딪칠 수도 있고, 사건을 접한 이후에 그와 연관된 생각을 하게 되는 수도 있을 테니까요. 결국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고 있는, 당신에 대한 생각과 그리고 당신과 연관해서 나를 스쳐간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을 돌이켜보고 있노라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나는 앞으로 영원히 오체투지의 자세를 취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본 영화포스터 한 장이 나에게 이런 식의 편지를 쓰게 했다고 한다면, 어쩌면 내가 지금 뭔가 그럴 듯한 핑계를 찾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멋적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그런 어떤 부끄러움이 아직은 내게 남아 있습니다.
<씨네21>이라는 영화전문 잡지였던 걸로 기억되는데요.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였는지 광고였는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거기서 낯선 제목 하나를 발견하고 나는 아마 그대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토록 충격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이지 그 제목은 신선하고, 그리고 낯설었습니다. 그런데 낯설다는 느낌이, 오히려 대단히 친근하게 여겨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율배반적인 감정은, 나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편안함이었지요. 그렇게 편안해진 마음으로, 그날 저녁 잡기장을 펼쳐놓고 나는 이렇게 끄적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게도 한때는 아내가 있었지. 한때는 애인도 있었고, 정부(情婦)도 있었지. 그녀가 나의 정부였고, 내가 또한 그녀의 정부였던 시절에, 아내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걸로 해두었지. 그런 아내를 나는 착하다고 생각했었지. 그리고 아내에게도 애인이 있고, 정부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나는 아내가 나쁜 여자라고 생각했었지.>
그것이 낙서라고 한다면, 낙서는 거기서 더 이상 씌어지지는 못했습니다. 내부에서 무엇인가 시냇물이 흘러가는 듯한 소리가 자꾸 들려오는 바람에 쓸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것은 슬픔도 아니고, 반성의 마음도 아니고, 엇갈리는 인연과 사랑의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허무감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에 포기했던 것들이, 이를테면 희망 같은 것들이, 멀리서 바람에 날려오는 꽃향기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나는 아마도, 아 그때 그 여자가 내 아내였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그때 일기를 쓰다 말고 불현 듯 떠오르는 당신의 영상에 사로잡혀가고 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만났던 것인지, 그저 우연히 발등을 잘못 밟아서 말다툼을 잠깐 했던 것인지, 극장이나 혹은 백화점에서 어쩌다가 눈길이 마주쳤던 것인지 아무것도 기억에 남아 있지 않는 당신의 얼굴이 어쩌면 그렇게도 확연하게 떠오르는 것일까요. 그 낯선 신선함이 내게는 또 충격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당신에 대한 내 기억의 근원을 밝혀보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생각이 없이 멍하니 있을 때는 그렇게도 확연하게 떠오르는 당신의 얼굴이, 그것이 어떠어떠하다고 내 자신에게나마 의식을 갖고 설명을 해보려고 할라치면 어느새 사라지고 추상적인 이미지로만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의 얼굴은 마치 달나라에서 떡방아를 찧는 토끼나 혹은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하는 구름 속의 그림들처럼 너무나도 멀고 추상적이어서 피로만 쌓여갈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나는 서서히, 차근차근, 마약에 중독되어 가는 사람처럼 지치고 피폐해지면서 당신의 얼굴마저도 시나브로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집착이 강하면 자기가 현재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조차 망각해버린다고 했던가요. 그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숨은 그림을 찾는 일에 열중한 나머지 나는 서서히 당신을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의도적인 회피였는지도 모를 일이기는 합니다. 자살을 결심하고 길을 나선 사람이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서 원점으로 되돌아오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나는 처음부터 당신을 가상의 존재로 여기고 있었거나, 최소한 찾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애써 부정하며 거기에 매달리는 척을 해왔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물론 내 생의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살아 있어도 괜찮다는 이유로써의 희망을 만들어서 보물처럼 간직하고자 하는 안간힘이었겠지요. 그러니 그 생명력인들 오죽했겠습니까. 인생을 진실로 사랑하지 못하는 자는 자살도 생각 속에서만 대충 끝내고 만다는 말이 있듯이, 당신을 찾고자 하는 나의 의지는 내 생의 희망을 전재로 하고 있었던 탓으로 그처럼 쉽게 사라지고 말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역시 완벽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요. 지난해 초가을 달이 아주 밝은 저녁에 나는 여기서 그 이름을 밝히기는 곤란한 어느 깊은 산사의 요사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음이 허할 때는 가끔 찾아가서 스님의 법문을 듣기도 하고, 내가 노스님에게 뭔가를 제법 많이 깨우치고 있는 척 건방을 떨기도 하는, 누가 주승이고 누가 객인지 가끔은 헛갈릴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큰소리를 빵빵 질러대도 통하는 그런 열린 사찰이었지요.
주승이 자신을 너무나 많이 열어놓은 탓이어서인지, 불편한 교통 탓이어서인지 찾아오는 신도는 거의 없고, 비바람이 몰아칠 때는 처마의 풍경소리와 계곡의 물소리, 한겨울의 쌓인 눈이 깊은 날에는 굶주린 토끼와 노루와 까치들이며 산새들이 뻔질나게 찾아와서 공양을 요구하는 폐허의 사찰이기는 했지만, 뜨락은 아직도 과거의 번성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너르고 편편하고 서 있는 나무들 하나하나가 다 제 향기를 뿜어내는 단아한 풍요가 배여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바람도 다 잠이 든 깊은 밤에, 풍경소리가 이따금 잠자리에서 몸을 뒤집듯이 들릴 듯 하다가 끊어지기를 되풀이하는 밤에 뜨락으로 쏟아지는 가을밤의 깊은 달빛은 뭐랄까요. 그것은 마치 살을 대면 금방 베일 듯이 소름이 돋는 서릿발이 차악 깔린 것도 같고 초설(初雪)이 하얗게 내린 것도 같았습니다.
금방 환장이라도 할 것 같은, 온전한 정신인 채로는 그 밤을 살아낼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절박한 어떤 것이 내 안으로 속속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주승이 출타 중이어서 객이 홀로 객방을 지키고 있었던 탓일까, 아마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노승이 소일 삼아서 산중을 헤매며 이런저런 산열매를 따다가 담가놓은 술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나는 서서히 취해가고 있었고, 그리고 친구를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딱히 어떤 친구가 아니라, 그저 친구야, 친구야, 그렇게 친구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니 문득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달이 내 곁으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아, 고맙다, 달, 너 거기 있었구나. 거기서 내가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하면서 나는 달에게 술을 한 잔 부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옆을 보니 어느새 또 한 친구가 와 있지 뭐겠습니까. 나는 그 친구에게도 술을 한 잔 따라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놀기 시작했지요. 달은 내 머리 위쪽에서 놀고, 또 한 친구는 내 뒤에서, 혹은 옆에서, 혹은 앞에서 마치 나와 떨어져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듯이 줄기차게 나를 따라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일배일배 부일배라 했던가요. 마셔도 마셔도 술은 취하지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달과 함께 나를 찾아준 그 또 한 친구의 재롱이 여간 재미있는게 아니었습니다. 그 녀석은 어찌나 재간이 좋은지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을 따라서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앞으로 한 발을 내디디면 녀석은 옆으로 한 발을 내딛는 척하면서 실은 나를 따라 앞으로 나오고 있었고, 내가 두 팔을 활짝 편 상태에서 앞으로 내밀고 팽이를 돌리듯이 홱 돌아서면 녀석은 두 팔을 활짝 편 상태에서 뒤로 내미는 척하지만 결국은 나를 따라서 역시 팽이를 돌리듯이 홱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는지 달은 어느새 지쳐서 돌아가고 그림자 친구도 돌아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어쨌든 나는 섭섭하고 야속했습니다. 어라 이놈들 어디로 가느냐,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체도 안 하고 기어이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허망해서 멍하니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참인데 잣나무 가지에 한 여인이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신 누구요,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습니다. 그 여인은 다름 아닌 내가 한때 내 아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바로 당신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쩔 여유도 없이 그대로 당신에게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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