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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위대한 바보 코보(6)

오리의 족보는 코스모스다?

 

막 아침밥을 먹으려는 참에 촉새 아줌마가 오징어 볶음을 가져왔다. 느닷없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코보는 느닷없는 일이라 여겨져서 인사말도 안 하고 가만히 앉은 채 지켜보기만 했다.

작년 가을에 오징어가 많이 잡혀서 냉동 공장이 미어터질 지경이라네요.”

그래서 값이 싸고, 그래서 많이 사다가 많이 요리를 해서 조금 가져왔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래, 그것은 정말로 아주 조금이었다. 절대로 많은 양은 아니었다. 입을 크게 한 번 벌리면 한꺼번에 다 먹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고, 노상 얻어먹기만 하고 어쩔까, 어쩔까.”

할머니는 미안해서 죽을 지경인 모양이었다. 코보는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노상 얻어먹는다는 할머니의 말씀은 사실이 아니었다. 잘하면 이십 일에 한 번 정도나 될까. 아니 어쩌면 한 달에 한 번 정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끔 한 번씩 무엇인가를 가져오고, 그리고 또 가끔 한 번씩 세탁기를 돌리는 날, 그것도 항상 그러는 것은 아니고, 기분이 내키면 빨래거리를 함께 넣어주는, 그리고는 자기가 두 집 살림을 한다고 이웃 사람들에게 자랑을 한 시간도 넘게 늘어놓는 사람이 촉새 아줌마였다.

 

그러니까 자랑할 거리가 있는 촉새 아줌마 쪽이 훨씬 이익인 셈이었다. 그러니까 미안해 할 사람은 할머니가 아니라 촉새 아줌마인 셈이었다. 그런데도 촉새 아줌마는 하나도 미안해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만 친다.

얄미운 아줌마.

하지만 그 얄미운 아줌마가 가져오는 음식은 언제나 맛이 좋았다. 무엇으로 만든 어떤 음식이건 먹은 것 같지도 않게 그릇이 비어 있곤 했다. 떡볶이처럼 빨갛게 고추장을 두른 오징어볶음은 선 채로 그냥 보기만 해도 입 안에서 침이 돌고 혀가 마구 움직이고 난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코보는 손을 대지 않고 촉새 아줌마가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코보 너, 아줌마한테 사과 안 해?”

뭘요.”

 

마당 끝에 뽀야가 고민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어제 혼이 난 뒤로 코보만 보면 발이 떨어지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골목길과 마당의 경계쯤에 가만히 앉아서 안쪽을 엿보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뽀야가 조금은 처량해 보이기도 했지만, 코보는 어제 개를 물었던 때의 감격을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으로 뽀야를 향해 혀를 한 번 날름거려 주었다.

 

상자 안에서 오리가 삐삐, 소리를 냈다. 촉새 아줌마가 문득 생각났다는 투로 꽥 소리를 질렀다.

족보도 없는 저놈의 오리 새끼 땜에 응? 우리 개 뽀야를 공포로 떨게 했잖아. 세상에 원, 사람 새끼가 돼 가지고 개를 물지 않나, 얼마나 놀랐는지 밤에 자다가도 소리를 지르더라. 그런데도 사과 안 해?”

 

우리 오리가 족보 있는지 없는지 아줌마가 어떻게 알아요?”

알지 왜 몰라. 저건 시궁창에서나 활개를 치는 아주 천한 것들이란 말이거든.”천한 것들이라고요? 말하는 오리예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하이고 참말로, 내가 참말로. 우리 뽀야는 노래하는 개다, 이놈아. 뽀야. 이리 와. 이리 와서 노래 한 번 해봐.”

 

촉새 아줌마는 뽀야를 향해 손을 까불까불했다. 그러자 뽀야가 머뭇거리며 한 걸음 다가섰다. 코보는 때를 놓치지 않고 입을 쩍 벌려서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으릉, 소리를 냈다. 그러자 뽀야는 재빨리 돌아서서 마당을 나가 버렸다.

 

저봐요, 겁쟁이잖아요. 우리 오리는 그 정도로 안 도망가거든요. 누구든지 자기를 예쁘다고만 하면 덥석 품에 안기는 짓도 우리 오리는 안 하거든요. 진짜예요, 절대로 그런 치사한 짓은 안 해요.”

야 이놈아, 예쁘다고 하면 품에 안기는 게 당연하지.”

그래서 개밖에 안 되는 거죠. 우리 오리는 절대로 안 그렇거든요.”

얘가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야. 예쁘다고 해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기분이 좋을 때나 개를 보고 예쁘다고 하지, 나쁠 때는 안 그렇잖아요. 아줌마도 저번에 뽀야가 자꾸 따라다니니까 귀찮다고 발로 차 버렸잖아요. 그리고 다음 날은 또 뽀야, 뽀야, 우리 뽀야 예쁘다 하고, 그랬잖아요.”

야 이놈아 그것은, 사람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거봐요. 발로 채이고도 금방 또 사람 품에 안긴다니까요. 개는 그렇다고요. 그런데 오리는 안 그렇다고요. 사람이 자기를 예뻐하건 미워하건 똑같다니까요.”

그래봐야 족보도 없이 시궁창이나 뒤지는 오리 새끼지 뭘.”

 

촉새 아줌마는 불처럼 하르르 타 올라서 발끈 일어섰다. 찬장 앞으로 가서 접시 하나를 꺼내 오더니 오징어볶음을 아주 거칠게 옮겨 담았다. 그리고는 할머니를 쳐다보며 거만하게 지껄였다.

이거 할머니 혼자만 잡수세요, 코보 저놈은 자격이 없으니까, 알았죠?”

 

아이고 참, 어찌 그런 말씀을. 그러시면 나도 못 먹지-요오.”

할머니가 속 시원하게 쐐기를 박아 주었다. 도로 가져가시라는 말이 안 나온 게 천만다행이었다. 코보는 할머니가 어찌나 고맙고 사랑스럽던지 그냥 달려가서 볼에 입을 맞추고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할머니는 간지럽다고 히히, 소리를 내다가 코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간지럼을 태우기 시작했다.

 

촉새 아줌마는 자기네 그릇을 와락 나꿔채서 들고는 꼴값을 해요, 꼴값을하고 투덜거리며 마당으로 내려섰다.

족보, 족보, 오리는 정말로 족보가 없나?

 

코보는 할머니에게 여쭤보았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한참을 생각했지만 모르겠다는 듯 글쎄, 글쎄, 소리만 연발하다가 아하, 하는 투로 청둥오리 얘기를 꺼냈다. 청둥오리도 오리니까 혹시 거기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말씀이었다.

코보가 생각하기에 청둥오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림과 사진으로 보았을 뿐이지만 집오리와 청둥오리는 생김새가 너무 달랐다. 청둥오리는 제비처럼 날렵하고, 원앙이나 꿩처럼 색깔이 알록달록 화려하고 크기도 훨씬 작았다.

잠시 뒤에 할머니는 암탉 얘기를 꺼냈다. 할머니 자신의 눈이 멀기 전에 닭이 오리 알을 품어서 새끼 오리를 까 내는 장면을 보았다는 거였다. 집오리가 알을 직접 품지 않고 암탉에게 맡긴다는 이야기는 코보도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그때는 뻐꾸기랑 비슷한가보다 생각하고 말았지만, 할머니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삼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왜 그러지?

 

그러면 암탉이 오리의 족보인 거예요?”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끼를 낸 쪽이 조상이 되는 거란 말이거든?”

오리 알은 오리가 낳잖아요.”

낳기만 하면 뭘 해, 까서 키워야지.”그럼 암탉이 새끼도 키워요?”

아니, 그렇지는 않지 아마? 맞아. 암탉이 알을 품어서 새끼를 까 놓으면 어미 오리가 데리고 다녔다는 기억이 난다, .”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어려우면서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손이 자꾸 간질거렸다. 그런데 그것뿐이었다. 손이 간질거리기만 할 뿐 진도는 좀처럼 나아가지 않았다. 다음 날도, 또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오리를 데리고 철도다리 밑에 앉아 있을 때 문득 도서관의 사서 아줌마가 생각났다. 도서관에 자주 오는 어른들 사이에서 만물박사라 통하는 사서 아줌마는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보는 빌려온 뒤로 읽지도 않고 놔둔 책 코스모스를 들고 도서관으로 갔다.

 

사서 아줌마는 시청각 교육실에서 강의 중이었다. 학생은 할아버지 두 분에 할머니가 세 분, 젖먹이 아이를 데리고 온 아줌마가 세 분 그리고 청년 한 사람 해서 모두 일곱 명이었다.

내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자기가 누구이고 왜 태어났는가를 알기 위함이다. 그것을 모르면 동물과 사람의 구별이 안 된다.

 

그 말이 그 말 같으면서도 매번 다른 말 같은,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사서 아줌마의 강의는 지루하면서도 살짝 재미가 있었다. 들을 때면 또 저 소리인가 싶어서 하품이 나오지만, 듣다 보면 어느새 빠져들었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모아놓으면 그 안에 나의 미래가 있고 과거가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부르지요.”

 

사서 아줌마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코보에게 한쪽 눈을 감아 보이면서 말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커다란 텔레비전 화면에는 여러 형태의 글자가 떠 있었다. 사람이 먼 옛날 글자를 만들어낸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모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등등 그런 문제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이상한 모양의 글자들이었다. 아니 그것은 글자라기보다 유치원 아이들이 그려놓은 그림 같기도 했다.

 

그림 같은 글자들을 사람의 먼 조상은 동굴에 새겨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고, 자식들은 점토판에 새겨서 또 그 자식들에게 물려주었고, 그 자식들은 그것을 또 나뭇가지나 대나무에 새겨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고, 그 자식들은 그것을 다시 옷감에 적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고, 그 자식들은 다시 그것을 종이에 적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었고, 그러는 동안 그림처럼 생겼던 글자는 조금씩 그림의 형태를 벗어나서 오늘날의 글자가 되었다는 사서 아줌마의 이야기를 코보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는 책이라도 한 권 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와 줘서 고마워. 오늘도 얼굴을 안 보여주면 내일은 다시 또 코보네 집으로 쫓아가려 했는데, 후훗, 그동안 코보가 없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 아니. 모르지? 무정한 남자 같으니.”

강의를 끝내자마자 사서 아줌마는 한손으로 코보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코보는 뭔가 뭉클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기분이 아주 이상해져 버렸다. 무엇보다 아줌마에게서 풍기는 냄새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온 거 아니에요.”

저도 모르게 한 마디가 나왔다. 자신의 그 목소리가 너무 쌀쌀맞게 느껴져서 코보는 은근히 불만스러웠다. 다행히도 사서 아줌마는 아무렇지 않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 뭔 소리야?”

오리가 말이에요. 오리의 족보가 뭔지 아세요?”

 

질문 방식이 너무 바보 같아서 코보는 또 자기 자신이 불만스러웠다.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

그러나 사서 아줌마는 이번에도 실망한 기색이 없이 진지하게 받아주었다. 불쑥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서서 큰 눈을 깜빡거리고 있는 사서 아줌마는 아마도 설명을 좀 알아듣기 쉽게 해 보라는 것 같았다.

코보는 감히 그 큰 눈을 쳐다보지는 못하고 더듬더듬 지난 며칠간 있었던 오리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어서 오리의 족보를 알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사서 아줌마는 느닷없이 박수를 쳤다.

 

아아, 그거. 우리 코보 정말 대단하네. 그렇게까지 깊어지다니. 그런데 말이야. 오리의 족보는 말이야. 그 책만 열심히 읽어도 금방 알 수 있는 것이거든.”

사서 아줌마는 코보의 손에 들린 책 코스모스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러고 보니 코보가 아마 오리를 만나려고 그 책을 선택했었던가 보다. 저 어려운 책을 어떻게 읽으려나, 은근히 걱정도 했었는데, 정말이지 대단한 예지력이네, ? 그렇게 해봐. 집에서는 오리와 함께 코스모스를 읽고, 도서관에 나와서는 다른 책을 읽고, 그렇게 하면 오리의 족보는 자연스럽게 드러날 거니까, 그렇게 할 거지?”

 

뭐야 이 아줌마가 진짜.

코보는 은근히 화가 났다. 아무래도 놀린다는 느낌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사서 아줌마의 얼굴에서 진지함이란 도대체 찾아볼 수가 없었다. 책상 위에 책을 그대로 팍, 소리가 나게 내려놓고 홱 돌아서서 나와 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지금은 내 말이 안 믿어지지? 서너 달만 부지런히 내 말대로 하고 나면 고마워서 누나한테 절을 하고 싶어질, ?”

사서 아줌마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큰 눈을 계속 깜빡거리면서 웃고 있는 사서 아줌마의 얼굴을 코보는 다시 보기가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때 사서 아줌마의 입에서 비수 같은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근데 왜 오리의 족보를 알고 싶어진 거야?”

?”

 

코보는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랐다. 사실은 놀래야 할 까닭이 없는 질문이었다. 놀래야 할 까닭이 없는 까닭에 더 크게 놀란 것인지도 몰랐다.

 

강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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