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하나.
코보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할머니도 옆에서 거들었다. 오리는 물에서 사는 것이라고, 마당에는 물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옳은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할머니는 혼잣말로 고민 하나를 보태주었다.
“물이 없으면 안 되는 거예요, 정말로?”
“그러-엄, 밥도 항상 물에 말아서 줘야 해. 그냥 주면 목이 막혀서 죽어.”
“할머니는 그런 걸 다 어떻게 알아?”
“앞을 못 본다고 그런 이치도 안 보일까, 다 보이는 거란다.”
코보는 할머니를 우러러보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전 같으면 수긍을 하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에 뭔가 중대한 비밀을 알아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새끼 오리들은 상자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소리로 내는 삐삐, 소리가 무척 달콤하게 느껴졌다. 뽀야에게 엉덩이를 물어뜯긴 녀석은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친구들을 안심이라도 시키듯이 피가 엉켜 붙은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부지런히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그렇게 놀랐는데도 짜증이나 원망의 소리는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응?”
코보는 새끼 오리들을 들여다보며 가만히 속삭였다. 그렇게 하면 오리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가 번역되어 들릴 것만 같았다.
번역, 이 단어를 생각하는 순간 코보는 일시에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컥컥거리는 기분으로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참을 그렇게 고개를 치켜든 채 컥컥거리다가 벌떡 일어섰다.
무엇인가 다른 존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말을 번역해서 오리에게 들려주고, 오리의 말을 번역해서 사람에게 들려주는 제3의 존재가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날 역전시장에서 그렇게도 선명하게 오리의 말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아무 말도 번역해주지 않는 거지? 지금은 어디로 가버린 것이지?
코보는 잇달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할머니의 말씀이 귀에서 들렸다. 남자들이 밤이면 도깨비와 씨름을 하던 시절에는 별들이 하는 소리도 사람이 알아들었다는, 바람이 내는 소리도 사람이 금방금방 이해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는 할머니의 말씀이 귓가에서 왱왱거렸다.
할머니의 말씀대로라면 오리의 말을 번역해주는 제3의 존재가 있었다기보다는 차라리 사람의 능력이 전보다 형편없이 모자라졌다고 보는 게 옳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날은 왜 오리들의 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렸던 것이지?
코보는 다시 마당에 내놓은 오리 상자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답답해서 그만 머리털이라도 쥐어뜯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머 이게 뭐야. 오리네?”
그날은 마침 수요일이었다. 매주 수요일이면 찾아와서 할머니의 다리에 침도 놓고 부황도 뜨고 하는 ‘함께 하는 세상’의 사회복지사 아줌마가 마당으로 들어서던 중에 새끼 오리를 보더니 어머, 어머, 소리를 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참을 그렇게 금방 쓰러질 것처럼 허둥거리다가는 겨우 정신이 돌아왔는지 민망한 표정으로 씨익 웃었다. 그러나 이내 도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줌마가 어제 밤 꿈에 오리를 보았다는 거였다. 그것도 다섯 마리의 오리를 보았다는 거였다. 오리 다섯 마리가 철도 옆에 다리 밑에서 헤엄을 치고 놀다가는 갑자기 아줌마 안녕, 안녕, 하고 연거푸 인사를 하며 달려오는 바람에 기절을 할 듯이 놀라 잠에서 깼다는 거였다.
“어머 이게 웬일이야, 응? 웬일이냐고.”
사회복지사 아줌마는 신기해서 미칠 지경인 모양이었다. 코보는 아줌마의 이야기가 신기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아무런 말도 질문도 해볼 수가 없었다. 가슴에서 무슨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았다. 살려 달라고, 꺼내 달라고 애원하며 주먹으로 문짝을 쾅쾅 두드려대는 것 같은 소리가 가슴에서 잇달아 들렸다. 아줌마는 계속 감탄사를 토해내고 있었다.
“어저께 우리 사회복지사 팀이 회식을 했거든. 거기서 오리 로스를 먹었거든. 그래서 꿈에 오리가 보였나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던 모양이네? 여기서 이렇게 어린 오리 다섯 마리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어머, 어머, 이게 무슨 일이람?”
코보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뜬 눈으로 사회복지사 아줌마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한참을 보다가 상자 안의 새끼 오리들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길이 보였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코보는 오리 상자를 망태기에 집어넣고 아줌마에게 할머니를 부탁한 다음 마당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아, 어른들은 오리가 말을 하면 놀라서 기절을 할 지경이 되는구나. 나는 신기해서 좋기만 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어른이 안 되었으면 좋겠다. 그냥 이 정도에서 이대로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사회복지사 아줌마는 철도 옆에 다리라고 했지만 그런 다리는 없었다. 개천 위를 지나가는 철도가 있을 뿐이었다. 코보는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철도를 따라서 한참을 뛰었다.
새끼 오리를 샀던 역전시장 쪽으로는 그런 다리가 없다는 것을 이미 알기에 그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철도를 따라서 역전시장 반대 방향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내달렸다. 한참을 달려도 철도 옆에 다리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아줌마는 역시 개천 위를 지나가는 철도다리를 철도 옆에 다리라고 잘못 말한 것 같았다.
철도다리 밑에는 결이 아주 부드러운 모래톱이 있었다. 아이들 두세 명쯤이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기에 딱 좋은 넓이였다. 개천을 따라 잴잴 가난하게 흐르는 물이 모여드는 커다란 웅덩이가 이 모래톱 앞에 있었다.
웅덩이에 모여든 물은 다시 개천을 따라 잴잴 가난하게 흘러가는 탓에 물고기 한 마리 살아갈 수 없었지만, 웅덩이에는 송사리며 붕어며 새우 같은 물고기들이 손을 넣으면 금방 손 안에 들어올 듯이 한가하게 노닐고 있었다.
망태기를 내려놓고 상자를 열자마자 새끼 오리들은 웅덩이로 뛰어들었다. 마당에서처럼 놀라지도 않고, 쏜살같이 달아나지도 않고 마치 그래, 이거였어, 이거라니까 하는 듯이 삐삐, 소리를 부드럽게 내며 뒤뚱 걸음으로 하나, 둘, 셋, 차례차례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물고기들은 금방 덤불 속으로 숨거나 깊은 곳으로 내려가거나 해서 사라져 버렸다.
물고기들이 모두 사라졌는데도 새끼 오리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물고기 따위를 바라고 물에 들어온 게 아니라는 듯이 처음처럼 물갈퀴를 내둘러 헤엄을 치며 삐삐, 삐삐, 노래라도 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코보는 그 상황이 놀랍고 신기해서 이마를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왜 아무런 짜증도 안 내는 거지? 사람 같으면 물고기가 사라졌다고 에이 씨, 소리를 내며 무엇인가를 원망할 텐데 오리는 왜 계속 삐삐, 소리만 내는 거지? 왜 저렇게 태평한 거지?
코보는 모래톱 위에 가만히 엉덩이를 내려놓고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서 오리들을 쳐다보며 계속 그 생각을 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사람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는 채 골똘히 그 생각에 빠져들었다. 만약에 도서관의 사서 아줌마가 놀란 목소리로 코보를 부르지 않았다면 코보는 아마 해가 질 때까지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오리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머 세상에, 너 살아 있었구나, 살아 있었어, 응?”
사서 아줌마는 다짜고짜 그렇게 외치면서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코보를 부둥켜안고 뺨을 어루만지다가 자기 뺨을 대고 비벼대며 우는 소리를 냈다. 코보는 사서 아줌마를 철도다리 밑에서 만났다는 것에 놀라고,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에 또 한 번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웅덩이에 떠서 유유히 놀고 있는 오리를 발견한 뒤에서야 사서 아줌마는 자기가 뭔가 크게 잘못 생각했다는 것을 안 모양이었다. 뭔가를 뒤늦게 깨달은 사람의 민망하고 계면쩍은 표정으로 사서 아줌마는 자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코보는 자기가 일주일째나 도서관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사서 아줌마는 일주일째나 도서관을 찾지 않고 있는 코보가 너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거였다. 전화를 걸어도 연결할 수 없다는 얘기만 나와서 전화국에 전화를 걸어보니 요금체납으로 끊겼다는 얘기만 듣고 말았다고, 그래서 오늘쯤은 주소를 들고 코보를 찾아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거였다.
그런 생각으로 도서관에 출근해서 오전 일처리를 끝내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깜빡 졸았는데 그때 갑자기 철도다리 밑 웅덩이에 둥둥 떠 있는 코보의 시체를 보았다는 거였다. 그 시체를 보고 너무 놀라서 그냥 달려오는 길이라는 거였다.
“원 세상에 이게 뭔 일이라니. 아이구, 참, 우스워 죽겠네 그냥.”
사서 아줌마는 깔깔대고 웃다가는 다시 코보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코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그러나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우습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사서 아줌마도 더 이상은 웃지 않았다. 웃는 대신 아마도 눈물을 흘리는 모양이었다. 아줌마의 눈물이 코보의 뺨을 타고 흘렀다.
전화가 끊어졌다고?
코보는 어리벙벙한 속에서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전화기를 손으로 들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초아가 인사도 없이 떠나버린 뒤로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고 말았다.
물에서 놀던 새끼 오리들은 이제 그렇게 노는 것도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어느새 모래톱으로 올라와서 아직 깃털도 생기지 않은 날개를 파닥거리다가는 다시 몸을 부르르, 부르르 떨어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다섯 녀석이 사이좋게 몸을 맞대고 앉더니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 하루에 한 시간씩만 이렇게 데리고 나와 주면 되겠구나.
코보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기분으로 벌떡 일어났다. 그 바람에 사서 아줌마가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 소리에 놀란 새끼 오리들이 삐삐, 소리를 내며 잠시 웅성거렸지만 이내 다시 잠들어 갔다.
그러니까 내 정신이 일주일 동안이나 어디 딴 데 가 있었단 말이지?
코보는 오리 상자를 챙기다 말고 혼자 중얼거렸다. 도서관에 안 나간 일주일, 그 기간 동안 어디서 뭘 했지? 뭔가를 도둑맞은 것도 같고, 오리를 찾아서 헤매다가 겨우 만나서 함께 돌아온 것 같기도 하고,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는 거였다.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대한 바보 코보(6) (0) | 2021.03.31 |
---|---|
위대한 바보 코보(5) (0) | 2021.03.30 |
위대한 바보 코보(3) (0) | 2021.03.26 |
위대한 바보 코보(2) (0) | 2021.03.25 |
위대한 바보 코보(1) (0) | 2021.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