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편소설

위대한 바보 코보(3)

사람이 개를 물면 어떻게 되나

 

새벽에나 잠깐 잠이 들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꿈을 꾸었다. 꿈에서 오리 다섯 마리가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그렇게 저마다 한 마디씩 해주었다. 그리고는 날개를 활짝 펴고 몇 번인가 파닥거리더니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으악, 안 돼.”

코보는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창문을 가득 햇살이 채우고 있었다. 상자 안에서 새끼 오리들이 삑삑, 소리를 냈다. 부엌에서는 할머니가 이제 일어났구나, 하는 투로 기침 소리를 냈다.

 

코보는 오리 상자를 품에 안아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젖히고 옆으로 살짝 기울이는 순간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 얌전하게 부드러운 소리로 삑삑, 소리나 대던 새끼 오리들이 햇살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며 뛰쳐나왔다.

상자 밖으로 나온 새끼 오리들은 미친 듯이 갈팡질팡 내달리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가 저마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한 녀석은 개나리꽃이 피어 있는 담장 쪽으로 달려가서 그 아래로 쏙 숨어들었다. 다른 한 녀석은 장독대 사이로 숨어들었고, 나머지 세 녀석은 마당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나가 버렸다.

 

코보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골목으로 뛰쳐나갔다. 촉새 아줌마네 개 뽀야가 새끼 오리를 노리고 뛰쳐나온 것과 코보가 밖으로 나간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새끼 오리는 아마 뽀야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을 것이다.

뽀야 녀석이 새끼 오리의 엉덩이께를 덥석 물어 잡는 것을 보는 순간 코보는 코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렸다. 코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다른 무엇, 글쎄, 그것이 무엇인가는 한참이 지난 뒤에도 알 수가 없었다.

 

촉새 아줌마가 휘두르는 빗자루에 등짝을 죽어라고 얻어맞은 뒤에서야 코보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리고 자기가 엎어진 채로 뽀야 녀석의 뒷다리 사타구니께를 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뽀야는 미친 듯이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몸부림을 쳤다. 뽀야에게 엉덩이를 물린 오리는 어느새 빠져나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아니고 개도 아니고 넌 뭐냐? ? 도대체 넌 뭐야, 이놈아.”

촉새 아줌마는 아주 미친 사람 같았다. 피도 안 나왔는데 곧 죽을 것처럼 깨갱, 깨갱 정신없이 엄살을 떨어대는 뽀야를 자기 뺨에 대고 비벼대면서, 한 손에 들린 빗자루로 코보를 금방 때려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는 촉새 아줌마의 허둥거리는 꼴이 신기해서 코보는 한참을 쳐다보았다.

 

목소리만 듣자면 틀림없는 남자이면서 얼굴과 행동은 또 틀림없는 여자이고 보니 우습기조차 했다. 그러면서도 새끼 오리가 뽀야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피신을 했다는 점에 일단 안심했다. 안심을 한 뒤에는 촉새 아줌마와 뽀야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숙였다.

 

하이고 참 내, 사람이 개를 문다는 소리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내가 그 꼴을 당하다니 응? 가자. 일어서 이놈아.”

촉새 아줌마는 뽀야를 품에 안은 채로 벌떡 일어섰다. 일어서자마자 코보의 뒷덜미를 잡고 끌어당겼다. 할머니에게 일러서 합동으로 혼내주겠다는 생각인 모양이었다. 할머니는 벌써 부엌문을 열고 문턱에 걸터앉아 고개를 길게 빼고 소리를 따라서 방향을 가늠하는 중이었다.

 

코보는 입 안에 가득 찬 하얀 개털 때문에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마치 입술에 수염이라도 난 것 같았다. 코보는 그 이상한 기분이 좋아서 개털을 뱉어버릴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끌려 들어갔다.

촉새 아줌마는 코보의 뒷덜미를 움켜잡은 채로 할머니에게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설명에 따르면 코보가 꼴에 사내라고 여자를 많이 밝힌다는 것이었다. 그 여자가 다름 아닌 촉새 아줌마 자신의 조카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조카딸이 멀리 가 버리니까 코보 이놈이 화가 나서 자꾸 이상한 짓을 한다고 했다. 이웃에 사는 어른의 입장에서 좋게만 생각하고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은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고 했다. 왜냐하면 조카딸이 아끼고 사랑했던 개 뽀야를 물어뜯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설명을 마친 촉새 아줌마는 할머니의 손을 끌어다가 코보의 입에 대 주었다. 개털이 아직도 이렇게 묻어 있으니 이보다 큰 증거가 무엇이겠느냐는 말이 한참 뒤에 나왔다. 그러자 이윽고 할머니가 한 말씀 하셨다.

아니 개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사람에게 물렸을까-?”

 

할머니의 이 한 말씀에 촉새 아줌마는 말더듬이가 되고 말았다. , , 뭐라고요? 소리만 나올 뿐 촉새 아줌마의 입에서는 한 마디도 말 같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틈을 타서 코보는 촉새 아줌마의 손아귀를 벗어났다.

아줌마는 순 거짓말쟁이에요. 그래서 재수 없어요. 내가 무슨 여자를 밝힌다고, 입만 열었다면 그딴 소리나 하고. 진짜 재수 없어.”

 

그래, 나는 입만 열었다 하면 그딴 소리나 한다. 어쩔래. 그러는 너는 이제 입만 열었다면 개나 물어뜯기로 작정했냐? 어디서 감히 개를 물어, 물기를.”

뽀야가 우리 오리를 잡아먹으려 했단 말이에요. 내가 뽀야를 물지 않고 몽둥이로 후려쳤다면 뽀야는 벌써 죽었을 걸요?”

오리? 오리라니? 그건 또 무슨 엉뚱한 수작이야? 얘가 정말 안 되겠네. 백주 대낮에 어른 앞에서 거짓말이나 해대고, ?”

좋아요. 보세요.”

 

코보는 한달음에 달려가서 개나리꽃 나무 밑에 숨는다고 숨어 있는 새끼 오리를 잡아왔다. 보세요, 보셨지요? 하는 투로 촉새 아줌마 앞에 오리를 흔들어 보였다. 아줌마보다 뽀야가 먼저 흥분해서 으릉, 소리를 내며 아줌마의 품을 뛰쳐나왔다. 코보는 뽀야보다 훨씬 큰소리로 으릉, 소리를 내며 입을 쩍 벌리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해 보였다. 뽀야는 금방 꼬리를 내리고 낑낑 소리를 내며 다시 아줌마의 품으로 돌아갔다.

 

코보는 잡아온 새끼 오리를 상자 속에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장독대 사이로 들어가서 또 한 마리를 잡아왔다. 뽀야에게 엉덩이를 물린 녀석은 어디로 꼭꼭 숨어 버렸는지 안 보였다. 한참을 찾아서 헤매다가 마루 밑의 운동화짝 속에 쏙 들어가서 머리는 감추고 꽁무니만 드러낸 채로 가냘프게 삐, ,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녀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엉덩이를 얼마나 깊이 물렸는지 피가 나와서 털을 적신 채로 굳어가고 있었다. 코보는 그 녀석을 잡아다가 촉새 아줌마에게 보여주었다. 말은 한 마디도 안 하고 피가 맺힌 곳을 보여주기만 했다. 뽀야가 다시 으릉, 소리를 냈다. 혀를 날름거리는 주둥이 주위에 아직도 오리털이 붙어 있었다. 코보는 손으로 뽀야의 주둥이를 가리켰다. 역시 말은 하지 않았다.

 

야 이놈아, 그렇다고 사람 말을 하는 그 입으로 개를 무냐?”

촉새 아줌마의 목소리는 이제 팍 수그러져 있었다.

 

코보는 갑자기 의기양양해졌다. , 내가 개를 물었었지 참,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몽둥이로 때렸다면 뽀야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입으로 물어놓고 보니 크게 다친 데도 없이 효과는 아주 만점이었다.

 

아아 앞으로 이렇게 해야겠구나.

 

코보는 싱글벙글하는 표정으로 촉새 아줌마를 쳐다보고, 이어서 뽀야 녀석을 쳐다보며 미안하다는 투로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그러자 뽀야는 겁이 났는지 낑, , 죽어가는 소리를 내며 촉새 아줌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러자 촉새 아줌마는 이놈 봐라 이거, 하는 투로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개가 어떤 개라고 네가 이빨로 물어. 족보가 있는 개야 이놈아. 어디서 족보도 없는 오리 새끼를 가져다 놓고는, ?”

 

족보요?”

그래 이놈아. 얘가 어디서 온 줄이나 알아? 모르지? 저기 유럽에 귀족 부인들 품에 안겨서 우아하게 칠면조 고기를 받아먹던 녀석이란 말이야. 알겠어? 근데 오리 새끼 저건 뭐냐? 근본도 없고, 애비는커녕 에미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잖아. 근본이 있냐? 말 해봐.”

 

코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말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촉새 아줌마는 계속 뭐라고 비웃고 있었다. 남자처럼 굵은 목소리로 어떻게 여자처럼 그렇게도 수다스러울 수 있는지 신기했다. 나중에는 그 수다스러움으로 할머니의 동의를 구하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귀를 쫑긋 하는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뿐 아무런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촉새 아줌마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한 번 쓸어내리더니 벌떡 일어서서 마당을 나가 버렸다.

코보는 몹시 어지러웠다.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풀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았다. 새끼 오리를 마당에 풀어놓고 마음대로 놀게 할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언제 또 뽀야 녀석이 사냥꾼처럼 입을 쩍 벌리고 달려올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노상 지키고 앉았다가 녀석의 엉덩이를 물어뜯어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건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 일은, 사람이 개를 물어주는 일은 딱 한 번이어야 자랑스럽지 그 이상이면 바보 같은 짓이 되는 거라고 코보는 생각했다.

 

'장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대한 바보 코보(5)  (0) 2021.03.30
위대한 바보 코보(4)  (0) 2021.03.29
위대한 바보 코보(2)  (0) 2021.03.25
위대한 바보 코보(1)  (0) 2021.03.24
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32최종)  (0) 2021.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