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누나? 뭐가 맞는 거야
코보는 졸고 있는 새끼 오리들을 가만히 잡아다가 상자에 넣고 상자를 망태기 안에 넣은 다음 망태기를 등에 지고 일어섰다.
“아줌마, 가요.”
“응? 으응.”
코보는 사서 아줌마가 책 때문에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빌려온 책을 일주일이 넘도록 아직 읽지도 않고 집에 두고 있었다. 얼른 돌아가서 그 책을 돌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아줌마는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근데 말이야. 코보야. 넌 꼭 그렇게 아줌마라고 불러야만 해? 선생님이라고 하면 안 될까?”
“선생님이요? 싫어요.”
“왜에?”
“무서우니까요.”
“선생님이 무서워? 아, 그래서 학교에 안 다니는 것이로구나?”
“아뇨. 선생님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말이 무섭다고요.”
사서 아줌마는 말뜻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가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탄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선생님이라는 말이 무섭다? 야아, 역시, 코보 대단하네. 그럼 누나는 어떨까.”
“누나요?”
“누나라는 말은 부드럽고 좋잖아. 아줌마보다는 친근감도 있고, 안 그래?”
“누나요?”
코보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게 쳐들고, 한참 동안이나 사서 아줌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누나아.”
눈이 큰 사서 아줌마는 그 큰 눈으로 엉뚱하게 코보가 아닌 들판을 쳐다보며 뭔가 금방 사탕이라도 한 개 줄 것 같은 말투의 말을 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잠시 뒤에 몇 걸음 걷다가는 그 말을 보충하고 나섰다.
“누나가 맞는 거야. 결혼도 안 했는데 나이 먹었다고 아줌마라고 하면 틀린 거야. 그것은 실례고, 무례인 거야.”
코보는 말없이 걸었다. 뛰지는 않았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사서 아줌마가 코보야,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코보는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바쁘게 걸었다. 뒤따라오던 아줌마는 잠시 뒤에 다시 코보야,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코보는 좀 더 바쁘게 걸었다.
어느새 밭둑을 지나고, 논둑을 지나고, 동네 골목을 지나서 집 앞에까지 와 있었다. 코보는 마당으로 들어서려다 말고 뒤를 한 번 슬쩍 돌아보았다. 사서 아줌마는 그 사이에 5미터도 넘게 떨어져서는 마치 지쳐버린 마라톤 선수처럼 학학, 소리를 내며 간신히 따라오고 있었다.
어유, 그렇게도 약해요?
소리가 입에서 나오고 있었지만 코보는 참았다.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대로 서 있으면 정말로 눈물이 나오고 말 것처럼 위태로웠다. 코보는 다리에 힘을 주고 사서 아줌마 쪽으로 마치 마중을 나가듯이 두 걸음쯤을 크게 다가가서 아줌마의 손을 잡았다.
“응?”
사서 아줌마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코보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보고, 이어서 코보를 쳐다보며 부끄럽다는 듯이, 아니 어쩌면 미안하다는 듯이 얼굴 전체가 움직일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지었다.
코보는 사서 아줌마의 손을 잡은 채 돌아서서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때 사회복지사 아줌마가 가방을 들고 마당에서 나왔다. 벌써 할머니에게 해야 할 일을 다 마친 모양이었다.
“어머 웬일이야.”
소리가 두 아줌마의 입에서 동시에 나왔다. 코보는 사서 아줌마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리 상자를 마루에 내려놓은 다음 방으로 들어가서 할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할머니는 침 맞은 다리를 오므린 채 모로 누워서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두 아줌마는 마당에 서서 한참을 뭐라고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웃어대고 있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서 아줌마가 주변을 경계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묻고 있었고, 사회복지사 아줌마도 덩달아서 낮은 소리로 뭐라고 소곤거렸다.
“어려워요. 연세도 여든이 넘었고, 이제 방법은 요양원밖에 없는데 그게 글쎄. 조손간의 사이가 워낙 찰떡 같아서, 말 꺼내기도 조심스럽죠.”
사회복지사 아줌마의 낮은 목소리가 코보의 귀에까지 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크게 떠들어대는 소리는 하나도 귀에 안 들리는데 작게 속삭이는 소리는 왜 귀에 쏙쏙 들리는 것일까.
이상한 일은 또 있었다. 크게 떠들어대는 소리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으면서도 그 뜻은 대강 알겠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럴 때의 아줌마들은 정신 상태가 들떠 있어서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작게 속삭이는 소리는 그 음절과 억양과 단어 하나하나를 다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도 그 뜻은 전혀 오리무중이었다.
이게 뭐지?
코보는 방을 나와서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두 아줌마는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슬금슬금 마당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아줌마의 정신 상태를 전혀 짐작조차 해볼 수 없었다.
아, 코스모스다.
코보는 부리나케 방으로 뛰어 들어가서 크고 무거운 책 한 권을 들고 나왔다. 도서관에서 그 책을 빌릴 때는 코스모스가 궁금해서였다. 가을이면 철도변에서 한들거리는 코스모스 꽃이 왜 그렇게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지, 가슴을 설레게 하면서도 왜 그렇게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아지는지, 그 책을 읽고 나면 그런 비밀을 알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책은 제목만 코스모스일 뿐이었다. 코스모스 꽃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집에 와서 알았다. 도서관에서는 한참이나 책장을 넘기면서도 코스모스 꽃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집에 와서는 단 한 장만 넘겼을 뿐인데도 코스모스 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이 책과 아줌마들이 무슨 상관이지?
코보는 다시 허방에 빠진 기분으로 고개를 발끈 들고 하늘을 보았다. 방금 전에는 분명히 뭔가 알겠다는 느낌이 있었다. 소곤거리며 마당을 빠져나가는 두 아줌마들이 숨기고 있는 어떤 비밀과, 코스모스란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도 코스모스 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책 사이에 어떤 끈이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책을 들고 밖으로 나오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이 책을 왜 갑자기 생각해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와아 미치겠네.
코보는 뒤로 발랑 드러누워서 두 발을 허공에 대고 마구 휘저어댔다. 한참을 그러다가 문득 마당으로 다시 들어서고 있는 사서 아줌마를 발견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마음 턱 놓고 서서 오줌을 누다가 정면으로 들킨 기분이었다.
“코보, 아까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지?”
사서 아줌마는 또 엉뚱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학교를 싫어하는 거야?”
“학교요?”
“응. 왜 학교를 안 다니려 하는 거야?”
“안 다니려 하는 게 아니라 안 다녀요.”
“그러니까 왜 안 다니는 거냐고.”
“학교를 왜 다녀야 해요?”
“뭐라고? 학교를 다녀야지, 사람이, 그런 말 하면 못 쓰는 거야. 말해봐. 선생님이 무섭고, 할머니가 걱정되고, 그래서 안 다니는 거야?”
이런 질문은 머리 아프다. 생각도 하기 싫다.
코보는 벌떡 일어서서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그대로 어딘가로 가 버리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당을 다 빠져나가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섰다. 사서 아줌마는 가만히 선 채로 눈만 깜빡깜빡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코보는 아줌마의 손에 뒷덜미를 잡혀버렸다는 느낌이었다.
태권브이 일당에게 지불하는 입장료 오백 원이 너무 아까워서, 아깝기도 하고 기분 나쁘기도 해서 학교를 그만두기로 했었다는 말을 꼭 해야만 하나? 코보는 에이 씨이, 소리가 절로 나오는 입술을 콱 깨물었다.
그것은 너무 창피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자고 일기장에 삼백 번도 넘게 썼던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지나간 일이었고, 이제 더 이상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사서 아줌마는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만 했다. 코보는 무슨 말이든 해서 아줌마를 이제 그만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안 복잡해요, 저는. 뱀이 싫어서 안 가는 것일 뿐인데요 뭐.”
“배앰?”
“뱀 많이 있어요, 학교에.”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너 지금 누나를 놀리는 거지?” “누나는 무슨, 진짜라니까요. 뱀 많아요.” “할머니 때문이라고 솔직하게 말해도 괜찮아. 할머니가 걱정돼서 학교에 안 다니는 거잖아. 맞지?”
“어우 참, 아줌마, 왜 사람 말을 안 믿어요?”
“너 자꾸 아줌마라고 할래?”
사서 아줌마는 오른쪽 손을 높이 쳐들고 금방 두들겨 패서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코보는 피하지 않았다. 도망할 자세도 취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그러자 사서 아줌마는 졌다는 듯 슬그머니 손을 내리며 아웅, 하는 소리가 나는 이상한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학교에 뱀이 있다고 믿어주지. 그래서 싫어한다고. 그 대신 내일부터는 도서관에 꼭 나와야 해, 알았지?”
“봐서요.”
“이잉, 나쁜 놈.”
사서 아줌마는 기어이 코보의 머리통에 꿀밤 하나를 먹였다. 코보는 비로소 뭔가 어려운 숙제 하나를 해결했다는 기분이었다. 웃음이 절로 씨익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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