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믿기 위하여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지는 날들이 또 며칠인가 흘렀다. 바야흐로 독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었다. 내가. 무슨 까닭에서인지 나는 바깥 출입마저 거의 못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물리적으로 나를 통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내 행동에 어떤 제약이 구체적으로 가해지고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뱃속의 허기가 워낙 강하면 견디지 못하고 사력을 다해 식당으로 내려가서 잠시 배를 채우고 올라오는 정도였다. 배를 채운 뒤에는 침대에 앉아 유마경을 뒤적거리는 척하다가 내던지고 명상을 했다.
아니다. 그저 명상이라기보다는 선(禪)을 한다고, 선이 무엇인가도 모르면서 그것을 한다고 지난 날 고승들의 자세를 흉내내어 결가부좌를 틀어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났다를 반복했다.
꿈을 꾸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그렇다고 살아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에서 죽은 정혼녀의 음울한 실루엣이 가끔 떠올라왔다. 커다란 불알이 뒷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검은 숫염소를 몰고 더덕이나 혹은 도라지를 캔다고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며 산비탈을 오르는 그녀의 희미한 뒷모습이 새삼스럽게 자꾸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녀의 흑염소는 크기가 얼추 송아지만한 녀석으로 종자가 매우 귀한 것이라고 했다. 뻥튀기 장사를 하던 그녀의 부친은 그 흑염소를 매우 비싼 값으로 매입해서 그녀의 몫으로 정해놓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뻥튀기를 하는 사이사이 임자를 만나면 교배를 시켜주고, 그렇게 얻은 종자값을 모두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그 돈으로 옷을 사고 신발을 사고, 머리핀도 사고 속옷도 사고 그렇게 세상의 법칙을 배웠다.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만약에 그날 빗속에서 어머니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후로도 그녀는 아마 그렇게 흑염소를 몰고 다니며 자유하게 살았을 것이었다.
그녀가 나의 정혼녀로 지정된 것은, 그녀에게는 아마 낯선 행복이면서 익숙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비극의 씨앗은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법이었다. 일단 찾아오면 그것은 떠나지 않고 언제나 그림자처럼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기 마련이었다. 낯선 행복에 끌려 들어가는 순간부터 비극은 꼬리를 치며 달콤한 독액을 온 몸에 심어준다.
내가 그녀를 정혼녀로 인정하면서도 그녀를 가까이하지 못했던 이유는, 사랑하고 보호하려 들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누이의 질투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누이의 질투가 자심해서 그녀의 곁으로 다가설 수가 없었다고, 애써 그렇게 생각하며 자위해 왔지만 보다 진실하게 들여다보자면 그것만은 아니었다. 나의 내부에 보다 깊은 비밀이, 아마도 그녀의 과거를, 그녀의 자유분방했던 과거를 나는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서는 보다 자극적인 자유를, 이를테면 내 사타구니께를 툭 치고 달아나는 식의 누이동생 혜수의 그런 자유에는 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절 그녀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의 조짐과 더불어 자라나기 시작한 비극의 독액은 그때쯤 이미 그녀의 온 몸으로 고루 퍼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녀는 오토바이의 사내와 몸을 섞었을 때, 그 사내에게 자신의 재산인 흑염소를 헌납했을 때, 그런 일련의 행동을 취하기에 앞서 이미 자신의 목숨을 끊어놓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 번 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나를 죽여줘요, 제발 나를 좀 죽여줘.
나는 그 소리를 꿈에서 들었다. 꿈에서 들은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꿈이 아니라 달빛이 뜨락으로 가득 무서리처럼 쏟아지던 날 내 눈을 말갛게 쳐다보면서 마치 국어책을 읽듯이 또박또박 정확하게 발음했던 것도 같았다.
오토바아이의 그 사내를 찾아서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떠나기 열흘 전인가 보름 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그게 현실의 일이건 꿈속에서의 일이건 내게는 꿈같은 일이었고, 머릿속이 온통 혜수의 임신과 그 사내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 무렵의 나로서는 사실상 정혼녀의 그런 이미지에 관심을 집중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어쨌든 혜수는 출산을 했고, 혜수가 딸아이를 낳은 바로 그날 어수선한 분위기와 함께 그녀는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때 그녀가 충격을 받아서 말없이 집을 나가 버린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칠 년이 지난 뒤에서야 나는 그녀가 그날 집을 나간 뒤에 바로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어쩌면 바로 죽은 것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누님의 얘기에 따르면 그녀는 잣나무 가지에 칡넝쿨을 걸어놓고 거기에 목을 매단 채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녀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이나 지나서였다. 시신은 이미 부패해서 육탈이 되고 있었고, 때문에 바람이 불면 빨래처럼 가볍게 흔들린다기보다 차라리 펄럭거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그녀의 죽어 있는 모습이, 나는 목격하지도 못하고 얘기로만 들었을 뿐인 그 주검이 마치 어제나 혹은 그제쯤 인상 깊게 본 그림처럼 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 평상시에는 생각나지 않던, 벌써 전에 잊혀진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명상을 한다고, 아니 참선을 한다고 어설픈 결가부좌를 틀고 있으면 으레 떠올라와서 더 이상은 그렇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도저히 못 견디겠다는 마음에 방을 뛰쳐나와서 오랜만에 엘리베이터를 탔다. 오랜만에, 그야말로 오랜만에 육층 불불암으로 올라가서 법운을 만나보자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출타 중이었다. 언제나 돌아오는가 물었지만 동자승도 보살도 안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카운터로 도로 내려가서 빵긋이 웃는 그녀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모르겠는데요.”
그녀는 나를 보지도 않고 중얼거렸다. 나는 기가 질려서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나에 대한 그녀의 태도에 변화의 조짐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철저히 낯선 이방인일 뿐이었다. 낯선 사람에게서는 어디선가 본 듯이 친숙함을 느끼고 낯익은 사람에게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여자. 카운터를 벗어나면 그 순간부터 딴 사람이 되어 언제나 조용히 움직이는, 있으면서도 없는 것 같고 없으면서도 있는 것 같은 그녀의 그 조용한 움직임이 내게는 차츰 폭풍의 전조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가 누구에게 뭐라고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넬라치면 그 소리가 내게는 천둥처럼 들렸다. 그녀가 만일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빵긋이 웃는 얼굴로 뭐라고 한 마디 한다면 나는 놀라서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녀는 허술한 구석이 한 점도 없는 철저한 침묵과 무관심으로 나를 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서 무슨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아니다. 그녀에게는 변화라는 용어 자체가 어쩌면 잘못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 흔해빠진 잣대는 그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누에고치처럼 자기만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축해놓고 그 안에 들어앉아 외부와의 소통을 일체 거부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피상적인 관찰일 뿐이고 내용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나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그녀는 정체돼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부단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경험의 반복으로 얻어지는 익숙함을 거부하는 여자였다. 흐르는 강물이 같은 장소를 두 번 지나가지 않듯이, 설령 두 번을 흐르고 싶다 해도 그럴 수가 없게 되어 있듯이 그녀는 반복을 거부한다느니 어쩌느니 구차한 의식조차도 없이 경험의 반복을 거부하고 있었다.
거부라든가 반항의 모습은 대개 억지스럽고 뭔가 위험스런 분위기를 풍기기 마련이었지만,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것이 그녀의 육체에 마치 몽고반점처럼 찍혀 있어서 조금도 고집스럽다거나 위태롭지가 않고 오히려 그녀를 자연스럽게 빛내주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흐르는 여자. 그것이었다. 그녀는 흐르고 또 끊임없이 흐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 자체로 흐름이었고, 물이었고, 깊은 강물이었다. 수심이 깊으면 깊을수록 바깥에서는 그 흐름의 속도와 무게를 거의 인지할 수가 없듯이, 그녀의 내면에서 흐르는 세계의 깊이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탓으로 나는 처음에 그녀가 탈옥수를 연모하느니 어쩌느니 자기만의 어두운 동굴에 갇혀 있다고 잘못 파악했던 것이다. 수심모텔 삼백십삼 호실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느끼고 경악을 한 것은 거기까지였다. 거기서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조차도 없었다.
처음에는 과학이니 의학 따위 이를테면 병리학 같은 얕은 지식에 의지해서 그녀를 분석하고자 노력도 해 보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차츰 그런 시도 자체가 무모하고 맹랑한 것일 수 있다는 반성이 들면서 부끄러웠다. 그리고 부끄러움은 곧 괴로움이 되었다.
관찰을 하고 이해하려 한다거나, 분석하려 하는 따위 무례함은 그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내 자신에 대해서도 모욕일 수 있다는, 치욕일 수도 있다는 창끝 같은 준엄한 자각이 마치 외부에서 유입되는 어떤 물체처럼 목탁소리와 함께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머리가 갑자기 엄청난 무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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