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강남에서 노랑나비가 꽃씨를 보내왔다.
영혼의 쓰레기들로 넘쳐난다고 하는 저기 윗쪽의 강남이 아니다
가을이 깊어지면 제비들이 돌아간다는 저기 남쪽에 그 옆에 동네쯤 된다고 해두자.
거기는 벌써 여름이라서 낮 기온이 삼십을 훌쩍 넘어서 사십을 바라보곤 한댄다.
덥겠다. 아니 좋겠다. 벗고 다닐 이유가 충분하니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나비는 생명을 노래하는 일로 자신의 존재를 증언하는 존재인 것일까.
이쁜 엽서가 한 장 있는데 콘크리트 같은 바닥에 나뭇잎 마른 것이 몇 개 있고
그 틈으로 파란 풀들이 솟아나 있다. 패랭이 같기도 하고 요새 뜯으러 다니는 봄나물 같기도 하고 하여튼 많이 본 녀석들인데 그 이름은 내가 잘 모르겠다.
사진을 찍어서 물감으로 그린 것 같기도 하고 그린 것을 사진으로 찍은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내 눈길을 오래도 붙잡아둔다.
엽서의 뒤에 엽서보다 정확하게 두 배 크기의 종이가 붙었는데 연필로 쓴 편지다.
안녕하세요.
읽고 읽고 또 읽어보는 나.
참 오랜만이다.
이런 서정 아니 정서는.......
고마워서 냉큼 답글을 쓰고자 하는데,
그런데,
이런,
이런,
이를 어쩌나.
주소는 조합이 제대로 된 것 같은데 이름이 없다.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그냥
HEE
요렇게만 되어 있다.
나비의 이름이 통째로 그냥 Hee인가?
아니야, 그럴 리가.
어째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어.
그럼,
그러면 뭐지?
주는 것은 좋지만 받는 것은 안 좋다?
보내는 것은 좋아하지만 받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보지만 마침표를 찾을 길이 없다.
컨닝이라도 하고 싶은데 할 곳이 없다.
표절이라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텍스트가 없다.
없다.
난 이제 어떻게 하지?
바보처럼 아니 바보가 되어 천장을 보는데 소리가 들린다.
노래냐?
그래, 노래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
이름 모를 소녀.........
소녀.
소녀?
그래, 연필로 쓴 편지의 필적을 면밀히 감정해본즉 소녀 같다.
아니 소녀스럽다.
어쨌든 남성스럽지는 않다.
그러면 이름도 그냥 소녀라고 할까?
Hee소녀,
이렇게 하면 내가 쓴 답글이 강남의 나비를 찾아서 갈까?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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