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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 찾기

너무너무 진지했던 날

 

내가 본시 진지와는 거리가 멀다.

연애를 하다가도 영원히 나만 어쩌고 하는 단어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리고 그 뒤에 홀로

내가 왜, 왜, 어쩌자고, 으이구, 삼천 번도 넘는 후회를 씹어삼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도 어벙하게 건방스럽게 냉소로 무장되어 있다 내가.

그런 내가

오늘 하루 내내 가슴이 터져라고 진지해져 부렀다.

 

환경친화적 정책이라는 그 한 마디.

그 한 말씀에 나 어찌나 진지해져 버렸던지 가슴이 그만 터져 버리는 줄 알았다.

 

환경친화.

그것이 대체 뭘까.

친화라면 친할친자에 화합할화자이니 친하자, 친하겠다, 아니 사랑하겠다

뭐 그쯤으로 직역을 해볼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런데

그런데 그 말이 어째서 그렇게도 낯설게 나를 후려치는가.

 

하긴 어떤 사람은 땅을 너무너무 사랑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땅을 사 들였는데 그것이 그만 돈이 되고 말았다고--(나 그때 그 말 듣고 누구는 그렇게 할 줄 몰라서 안 한다냐 인간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안 하는 거지 븅신 같은 뇬 어쩌고 건방을 떨기도 했다마는), 그런데 오늘 다시 환경친화 어쩌고 하는 말을 들으니 어 그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아하

내가 모르는 사이에 국어의 용법이 이렇게도 많이 바뀌었는가.

그렇다면 국어사전의 뜻풀이도 바뀌었겠네?
아이고,

이런 바보.

이렇게도 뭘 몰라서야 원.

 

환경친화란 멋대로 잘 흐르는 강물을 파고 뚫고 막아서 콘크리트로 예쁘게 매끄럽게 단장하고 그리하여

고이게 하고 썩어빠지게 하는 것,

그 왜 있지 않느냐

된장이 된장 맛을 내고 막걸리가 막걸리 맛을 내고 식초가 식초의 맛을 내는 이치 말이다.

아하,

그것이었니?
그것도 모르고 그저 진지해서 가슴이나 벌렁거렸던 나,

에라이,

개쉐이 같은, 이렇게 살아서 뭐할래?
진지할 필요도 없는 것까지 그렇게 진지해서 어찌 무슨 짓을 하고 살려고.........

 

이렇게 저렇게 내가 나를 욕하고는 있지만,

그래도 어쩌냐.

나는 아직도 진지하다.

아마도 계속 이렇게 진지할 것 같다.

세상의 이치란 것이 본래 호랑이가 호랑이를 알아보고 토끼는 토끼를 알아보듯이 꾼은 또 꾼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러니 땅박이가 투기꾼을 알아보는 것 또한 너무너무 당연한 것.

 

비가 내린다.

아니다 눈인 것 같기도 하다.

비도 눈도 아닌 이 어정쩡한 개쉐이 같은 날씨,

이것도 나를 진지하게 하는 것이냐?
그렇구나,

그러려무나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