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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2/한번 더 한번만 더

탄핵찬성 종교지도자 있다면 그는 중대한 오류 범하는 것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시국미사

   

 

▲ 명동성당에서 강론중인 박기호 신부.
<사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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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젯밤 종로 집회에 나갔습니다. 촛불

하나를 들고 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얼굴, 그 평범한 얼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직은 날씨도 쌀쌀한 밤에 무엇이 이들을 이곳에 불렀을까? 바로 이 영혼들의 외침이 이 땅에서 군부 독재를 몰아냈고 민주주의를 꽃피게 했고 국가 경제를 일으킨 주인들의 얼굴임을 생각하면서 한없는 존경심으로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고사리 손에 촛불을 들게 하고 앉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아버지는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을까? 짧은 관상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피를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와 헌정질서가 겨우 193명이라는 썩고 병든 정치인들의 광란에 무너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선거에 패배하고도 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폭거로 나라를 뒤집고 그렇게 유린해도 좋은 나라가 결코 아닙니다.

오늘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희생의 제물로 죽어갔던가. 최루탄에 맞아 죽고 실명하고 고문당해 죽고, 저수지에서 뒷산에서 철둑길에서 갯바위에서 변시체로 발견되고 스스로 분신으로 죽어간 젊은 혼백들이 아직도 이 땅에 서성이고 있거늘 감히 한줌도 안 되는 모리배들이 역사 두려움을 모르고 정치를 난자질해도 좋은 것인가?

그들이 전광석화처럼 탄핵안을 통과시킨 여의도, 그곳은 50년대까지도 미군비행장이었습니다. 그런데 1945년 백범 김구 선생이 상해 임정요인을 대동하고 귀국하여 착륙했다가 미군에게 거부당해 한강도 건너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쫓겨났던 땅, 미군정에 의해 친일파의 득세를 용납했던 역사가 시작된 바로 그 원한의 땅임을 알고 계십니까? 그 친일파의 후손들이 아직까지 살아서 이제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차지하고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지 않은가? 참 끈질기기도 해라.

"주여 악한 정치가 이 땅에서 사라지길..." '헌정질서 수호를 위한 시국미사'에 참여한 신자들. <사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그렇지만 여러분 저들만 끈질긴 것이 아닙니다.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있는 저 종로거리를 보십시오! 민주주의를 건설하고자 어린이부터 대학교수까지 모두 나서서 독재자를 몰아냈던 4.19 혁명의 함성이 살아있는 곳에, 아니 6.10항쟁의 최루탄에 몸부림치던 민주주의의 넋들이 촛불이 되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니 그 끈질긴 민족혼이 보이지 않은가?

사실 오늘날의 혼란은 6년 전부터 그 징조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해방 후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던 때, 역사적으로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패배와 정권교체의 충격으로 당시 신한국당은 정신 이상의 히스테리 증세를 보였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당일부터 국무총리 인준거부로 시작해서 사사건건 발목걸기, 딴지걸기, 뒤통수 때리기….

정치 9단에게 패했어도 그런데 하물며 상고출신에게 패배했으니 히스테리 정신질환 증세는 완전 조울증에 가깝게 되어버렸지요. 다수당의 만용은 지난 1년을 그렇게 빈정대고 물어뜯고 발목잡고 횡포부리기로 보냈지 않았는가?

더러운 정치가 여의도를 지배하는 한에서는 결코 우리 모든 국민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의도 의사당의 반역이 모든 국민에게 두통과 고혈압을 일으키게 했습니다. 이번 4.15 총선에는 오염되고 부패한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여의도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좋은 정치, 맑은 정치, 건강한 세상을 만들도록 하십시다.

선거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교회 안에서도 교우들의 입장이 서로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선거란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을 선택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다른 사람을 지지하는 것이 인정되어야 합니다.

이번 탄핵 정국에서의 찬반이란 지지자와 반대자에 대한 재신임 하느냐의 그런 싸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노무현 개인의 문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탄핵은 노무현만 탄핵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통치권자를 탄핵한 것이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탄핵해버린 것입니다. 오늘과 같은 상황에 대한 탄핵이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앞으로 1년마다 탄핵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노무현을 지지하는 국민은 40%도 되지 않는데, 탄핵이 잘못된 것이라고 반대하는 국민은 70%가 넘고 있음에서 보듯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함이 필요합니다. 평민들의 직관은 놀라운 것이고 그것이 역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시골 농부에서 샐러리맨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백성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판단하는데 하물며 신앙인인 우리가 이번 탄핵에 찬성한다면, 그런 종교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중요한 오류를 범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악한 세력에 침묵했음을 용서해주소서" 촛불기도회에 참석한 성직자들은 당리당략으로 국민을 외면한 정치세력의 회개를 간구했다. <사진 오마이뉴스 조호진>
이 싸움은 헌정질서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세력에 대한 저항이며 정치를 정상화시키고자 하는 싸움이요 부정 부패한 정치꾼들을 물갈이하자는 일이요. 근본적으로는 우리 유권자 자신에 대한 자성과 성찰과 심판인 것입니다.

우리도 한번 반대한 사람에 대해서는 끝까지 반대하고 협조하지 않고 빈정대지 않았었는가? 그러므로 이제 초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승복의 문화를 배우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패배는 아프지만 승복은 아름답다는 것을 서로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전두환 대통령의 철권통치 시절에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번에도 불의한 세력들이 스스로 잘못되었음을 회개시키고 전화위복의 정치발전을 이룩하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2004/03/15 오후 11:39

ⓒ 2004 OhmyNews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천주교 <정의구현사재단> 시절의 정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