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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2/死

현장에서> 노스텔지어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뱃고동 소리잖아. 아아, 이
거 큰일났네. 큰일났어.”

송씨가 사뭇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며 일손을 놓
고 먼 데를 쳐다본다. 정말로 큰일이 났다는 듯, 웃지
도 않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우리는 잠깐 경건해
진다. 밀레의 그림 <만종>의 이미지가 언뜻 생각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울산에는 뱃고동을 울리는 큰 배가 많다. 자동차를 실
어도 한 척이 보통 이천 대씩이다. 하루에도 수천 대
의 자동차가 실려나가는 현대자동차 야적장은 울산의
젖줄 태화강이 그 긴 여정을 끝내고 바다와 합류하는
지점에 있다. 이 태화강을 따라 상류로 가다보면 대숲
을 만나게 된다. 강변에 대나무숲이라니. 강가의 능수
버들은 유행가로도 불려지지만 강가의 대숲은 낯선 명
물이 아닐 수 없다. 이 낯선 명물을 보고 있노라면 사
각사각 소리가, 어느 먼 시절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진다.

그야말로 가도가도 끝이 없는, 버스 정거장만도 여서
일곱 개를 끼고 있는 현대중공업 맞은편 전하동 꼭대
기에는 지금 이십삼 층 높이의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
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온갖 국적의 온갖 배들이 한
눈에 보인다. 골목마다 주차장마다 꽉꽉 차 있는 몇
천 대인지, 아니 몇 만 대인지 헤아려볼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의 자동차도 물론 한눈에 보인다.

“차가 저렇게 많은데 말야. 내 차는 한 대도 없는 이유가 뭘까?”

간식 시간이면 으레 누군가 한 사람쯤은 그런 푸념을
하게 마련이다. 무엇인가에 대한 원망은 아니다. 아
무 말도 없으면 이상하니까, 뭔가 모르게 자꾸 두려워
지니까 그저 한 번 해보는 소리일 뿐이다. 집에 관해
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그 동안에 짓고 다닌 아파트
만도 수척 채인데 내 아파트는 어째서 하나도 없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등등 뭐 그런 흰소리들.

그렇다고 그것이 마냥 흰소리이기만 할까. 웃고 킬킬
거리는 순간에는 흰소리로 치부할 수밖에 없을 정도
의 가벼운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그
것은 어느새 가슴을 파고들어 아리게 꿈틀거리고 있
게 마련이다. 스스로가 부끄럽고 못나 보여서 차마 입
으로 내놓을 수 없는, 꼴도보기 싫은 인간이라고 채머
리를 절래절래 흔들면서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남편
이나 혹은 아내처럼, 세포 하나하나에 낱낱이 스며들
어 적절한 때가 주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그것을 뭐라
부르면 좋을까. 삶의 에너지? 원동력? 이름이야 어떤
들 어떠랴. 그냥 그것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리하여 그것은, 저멀리 파도가 하얗게 춤을 추는 바
다로부터 뱃고동 소리가 뚜우, 뚜우, 울리기 시작하
면 마침내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것이다.

“아, 뱃고동은 저렇게도 애달피 부르는데, 어서 가자
고, 빨리 오라고 숨이 넘어가는데 나는 아직 돈도 못
벌었고 어째야 하나.”

그 소리는 어느 먼 시절에 시작도 없이 끝나버린 첫사
랑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꼭 그것과 닮아 있다. 너
를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해보지 못한 채로 헤어
진, 그러면서도 첫사랑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소식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생각나
게 하는 그 연민이 절절 흐르는 소리, 배우인들 그만
할까. 시인이들 그만할까. 모두가 일손을 놓고, 말은
한 마디도 없이 눈만 깜빡, 깜빡거린다. 그렇다고 마
냥 그런 감상의 시간을 누리고 있을 수많은 없다.

“느닷없이 엄마 젖생각이라도 난 거래, 뭐래? 웬 청
승이래?”

누군가 악의 없는 이죽거림으로 상황반전을 꾀하고 나
서면, 기다렸다는 듯 여기서 저기서 참았던 말들이 쏟
아지기 시작한다.

“야아 참, 내가 말을 타고 만주벌판을 달릴 때는 말
야.”

“뭐라? 네가 말타고 만주를 달렸다고? 네가 만주를
달렸다면 나는 이놈아 상해에서 코끼리를 타고 다녔
다.”

“어허, 참말이라니까, 이 다리에 총자국 이게 그때
생긴 거라. 독립운동 자금을 안장 밑에 숨기고 달리
는 참인데 일본놈들이 서른 명이나 달려들어서 말이
지.”

“놀고 있다. 마적들 꽁무니 따라다니며 밥이나 해준
주제에 무슨 독립운동이냐 임마.”

“어허, 이 사람이 세상 이치를 몰라도 한참이나 모르
는구만. 마적이나 도둑놈 출신이 노가다판 나오는 거
봤냐?”

“그러면, 독립운동 출신은 노가다 나오냐?”

“그걸 말이라고 하냐. 독립운동 출신이니까 노가다
를 하지 임마, 도둑놈 출신이 노가다를 한다면, 그건
뭐냐, 지금 우리 세상이 그런 세상이냐? 아니잖어 임
마, 짜식이 뭘 몰라도 한참을 몰라가지고.”

"그러니까 지금 너는, 친일파냐 아니냐 그런 얘기 하
자는 거냐?"
"어이 어이, 왜들 이래, 왜들."

어느 순간 사람들은 깨닫는다. 이야기가 너무 심각해
져 버렸다는 것을. 그리하여 하나둘씩 입을 꾹 다물
고, 마치 심술이 가득나서 꾸역꾸역 밥을 떠넣는 아이
처럼, 삽을 잡은 사람은 삽을, 흙손을 잡은 사람은 흙
손을, 다른 무엇인가 기계를 잡은 사람은 또 그 기계
를, 죽을둥 살둥 모르고 있는 힘을 다해 움직이기 시
작한다. 오직 그것밖에는 할 일이 없다는 듯이 그렇
게.

그렇다. 뱃고동 소리에는 먼 머언 그 어떤 기억을 불
러일으키는 성분이 내재되어 있다. 자동차의 경적이
나 비행기의 폭음과는 사뭇 다른 그 어떤 것이. 어머
니의, 아버지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아버지의 아버지
의 어머니가 초원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감격하던 시절
의 이야기 같은, 두 겹 세 겹 껍질을 벗겨도 알맹이
는 드러나지 않는, 그러면서도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아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가 있다. 뱃고동 소리에
는. 그리고 그 시절의 사랑은 어쩌면, 민들레 씨앗이
나 난초의 씨앗처럼 아주아주 낙지만 눈으로 볼 수 있
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었을 것만 같아지기도 한다.
백 마디고 천 마디고 말이 필요없는, 눈으로 보며 손
으로 만지며 그 느낌을 체내로 흡수해서 피도 만들고
뼈도 만들고 그러는 사랑이었을 것만 같다. 이러한 추
억 아닌 추억을 우리는 아마 노스텔지어라고 부르는
것일 게다. 향수와는 약간 다른.

가버린 것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없다면, 지금 존재하
는 것들에 대한 비판의 시선이 없다면, 아직 오지 않
은 것들에 대한 약간의 걱정과 설레임이 없다면, 그래
도 그런 노스텔지어는 우리를 찾아올까? 아마 아닐 것
이다.


덧붙이는 말

우리는 어느 때인가부터 특정한 상황에 부딪히면 스스
로 입을 닫아버리는 일종의 지혜를 갖게 되었다. 서글
픈 지혜다. 어느 집단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현장에
는 전라도건 경상도건 충청도건 어디건 차별이 없이
골고루 포진해 있다. 평소에는 사이좋은 아이들의 소
꿉놀이처럼 잘 지내다가도 그놈의 정치 비슷한 얘기
만 나오면 편이 갈라져서 얼굴을 붉히게 된다. 심지어
는 친일파 문제까지도 친일청산을 얘기하는 정당이 어
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고 반대하는 정당은 또 어
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서 지역의 문제
로 축소되어 악악거리게 된다. 그 순간이 지나고 보
면 쥐뿔이나 아무것도 아닌 정치나부랭이로 좋은 사이
가 어긋났구나 싶은 순간들. 그런 순간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침묵의 지혜를 발견해낸 것이
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그 동안 정치랍시고 해온 온
갖 가짜들은 참으로 많은 죄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