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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

못에 찔려본 적 있어?

못에 찔렸을 때는 우선 망치로 자근자근 짓이겨야
해. 못이 뚫고 들어간 부위를, 잔인할 정도로, 몹시
아프기도 하지만, 때리면 때릴수록 당연히 더 아파지
겠지만 아프다고 엄살을 피우지 않고 말야. 고통 자체
를 자근자근 짓이겨서 어혈을 빼내야 해.

그리고는 그 부위에 화약을 놓고, 지금은 성냔이 안
나와서 유감이지만 성냥의 머리부분 있잖아. 그것을
여남은 개쯤 모아서 못이 뚫고 들어간 그 구멍 부위
에 대고 불을 당기는 거야. 피시식 확, 그렇게 불이
붙도록, 그렇게 지지고 나면 말끔해져.

만약에 못에 찔렸다고 징징거리며 금방 세상이 무너
지기라도 할 듯이 병원을 쫓아간다면, 병원에서는 적
어도 일주일은 걸려야 해. 왜냐하면 시간을 놓쳐버렸
으니까. 병원을 쫓아가는 꼭 그만큼의 시간을 허비해
버렸으니까. 요컨대 고통을 정복하지 못하고, 정복은
커녕 무릎을 꿇어버렸으니까 무릎꿇은 댓가를 받아야
만 하는 거야.

지금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하면, 고통이 있을 때 말
야. 그것을 고통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이 거대한 세상
과 나 사이의 긴장관계의 해소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된
다는 거야. 도움은커녕 오히려 긴장은 강화되고 나는
갈수록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거야.

이를테면 이런 거야. 당신이 어디를 가고 있는데 말
야. 자동차라든가 뭐 그런 탈 것에 의지한 게 아니라
걸어서, 그러니까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인데
말야. 무엇인가 마치 꽈리가 터지듯이 툭 터지는 느낌
이 들면서 딱딱한 이물질이 당신을 뚫고 들어온 거
야. 당신이 주체적으로 운동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소
중한 부위인 그 발바닥을 말야. 일시적이나마 사용불
틍 상태로 만들어 버린 거야.

이제 당신은 걸을 수가 없어. 움직일 수가 없어. 움
직일 수는 있어도 공간확보를 못하니 움직이지 못하
는 것과 별 다를 게 없어. 주체성을 압류당해 버린 거
야. 게다가 엄청난 통증이 당신을 괴롭히기조차 해.
뜻밖의 이물질이 당신을 뚫고 들어왔으니 그 통증인
들 좀 심하겠어.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이런 정도의 횡액은 사
실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닐 거야. 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횡액의 연속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우리의 미래
는 언제나 불투명하고 우리의 가는 길은 온갖 위험인
자들로 이루어졌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 뭐.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
고, 안 그래?

그러니까 문제는 당했느냐 안 당했느냐가 아니라, 어
떻게 당했느냐 왜 당했느냐 그런 따위가 아니라, 당
한 뒤에 어떻게 했느냐, 어떻게 수습을 했느냐, 요컨
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그런 쪽으로 생각의 초점
이 모아져야지 않겠는가 싶어.

그러다 보면 이 거대한 세상이 뜻밖에도 제 모습을 드
러낸다는 거지. 너무도 거대해서 인간인 나 자신은 한
낱 미물처럼만 여겨지던 이 세상이라는 것이 실은 그
렇지도 않다는 것을, 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한
손에 쥐고 흔들어볼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것을 말
야,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다 보면 그런 굉장한 사실
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는 거지.

원인이나 따지고 있기에는 내가 너무 작으니까, 작다
고만 느껴질 테니까, 이 거대한 세상 속에서 나는 작
고 또 작아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해서는 내가 금방 사라져버리고 말
테니까, 그러니까 가끔은, 가끔은 말야. 주변의 모든
거대한 것들을, 거대하다고 평소에 인식하고 있었던
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봐버리는 그런 훈련도
필요한 것 같애. <내>가 나로서 떳떳하고 당당하고
의미있는 존재로서 존재하기 위해서는 말야.


아래 그림은 호앙 미로 <사냥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