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네아우가 만들어지던 날, 그리고 그 이후
잠결이었어. 잠결이었는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뭐
라고 하시고 어머니가 또 아버지에게 뭐라고 툭툭 쏘
고 계시는 거야. 잠결에도 짜증이 나서 이불을 확 뒤
집어쓰고 돌아누워 버렸지. 나 어려서, 그러니까 유소
년기에 그런 비슷한 식의 싸움을 거의 밤마다 보아오
고 있었거든.
싸움이래야 뭐 일방적인 것이었지. 아버지가 일방적
으로 어머니를 다그치고 어머니는 그때마다 뭐랄까,
흔히 하는 말로 그 앙탈의 성질은 아니겠고, 그러니
까 말하자면 죽일 테면 죽여보라는 식으로 덤비는 정
도였다고나 할까, 하여간 그랬어. 도무지 싸움이라고
는 말할 수 없는 그런 싸움이 우리 집에서는 거의 매
일 연속극처럼 벌어지곤 했었어.
그날 밤도 나는 그런 식의 싸움 아닌 싸움쯤으로 생
각한 거였어. 잠결에 들은 거였으니까. 그런데 싸움
아닌 싸움치고는 좀 이상한 거 있지. 에이 씨이, 또
싸우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돌아눕는데 말야. 그 순간에 잠이 확 달아나 버리는
거야.
그런데 잠은 달아나면서 그냥 달아나기만 한 게 아니
라 무엇인가 뜨거운 것을 내 가슴에 심어놓은 거야.
이상하게도 가슴이 후덕후덕 뛰고 침이 꼴깍꼴깍 넘어
가는데 말야. 그러고 보면 성애에 관한 감각은 태어
날 때 이미 혈액속에 묻혀서 가지고 오는 모양이야.
"아들 하나만 더 낳자."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 들리
고, "아이고 몰라 저리 가." 하는 어머니의 툭툭 쏘
는 목소리 들리는데, 들었다고는 하지만, 전후사정을
전혀 모르는 채로 자다가 문득 깨어난 사내녀석이 그
말의 오묘(?)한 뜻을 어찌 알 수나 있겠어.
그런데 내 몸은 이미 알아듣고 바싹 긴장을 하는 거
야. 긴장을 해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하여간 긴장해
서는 숨소리를 죽이려고 무진 애를 쓰며 귀를 기울이
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들리는 나 자신의 숨소리는
또 어쩌면 그렇게도 큰가 몰라.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떻다고, 나는 또 그 소리를 작게 해야한다는 이상
한 사명감(?)을 갖고 가능한 한 숨을 아예 안 쉬려고
노력을 하는 거야. 그러다 보니 가슴은 그만 터질 것
만 같고, 답답해서 미치겠는데도 귀는 살아서 근육이
꿈틀꿈틀 움직이는 느낌인 거야.
모르겠어. 동생들이랑 같이 쓰는 방이 따로 있었는데
도 그 날은 내가 왜 어머니랑 그 방에서 자고 있었는
지는 모르겠어. 어쩌면 아버지가 아직 안 들어오셔
서, 마음 놓고 놀다가 그냥 잠이 들었던 건지도 모르
지.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아주 잠이 들고도 훨씬 나
중에 술냄새를 풍기며 들어오셔서는 어머니를 그렇
게, 뭐라고 해야 하나, 애무라는 말은 좀 그렇고, 하
여간 아들 하나를 더 만들자고, 그렇게 조르고 계셨
던 거야.
나는 그렇게 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외람된 표현
같지만 섹스 장면을, 봤다고 말하면 거짓이지만, 하여
간 봤다고 말해야만 옳을 것 같은 그런 상황과 부닥뜨
렸던 거야. 그리고 그 뒤로 아마 열 달쯤 뒤에인가 지
금의 막네아우가 태어났고. 그런데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게 아니라 지금부터야.
들어봐. 그리고 생각해봐. 어머니가 그날 밤 아버지
의 제안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건지 어쨌던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어. 알 수가 없어서 그 점이 사뭇 궁
금한 거야. 그렇다고 어머니께 그것을 여쭤볼 수도 없
는 일이고. 어쨌든 아버지는 그날 밤 아들 하나만 더
낳자고 어머니를 설득(?)하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해.
그리고 어머니는 그로부터 열 달쯤 뒤에 정말로 아들
을 낳으셨던 거고.
이게 뭐냔 말이지. 어머니도 아버지와 같은 생각을
평소에 하고 계셨던 것이냐, 아니면 아버지의 얘기를
듣고 나서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새롭게 하게 된 것이
냐, 그도저도 아니면 그냥저냥 어떻게 일을 치르고 나
니 아이가 생겼고 그래서 낳고보니 아들이었던 것이
냐, 이 부분이 내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수수께끼란
말이지. 좋아, 그렇다고 쳐. 부부간의 관계란 그렇게
저렇게 이루어지고 아이도 또한 어떻게저떻게 생긴다
고 쳐.
그런데 그 뒤에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말야. 아버지
는 그 뒤로 자식과는 거의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되어
버렸다는 것이거든. 순전히 어머니 혼자서 아이를 키
워가는 거야. 아이 하나를, 아들 하나를 더 낳자고 애
걸을 하다시피 한 사람은 아버지였는데 말이지. 그런
데 막상 그 아들 하나를 더 낳은 뒤에는 어머니 혼자
서 마치 캥거루처럼 그 아들을 도맡아서 업고 다니게
되더란 말이지.
부엌에서 밥을 지을 때나 들에서 일을 할 때나 저녁
에 잠을 잘 때 언제나 어디에서나 어머니는 그 아들
을 몸에 붙이고 계시는 거야. 반면에 아버지는 언제
나 어디에서나 그 아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홀로 계신
단 말이거든. 홀로도 그냥 홀로가 아니야.
가령 저녁에 잠을 잘 때 아이가 울기라도 할라치면
아버지는 어머니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벼락같이 고함
을 지르는데 말야. "여편네가 새끼 하나도 제대로 못
보고 울린"다는 둥 뭐라고 그렇게. 그러면 어머니는
정말로 죄인처럼, 혹은 이제 갓 들어온 하인처럼 그놈
의 아들을 업었다가 안았다가 젖을 물렸다가 그래도
안 되면 밖으로 나와서 울음이 그쳐질 때까지 밤이슬
을 맞는 거야.
이게 뭐냔 말이지. 그저 생물학적인 차이일 뿐인 것
일까. 아니면 학습된 이데올로기? 어쩌면 모계사회의
원형이나 아닐는지 몰라. 아니, 원형이라기보다는 그
림자라고 해야 맞을라나? 어떻거나저떻거나 의문은 같
은데, 아이를 업고 다니는 여자를 볼 때마다 생각나
는 거, 그러니까 내가 말야, 아이를 기르는 세상의 모
든 엄마되는 여자를 볼 때마다 도대체 여자란 무엇인
가, 하는 그런 의문에 사로잡히곤 한단 말이지.
뭐지? 여자란 대체 뭐야? 이거 하나만은 나도 알겠
어. 세상의 모든 존재들 가운데서도 사람, 사람 가운
데서도 남자, 물론 나 자신까지를 포함해서, 남자는
이제 더 이상 탐구의 대상일 수 없다는 거, 그거 하나
만은 알겠어. 왜냐하면 남자는 너무도 많은 위선과 허
영과 자가당착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을 보는 능력마
저 상실해 버렸으니까. 요컨대 자의식과 주체성을 완
전히 상실해 버렸다고 여겨지니까.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부각되는 의문, 여자란 대체 뭐냐?
아래 그림은 다빈치, 여성의 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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