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그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결혼을 하면 아버지가 신접살림은 물론이고 전셋집까지도 장만해 주리라 믿고 있었다. 학자금 대출과 장학금으로 대학을 마친 미래의 사위에게서는 그 어떤 물질적인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를 먹이고 입히고 길러주신 아버지가 당연히 새로운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해결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결혼을 추진했던 나로서는 뭐랄까,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을 정도의 비상한 사태 앞에 정면으로 노출된 형국이었다. 세상에, 그렇게도 말도 안 되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나마 말이 되게 하고자 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아버지의 등골을 빼먹는 짓을 더 이상은 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져야만 했다.
나는 일단 결혼식 날짜부터 대폭 뒤로 미루자고 미래의 남편에게 제안했다. 반대할 이유가 없는 미래의 남편은 당연히 동의했고, 그리하여 우리는 그야말로 눈에 불을 켜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새내기 교사 봉급이야 뭐 그 액수가 정해져 있다 해도, 꼭 써야 한다고 여겨지는 부분까지도 고민하다가 결국은 생략하는 방식으로 절약에 절약을 거듭한 결과 삼 년이 채 안 돼서 전셋집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랬다. 전세방이 아니라 전셋집이었다. 주방이 따로 있고, 거실도 따로 있고, 심지어는 철쭉과 수국이 심어진 마당까지도 있는, 전기요금과 수도요금은 주인댁을 거치지 않고 직접 납부하고, 대문도 주인댁이 아닌 우리 식구가 마음대로 잠그고 열 수 있는 그런 전셋집이었다. 매달 돈을 내는 사글세를 마치 당신의 운명처럼 살아오신 아버지는 전세라는 말에 감개가 무량한 표정으로 전세, 전세, 하고 잇달아 중얼거리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녔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어찌나 보기에 좋던지, 나는 아버지의 미래까지도 그날 밤 안으로 다 결정해서 도장을 콱 찍어놓아야 한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아버지 환갑 때까지만 그 일 하시고, 그 뒤에는 이제 곧 태어날 아이도 좀 봐주시고, 아이가 크면 아이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도 다니시고, 아셨죠?”
아버지는 가타부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말없음을 알았다, 그렇게 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나는 아버지의 등골을 뽑아먹고 살았다. 그 세월이 무려 이십 년을 넘어 삼십 년 가까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아버지를 모신다. 아버지를 먹여 살리는 것이다. 아버지는 나 때문에 등골이 휠 지경이었지만, 나는 아마 등골이 휠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버지의 지극한 보살핌 덕분으로 학교 선생님이라는 거의 영구적인 직업을 확보했으니까.
등등 그런 상상으로 즐거워하는 나의 그것을 설렘이라고 해야 하는지, 희망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꿈이라고 해야 하는지, 선뜻 명명하기 어렵긴 하지만 어쨌든 즐거운 나날들이었다. 어떤 날에는 문득 세월이 어째서 이렇게도 더디 가는가,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청천이 벽력스럽게도, 막상 회갑 날이 닥쳐왔을 때 아버지는 그렇게도 엉뚱한 말씀으로 나를 황망스럽게 하고 있었다.
이제 이 집을 떠나야 할 때가 됐다고? 이 집을 떠나서 당신 집을 짓겠다고? 이게 대체 무슨 말씀이란 말인가.
그때까지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옛날 하고도 먼 옛날, 그래봐야 백 년도 채 안 되겠지만 어쨌든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아버지의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직업적으로 하셨던가 보았다. 어느 해 흉년이 매우 심해서 새경을 한 푼도 못 받게 됐는데 주인이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어서 쓸모없는 산뙈기 하나를 주었다는 것이다. 개간을 할 만한 평지라도 있었다면 그 산을 재산으로 여겨서 계속 관리를 해 왔겠지만, 산이 하도 가파르고 나무도 별로 없는 바위투성이어서 아버지의 아버지는 이전 등록만 해놓은 채로 잊어버렸다.
잊는다는 생각도 없이 잊고 있었던 그 산이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왔다고나 할까. 어느 해 어느 하루 군청에서 보낸 공시지가서 한 장이 날아왔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장남인 아버지의 명의로 정부 당국이 직권으로 등록 이전해놓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러고도 세월이 얼마나 흐른 뒤의 어느 해 장마철에 아버지는 공사장이 쉬는 틈을 타서 그 산을 찾아가 보셨던 모양이다. 갓난아이가 소년이 되고 소년은 어른이 되듯이, 산도 성장을 하는 것인지 산은 이제 옛날의 그 쓸모없는 산이 아니었다. 그 산과 그 옆의 산이 만들어내는 골이 제법 깊고 길어서, 물도 많고 기암괴석 또한 많은 까닭에 무슨 산장이니 펜션 같은 이름의 건물이 속속 들어서는 등 명성이 제법 높아져 있더라는 것이다.
“그 산이 말이다. 겨울에는 겨울이라서 볼 만하고, 봄에는 봄이라서 볼 만하고, 여름에는 여름이라서, 가을에는 또 가을이라서 볼 만한 것이 참 많다고 소문이 나 있는데 내가 봐도 그렇더란 말이다.”
아버지는 소년의 희망처럼 눈빛을 반짝이고 있었지만, 나는 심통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인지 나도 모르게 새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거기가 어딘데요?”
“내 고향이지.”
“그러니까 사람이 살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그 첩첩산골?”
“지금은 버스도 다니고. 사람이 많이 찾아와.”
“그래봐야 그곳에 정 붙이고 사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사람도 못 사는 그런 첩첩산골 바위투성이의 산 어딘가에 집을 지으시겠다고요?”
“집 한 채 없이 살아온 인생이 말년에 집을 짓겠다는 게 잘못일까?”
“땅은 그렇다 치더라도, 집을 짓는다는 게 무슨 애들 소꿉놀이도 아닌데….”
그 말 뒤의 말은 이어갈 수 없었다. 무슨 돈으로 집을 짓겠다는 것이냐, 하는 뭐 그런 주제가 이미 준비돼 있었지만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말이 절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내 말을 들은 것 이상으로 내 생각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것이어서, 나는 점점 할 말이 궁해지고 있었다.
“나도 다 생각이 있다. 내가 누구냐. 집 짓는 공사장에서 말이다. 집 짓는 일과 관계된 모든 일을 보고, 듣고, 조금씩이나마 손수 해보기도 했으니까. 그것도 사십여 년씩이나 말이다. 박사도 아마 이런 박사 없을 게다. 돈을 거의 안 들이고 집 짓는 방법에 대해서도 나는 다 알고 있어.”
“아이 듣기 싫어요. 우리 이제 곧 집 살 거예요. 아버지의 딸과 그 남편이, 아버지와 함께 오순도순 즐겁게 살기 위해서, 열심히 알아보고 있는 중이라고요.”
“나는 아직까지 내가 환갑 나이에 이를 수도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해볼 틈이 없었어. 그런데 어느새 환갑이 됐구나. 사람이 환갑에 이르면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지만, 나는 아직 아니다. 할 일이 있어. 말릴 생각일랑은 아예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비장한 결기가 아버지의 온 몸에서 마치 무슨 가시방패처럼 쑥쑥 돋아난다는 느낌이었다. 소녀의 마음으로 재롱을 떨고 싶어 하는 나를 상대로 아버지는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버지에게서 그런 무서운 말씀을 들으리라고는, 너무도 천만 뜻밖이어서, 나로서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오신 거로군요?”
남편의 그 한 마디에, 아버지는 말없이 빙그레 웃고만 있었다. 동상이몽이라더니 꼭 그런 형국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안녕한 노후에 관한 설계를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자신은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니. 세상에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억울함이 없지 않았지만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버지의 꿈을 응원하는 것 외에 달리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좋아요. 알았어요. 그 대신 저도, 아니 저희도 데려가 줘요.”
“그 무슨 당치도 않은?”
“먹을 것도 없는 아버지 잡아먹겠다는 건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그래도 명색이 딸년인데 그놈의 소굴이 뭔지, 어떻게 생겨 처먹었는지 정도는 알아둬야 할 거 아녜요?”
나는 마침내 꽥,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버지는 얄밉게도 빙그레 웃고나 있을 뿐이었다. 그 빙그레한 웃음이 나를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이어서, 나 또한 그냥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고 나니 비로소 눈앞이 환해진다는 느낌이었다.
쇠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우리는 아침 밥상을 치우자마자 바로 ‘그놈의 소굴’을 가 보기로 했다. 실제로 나는 그곳을 온전한 장소로서의 ‘그곳’이 아닌 무슨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소굴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뭐랄까, 별유천지 하나가 새로 개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어서 은근히 놀라고, 또 놀라기를 거듭해야만 했다.
멀리로 거대한 성채 같은 산이 있는데 그곳을 향해 사람을 가득 태운 버스가 달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진입로부터가 우선 긍정적으로 와 닿았다. 왼쪽으로는 명경지수라고나 할 만한 계류가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아름드리 소나무와 전나무 같은 침엽수가 빼곡하게 마치 병풍처럼 드리워진 풍경 또한 느낌이 좋았다. 여름에도 얼음이 어느 냉천골 바로 옆에 있다는 호텔을 광고하는 현수막이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렸는가 하면, 게르마늄 함유량이 풍부한 온천 찜질방이 곧 개장된다는 현수막도 차창 밖으로 보였다.
“여기 무슨 온천도 나와요?”
“몰라.”
“세상에, 그것도 모르신다고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해야지 그럼 안다고 할까?”
“나아 참, 아버지가 아시는 건 그럼 뭐예요?”
“집 짓는 것밖엔 난 몰라.”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기가 막힌다는 심사로 고개를 돌려 살펴보니, 아버지의 표정은 그 사이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이 엄숙해져 있었다. 입을 꾹 다물고, 소년처럼 반짝이는 눈빛으로 뭔가를 주시하고 있는데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 길은 없었다. 그렇다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어서, 당신이 짓고자 하는 집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중이려니,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밖에는 달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저기, 저 높이 우뚝한 바위 보이지? 거기다.”
버스가 이윽고 냉천골 종점에 도착했을 때,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버지는 오른손을 높이 쳐들고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각양각색의 펜션이며, 라이브카페며, 놀이시설 같은 것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완만한 경사의 계곡을 단숨에 건너 뛰어버린, 그 모든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것으로 여겨지는, 대충 그냥 봐도 경사가 사십 도에 육박하고, 높이도 오백여 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그런 위험천만한 곳에 집을 짓겠다는 것인가 보았다.
“아니 저 높은 곳에다가 어떻게 집을 지어요?”
“집이란 게 뭐 별 거라더냐. 저기에 있는 것을, 여기로 가져와서 다른 것과 섞어가며 세우고, 쌓고, 연결해서 벽채를 완성한 다음 뚜껑을 덮으면, 그게 곧 집인 것이지.”
“말이야 쉽죠. 쉬운 말을 누군들 못할까.”
“이쪽에서 보면 저렇게 높아도, 반대쪽에서 보면 지금 보이는 것의 반에 반 높이도 안 돼.”
“무슨 그런 경우가 다 있대요?”
“산이니까. 사람이 아니고, 산이니까 그런 경우도 있는 거지. 여기 이 계곡에 맑은 물이 항상 넘치는 이유도 저 뒤쪽이 두텁기 때문인 것이고. 뒤가 허술하면 앞이 아무리 화려해도 속없는 풍선밖에 안 되는 것이거든. 그런데 여긴 뒤가 아주 든든하단 말이다.”
버스 안에서의 엄숙했던 표정과는 전혀 다르게, 아버지는 소풍 전날의 유치원생처럼 들떠 있었다. 게다가 무척 수다스럽기도 했다. 앞장을 서서 이것저것 가리키며 수다스럽게 설명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로서는 너무도 낯설고, 신기하고, 심지어는 기가 막힌다는 느낌조차 들어서 무슨 생각을 해보고 어쩔 겨를이 없었다. ‘딸년’의 그런 복잡한 심사야 내 알 바 아니라는 듯이 아버지는 씩씩하게 잘도 걷고 있었고, 각양각색의 펜션이며 라이브카페 같은 것들이 점점 뒤로 멀어져 가는 비탈로 접어드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난데없이 나타난 컨테이너 앞에서 멈췄다. 멈추는가 싶더니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익숙하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 컨테이너는 뭐예요?”
“작년에 내가 들여놓은 거지.”
“세상에, 딸년도 모르게 준비를 잘도 해 놓으셨군요?”
“이런 준비도 없이 집을 짓는다고 발표까지 했을까.”
“발표?”
“그럼, 발표지. 내 인생의 커브를 확 틀어놓게 되는 사건이 되는 것이니까. 그나저나 너희들은 이제 그만 돌아들 가 봐라.”
“뭐라고요?”
“집이 다 완성돼서 내가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는, 다시는 여기 올 생각도 말고.”
“아니 무슨 그런? 그렇군요. 역시 그렇군요. 그동안 아버지는 저 때문에, 애물단지 딸년 때문에 엄청나게 힘 드셨던 거예요. 그렇죠?”
“네가 그렇게 엉뚱한 소리로 뭔가를 내게 뒤집어씌운다 해도, 응?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얼른 돌아들 가. 여긴 서울과 달라서 여섯 시면 벌써 마지막 버스가 출발한다고 신호를 빵빵, 울려대거든.”
울고 싶은 순간이었다. 누군가를 붙잡고 울고 싶었다. 아버지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나도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붙잡고 실컷 울고 나면, 그러면 아버지에 대한 미안스러움이, 그 죄의식이 조금은 씻겨나갈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할 수는 없어서, 알았다고, 그렇게 하겠다고, 집을 다 지어놓고 연락을 주실 때까지 궁금해 하지도 않겠다고 짐짓 담담한 어조로 말한 다음 조건을 걸었다.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십 분 이상씩 전화통화하기, 김치라든가 멸치조림 같은 반찬을 만들어서 열흘 단위로 보내드리겠지만 만약에 제가 잊어버렸을 경우에는 아버지가 왜 반찬 안 보내느냐고, 정신 나간 것이냐고 나무라기, 이 두 가지 조건을 아버지가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매주 토요일마다 내려와서 밤을 새고 갈 거예요. 어쩌실래요?”
“아이고 알았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그렇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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