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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한줌의 도덕(4)

정간

9

 

아우야, 그러니까 그 무렵의 나는 성인이면서도 성인이 아니었다고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의 결단으로는 어떠한 일도 할 수 없는 처지에 나는 놓여 있었다. 어쩌면 나에게는 태생적으로 유전인자에 의지 자체가 부여되어 있지를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성장 과정에서 마치 어떤 민족의 할례처럼 의지의 날개가 꺾여 있었던 것일까. 그야 어떻든, 내가 만약에 내 임의로 고시를 포기하고 고시원을 나온다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당장에 갈 곳이 없었다. 어떻게 밥을 벌어먹고 어디에서 찬이슬을 피해야 하는지를 나는 몰랐다.

요컨대 돌쩌귀가 떨어져 나간 운명의 문짝을 어떻게 수리해서 열거나 닫고 나를 보관해야 하는가에 대한 배움이 나에게는 없었다. 집에는 물론 아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지만 내가 고시를 중도 포기하고 나오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는 천하에 용서 못할 불효자식이 되어버리는 탓으로, <>은 다만 하나의 명사로만 거기 존재할 뿐 따뜻한 보금자리의 역할은 이미 끝나게끔 되어 있었다.

 

어쩌다 한 번씩 크게 용기를 내어 아버님, 정말 저는 고시에 소질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을 찾아보게 해 주십시요 하는 말씀이라도 드릴라치면 아버지는 대번에 사내자식이 한 번 터를 잡았으면 죽어도 거기서 죽어야지 천하에 못난 밥버러지 같은놈, 네놈이 아비의 얼굴에 똥칠을 하려 드느냐고 역정을 내시는 거였다.

아버지가 화를 내시면 아버지의 가슴이 벌렁거리고, 아버지의 가슴이 벌렁거리면 아버지의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께로 띠처럼 둘러있는 권총집에서 흰쥐가 얼굴을 내밀고 작은 눈을 날카롭게 번뜩이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의 가슴살을 열고 뛰쳐나온 무슨 공상과학 영화에서의 외계인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졸아들게 하고 속으로 땀을 흘리게 했다. 비수보다 더 날카롭고 총알보다 더 실감나게 살기가 느껴지는 흰쥐의 그 눈빛을 일단 보고 나면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신의 감정을 그렇게 흰쥐를 통해 드러내 보이시는 아버지에게서 나는 매번 힘의 어떤 근원 같은 것을 느껴야 했다. 가지도 아니고 줄기도 아니어서 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저 깊은 어딘가에 숨어있는 힘의 원천 말이다.

하나의 왕국이 어떤 방식으로 건설되고 또한 무너지는가를 목도하는 예컨대 신화가 탄생되는 순간의 어느 지점에 내가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해도 말은 될 것이다. 어떤 것의 처음은 어떤 것의 끝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아버지가 언제 어떤 계기로 흰쥐 한 쌍을 권총집에 권총 대신 넣고 다니게 되었는가는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도 결혼한 뒤의 어느 날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시면서 부부의 오랜 연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아해 하실 정도로 흰쥐와 아버지의 관계는 역사가 깊었다.

역사가 깊은 만큼 문득문득 의아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연스럽게 여겨졌고, 때문에 아버지의 흰쥐를 상대로 무슨 불만을 토로한다거나 새삼스레 흥미를 갖는다거나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아버지 하면 자기도 모르게 흰쥐를 떠올리고 흰쥐 하면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가슴에 흰쥐가 없는 아버지는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로 흰쥐는 그렇게 어느 사이 우리의 가족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위상에 버금가는 심문관이 되어 있었다.

그야 어떻든, 아우야, 심기가 불편할 때 가슴에서 고개를 내밀고 번뜩이는 눈초리로 사방을 둘러보는 흰쥐로 표상되는 아버지의 철학은 너무도 확고해서 어떻게 뚫고 나갈 길이 없었다는 식의 표현은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불효가 될 것이다.

그때에는 이런 우회적인 표현마저 나 스스로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마는,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몰라도 나는 지금 당시의 아버지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유명했었다는 얘기를 여기에 적어두고 싶다. 현대라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반상(班常)이나 셈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둥 쑤군거리는 사람들의 경멸에 젖은 표정을 나는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제아무리 목에 힘을 줘봐야 서장도 아니고 기껏 과장인 주제에 양반은 무슨 개도 안 물어갈 양반이라고, 나아 참 어이가 없어서…….”

 

사람들의 그런 뒷공론을 아버지가 몰랐을까. 모르기는커녕 누구보다 더 잘 알고 계셨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심장이 몇 박자의 빠르기로 펌푸질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그것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하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망은 본디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굳이 알고 싶어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가슴은 아들의 가슴에로 전이되어 물이 아래로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느낄 수가 있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의 속내를 잘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모르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하지만 몸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빠졌다마는, 당시의 내 느낌으로는 그랬다. 아버지는 사람들의 뒷손가락질을 누구 못지 않게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그러한 뒷공론이 심화되면 그럴수록 당신의 신념은 더욱 견고해져갔다.

세상이 위아래를 모르고 제멋대로 헝크러지면 헝크러질수록 자신의 신분을 확고하게 단도리해 두어야 한다는 아버지의 일관된 세계관을 무너뜨려 보겠다고 정면으로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나없이 생각은 많았지만 그 생각의 보따리를 떳떳하게 풀어놓지는 못했다. 보따리를 풀어놓는 순간 틀림없이 뛰쳐나올 아버지의 가슴 속 흰쥐에게 날카로운 생채기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사람마다의 가슴에 또아리를 틀어놓고 있었고 흡사 노예의 심성과도 같이 일단 자리를 잡아버린 그러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는 사실 어려웠다.

, 그런데 그런 아버지에게도 측면이라는 헛점이 있었다. 아킬레스건이라고 해도 말은 된다. 이것은 물론 내가 처음부터 의도한 게 아니었고 따라서 일이 끝난 뒤에서야 그 의미를 발견해낸 것이기는 하다마는 아우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나의 아내에게 고독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잔인하리만치 집요하게 일깨워주는 것으로써 아버지의 견고한 성을 마치 쥐가 고구마 가마니를 뚫고 고구마를 갉아먹듯이 훼손해 나갔던 듯하다.

 

10

 

세상의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그토록 힘의 논리에 집착하도록 유도해 내었는가를 분석하는 작업은 우리의 능력에 미치지도 않겠거니와 설령 미친다 해도 여기서는 별 의미가 없다.

여기서는 다만 힘에 대한 신뢰가 그 힘의 어디를 어떻게 역설적으로 훼손해 버리는가를 적어두는 것으로 족하다. 경찰서 인근 대서사의 외동딸을 당신의 며느리로 정했다는 아버지의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아버지의 힘에 대한 신뢰도가 어디에까지 미치고 있는가를 어렴풋이 알았다.

고시에서 연거푸 낙방하고 또 한 차례 미역국을 마시고 난 직후의 일이었다. 아버지는 이제 힘의 상승만이 문제가 아니라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까지 느끼게 되셨던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연금술의 질료와 그 처리순서를 약간 달리해야 할 필요를 발견하셨던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의 흰쥐가 그 무렵에 새끼를 낳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받으셨던 건지도 모른다.

 

우연찮게 대서사의 외동딸을 발견한 순간에 아버지는 이놈을 며느리 삼아야겠다는 마음으로 그 대서사에게 새삼스런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며칠 뒤에 어린 흰쥐 한 쌍을 미래의 사돈에게 분양해 주었다. 장차 나의 장인이 될 그 대서사는 물론 난처한 표정을 지었겠지만 그러나 내심 신분 상승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 터이었다.

대서사의 외동딸은 여고를 졸업한 지 삼년째인 아직 어린 처녀였고 수줍음이 많았는데 바로 그 점이 아버지의 시선을 끌었다는 얘기를 나는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의 연금술에 의할 것 같으면 여자는 모름지기 심성에 처녀의 수줍음이 자리해 있고 성()의 접촉에 의한 기쁨을 알아차리는 나이가 되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했다. 노골적인 색이 침투해서 순수가 훼손돼 버리면 영명한 일급 혈통을 담보하기가 어렵다는 거였다.

그러한 논리에 의해서 나는 신랑이 되었지만 그러나 신부와의 잠자리는 허용되지 않았다. 신부와의 동침은 일종의 거룩한 제의였고 제의는 아무 때나 치르는 행사가 아니었다.

 

네가 고시를 통과하면, 그때부터는 네가 네 아내와 더불어 무엇을 하든 관여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는 아직 의관을 갖추지 못한 상태이니, 내 말에 따라야 한다.”

 

결혼식 전날 저녁에 나는 아버지로부터 그런 지침을 받았다. 아버지의 음성은 전에 없이 착잡했고, 때문에 권총집에서 날카로운 눈빛의 흰쥐가 뛰쳐나오지는 않았지만 나는 한 마디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그 말씀을 받아들였다. 아버지가 무슨 여자를 매개로 해서 나의 밋밋해져 가는 고시열에 불을 붙일 요량이셨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야 어떻든, 그날의 아버지는 후대를 확보해야 한다는 새로운 초조와 가문의 명예를 드높여야 한다는 당신 자신의 오랜 <정언명령> 앞에서 심기가 매우 곤혹스러우셨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날 아버지가 나에게 일러주신 연금술의 비방에 따를 것 같으면 남자의 정액은 일종의 신비로운 불이었다. 신비한 불은 때에 맞추어 지정한 자리에 올바르게 꽂아놓고 타오르게 해야 했다. 때에 어긋나는 교합은 낭비의 불이고 낭비는 악이었다.

아무 때나 쓸데없이 타오르는 그런 시정잡배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낭비의 불을 아버지는 당신의 자식에게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셨다. 그렇다고 첫날밤까지 몰수할 정도로 가슴이 빈약하거나 쓸데없이 완고하기만한 분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어쩌면 나에게 부과된 임무라고나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첫날밤이라는 이름의 제의에 제관으로 참여해야 하는 의무 말이다. 나 역시 신명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몸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듯한 일종의 어지럼증 같은 것. 하지만 몸 안의 꿈틀거림은 신부와 단 둘이 남게 되어진 최초의 잠깐이었고 그마저도 농도는 미미했다고 나는 기억한다.

욕망의 불꽃은 아랫도리를 제법 따끔따끔 아프게 흔들어놓기도 했지만 그러나 순식간에 화염을 잃었고 전깃불을 끄려고 할 때에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때에 나는 알았다. 아버지도 거기까지는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는 제관의 임무를 기피한 채로 다음 날 일찍 고시원으로 발걸음을 놓았다.

 

나는 방금 기피라는 용어를 썼다마는, 그것은 나의 의도적인 기피였다기보다 어쩌면 두려움 때문에 손을 내밀 수가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말로 바꿔야 할 것 같다. 고개를 수그린 채로 가만히 앉아서 처분만 기다리는 이물스런 느낌의 아직은 낯이 선 여자를, 아우야, 너는 그런 여자를 감히 얼싸안고 귓바퀴를 물어 뜯으며 사랑이 어쩌니 저쩌니 속삭일 수 있겠느냐.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낯선 여자가 수줍어하는 눈으로 신랑을 몰래 훔쳐본다든가 하는 그런 어떤 생명의 내음이 맡아졌다면 나도 모르게 손을 내밀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첫날밤의 아내에게서 마치 건전지를 빼내 버린 귀여운 움직이는 인형을 느끼고 있었다.

아무튼지 아버지의 연금술은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통해 며느리의 생리주기를 알아내었고, 당신이 계산한 배란일자에 맞춰 달에 한 번씩 나를 집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그러니까 일종의 종마(種馬)가 되어, 암내난 암말이 기다리는 마굿간으로 들어가는 형국이었다. 아버지의 연금술이 발생하는 효력은 거기까지였다.

종마는 첫날밤의 이물스런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암말을 대하는 순간마다 그때의 이물스러움이 되살아나는 탓으로 초에 불을 붙일 정도의 에너지를 끌어올리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예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몇 차례인가 봉긋한 속살을 손가락으로 찔러도 보고 손바닥으로 문질러도 보는 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최면까지 걸어가며 불을 지피려는 노력은 나도 어지간히 해 보았다. 그렇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서늘한 기운 같은 것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어 불씨를 꺼버리는 데는 나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서 눈만 깜박이던 아내가 마침내 쿨쩍쿨쩍 울음을 비치기 시작했다. 나는 아내의 눈물에서 생명의 가냘픔 같은 것을 더러 느끼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때의 연민은 안으로 깊이 스며들지를 못하고 휘발성이 강한 무슨 액체처럼 마음 밖으로 가물가물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마음의 굳은 땅에 연민이라는 이름의 보슬비가 내렸으니 촉촉한 사랑이 태어날 법도 하건만 내 영혼의 굳어진 땅은 아내의 눈물 앞에서도 결코 사랑으로 전환되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안 된다>는 말을 무수히 듣고 자란, 깊은 물가에 가서는 안 된다는 말은 들었어도 깊은 물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배움은 갖추지 못한, 말하자면 삶의 운영에 관한 기술을 익혀놓지 못한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게끔 길들여진 여자, 혼자 속으로 애를 태우며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여자...... 훗날에 그녀는 외로웠었다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기야 아내는 외로움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 줄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불 깔아 드릴까요.”

아무렇게나 하시오.”

내일도 아침 일찍 돌아가시나요.”

알면서 뭘 묻소.”

저는 제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오.”

후우읍.”

남편인 내가 아내인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것뿐이었다. 안으로 천천히, 조금씩, 언제인가는 주변의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그런 막강한 위력의 불씨를 모아들이는 것, 결과론적인 얘기이다마는 나에게 있어 고()란 그런 것이었다. 일종의 내압 같은 거. 나는 아내에게 그런 고독을 가르치는 한편 나 또한 고독을 배워 나갔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사람은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건사할 수 있다는 그런 고독의 진리랄까 의미성 같은 것들을 우리는 결혼의 의식을 치른 뒤에서야 조금씩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고독의 정체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을 때, <><>의 틈을 열고 장자의 붕새가 나에게로 날아왔다. 아내는 다섯 살 때부터 익혀 왔다는 신사임당체의 붓글씨와 묵화를 자신의 대화 상대로 선정한 것 같았다. 고독이 무엇인가를 어렴풋이 아는 순간에 고독은 사라지고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세계가 펼쳐진 형국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젊었고, 서로가 자신의 욕망에 반하는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고, 때문에 장자의 붕새나 신사임당체의 붓글씨를 넘어서는 어떤 계기가 마련되면 그 즉시 무릎을 꿇고 영혼을 바칠 준비가 우리 부부에게는 되어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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