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 (3)

6

 

그녀는 버리기 어려운 이 세상의 무엇이 그리도 궁금했는지 예정일을 오십칠 일이나 앞당겨 이 땅의 딸로 첫울음을 터뜨렸다고 진후의 파일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한 기록에 의하면, 미래의 피아니스트이자 그녀의 어머니는 어리둥절해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사흘 동안 벌벌 떨기만 했다. 간난쟁이는 제아무리 정상이 아니라도 사흘을 넘기면 일단 안심해도 좋다는 전래의 이야기를 그녀의 어머니가 신뢰했기 때문이라는 증거는 남아있지 않지만, 아무려나 사흘이 지난 뒤부터 그녀의 어머니는 전신의 떨림을 중지하고 미음을 먹었다.

서울에 계시는 그녀의 할아버지는 할머니편에 이름을 지어서 보냈다. 미리서 나왔다는 의미의 미리에다 최씨 성을 붙인 최미리가 그것이었다.

 

최미리가 스물한 살 되던 해의 대추꽃이 막 피어날 무렵에 진후는 그녀를 만났다.

진후의 일기장에 기록된 진후 자신의 회고에 따를 것 같으면 아마 십칠일 동안이었던 모양이다. 진후와 그녀는 십칠일 동안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짧게는 열 시간에서 길게는 열아홉 시간까지도 같은 방에서 보냈다. 다른 일은 외형상 아무 것도 없었다.

그는 단지 그녀와 같은 방에서 같이 시간을 죽였을 뿐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시키고, 말을 시켰는데도 말을 하지 않으면 옷을 벗겨도 괜찮은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어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국가로부터 봉급을 받는 그가 십칠일 동안 한 일이라곤 고작 그녀의 눈을 쳐다보며 대추나무와 소녀와 미친개로 가득 차 있는 자신의 유년기를 추억한 게 전부였다.

최미리를 처음 보았을 때 진후는 그녀의 눈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백치를 떠올렸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에 읽은 백치라는 제목의 소설이 어떤 내용인가는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지만, 새벽의 토란잎처럼 청초한 백치의 이미지는 소설을 훨씬 뛰어 넘어선 저 높은 어딘가에 마치 대추나무와 소녀에의 추억으로 이루어진 몸의 한 부분처럼 예민하게 도사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두운 불빛의 지하실 방으로 최미리가 인도되어 왔을 때 진후는 별 생각없이 거기 앉아라고 툭 쏘듯이 뱉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보았다.

눈이 그저 눈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그런 천진한 눈으로 그녀는 진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새벽의 토란잎에 방울방울 모여 앉은 이슬 같은 눈망울이 음침한 지하실을 갑자기 푸른 초원으로 바꿔놓은 형국이라고나 할까.

진후는 심히 당혹스러웠다. 지하실 생활 십여 년에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기로 하자면 적()의 진영으로 끌려온 여자가, 상대에게 침이라도 뱉어야 할 입장에 있는 여자가 어쩌면 저런 눈으로 사람을 볼 수도 있는가.

그 눈은 마치제 입에서 원하시는 말이 안 나오면 저를 고문하실 건가요? 제발 아프게 하지는 말아 주세요그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후의 임무는 그녀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해부해서 기록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모든 것이라 함은 그녀의 머릿속에 입력된 저간의 활동상황은 물론이려니와 유두와 음모의 생김생김까지를 포괄한다. 신체의 구조는 물론 별 중요한 기록사항이 아니기는 하다. 그렇긴 해도 그것은 참고사항으로써, 가능한 한 상세히 기록하도록 내부방침이 세워져 있었다.

신체에 대한 관찰의 최대 목적은 그녀의 수치심을 극대화해서 필요 정보를 수거하자는 데에 있었고, 따라서 진후에게는 어느 한계상황에서는 그녀와의 개별적인 신체 접촉까지도 묵시적으로 허용되어 있었다. 그것은 그의 권리였고, 의무였다. 그는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한 번도 소홀히 넘긴 적이 없었다고 일기에서 고백하고 있었다.

 

7

 

그러고 보면 아우야, 버리는 일에 있어 한계상황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 듯이 여겨진다.

최미리는 본디 백치가 아니었다. 그녀의 학생증에 부착된 사진을 보면 얼굴에 무언가를 뛰어 넘고자 하는 투지가 엿보인다. 진후는 그녀가 지하실로 인도되어 오기 전에 이미 그런 것들을 읽어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실제 모습은 어떠한가.

그녀가 무슨 연극을 한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진후는 나중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체포되기 얼마 전에 벌써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가는 상태에 있었다. 지키고자하는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여학생을 상대로 진후는 더 이상은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가 없었고, 의무를 수행할 수도 없었다.

권리와 의무에 대한 인식이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마치 아침의 가로등처럼 점멸돼 버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이나 혹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은 어떠한 최악의 경우에도 자신에게 사랑이나 혹은 마약을 공급해준 사람을 따라 나선다고 한다. 따라 나서면 자신의 신체가 파괴되게끔 되어 있다는 체험 이전의 법칙을 그 자신 알고 있지만 몽환적인 사람의 감각이 중요시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가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현재이기 때문에 현재의 절박함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따라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때의 몽환마저도 본인에게는 몽환이라기보다 오히려 절대 명징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명징과 자신을 합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따라 나서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변신이란 실상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어떤 상태에서 어떤 마음으로 사람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에 따라 변신의 계기는 뜻밖의 순간에 찾아드는 것 같다.

 

결국 절박함의 문제이다. 알 수 없는 어떤 은밀한 생명의 속삭임이라고 해도 좋다. 그때 진후의 귀에 들려온 속삭임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렵의 일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자신의 내부 갈등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이상하다. 알 수가 없다. 내가 왜 이럴까. 정말로 이상하다.

미국에서 망명 비슷한 입장으로 방랑 중이던 최미리의 아버지가 현지에서 사망한 탓으로 상부의 계획이 변경되어 최미리가 지하실을 빠져나가게 되었을 때, 진후는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방침이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그녀의 뒤를 따라 나섰다.

상부의 명령은 최미리를 무조건 석방함과 동시에 그녀와 관련된 자료 일체를 파기하라는 것이었지만 그는 최미리를 무조건 석방함과 동시에 그녀와 관련된 자료 일체를 자신의 서류가방에 꾸려 담고 지하실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해서 그는 아마 최미리의 뒤를 그림자처럼 좇는, 그럴 수밖에 없는, 자기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이상한> 여행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던 모양이다.

 

진후의 주변에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진후의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 성혜련이 역시 남편의 내면에 숨어있는 유혹의 불씨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황당한 얼굴로 그녀는 남편의 옛친구들을 찾아 나섰다.

그녀의 얘기에 의하면, 여러 가지 난관을 돌파하고 이제 겨우 한걱정 놓고 살아볼 만하다 싶은 때에 남편이 그런 엉뚱한 사건을 저질렀다고 했다. 예컨대 주택 월부금도 어지간히 납부했고 아내는 부업으로 미장원을 차렸으며, 진후 자신은 오랜 숙원이던 승진 명부에도 등재되어 한 부서를 책임지는 장의 자리에까지 올라 있었다는 것이다.

그야 어떻든, 공무이탈의 죄를 범한 지 육 개월째로 접어드는 어느 날 야음을 틈타 진후는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와 마주앉았다. 아내는 남편이 반갑고, 또한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남편의 눈치만 살폈다. 남편의 입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겠지만, 그녀의 꿈속 같은 기억이 토해놓은 이야기는 이 한 마디뿐이었다.

 

나는 이제야 내 길을 찾은 것 같애. 당신도 아직 늦지는 않았으니 마음을 정리하고 당신의 길을 찾아봐.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 들른 거야

돌아온 게 아니라 들른 거라는 남편의 이야기를 아내는 꿈에서처럼 들었다.

남편은 아내가 꿈에서 깨어나기 전에 떠나야겠다는 듯 새벽이 아직 열리기도 전에 다시 떠났다. 그녀는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남편을 붙잡을 생각도 해 보지 못한 채로 그냥 떠나보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어떤 힘을 느꼈다. 그것은 촛불처럼 부드럽게 너울거리다가 차츰 거세게 타올랐다. 그녀는 이제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있는 아내일 수가 없었고, 미장원에서 한가롭게 손님이나 기다리는 미용사일 수도 없게 되었다.

 

8

 

아우야, 너도 대강은 어림하고 있었겠지만 진후의 아내가 나를 찾아올 무렵에 나는 고시원이라는 간판이 붙은 삭막한 하숙집에서 장자(莊子)를 뒤적이고 있었다.

장자를 읽었다기보다 장자를 몽상하고 있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서당을 다닐 때 수염난 선배들로부터 이따금 귀동냥해 두었던, 그러니까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장자의 그 나비꿈이라든가 붕새 이야기 같은 것들 속으로 나는 언제부터인지 빠져들고 있었다.

 

죄와 벌의 한계는 법률로 정한다<죄형법정주의>의 그 해답이 먼저 구해져 있는 문제보다는 내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나의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다는 투의 그 해답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장자의 수수께끼 놀음이 새삼스레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고 하면 말이 좀 되려는지 모르겠다.

그 바람에 나는 고시원 내에서 김처사로 통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시험에는 자신이 없는, 그러면서도 일반인들과는 뭔가 다르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다수의 고시생들은 거사니 처사니 스스로 명함을 만들어놓고 그렇게 불리워지는 걸 일종의 명예로 여기고들 있었다.

 

부부는 서로의 성을 충족시켜줘야 할 의무를 진다.”

흐흠, 좋아. 물론 그래야지. 그런데 만일 남편의 성적 능력이 제로 상태에 가까워서 아내의 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래서 아내가 군것질을 시작했다면 어떻게 되지? 누구의 죄야?”

형법은 어떻게 돼 있지?”

형법에는 없어. 입법가들은 아마 아직 고민 중일 거야.”

그렇다면 아직은 누구의 죄도 아니겠는데?”

그렇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대개 아내가 죄인이 되거든. 형법은 그것을 간통이라고 이름지어 놓고 있다구

하기는 그게 형법의 장점이긴 하지. 사건의 원인은 골치 아프니까 일단 덮어놓고 사건 자체만을 문제 삼자는 거

그게 현상학적 문제 해결 방법인가?”

합리주의라는 표현이 더 옳지 않은가?”

누구를 위한 합리주의지?”

성병의 방지를 위하여.”

성병의 방지라. 아하, 그거 괜찮군

이제 죄의 근간은 밝혀졌고, 좋아. 아내는 죄인이다. 그렇다면 형량은?”

죄의 유무와 양형의 범위는 법률로 정한다. 이것을 학문적인 용어로 죄형법정주의라 한다.”

그렇다면 말야. 어이 이봐요, 김처사. 대한민국의 헌법이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기로 결정한 그날 김처사의 붕새는 어디를 날아가고 있었을까?”

글쎄, 그것은 그날 대한민국에 비가 내렸는지 안 내렸는지를 알아보면 저절로 밝혀질 텐데?”

비가 안 내렸다면?”

저기 시베리아나 어디 오지에서 오줌을 누고 있었겠지.”

비가 내렸다면?”

그야 당연히 대한민국의 상공에서 소피를 보고 있었겠지.”

크하하하 역시 김처사는 김처사야.”

 

그런 쓸데없는 흰소리를 우리는 가끔 주고 받았다. 그것이 쓸데없는 소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여느 고시생들은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의 시간을 통해 저마다 눅진해진 머릿속의 피를 정화하고 있었던 반면 나는 쓸데없는 이야기 그 자체를 즐기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사뭇 달랐다.

그들은 쓸데없는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고시열을 불태우는 일종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있었던 데 반하여 나는 점차 사그라드는 고시에의 불꽃을 마저 꺼뜨리는 서늘한 이슬 같은 것을 찾아내고 있었다고나 할까.

아무튼지 그랬다. 날개의 길이가 물경 수천 리에 이른다는 그 엄청난 붕새를 타고 내가 지금 세상을 두루 살펴보고 있다는, 그러한 꿈에 빠져 있노라면 아버지가 조금도 두렵지 않고 법전을 뒤적이는 여느 고시원생들의 등허리가 그렇게 불쌍스럽고 허전해 보일 수가 없었다.

 

그랬다. 내 이름이 적힌 법전들은 책상 모퉁이의 먼지받이로 밀려난 지도 그때에 벌써 오래였다. 아버지의 불시방문을 염두에 두지 않았더라면 그마저도 진즉에 치워졌을 것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 사내가 한 번 터를 잡았으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봐 야 한다는 아버지의 진노한 표정으로부터 내가 조금만 더 자유스러울 수 있었다면 나는 애당초 고시원이라는 하숙집의 만년 하숙생으로 입문하지도 않았을 터이었다.

 

'중편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줌의 도덕(6)  (0) 2020.12.25
한줌의 도덕(5)  (0) 2020.12.24
한줌의 도덕(4)  (0) 2020.12.24
한줌의 도덕 (2)  (0) 2020.12.22
한줌의 도덕 (1)  (0) 2020.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