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다.
오랜만에 인터넷을 만났다.
시의원이라나. 그의 컨테이너 사무실에 잠자리를 허락받고 들어오니 피시가 있고 인터넷이 뜬다.
습관적이라고나 해야겠다.
습관적으로 피시를 켜고 이것저것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뉴스를 훑어보고, 메일도 열어보고 기타 등등 한 달을 넘어 두 달만에 하는 짓인데도 아직은 익숙하다. 하나도 낯설지 않고, 오랜만인데도 오랜만인 것 같지도 않다.
뻥튀기 아니 튀밥 장사 계획을 보류하고 벌을 따라 길을 나섰다.
고창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시흥, 이제 또 강화로 가야 한다. 밤에 짐을 싸서 밤에 이동을 해야 하는 아주 낯선 유목의 삶이다. 벌을 키운다는 것은. 아니 벌을 착취한다는 것은.
착취,
이렇게 써놓고 보니 뭔가 좀 그렇다. 그러나 사실은 사실.
꿀이라는 거, 아니 벌이라는 거. 이것 참 재미있다.
저 벌들은 어쩌자고 저렇게도 많은 꿀들을 수집해 들이는가. 끝없이, 그야말로 끝도 없이 일을 하는 벌들의 생애가가 나는 무지 혼란스럽다. 그리고 흥미롭다.
욕망의 무한, 상한이라는 것이 없다. 벌들의 삶에는.
그들은 일을 하고, 또 일을 할 뿐이다. 그렇게도 열심히 끝도 없이 수집해 들이는 꿀을 수집하는 아니 착취하는 임무가 내게 주어져 있다. 힘들다. 억수로 뻑시게 힘들다. 이런저런 여러 종류의 노가다를 지나보았지만 이것처럼 집중적으로 순간적으로 극한적인 에너지를 요구하는 노동을 접해보지는 못했다. 여기서 일단 하나를 배운다. 착취가 어찌 그리 쉽게 이루어질 수 있으랴.
책을 열 권 아니 백 권 읽어도 얻을 수 없는 어떤 것이 내게로 슬슬 들어온다. 체화라고나 할거나.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아하, 소리가 나온다. 존재하되 군림하지 않고 또한 통치하지도 않으면서 그 지위를 보장받는 여왕의 생애는 가히 압권이라 할 만하다. 그녀는 다만 알을 낳을 뿐이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자리를 찾아서 이동을 하며 여기다 싶어지는 곳에 알을 낳고 또 낳는다. 알을 낳는 빈도가 줄어들면, 그러면 그녀는 퇴출을 당하게 된다. 미리 알고 추종자들과 더불어 탈출을 하기도 하고, 탈출할 시기를 놓쳐 일벌들에게 살해를 당하기도 한다. 무능한 왕은 가차없이 내쳐버리는 벌들의 정치가 나를 전율하게 한다.
숫벌. 이녀석은 아마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들 가운데 가장 큰 성기를 가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성기 자체가 크다기보다는 자기 몸에 비례해서 너무나도 과도한 성기를 가졌다. 몸통의 약 오분의 일이 성기로 이루어진 이녀석의 생애는 보면 볼수록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 많은 숫벌들 가운데 단 한 마리만이 여왕의 선택을 받고, 그리고 하늘로 날아올라가서 단 한 차례의 섹스를 하고, 그것으로 태어난 임무를 완수하는 게 숫벌의 생애란다. 그러면 다른 숫벌들은? 쫓겨난다. 일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일을 안 하고 먹기만 하기 때문에 여왕과는 다른 부류의 암컷인 일벌들에 의해 쫓겨난다. 그리고 죽는다. 벌통 앞에 무수히 쌓이는 시체들, 숫벌들.
내가 참 어지럽다. 아니 부럽다. 여왕은 태어나서 일단 부지런히 먹어댄다. 먹다가 때가 되면 다이어트를 한다. 몸집을 최대한 줄이고, 이제 되었다 싶으면 숫벌 한 마리를 데리고 집을 나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허공 어딘가에서 길고도 깊은 섹스를 하고, 그 한 번의 섹스로 수천 수만 개의 알을 낳는다. 그들의 섹스가 길고도 깊다고 내가 감히 쓰는 근거는--그렇다 근거가 있다--숫벌의 성기는 완전히 닻처럼 생겼다. 몸통을 손가락 두 개로 힘주어 누르면 숫벌의 성기가 튀어나오는데 일단 브이자 형의 갈고리 같은 것이 나오고 그 뒤에 일자형의 또 하나가 나온다. 추측건대 녀석들은 암컷의 자궁에 수컷의 성기가 닻을 내리듯이 단단하게 결집된 상태에서 허공을 춤추며 돌아다니는 것 같다. 아직 그 누구도 그들의 섹스를 목격하지는 못했다고 하는데,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다. 새로 태어난 여왕이 비대해지다가 날씬해지면 가임기에 이르렀다고.
여왕은 통상 오 년을 산다고 한다. 오 년 동안 끈임없이 그야말로 끝도 없이 알을 낳는다. 알을 못 낳으면 쫓겨난다. 알을 낳는 임무를 부여받은 까닭으로 오 년씩이나 사는 존재, 일만 하는 꿀벌의 수명이 한 달 남짓인 것에 비하면 가히 놀랄만한 수명이다. 그렇다면 숫벌의 수명은? 글쎄, 평균을 내자면 하루나 이틀쯤? 내가 수컷이라서겠지만 자꾸 그쪽으로 관심이 간다. 길게 사는 것보다는 짧게 사는 녀석들 쪽으로.
어쨌든 어지럽다. 삶에 대해서, 존재에 대해서 내가 지금 미증유의 혼란을 겪는 중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그동안 나의 존재론적 의미의 대상은 지나칠 정도로 인간에 국한되어 있었던 것 같다. 지구를 살면서도 지구를 못 보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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