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
꿩들은 겨울에도 짝짓기를 하는 것일까? 봄은 아직 멀었는데 오늘따라 그것들 소리가 참 유난스럽네. 아니 어쩌면 내가 평소에는 그것들 소리를 의식 못 하다가 오늘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르긴 해.
어제 막내 삼촌의 법원 판결이 나왔거든. 일 년도 넘게 끌어온 재판이었어. 그 일년 동안 막내 삼촌은 물론이고 일가와 친척이 모두 파김치가 되었지 뭐. 강제 노역장에서 일 년 동안 중노동을 했어도 아마 그렇게까지 고개를 못 들 정도로 지쳐 떨어지지는 않았을 거야. 따지고 보면 지쳐야 할 이유도 없는데 왜 그래야만 했는지 나는 영 모르겠는 거 있지.
그러고 보니 그렇네. 꿩 두 마리를 산 채로 잡아와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던 시절의 삼촌이 그립기도 하고 밉상스럽기도 하고, 내가 요새 머릿속이 영 복잡하네. 고모는 그때 그랬었지. 날개를 정신없이 푸드덕거리다가 어느 순간 체념한 듯이 얌전한 모습으로 눈알이나 굴려대고 있는 꿩 두 마리를 보고 있던 고모가 삼촌의 어깨를 툭 치면서 “야아 너도 참 대단하다. 아니 네 몸 어디에 이런 재주가 다 있었다냐?”그랬었어.
그러자 의기양양해서 마치 개선장군처럼 무용담을 늘어놓는 삼촌의 얘기가 참 충격적이었지. 꿩은 연애 중에 연적을 만나 싸우기 시작하면 인사불성이 돼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사람 손에 잡혀서도 연적을 향해 발톱이나 세울 뿐 자기가 잡혔다는 사실조차 의식을 못 한다고, 삼촌의 그 얘기를 듣던 고모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고 있었더랬지.
“그러니까 네가 지금, 쟤들이 연애에 몰두해 있는데 잡았다 이 말이지?”
“그렇다니까. 누나도 아마 그럴 걸? 이 다음에 연애를 하게 되면 누가 와서 잡아가도 모를 걸?”
“이런 나쁜 놈, 나쁜 놈. 너도 사람이냐?”
“어, 어, 왜 때려 씨이.”
“사람이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는 거야, 이 못된 사내 녀석아.”
고모.
사람 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마음이라는 것이 말이야. 내가 아직 미성이었을 때, 그러니까 고모랑 다정하게 소꿉놀이를 하고 글자를 깨우치고 수를 놓고 그런 일련의 추상적인 과정을 지나서 마침내 남자라는 구체적인 미래를 의식하며 이불을 시침하던 시절에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마음이란 것도 알아지겠거니 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아니더라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몰라지는 것이 사람 마음이더라고. 막내 삼촌만 해도 그래.
이렇게는 단 하루도 못 산다고 법원으로 달려간 사람이 삼촌 자신이었거든. 그런 사람이 정작 법원의 최종 판결을 받고는 펑펑 울어대는 거 있지. 뜻대로 되었다는 데서 오는 감격의 눈물은 분명 아니었어. 누가 봐도 슬픔이고, 억울함이고, 한이랄까 뭐랄까 하여튼 오래 참아온 것을 더 이상은 막아내지 못해서 절로 터지는 푸닥거리 같은 것이었어. 술이나 마셨다면 모르겠는데 술도 안 마시고 울어대니까 옆에서 보는 내가 그만 미쳐 버리겠는 거야.
고모는 알까? 삼촌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우리 일가와 친척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모는 알고 있을까? 나는 고모가 그때 정말로 죽으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단지 그냥, 고모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실을 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로 그 형식을 잠시 빌렸던 것인데 그만 계산이 잘못 되어 정말로 죽음에 이르고 만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고모에게 묻고 싶었던 거야.
한 여자가 길을 걷고 있어. 하지만 그 길이 어디로 통하는가는 몰라.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가도 몰라. 입은 있어도 말이 안 되니까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그렇다고 되돌아갈 수도 없어. 자기 자신의 의지로 길을 나섰지만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갈 만한 곳 따위는 없었어. 그녀가 머물러야 할 곳은 길을 나선 바로 그곳이었던 거야. 그런데도 그녀는 길을 나서야만 했어. 그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과는 다르게 여자를 놓치고 만 삼촌은 아마 지금도 이불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을 거야. 새벽녘까지도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었거든. 참 오랜만이었어. 고모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생각나기는. 처음에는 삼촌의 울어대는 모습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생각도 안 나더라고. 그런데 하도 슬프게 밤새도록 울어대니까 어느 순간 고모가 생각나지 뭐야. 일단 고모의 얼굴을 떠올리고 나니까 뭔지 모르게 자꾸 간절해지는 거 있지.
고모.
사실은 나도 이혼했어. 남편과 헤어져서 지금 말하자면 친정에 와 있는 거야. 아버지는 믿었던 맏딸의 때 아닌 귀향이 꼴도 보기 싫다고, 눈도 안 맞춰주지만 어쩌겠어. 벌써 일 년이 넘어 이 년이 다 되어 가네.
처음에는 참 많이도 죄송스럽고, 미안스럽기도 하고, 염치도 없어서 다른 어디 멀리로 가서 식당 같은 데나 몸을 맡길까 생각도 했지만 그때 마침 막내 삼촌의 결혼 문제로 집안이 뒤숭숭했거든. 된다거니 안 된다거니, 날마다 갑론을박 토론을 벌이는 집안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서 아 어쩌면 내 역할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하고 그대로 눌러앉게 된 거야.
생각해 보니 내가 참 많이도 친정 일에 무심했더라고. 막내 삼촌이 그때까지 결혼을 안 했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그때서야 어마, 삼촌이 아직도 미혼이야? 이런 마음인 거 있지. 나이는 나보다 어리다고 해도 그래봐야 두 살이고, 그렇다면 소위 불혹에 들어섰다는 얘기인데 아직 총각이라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고 당혹스럽기도 하고, 이상하게 내 마음이 설레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예사롭지가 않더라고.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운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 지금도 가동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년 전에는 지자체 차원에서 재정지원도 상당히 해주는 등 의욕적으로 추진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삼촌이 그 프로그램에 수혜 대상자로 선정되었던 거야. 집안에서는 당연히 경사가 났다고 좋아라 했었지. 그런데 상대 여자가 베트남 국적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만 뜨악해진 거야.
프로그램 자체가 외국 여자를 수입해 온다는 전제 아래 운영된다는 것 정도는 물론 알고 있었지. 알면서도 막연하게 그저 그런가보다 했는데 막상 국적이 베트남이라고 하니까 끔찍할 이유도 없이 끔찍한 현실로 다가와 버린 것이지 뭐겠어. 게다가 사진이 왔는데 삼촌 자신이 가타부타 말이 없이 그 얼굴을 보고만 있는 거야. 그때부터 집안 분위기는 반대쪽으로 확실하게 가닥이 잡혀 버렸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한국 여자와는 색깔이라든가 흐름 같은 정취가 많이 다르고, 그래서 첫눈에 호감보다는 이질감이 느껴지니까, 그래서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반대표를 던진 것이겠지만,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총각으로 늙어 죽게 하자는 것이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무도 내놓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된다, 안 된다 그렇게 날마다 토론을 벌이게 된 거야.
지루에 토론한 종지부를 찍은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갑천 당숙이었어. 갑천 당숙은 고모도 알다시피 그 왜 월남에서 참 이쁘게도 포장된 미제 비스킷이랑 커피 같은 것들을 한보따리 가져왔었잖아.
“베트남 여자 엄청나게 순박하고 부지런하다. 맹호부대 육군 중사로 일 년이 넘게 월남 근무를 했던 내가 보증한다. 게다가 봐라. 나이도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지 않으냐. 마흔이 넘은 노총각이 열여덟 살 처녀라니. 이게 어디 보통 호박이냐. 망설일 필요 없다. 잡아라. 꽉 잡아라. 혹시라도 어린 여자자라서 미안스럽다거나 위축된다거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도 염려할 필요 없다. 후진국에서는 나이 차이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무슨 벼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거든.”
갑천 당숙의 해박한 상식에 집안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신해 버렸지 뭐겠어. 누구보다도 막내 삼촌 자신이 “보고 또 보고 자꾸 보니까 정이 가는 것도 같다”는 등 마음을 열기 시작한 거야.
고모.
베트남에 가서 열여덟 살 처녀를 만나고 돌아온 막내 삼촌이 맨 처음에 한 일이 뭔 줄 알아? 자기가 신혼살림을 차릴 방에 위성 케이블을 설치하는 것이었어. 집에는 그때 이미 유선방송이 들어와 있었는데도 굳이 자신의 방에 따로 설치한 거야. 그 이유가 또 가관이지. 신부를 즐겁게 해줘야 한대나 어쩐다나. 신부가 즐겁지 않으면 도망갈 수도 있다는 것 정도야 뭐 누구나 알고 있었으니까 이해할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 그런데 즐겁게 해준다는 그 소재가 문제였어.
처음에는 물론 아무도 몰랐지.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어렴풋이 조금씩 알아지게 된 거야. 다른 남자를 만나서 도망간 친구의 부인을 삼촌은 그 무렵에 아마 의식하고 있었던 것 같아. 여자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기웃거린다면 그녀의 남편이 아내에게 해줘야 할 일을 거의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었겠지. 그래서 자신은 부드럽고 자상스런 남자가 되자고 결심을 했고, 아내를 위해서 남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각오로 그렇게 일단은 유선방송부터 끌어들였다는 거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부가 마침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고, 소략하나마 결혼식을 치른 그날, 그러니까 첫날밤에 신혼 방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가는 아무도 몰라.
그때가 아마 열두 시도 훨씬 넘은 밤중이었을 거야. 내력이야 어떻든 잔칫집인데 열두 시가 넘었다고 사람이 왜 없었겠어. 특히 갑천 당숙이 떠날 줄을 모르고 술잔을 돌리고 있었지. 그때 어느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신혼 방에서 들려온 거야. 이어서 무엇인가 마구 집어던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고, 그러다가 갑자기 그야말로 죽은 듯이 고요해져 버리지 뭐겠어.
“야아, 저 처녀 정말로 처녀였네? 요새는 후진국에서 처녀 보기 어렵다던데 짜식, 복이 터졌구만.”
갑천 당숙이 대번에 그러시더라고. 그 소리에 사람들은 모두 배꼽이 빠져라 웃었겠지? 사실은 나도 웃었어. 내가 고모에게 굳이 이런 얘기를 하는 것도 아마 그때 웃은 죄 때문일 거야. 사람이 웃어서 될 일이 있고 안 되는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날 밤의 일은 절대로 웃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는 것을, 내가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날 밤에 우리는 모두 웃었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도 웃는 마음인 채로 삼촌과 그 부인의 출현을 기다렸던 거야.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해가 중천을 넘어 점심때가 다 되어 가는데도 주인공들이 나올 줄을 몰라. 이거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둥 희희낙락거리며 신혼방 문을 쾅쾅 두드렸겠지? 그래도 아무 기척이 없네. 어라 이거 이상하다 하고 문을 벌컥 열었는데, 신부는 간데 온데 없고 삼촌은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엎드려 있는 거지 뭐겠어.
뭐냐. 어떻게 된 거야? 이구동성으로 묻고 난리가 났지만 그런 질문에 답을 할 기분이었다면 삼촌이 그때까지 그렇게 엎드려 있지는 않았겠지? 그렇더라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삼촌은 완전히 넋이 나가 버렸더라고.
신부가 아예 집을 나가 버렸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날 저녁이 다 되어서였지. 그때쯤 눈동자도 어지간히 정상으로 돌아온 삼촌이 다른 묻는 말에는 일체 응답을 안 하면서도 묻지도 않은 돈 얘기는 꺼내고 있었던 거야.
“그년이, 다 가져갔어. 다 가져갔어.”
축의금이 꽤 들어와 있었거든. 농촌에 사람이 없다 해도 마흔 살이 넘은 남자의 결혼인데 멀리서라도 봉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이 왜 없었겠어. 삼촌은 욕심스럽게도 그 돈을 단 한 푼도 다른 데는 쓸 수 없다고, 오직 자기들 부부의 행복을 위해서만 써야 한다고, 누가 달리 시비를 하지 않았는데도 화난 사람처럼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며 가방에 주섬주섬 쓸어 담지 뭐겠어.
가방을 가슴에 꼭 끌어안고 방으로 들어간 삼촌은 그날 밤 신부에게 그 돈을 쏟아놓고 자랑도 하고 그랬겠지. 이것이 미래의 행복이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빌어주고 보증을 해준 행복의 증거가 여기에 있다고 두 사람이 아마 서로 마주보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그랬을 거야. 말은 서로 잘 안 통한다 해도, 돈이란 어쨌든 만국 공통어이니까, 축의금이라는 상징적인 언어를 활용해서 너와 나의 하나됨을 신부에게 보여주며 안심을 시키고자 하는 그야말로 자상스런 남편으로서의 배려심 같은 것이 아마 삼촌에게 있었던 것 같아. 그런데 신부가 그 돈 가방을 통째로 들고 나갔다는 거야.
문제는 돈이 아니라 왜 신부가 도망을 해야만 했는가 아니겠어? 첫날밤의 비명소리는 무엇이고, 신부가 빈손도 아닌 돈 가방까지 들고 나갔다면 충분히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삼촌은 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엎드려 있었는가. 의문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삼촌의 입을 통해서는 도무지 짐작조차 해볼 수가 없더라고. 삼촌은 오직 돈 얘기만 반복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사실은 축의금과 신부의 사라짐을 등치시키는 데서 오는 상실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자기도 모르게 자칫 다른 얘기를 입에 올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거야.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째 되던 날 아침이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너 미쳤냐, 소리를 지르지 뭐야. 놀라서 나가 보니 삼촌이 글쎄 절단기를 들고 위성방송 케이블을 토막토막 잘라내고 있는 거 있지. 접시형 안테나까지 뜯어내서 망치로 두들겨 패더니 나중에는 텔레비전을 들어다가 마당에 내던지고, 그러고도 모자란다는 듯 씩씩대며 사방을 둘러보더니 트랙터 한쪽에 얹혀 있는 기름통을 들어다가 안테나에 끼얹고는 불을 질러 버리는 거야.
“너 그날 밤에 혹시 텔레비전 보다가 싸웠냐?”
연락을 받고 달려온 갑천 당숙이 삼촌을 붙잡아 앉혀놓고 따지듯이 물을 때는 뭔가 아마 집히는 바가 있었던 것이겠지? 삼촌도 물론 갑천 당숙의 그 질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그렇게도 갑자기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화를 내며 벌떡 일어서고 말았던 것이겠지.
그랬어. 삼촌은 그때 뭐랄까, 수치심이랄까 부끄러움이랄까 자기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었어. 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가 없었지. 내용이 밝혀진 것은 엉뚱하게도 달아난 신부의 언니가 찾아오면서였어.
삼 년인가 사 년 전에 신부의 언니가 이미 한국에 시집와서 살고 있었거든. 그녀가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달려온 거야.
“포르노를 보자고 우격다짐한 것이 사실이에요?”
그녀가 삼촌을 보자마자 그러더군. 그러자 삼촌은 다시 발작을 해서 뭐라는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마구 질러대더니 그만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엎드린 채 꼼짝을 안 하는 거야.
“바보 같은 녀석. 후진국에서 온 여자는 후진국에서 온 여자답게 다뤄야지. 한꺼번에 그렇게 다 드러내서 어쩌자는 거야.”
감천 당숙이 그러시더군.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결론을 짓고는 삼촌을 마구 나무라시는 거였어. 그때 보여준 신부 언니의 표정이 생각나네. 어이가 없다는 듯, 할 말이 많다는 듯, 그러나 아무 말 안 하겠다는 듯 슬그머니 외면해 버리던 신부 언니의 그때 그 표정이 내게 준 느낌을 뭐라고 해야 옳을까. 부끄러울 이유가 딱히 없는데도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보면서 나도 잠깐 부끄러웠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녀의 생각이야 어떻든 그 자리에 모인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갑천 당숙의 말씀에 수긍을 하는 눈치였지. 심지어는 아버지와 어머니까지도, 입으로 말은 안 해도 우리에게 포르노는 일상인 걸 뭐, 하는 표정이었고, 사실은 나 자신도 처음에는 그만한 일로 뛰쳐나갈 것까지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데 고모.
여자의 마음에는 남자와 다른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일까? 여자는 왜 벗은 몸으로 남자와 뒹굴면서도 남자와는 달리 타인의 그러한 모습을 예민하게 거부하는 것일까. 생각해 보니 그것이 또 그렇더라고. 포르노라는 것이 말이야. 내가 찾아서 보는 것과 남자가 보자고 해서 보는 느낌이 영 다르더라고. 내가 가령 인터넷 같은 데서 그것을 볼 때는 몸도 더워지고 자못 진지해진다고 할까 뭐 그런 게 있었거든. 그런데 남편이 그것을 가져와서 보자고 할 때는 전혀 아닌 거야. 내 몸은 저 여자와는 분명 다른데, 다를 텐데,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저 여자를 통해서 내 몸을 느끼고자 하는가 하는 그런 기분 나쁜 의구심도 들고, 하여튼 그것을 함께 보자고 하는 남자의 의도가 무엇이건 여자는 거기에 맞장구를 쳐줄 수가 없는 거야. 하지만 이런 생각은 뭐라고나 할까, 오이시디 회원국이기도 한 잘사는 나라의 국민 가운데 하나인 내 입장일 뿐이고, 갑천 당숙 말씀따나 후진국에서 온 그녀의 감정은 아무래도 좀 다르지 않겠어?
내가 이 세상에 있지도 않은 고모를 생각해낸 이유가 바로 그것이야. 대한민국이 아직 후진국 소리를 듣던 시절에 남자를 만났다는 이유로 자살을 해야만 했던 고모는 어쩌면 생각도 없이 집을 나간 신부의 마음을 알 것 같았거든. 그럴 거야. 도망할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신부의 절박함이 무엇이었는가를 고모는 아마 알고 있을 거야.
말을 꺼내고 보니 그때가 새롭게 생각나네. 고모는 그때 정말 결백했었을까. 아니지? 아닐 거야. 나는 알아. 왜냐하면 그 이전의 일들을 고모 자신이 미주알고주알 내게 다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아마 자랑이기도 하지만 우월감이기도 했을 거야. 고모와 조카 사이라고는 해도 나이는 같은데 누구는 남자가 있고 누구는 없다는 데서 오는 우월감을 고모는 아마 갖고 있었을 거야.
하긴 내가 어른들의 끊임없는 나무람에도 불구하고 고모를 고모로 인정하지 못해서 툭하면 욕지거리도 하는 등 대등한 지위를 고집하고 있었으니까 고모도 그런 식으로나마 윗사람 노릇을 하고 싶기도 했겠지. 생각나네. 오늘은 남자와 키스를 했다고, 며칠 뒤에는 마침내 가슴을 허락했다고, 다음에는 어디까지 손을 대게 해야 할지 고민스러워 죽겠다고 발갛게 상기된 표정으로 소곤소곤 끝도 없이 속살거리며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던 고모의 꿈꾸는 듯한 눈동자가 생각나네. 그런 고모가 남자의 최종적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었을까. 밤을 꼬박 새고 돌아왔는데도 아무 일이 정말로 없었을까.
고모는 물론 아무 일도 없었다고 했지. 동네 사람들 창피해서 이사를 가야겠다고 길길이 화를 내며 목침을 던지는 할아버지 앞에서도, 무슨 낯으로 누구한테 중매를 부탁할 것이냐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흔들어대는 할머니 앞에서도 고모는 당당하게 아무 일 없었다고 했지. 다만 현기증이 나서 잠시 앉아 있었는데 깜빡 잠이 들었다고, 잠에서 깨고 보니 통행금지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고,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해명이었지만 영리한 고모는 그렇게 한 가지 주장만을 일관되게 반복하고 있었지. 그러고 보면 고모도 참 야무진 데가 있었어. 하긴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행동도 가능했던 것이겠지? 그랬을 거야. 부모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었다면 그렇게 할 수는 없었을 거야.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또한 고모를 믿었던 것이겠고 말이야.
그래, 나는 그렇게 생각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말로는 그렇게 엄혹해도 내심으로는 딸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완벽하게 살리고자 했다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새벽에 들어오는 고모를 발견하고 수군거리는 마당에 어물어물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할아버지께서 하셨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렇게 “네가 진정으로 결백하다면, 그러면 사람들의 오해가 풀릴 수 있게 자진을 하거라”, 하고, 짐짓 냉정하게 잘라 말씀하시면서 하얀 무명 횃대보를 고모에게 던지셨던 것이고, 그리고 고모는 부모의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간절한 마음을 읽었던 거야.
물론 고모도 나름 절박한 심사이기는 했겠지. 사태가 정말로 심각하다는 인식을 뒤늦게 가졌을 수도 있겠지. 때문에 무언의 약속이 자칫 어긋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보기 어려웠을 거야. 할아버지와 할머니 역시 딸년이 그렇게도 빨리 목을 맬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고, 그렇지?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그때 고모가 달리 선택할 길이 없었던 것만은 분명해. 자살소동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이미 퍼져버린 동네 사람들의 입소문을 되돌리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야.
고모.
생각하니 참 슬프고, 그리고 우습기도 하다. 죽을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목을 매고, 자기 손으로 이를테면 전략상 목을 맸는데도 빠져나갈 방법에 대한 준비가 너무 허술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순간에 한없이 캄캄했을 고모 심정을 생각하면 참혹해서라도 차마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그래도, 우습게도 순진한 시절이었다는 생각만은 묻어 버리고 싶지가 않은 걸 또 어쩌겠어.
그날 돈 가방을 들고 도망간 어린 신부의 심정도 아마 고모의 그 순간과 비슷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해. 생각해봐. 멀리 베트남에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와본 여자가 도망을 가면 어디로 가겠어. 한국에 이미 언니가 와서 살고 있는데도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니었던가봐. 문자 그대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가 택시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잡아탔던 것이겠지.
그랬다더군. 신부 언니의 얘기를 듣자니 그렇더라고. 집을 나간 신부가 열흘이나 지난 뒤에서야 정신을 차리고 언니에게 전화를 했었다는 거야.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가 어디로 모실까요, 하니까 잘 알아듣지는 못해도 행선지를 묻는다는 것은 알아서 언제인가 들은 적이 있는 부산이라고 아무렇게나 말해 버리고, 부산에 도착해서는 딱히 어디 갈 곳도 아는 곳도 없으니까 다시 생각해보다가 베트남에서도 유명한 판문점을 떠올리고는 그쪽으로 가자 하고, 그렇게 열흘 동안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겨우 언니를 생각해내고는 전화를 걸 수 있었다는 거야.
신부 언니가 들려주는 이런 얘기를 믿어야 할까?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무지 믿어줄 수 없는 말이기는 해. 그렇지만, 안 믿고 부정을 하면 또 뭘 어쩌겠어. 사람이 사람을 믿고 믿어주자는 마음만 낼 수 있다면 그런 믿음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란 말이거든.
처음에는 모두가 한 마음으로 어이가 없다고 고개를 내둘렀지만 차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거기서 또 한 번 의견이 갈리게 되더군. 여자들은 대부분 이해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지만 남자들은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경우가 다 있느냐는 둥, 하여간 여자들은 이상하다는 둥 입맛들을 쩝쩝 다시고 있었어. 하지만 남자들도 그 이상은 달리 무슨 할 말이 있어야 말이지. 사람 마음을 누가 다 알 수 있겠느냐, 후진국 사람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등등 대충 덮고 넘어가도 괜찮겠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기 시작했는데 말이야.
그런데 삼촌은 그 와중에서도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야. 신랑이 신부를 잘 달래서 데려가 주었으면 한다는 신부 언니의 얘기를 삼촌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거 있지.
“열흘 동안이나 다른 놈과 살아온 여자를 내가 왜.”
마치 문지방을 넘어오는 뱀을 보고 당황해서 아무것이나 집어 던지는 것 같더군. 삼촌은 그렇게 한 마디를 무섭게 쏘아붙이고는 홱 돌아서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야. 주인공이 그렇게 나오면 옆에 사람들 마음도 자연 흔들리게 되는 것 아니겠어? 그때부터 의견은 다시 분분하게 갈라지기 시작했지 뭐.
한편 생각하면 삼촌의 견해도 일리가 없어 보이지는 않더라고. 사람이 바깥에서 열흘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열 번은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어. 그것도 여자가, 게다가 말도 안 통하고 지리도 영 깡통인 여자에게 무슨 일이 없기는 왜 없었겠어. 다만 인간으로서의 예의상 거기까지는 묻지 않는 것이 상식일 테지만 주인공은 묻고자 하는 것이란 말이거든.
“실망하지 마시고, 진단서를 떼어 가지고 다시 오세요.”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와 함께 돌아서서 고개를 푹 수그린 채 마당을 빠져 나가는 신부의 언니를 갑천 당숙이 불러 세우더니 그러시더군. 처음에는 당숙의 그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도 몰랐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여쭤볼 경황도 없었고. 마을에 사람이 별로 없다고는 해도 어쨌든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그것도 무슨 구경거리라고 몰려와서 웅성거리고 있었으니까.
갑천 당숙과 몇 마디 더 얘기를 주고받은 신부의 언니가 다시 찾아온 것은 사흘 뒤였어. 혼자가 아니라 신부와 그리고 자신의 남편까지 데리고 왔는데 돌아갈 때의 풀기 없는 모습은 이미 아니더군. 뭐라고나 할까. 중심이 확고하게 잡힌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나를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의지 같은 것이 느껴지고 있었어.
“여기, 가져왔어요.”
그녀가 봉투 하나를 갑천 당숙에게 내밀고, 당숙이 그것을 나꿔채듯이 받아서 내용물을 꺼내 펼쳐보는데 어깨 너머로 슬쩍 보니까 무슨 ‘정밀히 관찰한 결과 정액은 검출되지 않았다’는 둥 그런 글자들이 찍혀 있더라고. 당숙은 이제 됐다는 등 위로의 말과 함께 그 진단서를 삼촌에게 주시더군. 일은 이미 터진 일이고, 그렇다면 씨라도 정확한 것으로 받자는 생각에 삼촌은 아마 그런 뭐라고나 할까, 자궁이 깨끗하다는 증명서를 요구했던 것일 테지만, 그런데 삼촌은 그것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거야.
“돈 줘서 안 되는 일이 뭐 있다고.”
한 마디로 딱 잘라서 결론을 내려 버리는 삼촌의 그 단호함이 참 어떻게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데.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도 있듯이 결혼이 최대 과제인 삼촌이고 보면 그쯤에서 대충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잖아. 그런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삼촌이 나는 안타까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지더라고. 그러나 알고 보니 삼촌의 주된 관심사는 그것조차도 아니었어. 놀랍게도 삼촌은 신부가 들고 나간 돈 가방의 안부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었던 거야.
“아니 지금 그걸 따져서 어쩌자는 것이지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신부는 남의 일처럼 가만히 서서 먼 데나 보고 있는데 그 언니가 한 마디 쏘아붙이더군.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또 판을 깨자는 것이냐는 등 거들고 나서고. 삼촌도 물론 지지는 않았지.
“그게 어떤 돈인데, 혼자서 겨우 열흘 동안에 다 써 버리다니. 판을 깨자는 건 내가 아니잖아.”
“어쨌든 지금 상황에서 돈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내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 돈은 보통 돈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이미 다 소비돼 버린 돈을 어쩌자는 겁니까?”
“어쩌자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느냐, 이거에요. 내 말은.”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첫날밤에 포르노나 틀어댄 사람이 누구인데, 원인제공을 했잖아요.”
“뭐라고요? 원인제공? 그러니까 지금 내가 잘못을 했다는 겁니까?”
일찍이 들을 수 없었던 공격적인 발언이 삼촌의 입에서 거침없이 튀어나오고 있었지. 정면으로 부딪히고 보니 전의가 급격하게 살아난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수세에 몰린 자의 어쩔 수 없는 발악 같은 공격이라고만 보기도 어려웠어.
“내가 나 좋자고 그것을 같이 보자고 한 줄 알아요? 분명히 말하는데 나는 나 혼자서 그것을 보려고 한 것이 아니에요. 같이 보자고 한 것이에요. 하도 치사하고 더러워서 말을 안 하려고 하니까는 아예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네 거. 솔직히 말해서 여자는 뭐 사람 아니에요? 섹스 안 해요? 기왕 하는 거면 좋은 기분으로 두 사람이 다 만족스럽게 하자는 게 내 취지였던 건데 그게 잘못 된 거라면 이 세상에 잘된 게 뭐가 있죠?”
“내 동생은요. 내 동생이 한국에 온 것은 결혼을 하자는 데 이유가 있었던 것이에요. 섹스를 하자는 것이 한국에 온 이유가 아니었던 것이에요.”
“아니 그럼 결혼만 하고 섹스는 안 한다는 거예요?”
“사람 말을 그렇게 이해하시면 안 되는 것이에요.”
“그럼 뭡니까. 당신들은 사람이고, 나는 사람이 아니다 이겁니까?”
“아이 참.”
한국어에 아직 능숙하지 못한 언니는 말문이 막히는지 도움을 청하는 눈길로 남편을 보다가 다시 동생을 보는 등 어쩔 줄을 몰라하는데 정작 그녀의 동생은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투로 여전히 먼 데나 보고 있는 거야. 그 모습이 어떻게 보면 첫날밤의 충격이 아직도 남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원래가 그렇게 약간 모자란 점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참 복잡하더군. 그러고 보니 그녀는 언니의 손에 이끌려 남편을 찾아온 뒤로 단 한 번도 누구와 눈을 마주친 적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해. 그러니까 그녀는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내내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사람이 아닌 다른 무엇을 보고 있었다는 것이지. 뭐랄까. 무엇인가를 살짝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녀의 그런 자세가 삼촌을 아마 더욱 화나게 했던 모양이야.
“어쨌든 이 결혼은 무효야, 무효라고.”
삼촌은 갑자기 소리를 질러대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지 뭐겠어. 그러자 신부와 그 일행도 타고 온 자동차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휭 떠나고 마는 거 있지. 그때의 그 느낌 참 묘하대. 뭔가 뒤통수를 맞은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도 싱겁게 끝날 일은 아닌데 왜 이렇게 되나 싶기도 하고, 꿈을 꾸다가 중간에서 깨 버린 것처럼 뒷맛이 영 안 좋은 거야.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쉽게 끝날 수가 없는 것이었어. 신부가 집에 오기도 전에 결혼신고가 먼저 되어 있었으니까. 그래서 삼촌은 아마 다음 날 일찍 이혼신고를 한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던 모양이야. 그런데 이혼신고라는 것이 남자가 일방적으로 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잖아. 신부측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신부가 그런 동의를 해줄 리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삼촌 자신이 동의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아예 변호사를 선임해서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거야.
그날부터 삼촌은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지. 어떤 날 보면 정말로 미친 사람 같더라고. 가족들은 하나같이 그냥 신부 데려다가 함께 살자고 삼촌을 달래고 어르고 협박도 해 보았지만 삼촌의 귀에는 그런 말들이 들리지도 않는 눈치였어. 그때부터 가족이건 친척이건 누구도 삼촌의 일에 아는 체를 하지 않게 되고 말았지. 사전에 무슨 약속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도 일제히 그렇게 무관심을 가장한 관심으로 말없이 지켜보기만 하게 된 거야. 동네가 창피하고, 세상이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는 것이 가족은 물론이고 일가붙이들의 공통된 의견이고 보면 사실 아는 체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형국이 돼 버렸던 것이지 뭐.
살얼음판을 건너는 듯이 아슬아슬한 숨 막히는 일 년이었다고나 할까. 삼촌 손에 의지하다시피 해온 농사는 몸도 불편한 아버지가 도맡아 처리하게 되면서 자연 엉망이 되어갔지. 삼촌은 어디를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드는지 거의 집에 붙어 있는 날이 없었으니까. 어쩌다 하루씩 집에 있다 해도 농사 따위는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라는 투였으니까. 그러면서도 돈이 필요할 때는 또 손을 내미는 거 있지. 그것도 요청하는 사람 특유의 겸손한 태도가 아니라 당당하게, 내 것이 당신 주머니에 있으니까 이제 그만 내놓으라는 투로 한 마디 간단하게 툭 던지는 거야. 그 말투가 어찌나 단호하고 위협적인지 아버지는 아마 거절은 고사하고 그 용도조차 묻지를 못하는 눈치였어.
사생결단, 그 무렵의 삼촌을 보고 있노라면 그 단어가 절로 떠오르더라고. 혼인무효 소송을 승리로 끌어내지 못하면 미련 없이 죽겠다는, 죽어야 마땅하다는 그런 의지 같은 것이 삼촌의 몸을 후광처럼 떠돌고 있었던 거야.
고모.
그렇게도 모질게 혼인무효 소송을 제기하고, 그렇게도 사생결단의 행동으로 승리를 이끌어냈으면 술이라도 한 잔 마시며 헛헛하게 한바탕 웃어 버리고 끝내야 하는 것 아니겠어? 아니 뭐 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참 많은 일이 있다는 둥 그렇게 어떻게 하여튼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 방법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그런데 삼촌은 엉뚱하게도 자신의 눈물과 울음소리로 승리를 확인하고 있는 거야. 울음소리조차도 남자가 보통 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었어. 그 왜 춘향전에 보면 귀곡성 대목 있지? 밤중에 마치 늙은 올빼미 같은 소리로 울어대는 장면 말이야. 그날 밤 삼촌의 울음소리가 꼭 그것을 닮았는데 그것 참 미치겠대. 아 이렇게 해서, 집안의 소란스런 문제가 마침내 매듭이 지어 졌구나 했는데, 그런데 밤새 울어대는 삼촌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제의 끝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아득해지는 거 있지.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 그 여자는 어떻게 되나 하는 안쓰러운 걱정도 들고 내 심사가 참 어지럽네. 하긴 어쩌면, 삼촌도 어쩌면 불법 체류자로 찍혀 강제 추방을 당해야 될지도 모르는 그녀를 생각하며 밤새 울어준 것인지도 모르기는 해. 그렇겠지? 그렇게 봐야 맞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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