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말할까.
아니다 참.
미안이라는, 이런 말을 끼워 넣을 틈은 없겠다.
약속도 없었고, 맹세도 다짐도 없었던 길이었던 것을.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너를 보겠다는 생각조차도 사실은 없었다.
고창을 벗어나는 순간 물든 나뭇잎처럼 너의 이름이, 얼굴이 떠올라 왔고,
미친 듯이 보고 싶었다는, 그래서 그쪽으로 먼저 길을 잡자는 생각이었던 것인데
그런데 어쩐 일로 내 얼굴이 마구 부풀어 올라.
벌 침을 맞은 것처럼
무심히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친 것처럼 정신없이 얼굴이 부어올라.
모든 사물이 찢겨져서 보이고,
모든 생각들이 갈팔질팡거리고,
아, 그냥 안성으로 내뺐다가 용인 이천 여주를 지나 원주 횡성 대관령 진부 어디어디
심지어 파주까지, 그렇게 일주야를 거리에서 탕진하고 돌아와서야 너의 이름을 다시
새기게 되는구나.
뭐냐 이거. 헛 참.
계획이란 본디 어긋나게 마련인가보다. 아니, 계획이란 어쩌면 틀어지기를 바라면서
세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제가 시대의 제일 화두가 되어 있는 오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얘기 얼토당토 않기도 하다.
허나 어쩌겠느냐.
나라는 존재의 본래 구성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을 어쩌겠느냐.
애석해 하지 않으련다.
섭섭해 하지 않으련다.
탄식도 하지 않으련다.
어허, 탄식이라니.
기러기떼가 생각난다. 오랜 만에 보는 풍경이었댔다.
그것도 아파트 마을에서
<드디어 10월 8일 노을빛도서관이 문을 엽니다>
작은 소나무들 사이로 조용히 걸려 있는 현수막을 내가 그때 보고 있었던가.
그랬을 것이다. 도서관 개관이 얼마나 애닯은 당면 사업이었으면 드디어라는 수식어까지
붙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스무 마리쯤의 기러기가 살짝 이즈러진
기역자를 그리며 아파트 위를 날고 있었댔지.
아~~~~~~~
하고 감격하는 내 입에서 입김이 뽀오얗게 피어나더군.
어라, 지금 날씨가 추운 것인가.
의아해서 주변을 살폈겠지?
그때 조막만한 아이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빵떡 같은 노란 가방을 등에 붙이고
뒤뚱뒤뚱 하다가 뒤로 발랑 주저앉고 있더군.
아이의 엄마가 아마도 날씨가 춥다고,
유치원 가는 아이에게 두꺼운 옷을 켜켜로 입혀놔서 아이가 도무지 걸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짐작이 가는데, 어쨌든, 그 아이의 주저앉는 모양새가 참 재미있더군. 인형 같았어.
그래서 가만히 웃고나 있는데,
아이가 나를 보며 이러는 거야.
형아.
어?
형아.
내가? 내가 너 형이라고?
형아.
아이와 나는 이렇게도 이상한 무슨 선문답 같은 대화를 잠깐 섞고 있는데 그 엄마가
드디어 그 형아를 데리고 나타나더니 아이를 데려가 버리지 뭐냐. 순간적으로 무지
섭섭하고 원망스럽더군.
그래서일까.
여기가 어디냐.
느닷없이 그런 의문이 나를 마구 휘젓는 거야.
파주시 교하읍 문막리 주공2단지 노을빛마을. 출판단지에서 차로 오분 도보로 삼십분 거리.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었을까?
모르겠다.
간밤에 술을 무쟈게 마신 것 같은데.
아직 어둠이 풀리기도 전에 나 홀로 깨어났던가 어쨌던가.
후배녀석들은 여기저기에 널부러진 가오리처럼 납작한 모양새로 자고 있고,
나는 커피가 생각나 죽겠는데 무슨 놈의 집구석이 구석구석을 다 뒤져봐도
커피 비슷한 것도 없어.
자판기를 찾아서 슬리퍼짝 질질 끌며 나왔는데 자판기도 안 보여.
걷고 또 걷고 찾고 또 찾고.
이제는 어디까지 왔는지도 모르겠어라
내가 잠잔 그 집은 또 어디지?.
자판기 커피를 몇 개나 마셨던가.
마시면 안 춥고
안 마시면 춥다.
아무도 없는 공원 벤치에 앉아 기러기나 보며 넘어지는 아이나 부러워하며
앉아 있자니 간밤의 어지러운 대화들이 춤을 춘다.
개구리며 올챙이 나무 같은 것들을 새밀화로 그려서 책으로 만들어내는 소위
생태도감 한 권을 완성하는 데 들어간 세월이 삼 년이요 돈이 오억 너머인데
팔려나간 책은 만 권도 안 된다고.
출판업이란 자부심 비슷한 것을 갖고 해야 하는데 자꾸 회의가 든다고.
한숨이 한말이던 녀석에게 뭐라고 뭐라고 아는 체 깨나 했던가 어쨌던가.
그래,
그래,
너가 진짜다.
너 같은 진짜가 하나씩 끼여 있어서 나는 참말로 행복하다.
으흐,
칼칼칼.
도무지 책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물건들이 책이라고 날아다니는
이 재미난 시대에 진짜 타령은 적합하다. 아니다. 넌센스다. 빌어나머글.
어쨌든 기러기를 보았다.
아침 일찍 대관령을 넘을 때는 능선을 따라 활짝 피어난 서리꽃을 보기도 했다.
서리꽃,
그것은 멀리서 보자 하니 꼭 늙은 중의 웃자란 머리 같더구나.
그때 또 한 번 너의 이름을 생각했다.
아니 너의 이름이 지나가던 텔레비전 화면을 떠올렸다.
이익주
사망자 명단 이익주
무심히
그야말로 생각없이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있을 때 기러기처럼 지나가던 자막.
이익주
사망자.
무섭게 덮치는 해일에 쓸려 바닷물에 쓸려 실종되었다가 주검으로 발견되다.
서울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째서 충청도의 바닷가 마을에?
아버지가 계셨다.
아버지가 바닷물과 사투중이었다.
그래서 직장에 보고도 없이 달려갔다.
그리고 죽었다.
나는 너의 묘비명을 쓰지 못한다.
가짜를 혐오했던 너의 묘비명은 아마도 별빛에게나 맡겨야 하리.
오십칠 명 가운데 한 사람만이 소위 등단이라는 것을 했다고,
그러니 남은 오십육 명이 후원회를 경성해야 한다고
하루 세 봉지 라면걱정이라도 최소한 해결해 줘야 한다고.
그렇게 동분서주 뛰어다녔던 네녀석의 얼굴은,
그 얼굴을 잊지 못해 하는 나는,
나는, 누구냐?
지난 한 주일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곳을 기웃거리고,
하면서도 끝내 나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면 죽은 너가 왜 이래 정말, 하려나?
오늘 날씨가 춥구나.
어제까지도 파랗던 칸나며 뭣이며 몇몇 식물들이 오늘 아침은 완전히 파저림이 되었더라.
살짝 삶은 시금치 같더라.
이제는 나도,
나의 존재도,
급격하게 그리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쓸데없이 들고 그런다.
자리를 찾아야겠지.
조용히 죽어갈 자리를.
그래, 요란하지 않은, 참,
조용한
그런 죽음이 가능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러면
그때.
비로소 너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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