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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2/死

비탄 통탄

 

도시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깨어난다 해도 할 수 없는 일이 딱 하나 있다.

아직 먼동이 터 오르기 전,

공기가 아직 물빛을 띠기도 전

이제 막 세상이 시작되려는 듯이 뭔가 심상치 않게 여겨지는

그저 한없이 고요스런

꼭 그런 시간에 뜨거운 찻잔을 손에 들고

하늘에 별이거나 불두칠성이거나 그런 것들을 보고 있을 때

살며시 다가오는 바람의 입술

나의 알몸이 바람의 애무에 죽을 듯이 경련을 할 때 얻어지는 경이

바로 이 엄숙한 경이로움을 도시에서는 죽었다가 깨어난다 해도 누릴 수가 없다.


그랬는데,

그렇게만 생각해 왔는데,

내가 참 바보였다.

이렇게도 생각이 짧고 이렇게도 한치 앞을 못 보는 위인이었다니.

오, 슬프도다.

나는 이제 마당에서 알몸으로 뜨거운 찻잔을 손에 들고 하늘의 별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별은 별이되 옛별이 아니고

별은 별이되 선연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내 집 뒤로 십자가 하나가 세워졌는데 빨갛다.

아주 빨갛다.

그리고 그 가시거리는 적어도 십킬로미터는 되어보인다.

이 새빨간 십자가의 위력에 별들도 내게 오지를 못하고

오다가도 숨을 죽여버리고,

그리하여 나는 새빨간 십자가가 안 보이는 곳을 찾아 이구석 저구석을 헤매게 된다.

오오

나의 마당은 이제 도시의 그것이나 거의 같은 것이 되고 말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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