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처를, 너무 쉽게 상처를 입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자주 괴롭히게 된단다. 그것도 가까운 사람을, 이를테면 아내나 혹은 남편을 괴롭히게 된단다. 당신은 나의 상처를, 그 깊이를, 그 원인을 알아야 한다고,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식으로 가까운 사람을 윽박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르는 것 같다고, 그것은 무성의라고, 당신이 나를 이렇게 무성의하게 대할 수 있느냐는 식이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힐 때는, 괴롭히는 그 순간에는 그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유리파편에 찔린 상처에서 흐르는 피처럼, 극명하게 자신의 행동을 반추하게 된다. 이게 뭐냐, 나라는 인간은 겨우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이냐 하고, 끝없이 끝없이 괴로워한다. 그 괴로움이, 다시금, 상대를 다시금 괴롭히게 된다. 악순환.
이 악순환의 징후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때 나는 아마 이성(異性)과의 장기적 동거에 대한 꿈을 접었던 것 같다. 부부간에 사는 재미란 뭐니뭐니해도 역시 티격태격 싸우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러나 이 싸움에 감정이 섞이기 시작하면 그것이야말로 상처가 된다는 인식, 그렇게 되면 끝장이라는 생각, 나의 홀로삶은 아마도 그러한 두려움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2
집수리를 한답시고 약간의 부채가 발생했다. 이것을 갚기 위해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도는 <노가다>를 시작했는데, 꼴에 그나마 취미가 글쓰기 내지는 글 읽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그렇다고 노트북 같은 걸 들고 옥상에서 서툰 폼을 잡을 수도 없는 일이고, 밤이면 밤마다 피시방을 드나들어야만 한다.
이른바 단체생활에서 혼자만 매번 몰래 빠져나오니 옆 사람들 눈치도 가끔은 보인다. 같은 방에 살면서 고스톱 한 번 같이 안 쳐주고, 술 한잔 같이 한 번 제대로 먹어준 바가 없고 보니. 내 스스로도 가끔은 미안스럽다. 그렇지만 어쩔 것이냐.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가는 길이 다르지 않더냐 뭐 어쩌고 스스로에게 해명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였을까. 죄받음을 했던 것일까. 어느 날 새벽에 피시방을 나오다가 현기증으로 층계에서 달팍 넘어졌는데 어이없게도 다음날부터 팔을 쓰기가 어려워졌다. 병원과 의사를 불신하는 못된 습성을 가진 까닭에 정확한 진단은 못 내리겠지만, 생각건데 날개의 탈골이 아닌가 싶다. 대충 가벼운 운동은 가능하지만 힘을 넣어야 하는 현장 작업은 영 괴롭기 짝이없다. 기왕지사 칠월부터 구월 초까지 여름에는 작업을 안 하겠다는 결심도 했었고, 해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마음에 그냥 집으로 내려왔다.
오기는 왔는데,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발에 걸리는 것마다, 눈에 띄는 것마다 손을 대야 할 일들이다. 명색이 이사랍시고 해놓고, 석 달이 지나도록 짐은 아직 하나도 풀지를 않고 있었다. 돌이켜보니 지난 해 가을부터 짐을 싸고 있었더랬다. 그래서인지, 어느새, 책을 넣은 박스 내부는 태반이 곰팡이가 생겨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게 뭔가. 우울하다.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것이, 그 무엇인가 되려다가 아무것도 못 되어 떠도는 그 무슨 넋깨비인 것도 같은 것이 목을 찌른다. 술, 술이 어디 있더라. 술을 마시고, 앉아서 생각없는 생각에 치여 병든 닭처럼 고개를 자울거린다. 전화가 울린다. 자동응답기가 작동하고, 그 속에서, 왜 전화 안 받느냐는 소리가 뛰쳐나온다. 다시 또 울리고, 또 울리지만, 안 받는다. 안 받아 버린다. 그리고 잠이 든다. 하루가 그렇게 지난다.
방이다. 책을 한 줄 보자 해도 어느 책이 어느 상자에 있는지를 모르겠고, 그것이 우울해서 음악을 듣자 하니 어느 것이 또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겠다. 이래저래 우울이 겹치는데, 비까지 온다. 마당에 풀은 가득하고, 마음은 바빠, 그냥 왔다갔다 그러는데 전화는 왜 또 그렇게 자주 울리는지, 아예 하나도 안 받는 식의 무슨 오기를 부렸던 것 같다.
그러다가 술잔을 들고 홀짝거리고, 취해서 잠이 들고, 저녁 일곱시 무렵에 깨어서 마당을 좀 걷다가 다시 홀짝거리기를 시작하는데 아홉시 뉴스가 나온다. 그 시간에 무슨 마음이 발동했는지, 울리는 전화를 무심결에 받았던 모양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는 후배다. 불문곡직하고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형네 집 쪽으로 가고 있다"고, 그런 얘기를 한다.
혼자 오는 줄 알았는데, 막상 마당에 들이닥친 트럭 속의 사람 머리를 보니 세 명이다. 모르는 이들과의 느닷없는 동석은 때로 나를 긴장시키고, 그리하여 내 안의 또다른 나를 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때는 안절부절 그야말로 불편하기 짝이없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후배는, 또 한 번 불문곡직하고, 타라고 한다. 어디 가냐고 하니, 소리 한 번 지르러 가자고 한다. 뭔가 불만이 가슴을 뛰쳐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겠거니 싶기는 하면서도, 내 기분은 썩 편하지가 않다. 내가 지 똘마닌가? 이유도 뭣도 없이 타라니, 아니 뭐, 딱히 그것이 아니라도, 나는 어디가 됐든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해서 안 간다고 했더니, 거칠게, 아주 거칠게 차를 돌리고, 그리고는 다시 나와서 그런다.
정말 안 가요?
안 가.
그런데 나의 그런 반응이 그의 심기를 무지하게 건드렸던 것일까? 느닷없이 부우앙, 하고, 심야의 폭주 오토바이 소리 비슷한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트럭 뒤 배기통에서 불꽃이 일어나고, 마당의 흙이 마루에 앉아 있는 내 얼굴에까지 튀고, 시커먼 배기가스가 확 달려온다.
이게 뭐냐? 자동차를 다룰 줄 모르는 내가 그 원리를 이해할 턱은 없지만, 어쨌든, 그 순간의 그것은. 그것은 지금 기억조차 나지 않으리만치 아득했던 듯하다.
시쳇말로 엿이나 먹어라, 하는 의미였을까?
아니면, 정신 바싹 차리고 그만 일어나라는
뜻이었던가?
매사가 생각하기 나름이라지만, 이번 일은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긍적적인 결론은 나오지 않고, 우울만 한가득 몰려오니, 어쩌랴, 불현 듯 없는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 이 세상에는 없는, 있었던 적도 없는 그 어떤 이가 보고 싶어진다. 그를 만나 얼싸안고, 서로의 길이라도 물어보려는 것일까, 모르겠다.
그리고 사흘, 나흘, 닷새가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까지도 내 영혼은 유령의 왕국을 배회한다. 너 어디 있냐, 거기 있냐, 없냐, 없다면 왜 없는 것이냐, 하고,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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