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의 여행은, 여행이라는 단어 자체에 상당한
불만을 느껴야만 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우리는 그때 자살하기에 좋은 곳을 물색할 목적으
로 길을 나섰던 것이었지 무슨 마음에 풍요를 심는다
던가 새로운 풍경을 사냥한다는 차원의 것은 이미 아
니었으니까요.
그 무렵에 우리는 사람을 토막살해하는, 그런 용기
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존경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딱
히 어떤 특정한 살인자가 아니라,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 이따금 등장하는, 끔찍한 뉴스의 테마를 제공
해주는 그 주인공을 은근히 질투하는 한편으로 선망하
며 죽음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동변상련이었다고나 할까요. 혼자서는 자살도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
기에, 그처럼 끔찍한 사건들을 신선하다고 여기고 거
기에서 뭔가를 찾아내려 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고
백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고백이라고 해야겠네요. 약혼을 했다가 파혼
을 한 뒤로 나는 나 자신의 용렬함에 대해 참을 수 없
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후배는 또
한, 도자기 작업실과 전시실을 새로 짓고 난 이후로
미술학원을 운영해야만 하는 아내의 힘겨운 모습을 보
면서 자신의 혼미(昏迷)한 세계인식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 서로가 이 세상에 더 이상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혼자서
는 자살도 못할 것인즉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거나 최
소한 자살에 조력을 줄 수는 있다는 의견의 일치를
본 끝에 그 여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
면 실로 유치한 단세포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지만, 그
때는 자못 심각하고 그것 외에는 달리 아무런 방법도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나는 비교적 늦게 결혼을 생
각했기 때문에 부양해야 할 처자식은커녕 책임의식도
없었지만, 이를테면 딱히 살아야 할 목적이라든가 희
망이라든가 심지어는 자살을 해야만 할 정도의 어떤
절박함이 없었던 탓으로 자살마저도 무슨 복권을 사듯
이 심상하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후배는 그게 아니었
습니다.
후배는 삼대 독자 외아들이라는 전통의 관념에 따라
일찍 결혼을 해서 세 아이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로 오히려 아내와 아내의 친정으로부터 부
양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이지요.
문제의 근원은 관광상품 개발에 단기적인 역량을 집
중한 시당국의 성급한 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하기 짝이없는 그런
정책상의 헛점을 미리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휘둘
려 들어간 후배 자신의 순진한 세계인식에도 책임은
크게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하기를 자기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빚도 유야무야될 것이고, 그러면 작품에 전념하고 싶
어하는 아내의 소원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후배의 그런 순정하고 무구한 생각이 객
관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무조건 그의 뜻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자신의 용렬한 세계인식에 대해 무한한 환멸을 느끼
고 있었던 그 무렵의 나로서는 사실 세상에 그다지 흥
미도 없었고, 희망을 걸만한 무엇도 발견할 수 없다
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배의 자살의지에 기
꺼이 동감을 표명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여행은 물론
후배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형, 형도 뭐 별볼일 없잖아."
"별볼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살고 있는 거 아니냐."
"형은 형의 내부에 들어앉아 있는 제국주의를, 그 얼
토당토않은 권위주의를 형의 노력으로 몰아낼 수 있다
고 생각해? 이제 틀린 거야, 틀렸어. 마찬가지로, 나
도 또한 내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놈의 식민근성
을, 이 얼토당토않은 노예근성을 몰아내기는 틀린 거
고. 노력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어림도 없는 소
리,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기만술책으로 더 이상
은 자신을 농락을 하지는 말자구. 이제, 응? 말이야
바로 말해서 형도 요새 하는 일이 뭐야. 맨날 술이나
처먹는 것, 그것 빼면 뭐가 있느냐 이거야."
"말인즉 옳은 말이야.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인정
한다."
"그러니까 가자, 같이 가서 같이 죽이고, 죽자, 응?
형이나 나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기만하며 겨우 살아 있게 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아? 그러니까
남은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우리들 자신도 또한 편안
하게, 가자, 가서 죽자, 응?"
"편안하게 죽을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도 없
겠지. 하지만 사람이, 사방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
람이 과연 편안하게 죽을 수가 있는 것일까. 제 목숨
이라 해서 그렇게 제 임의대로 죽는다면, 그것이 편안
한 죽음일 수가 있는 것일까? 넌 그렇게 생각하냐?"
"뭐야, 이거. 그러니까 형은 결국 살고 싶다는 거
야. 아직도? 살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다, 이런 거야?"
"말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가지는 말아라. 나는
딱히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죽어야 한다
고도 아직은 생각을 안 해봤다. 그것뿐이야."
"좋아, 그렇다면 뭐, 같이 죽자고는 안 할게. 나를
조금만 좀 도와줘. 그런 뒤에 형은 다시 돌아오든가
뭐, 그래도 되잖아. 맞아, 그러면 되겠네. 형이 돌아
와서 내 아내를, 아이들을 좀 돌봐주기도 하고, 그러
면 되겠네."
"내가 왜 네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냐, 이놈아. 그런
데 넌, 꼭 죽어야만 되겠냐?"
"난 내 아내가 한심해서 죽겠어. 학교 때는 그래도
서양화 부분에서 알아줬던 재원이었다구. 그런데 이
게 뭐냔 말야. 여자 팔자 두레박이라는 거 하나도 틀
리지 않아. 난 이제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겠어. 그
것 때문에라도 나는 죽어야만 해. 이유는 그만하면 충
분한 거 아냐?"
"네가 사라지면, 제수씨가 정말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물론 지금보다 몇천 배 더 힘들어하겠지.
하지만 세월은 약이라고 했잖아. 난 그 말을 믿어. 왜
냐하면 그 말은 선대들의 믿을만한 체험에서 나온 거
니까."
후배는 고향 후배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내력을 소상
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단순한 말 한 마디에서 다
섯 마디 여섯 마디, 아니 스무 마디 서른 마디의 언표
되지 않은 의미를 마치 신화를 읽듯이 추론해낼 수도
있었고, 그의 부친과 모친을 포함한 선대의 역사와 관
련된 의미까지도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처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불만을 느껴야만 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왜냐하
면 우리는 그때 자살하기에 좋은 곳을 물색할 목적으
로 길을 나섰던 것이었지 무슨 마음에 풍요를 심는다
던가 새로운 풍경을 사냥한다는 차원의 것은 이미 아
니었으니까요.
그 무렵에 우리는 사람을 토막살해하는, 그런 용기
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존경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딱
히 어떤 특정한 살인자가 아니라,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 이따금 등장하는, 끔찍한 뉴스의 테마를 제공
해주는 그 주인공을 은근히 질투하는 한편으로 선망하
며 죽음에 관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던 것이지요.
동변상련이었다고나 할까요. 혼자서는 자살도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
기에, 그처럼 끔찍한 사건들을 신선하다고 여기고 거
기에서 뭔가를 찾아내려 하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고
백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요. 고백이라고 해야겠네요. 약혼을 했다가 파혼
을 한 뒤로 나는 나 자신의 용렬함에 대해 참을 수 없
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후배는 또
한, 도자기 작업실과 전시실을 새로 짓고 난 이후로
미술학원을 운영해야만 하는 아내의 힘겨운 모습을 보
면서 자신의 혼미(昏迷)한 세계인식에 대해 견딜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 서로가 이 세상에 더 이상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에 공감을 하고, 혼자서
는 자살도 못할 것인즉 서로가 서로를 살해하거나 최
소한 자살에 조력을 줄 수는 있다는 의견의 일치를
본 끝에 그 여행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지금 생각하
면 실로 유치한 단세포적인 발상이었던 것 같지만, 그
때는 자못 심각하고 그것 외에는 달리 아무런 방법도
없다는 생각이었지요.
왜 아니 그랬겠습니까. 나는 비교적 늦게 결혼을 생
각했기 때문에 부양해야 할 처자식은커녕 책임의식도
없었지만, 이를테면 딱히 살아야 할 목적이라든가 희
망이라든가 심지어는 자살을 해야만 할 정도의 어떤
절박함이 없었던 탓으로 자살마저도 무슨 복권을 사듯
이 심상하게 결정할 수 있었지만 후배는 그게 아니었
습니다.
후배는 삼대 독자 외아들이라는 전통의 관념에 따라
일찍 결혼을 해서 세 아이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런
데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는커녕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가산을 탕진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엄청난 빚더미에
올라앉은 채로 오히려 아내와 아내의 친정으로부터 부
양을 받아야만 하는 입장에 처해 있었던 것이지요.
문제의 근원은 관광상품 개발에 단기적인 역량을 집
중한 시당국의 성급한 정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기
도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하기 짝이없는 그런
정책상의 헛점을 미리 꿰뚫어보지 못하고 그대로 휘둘
려 들어간 후배 자신의 순진한 세계인식에도 책임은
크게 있었습니다.
그는 그때 생각하기를 자기만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빚도 유야무야될 것이고, 그러면 작품에 전념하고 싶
어하는 아내의 소원도 이뤄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후배의 그런 순정하고 무구한 생각이 객
관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무조건 그의 뜻을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었지요.
자신의 용렬한 세계인식에 대해 무한한 환멸을 느끼
고 있었던 그 무렵의 나로서는 사실 세상에 그다지 흥
미도 없었고, 희망을 걸만한 무엇도 발견할 수 없다
는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배의 자살의지에 기
꺼이 동감을 표명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여행은 물론
후배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형, 형도 뭐 별볼일 없잖아."
"별볼일이 없으니까, 그래서 살고 있는 거 아니냐."
"형은 형의 내부에 들어앉아 있는 제국주의를, 그 얼
토당토않은 권위주의를 형의 노력으로 몰아낼 수 있다
고 생각해? 이제 틀린 거야, 틀렸어. 마찬가지로, 나
도 또한 내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놈의 식민근성
을, 이 얼토당토않은 노예근성을 몰아내기는 틀린 거
고. 노력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어림도 없는 소
리,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기만술책으로 더 이상
은 자신을 농락을 하지는 말자구. 이제, 응? 말이야
바로 말해서 형도 요새 하는 일이 뭐야. 맨날 술이나
처먹는 것, 그것 빼면 뭐가 있느냐 이거야."
"말인즉 옳은 말이야.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인정
한다."
"그러니까 가자, 같이 가서 같이 죽이고, 죽자, 응?
형이나 나나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속이고,
자신을 기만하며 겨우 살아 있게 될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잖아, 생각하면 끔찍하지 않아? 그러니까
남은 사람이라도 편안하게, 우리들 자신도 또한 편안
하게, 가자, 가서 죽자, 응?"
"편안하게 죽을 수만 있다면, 그 이상 좋은 일도 없
겠지. 하지만 사람이, 사방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사
람이 과연 편안하게 죽을 수가 있는 것일까. 제 목숨
이라 해서 그렇게 제 임의대로 죽는다면, 그것이 편안
한 죽음일 수가 있는 것일까? 넌 그렇게 생각하냐?"
"뭐야, 이거. 그러니까 형은 결국 살고 싶다는 거
야. 아직도? 살고 싶어서 죽을 지경이다, 이런 거야?"
"말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몰아가지는 말아라. 나는
딱히 살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죽어야 한다
고도 아직은 생각을 안 해봤다. 그것뿐이야."
"좋아, 그렇다면 뭐, 같이 죽자고는 안 할게. 나를
조금만 좀 도와줘. 그런 뒤에 형은 다시 돌아오든가
뭐, 그래도 되잖아. 맞아, 그러면 되겠네. 형이 돌아
와서 내 아내를, 아이들을 좀 돌봐주기도 하고, 그러
면 되겠네."
"내가 왜 네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냐, 이놈아. 그런
데 넌, 꼭 죽어야만 되겠냐?"
"난 내 아내가 한심해서 죽겠어. 학교 때는 그래도
서양화 부분에서 알아줬던 재원이었다구. 그런데 이
게 뭐냔 말야. 여자 팔자 두레박이라는 거 하나도 틀
리지 않아. 난 이제야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겠어. 그
것 때문에라도 나는 죽어야만 해. 이유는 그만하면 충
분한 거 아냐?"
"네가 사라지면, 제수씨가 정말 작품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물론 지금보다 몇천 배 더 힘들어하겠지.
하지만 세월은 약이라고 했잖아. 난 그 말을 믿어. 왜
냐하면 그 말은 선대들의 믿을만한 체험에서 나온 거
니까."
후배는 고향 후배이기 때문에 나는 그의 내력을 소상
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단순한 말 한 마디에서 다
섯 마디 여섯 마디, 아니 스무 마디 서른 마디의 언표
되지 않은 의미를 마치 신화를 읽듯이 추론해낼 수도
있었고, 그의 부친과 모친을 포함한 선대의 역사와 관
련된 의미까지도 그 분야를 전공한 사람처럼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주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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