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군 고수면 은사리에 은사라고 하는 물은 맑고 나무들은 제각각 멋대로 자라나서 보기에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이 은사를 가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나섰으나 중도에서 길을 바꿨다. 차를 타기 직전에서야 은사는 옛 은사가 아니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은사는 은사(隱士)다. 꼿꼿한 선비들이 은거했던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이 은사를 나는 소년기에 은사(恩寺)로 생각했었다. 이 오류는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다가 최근에서야 수정되었다.
왜 그러한 오류가 발생했을까. 그 마을의 앞산 중턱쯤에 작은 절이 하나 있었다. 문수사가 선운사의 말사로 편입되기 전의 독립 사찰로 존재할 때 세 개의 말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은사였다.
나는 이 은사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사오 년 정도를 보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방학 때면 그곳에서 매년 한두 달씩을 보냈고, 초파일이라든가 가사불사 같은 큰 일이 있을 때면 학교를 작파하고 달려가서 할 줄도 모르는 염불을 한다느니 심부름을 한다느니 설치고 다니면서 어른들의 걱정을 한몸에 듣고는 했다.
외할머니께서 그곳 은사에 계셨더랬다. 삼십대에 홍수로 남편을 잃고 불공을 취미처럼 혹은 직업처럼 다니시다가 아예 사찰로 들어가신 거였다. 주변에서는 외할머니가 그곳 주지를 좋아한 까닭으로 눈이 멀어서 무정하게도 자식들을 버리고 출가(出家)를 감행한 거라고들 하지만 상세한 정황은 외할머니만 아실 일이다.
어쨌든 그곳은 산이 온통 밤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산앵두며 산벗나무들로 가득 차서 봄이면 온갖 꽃내음이 정신 못차리게 최면술을 부리고 가을이면 단풍이 제법 요사스럽게 가슴을 후벼파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계곡에는 가재들이 지천이고, 다람쥐며 토끼들은 또 우물에까지 와서 같이 놀자고 재롱(?)를 부리는 곳이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발길이 별로 없는 까닭으로 더욱 아름다운 이 작은 천국 같은 곳에서 나의 작은 뼈가 굵어졌고, 그리고 넓고넓은 세상의 저 아지랑이 같은 상상력도 아마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던 상상의 보물창고, 이렇게 표현하면 다소 유치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시점에서 나는 차라리 유치해져 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한없이, 한없이 저 아래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아무런 계산도 바램도 없이 진실로 내가 태어나던 때의 그 마음 그 자세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서푼어치도 안 되는 자존 따위로 마음을 상하고 머리털을 쥐어뜯는 일 따위는 어쩌면 없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렇다. 나의 유치한 시절, 그 시절에 나는 나를 놀리고 구박하고 희롱하는 그 어떤 것도 거부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다 받아들여서 내 성장의 에너지로 삼았던 것 같다. 이를테면 스님들이 자주 하는 독송 가운데 산스크리트어로 '삼바라 삼바라 오옴 삼바라'하는 구절이 있는데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어째서였는지 툭하면 목탁을 들고 두드려가며 흉내를 내곤 했었다고 한다. 네 살인가 다섯 살 무렵에, 그런데 어느 하루는 그 대목이 생각나지 않아서 쩔쩔매다가 부처님에게 올린 감을 보고는 '감바라 감바로 오옴 감바라'하고 의기양양하게 염불을 했었다는 것이다.
그날 이후 어른들은 자기들이 웃고 싶을 때면 으레 그 말을 하면서 깔깔대곤 했다. 내가 만일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놀림을 받는다면 나는 아마 칼이라도 물고 싶어질 게다. 뿐만이 아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열심히 해가며 열심히 웃어제끼는 경우가 아주 많은데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억울하기도 해서 뭐냐고 물을라치면 어른들이 내놓는 대답이란 고작 "너는 몰라도 돼"하는 정도이기 마련이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그런 대접을 받는다면 나는 아마 의기소침하고 자존이 상해서 다시는 그 사람들의 얼굴도 안 보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치한 시절의 나는 혼자 상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곤 했었다.
어떻게 하느냐. 우선 나만의 공간을 찾아야 한다. 은사는 작은 암자인 까닭으로 법당과 요사채의 구별이 없었다.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방이 하나 따로 있을 뿐이고 요사도 한 칸 있기는 하지만 방이 워낙 작아서 손님들을 다 수용하기는 어려웠다. 엄마들이 대부분인 신도들이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 딱 좋은 곳은 큰방이라고도 불리는 법당이었다.
이 법당에는 좌우 양쪽과 북쪽편으로 문수보살이며 약사여래 같은 탱화들이 걸려 있고 북쪽의 중앙에 석가여래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높이가 약 일미터 오십센티미쯤 되었다. 그러니까 일미터 오십센티미터쯤의 공간이 석가여래좌상 밑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떡이라든가 과일 같은 것을 보과하는 창고로도 쓰이는 이 공간은 투터운 천으로 가려져 있기 때문에 나같은 조무래기들이 숨어 들어가서 장난을 치기에는 그만이었다.
어른들처럼 나고 웃고 싶다고, 나도 같이 얘기하며 재미나게 놀고 싶다고 끼여들었다가 "너는 아직 몰라도 된다"는 구박을 받고 밀려난 내가 숨어 들어가는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할머니가 아시면 일종의 불경죄가 되는 까닭으로 아무도 모르게 그곳으로 기어 들어가서 배를 깔고 엎드려 떡이든 과일이든 손에 닿는 대로 먹어치우며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러면 뭐가 잡히나? 잡힌다. 틀림없이 잡힌다. 어른들의 얼굴을 보면서 들을 때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난수표 같은 이야기의 맥락이, 혼자서 배를 깔고 엎드려 있을 때는 아슬아슬 가늘가늘하게 알 것 같아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이런 경우를 한 번 생각해보자.
몇일이야? 원래 날짜는 몇일인데? 집안에 누구 꿈꾼 사람은 없었고? 아이고 그럼 뭐 볼 것도 없이 임신이네.
처음에 들을 때는 뭐가 뭔지 어리둥절해서 눈이나 깜빡거려질 뿐이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은 있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아하, 그 얘기로구나, 하면서 모든 정황을 다 알아버려지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 시절의 크고작은 모든 일들이 지금은 내 기억에서 하나의 천국처럼 남아 있다. 그러니까 내 오류의 기원은 아마도 거기에 있었을 것이다. 그곳이 절이니까 당연히 절사자(寺)를 쓸 것이고, 그리고 내 개인적으로 은혜로운 곳이니까 마땅히 은혜은(恩)자를 써서 그렇게 은사이겠거니 여기고 있었을 것이다.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 없는 이 오류가 해소된 것은 그로부터 이십 년도 훨씬 지난 몇 년 전 추억을 되살리느라 그저 아무런 생각도 없이 찾아갔다가 이장님을 만나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그곳은 구한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당할 때 숨어들어 와서 초막을 짓고 생활했는데 천주교가 국가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자 다시 돌아가고 그 뒤로 불제자들이 들어와서 불상을 안치하고 사찰로 이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나는 선입견이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일단 아름답게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추한 것이라 할지라도 어짠둥 아름다운 것으로 채색하고자 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내가 일단 추하게 받아들인 것은 그것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나는 가능한 한 그것을 추한 쪽으로 채색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나에게 한 번 좋은 것은, 내 기억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런 것들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 객관적으로도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 생각이 나중에는 최면효과를 일으키면서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미신처럼 신뢰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착각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파생하는 착각은 인간이 인간인 이유인 까닭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한 발쯤은 물러설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인 경험과는 전혀 무관한 착각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고, 이것을 이용하는 세력이 상존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착각의 문제를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이땅 한반도의 남쪽을 휩쓴 지역감정이 그렇고, 지난 육십여 년 동안 이땅 한반도 전역을 역병처럼 덮어버린 이념의 문제가 또한 그렇다. 도대체 누가 얼마나 지역의 문제를 경험했을 것이며 도대체 누가 얼마나 이념의 문제와 맞닥뜨렸던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단 한 사람도 그런 문제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자유롭지가 못하게 되어버렸다. 거기서 파생되는 과실을 누가 따먹어 왔는가를, 누가 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착각에 빠뜨려놓고 어떻게 희희낙거려 왔는가를, 이제는 엄중하게 따지고 물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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