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 이레째다. 동양인에게 7이라는 숫자는 굳이 생각을 안 해도 무의식이 먼저 알아차리고 신호를 보내는 뭐랄까, 일종의 상징체계라고나 할까 .
나흘 전이었다. 너의 집에서 전화가 온 것은.
“거기가 혹시, 김성구 선배님 되는 사람 집인가요?”
그 한 마디.
늘그막에 뭐가 어쩐다더라고 운전학원 등록을 해놓고 세 번째 나가려는 참인데 걸려온 전화에 나 참 많이 당혹스러웠다. 아들이 아우와 싸우고, 아니 싸웠다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집을 뛰쳐나간 지 사흘째인데 연락이 없다면서 펑펑 우는 후배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당혹스럽지 않을 자 누구 있겠느냐.
현금 이 만원을 주머니에 넣고 반팔 티셔츠에 슬리퍼를 끌고 집을 나갔다는 너. 나가는 너에게 누이가 이렇게 물었다지? “고창에 있다는 그, 선배님한테 갈 거야?”
그러자 너는 이렇게 말했다더군. “선배님도 요새 많이 힘들어. 내가 아무 도움도 못 주면서 갈 수는 없어.”
그 말 끝에 어쩌면 절에나 갈까봐, 라고 했다던가 어쨌다던가.
내가 너와 더불어 갔거나 혹은 이야기를 나눈 절이 어디였던가. 헤아려보니 그리 많지도 않더라. 하여 나, 절간에 전화를 해보고, 여기저기 가남 가는 데 또 전화를 해서 물어도 보았지만, 아무 데서도 너와 비슷한 인간을 봤다는 말은 없더군.
하긴 또 그렇더라. 너라는 인간은 참으로 빙충맞은 까닭에 절간이건 어디건 머리꼭지 들이밀고 들어가서 자리를 잡지는 못할 거야. 노가다판에서 이십여 일씩이나 빡시게 열불나게 고생을 하고도 임금 한 푼 못 받고 포기해 버린 너 같은 인간이 어떻게 감히 그런 낮짝 두꺼운 짓을 할 것이냐.
지금도 생각하면, 나 참 많이 화가 난다. 도대체 왜 일을 하고도 임금을 포기하느냐는 나의 말에 너 이랬지? “그래도 공부 많이 했어요.”
하긴, 그것도 공부는 공부겠지. 그런 식의 착취자도 있다는 공부. 그러나 너가 말하는 공부는 또 그런 차원의 것은 아니었다. 노가다라는 거, 그 계통에 복무하는 성원들의 성격이며 살아가는 모양새며 뭐 그런 여러 잡다한 것들에 대한 체험을 너는 말하는 것이었지.
그러나 어쨌든 나는 화가 나서 너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다. 야 새끼야, 너 같은 놈들이 있기 땜시 그런 착취자들이 행세를 하는 거야, 임마, 넌 왜 너만 생각하냐. 네가 그렇게 함으로써 그 착취자는 또 다른 사람을 너와 같은 방식으로 착취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 해 임마. 하지만 너는 마이동풍이요 우이독경이었던가. 그런 너를 보면서 내가 은근히 부끄러워졌던 까닭은, 아마도 인간 삶의 깊이를 헤아리고자 하는 열정의 차원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 같은 것의 작용이나 아니었던가 모르겠다.
어쨌든, 너는 지금 집을 나갔다. 동생한테 작신 얻어맞고, 어쩌면 길가에 뻗어버린 개구락지 같은 몰골로, 그렇게 나가서, 너 지금 어떻게 되었니?
요새 며칠 내가 계속 눈물이 나온다. 너 때문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네 덕분인지도 모르기는 하다. 앉아 있으면 자꾸만 눈물이 질금거려서, 그런 때 마침 누군가 전화를 해 오면 나 이렇게 말하곤 했다.
후배 한 녀석이 가출을 했다는데, 이놈은 낯이 두껍지도 않고 무엇을 훔쳐먹을 줄도 모르는 빙신 같은 놈인데, 뒈져버린 것이나 아닌지 걱정이다.
그런데 사람들 참 희한하지? 내가 그렇게 말을 하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뭐 그런 걸로 걱정하냐. 사람이 쉽게 죽는 줄 아느냐.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정리를 해버린다. 그 엄청나게도 신속한 정리에 난 참 많이 놀라기도 하고, 우리 사회의 어떤 시스템을 봐버린 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하고, 뭐 그렇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너는 지금, 어찌된 것이냐. 현금 이 만원에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집을 나가서 벌써 이레째나 되어버린 너, 요즘은 방에서도 불을 넣지 않으면 추운데, 그런데 너는 지금 어느 광야에서 가시에 찔린 몸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냐, 고함을 지르는 것이야?
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 “성구 그놈이 외국 유학 갔다가 교회 사람들 만나는 바람에 또라이가 돼서 왔잖아요.”
너의 유학과 교회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일정 부분 감지하고 있었지만, 너가 그렇게 집에서 소위 또라이 개념으로 파악되고 있었다는 것은 요번에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너의 동생이 너를 두들겨팬 것도 결국은 그놈의 또라이 개념 때문이었다는 얘기가 되는 건데, 그런 것이냐? 그런 것이야?
나는 믿는다. 너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그런 또라이 족속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프란츠 카프카가 소설 성을 쓰던 시기에 그는 주변으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해바라기 연작에 몰두하던 시기에, 혹은 자화상 연작에 탐닉하던 시기에 그는 오로지 한 사람 아우의 아내 즉 제수씨와 그리고 또 한 사람 의사 가제씨로부터만 이해를 받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너를 그런 사람들과 동급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해는 말거라. 어쨌거나 너는 빙충맞은 놈이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혹시나 자살 같은 것이라도 해버릴래? 그렇다면 너는 정말로 구제불능의 또라이가 되는 거다. 알지?
어쩔래. 유치한 자살 따위로 영원한 또라이로 기록될래 아니면 그만 돌아와서 그 싸가지 개판인 동생놈의 따귀를 한 대 옹골지게 올려붙이고 다시 너의 길을 찾아 나설래?
너가 인터넷이이건 뭐건 모든 커무니케이션을 끊어버리고 있으면서도 달에 한 번씩은 이곳을 몰래 들어와서 잠깐씩 이른바 눈팅을 하고 간다는 것을 알기에 여기 이런 글을 남긴다. 각오해라. 네놈이 만약에 이쯤에서 뒈져 버린다면 나는 팔만구천 지옥까지라도 네놈을 찾아가서 눈알을 빼 버릴 것이다. 기억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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