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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

남자가 여자들과 나물을 캐면 열에 아홉 빨갱이랜다

 

미쳐버리고 싶은 날의 단상

 

 순이야, 철이야, 나와라. 나물 캐러 가자. 냉이도 캐고 쑥도 뜯고 달래도 캐러 가자.  이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걸까?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 큰일나는 걸까?

 

내가 말이지. 동네 아줌마 둘이랑 셋이서 봄나물을 캐고 있었는데 말이지. 허, 기가 막혀서. 할아버지 한 분이 지나다가 한참을 서서 보고 있더니마는, 느닷없이 "에라이 못난, 떼어 버려라, 떼어 버려." 그렇게 한 마디 일방적으로 소리를 지르고는 그래도 뭔가가 부족한지 혼자서 계속 투덜투덜하시는군.

 

 왜 그런 거지? 왜 떼어 버려야 하는 거지?

 

나물을 캔다 해서 떼어 버려야 한다면 나는 사실 전과가 엄청 많은데 말이지. 뭐냐 하면, 나는 눈녹고 아지랑이 조금씩 어른거리기 시작하면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아서 산으로 어디로 가는데 그 목적이 뭐냐? 냉이도 캐고 달래도 캐고 쑥도 뜯고 고사리도 꺾고 취나물도 뜯고 뭐, 등등등이란 말이거든.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말야. 나 자신의 그런 행위가 약간은 의심스러운 데가 있었거든. 그래서 가능한 한 사람들의 눈이 잘 안 미치는 곳으로만 이를테면 숨어서 다녔던 거야. 숨어서 달래를 캐고 취나물이며 고사리를 채집했던 거라고. 이게 뭐냐? 내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하면서 왜 숨어다니며 해야 하는 거냐?

 

 냉이나 달래는, 먹을 때의 향기도 당근 죽여주지만, 그것보다는 그것을 캐거나 뜯을 때 그 순간의 홁내음과 버무러진 향기, 저기 멀리 어디서 바람에 묻어 오는 것도 같고 아니면 내 몸 안에 이미 그 향기가 있어서 밖으로 나오는 것도 같은 지극히도 묘한 그 느낌이 죽여준단 말이거든.

 

 바로 그거야. 이를테면 나는 그런 향기를 찾아서 봄만 되면 방안에 앉아 있지를 못하고 취미처럼 나돌아다니곤 했던 거야. 그것도 무슨 남의 것을 훔치기나 하는 듯이 남몰래 혼자서 외롭게 말이지. 내가 그렇게 혼자서 숨어다니듯이 해야만 했던 이유는 그렇다면 뭐야, 이거. 맞아. 편견이었던 거지. 내 안에 이미 편견에 의해 조성된 또 하나의 편견이 있었던 거지.

 

어린 시절에, 그러니까 열 살 미만 시절에도 그런 편견이 있었을까. 아니야. 그때는 누나나 고모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활발하게 쑥도 뜯고 냉이도 캐고 우렁도 잡고 뭐 그랬었단 말이야. 그런데 나이가 폭삭 들어버린 지금은 여자들 속에서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은 뭔가가 내 안에 자리를 잡아 버렸거든. 바로 그거야. 여자들과 같이 나물을 캐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냔 말이야.

 

그런 반발감이랄까 뭐랄까, 하여튼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는 척, 혹은 관심이 전혀 없는 척 숨겨야하만 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을 금년에는 좀 극복해 보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말이지. 그래서 동네 아줌마들 봄나물 캐고 있는 데로 슬금슬금 다가갔던 건데 말이야. 가서는 나물을 같이 캔다거나 뭐 그런 것이 아니라 나물이 뭔지, 어떻게 생긴 건지, 어떻게 캐는 건지 알려 달라고, 이를테면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니까 좀 아르켜달라는 식으로 능청스럽게 끼어들어갔던 건데 말이지.

 

그런데 그런 남의 속도 모르는 그 어르신네가 왜 그렇게 나를 면박주느냐 이거야. 백번 천번 아무리 생각해봐도 잘못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의 거시기를 어째서 그 양반이 떼어 버리라느니 어쩌고 시비를 하느냐 이거야. 그렇지 않겠어? 내가 아무리 바보에 순진하다고 해도, 화가 나지 않겠느냐고.

 

 "아니 이보시오 어른신네. 거 무슨 말씀을 그렇게도 추하게 하십니까? 당신은 딸도 없고 아들도 없어요~~~!!!"

 

 홧김에 뭐한다고, 나는 일단 그렇게 소리를 질렀던 거야. 그런데 이 양반 몇 발자욱 가다 말고 홱 돌아서서 한다는 말이 뭔 줄 알아?

 

 "저거 저거, 저놈, 저놈, 열에 아홉으로 빨갱이다, 맞지? 너 이놈 빨갱이지?"

 

 이러는 거야 글쎄. 도대체 이런 상황을 뭐라고 해석해야 하는 거지? 그저 간단하게 미쳐버리겠다고, 그렇게 무책임하게 넘어가고 말 수는 없는 건데 말야. 어쨌든, 그렇다 해도, 나는 아직까지도 정신이 멍하고, 그저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밖에는 안 드는 거야. 이런 나라에서, 이런 어른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미쳐버리겠는 거야.

 

이러한 편견, 특정한 성별의 사람은 이러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왜 안 된다는 것이냐, 하고 물으면 아무 말도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알지 왠 말이 많아, 너 이제보니 제정신이 아니로구나? 뭐 이렇게 적반하장 큰소리로 바락바락 우기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을 어른으로 모셔야 하는 이 지독한 현실.

 

 어른들의  이러한 편견이 조금 더 확장되면 어디까지 가느냐, 모두가 다함께 골고루 잘먹고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 누군가 가령 이런 주장이라도 할라치면 대번에 얼굴을 붉히고 눈을 툭 불거지게 굴리면서 한다는 말이, 너 이제 보니 빨갱이로구나, 그렇지? 한단 말이거든.

 

 자, 그렇다면,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바가 그것이라고 한다면, 그렇다면 그게 나빠야 할 이유는 뭐지? 이렇게 묻고 나서면 빨갱이가 어떻고 소리를 지른 사람은 일단 할 말을 찾지 못해. 그러다가는 옳거니 그렇지, 하고 한다는 말이 육이오전쟁 때 그놈들이 어떻게 했는데 어쩌고 하는 말로 돌아가.

 

 그러면, 빨갱이의 사상은 전쟁을 하자는 사상이냐?  남자가 나물이나 캐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편견의 소유자들은 그렇게 생각해. 오직 거기까지밖에는 생각을 못해. 예술의 나라로 알려진 프랑스의 기본 정책이 사실은 가능한 한 골고루 잘먹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자는 요컨대 빨갱이사상에 기본을 두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도 못하거니와 알려고도 안 해. 왜?

 

 플라톤의 얘기에 동굴의 우화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 동굴 속에서 오랜 세월 살아온 사람은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을 인정하지 못하고 자기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거야.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우물안 개구리와 같은 이야기인데, 우리의 선배님과 어르신네들이야말로 너무나 오랜 세월 그렇게 닫힌 세상을 살아오셨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비극이 어디서 왔나, 생각을 하면 또 기가 막히지. 맞아. 국민의 일부를 이렇게도 속좁은 바보로 만들어버린 정치가 아직도 우리 주변을 어스렁거리고 있어. 오늘 아침 뉴스를 보니 홍사덕씨가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대부분 실업자들이라는 얘기를 했다는 것 같은데, 요컨대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들이거나 양아치들이 지금 사회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는 뭐 그런 요지의 발언을 한 것 같은데 말이지. 무서워, 무서워 죽겠어. 이런 세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