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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의 섬들

사창가엘 갔었더랬어


오래 전에, 거길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더랬어. 그래서 갔는데, 두 번이야. 그런데 두 번 다 실패했어.

한 번은 청량리에서, 그리고 또 한 번은 미아리에서, 며칠씩이나 벼르고 벼르다가, 그것조차도 맨정신으로는 발이 안 떨어져서 술까지 퍼마시고, 떨어지는 용기를 붙잡으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렇게 보무도 당당하게, 거기 근처까지 가기는 갔는데 조명조차도 아삼아삼한 그 골목이 보이는 순간부터 뭔가에 팍 얻어맞은 것처럼 주눅이 들어서는 다리가 천근이 돼버리는 거야.

뭔가가 치욕스럽기도 하고, 살인이라든가 강간이라든가 뭐 그런 범죄행위의 목전에 내가 다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지 견딜 수가 없어져서 말야. 그래서 두 번 다 어떻게 돌아섰는지도 모르게 돌아서 버리곤 했더랬어. 그렇게 돌아설 때의 기분은 또 어떤 줄 알어? 차라리 그 골목으로 들어가서 아무나 여자가 붙잡고 이끄는 대로 들어가버린 것만 훨씬 못하겠다 싶을 정도의 참괴스러움, 그런 거야. 그런 거였어.

그러면 그때부터 나는 또 며칠씩 괴로워하게 돼. 내가 못났는가? 못난 게 맞다면 나는 왜 이렇게 못나게 태어난 거지? 아아, 나도 잘나고 싶다. 다시 갈까.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볼까. 그렇지만, 그렇지만 거기를 어떻게 또 가냐. 와아, 이거 정말 미치겠네. 내가 어쩌다가, 어쩌다가 세상에는 그런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아가지고는 이게 무슨 꼴이야, 무슨 꼴이냔 말이야.

그러고 있노라면 그날 그 골목의 장면들이 눈앞에 좌악 펼쳐지는 거야. 불빛은 또 어쩌면 그렇게도 식육점의 그것 같은지. 커다란 칼로 고기를 싹뚝싹뚝 잘라내는 사내의 기름기가 번들번들거리는 얼굴이 그냥 떠올라오지. 그 앞으로 여자들이 말야. 저기 일본의 가부키 배우나 중국의 경극 배우들처럼 화장품으로 떡칠을 한 여자들이 앉거나 서거나 어쨌든 주욱 늘어져 있는 거야. 맞아. 그때의 여자들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기보다 무슨 빨래나 염색공장의 옷감이나 뭐 그런 것처럼 원색적으로 늘어져 있는 거였어.

오빠아 어디가, 나 여기 있어......

어쩌고 종다리마냥 종달종달거리면서 말이지. 그런데 그 목소리가 말야. 어쩌면 그렇게도 열이면 열 하나같이 껌을 씹으며 질겅질겅, 정말이지 금방이라도 뭔가가 질겅질겅 씹히다가 밟히다가 한 마리 벌레가 되어 으깨져버릴 것만 같은 음색을 갖고 있는지 몰라. 닭살이 돋는다는 말, 요새 보면 사이가 끔찍하게 좋은 커플을 두고 그런 말을 쓰던데 나는 거기서 그걸 느꼈었어. 내 몸의 가죽이 부스럼딱지처럼 우둘투둘 일어서다가 비듬처럼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 그러니까 그것은 아마 소름과 같은 것일 거야. 소름이 돋는다고 할 때의 그 소름 말야.

통과의례라고 하지. 딱지를 뗀다고도 하고. 남자들은 그래. 그래서 떼로 몰려가기도 하고. 그런데 나는, 나라는 종자는 아마 집단적으로 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체질인가봐. 동창회건 향우회건 뭐건 나는 지금도 조직이라면 그 어떤 곳에도 들어가 있지를 않거든.

그래서 아마 일찍부터 왕따를 당하기 시작했나봐. 적어도 그런 방면으로는 말야. 술을 마시다가 이차니 삼차니 얘기가 나올 때도 나는 당연한 것처럼 계산에서 빠져 있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게 또 어떤 때는 섭섭한 거 있지. 그래서 혼자 한 번 가보기로 했던 거야. 사창가를 말야. 그래서 갔던 것인데, 매번 실패를 하고, 그것 때문에 절망하곤 했던 거지,

그런데 난 말야. 지금도 그것만은 이해를 못하겠어. 돈을 매개로 사람이 사람과 살을 섞는다는 거.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어떻게 말야. 어떻게 사람이 사람의 눈 한 번 쳐다본 적도 없이, 손 한 번 부벼본 적도 없이, 부딪치자마자 살을 섞어버릴 수도 있는지, 정말이지 정말로 이해를 못 하겠어.

난 사실 룸살롱에서 아르바이트도 했었거든.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육 개월씩이나 말야. 거기서 대마도 마시곤 했었는데, 아, 이 얘기는 기왕 말이 나왔으니 따로 한 꼭지를 만들어서 써야겠다. 아무튼 말야. 거기서는 순전히 보고 듣는 것이 그런 장면들 뿐이거든. 그런데도 그것이 내 안으로 선뜻 들어와 주지를 않는 거야.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그런 의문만 증폭될 뿐이고 말이지.

내가 그런 말을 하면 내 주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아직 어리다고, 더 커야겠다고, 세상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그러면서 낄낄거리는 거야. 어떻게 생각하면 그게 맞는 말인 것 같기는 해. 관습이라든가 관행에 편승하지 못한다는 거, 이거는 확실히 유치함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기는 해.

그렇지만 말야. 그것이 가령 보편진리라 해도, 내가 사람인 한에 있어서는, 사람인 내가 그 보편진리를 인정했다면, 그리고 내가 하나의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고 한다면, 나의 이 예외적인 경우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사람들은 그러거든. 나더러 그래. 불구자 아니냐고, 성불구자.

나는 사람들의 이러한 편의주의적인 인습이 끔찍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 한 번쯤 되돌아보는 것을 극력 회피하고자 하는, 그 어떤 의미부여도 부질없다거나 귀찮아하며 다만 수동적으로 잘 길들여진 토끼처럼 왔다갔다, 그저 왔다갔다 그렇게 늙어가는 것을 최상의 삶으로 여기는 그런 인습이 말야. 이런 나는, 아무리 좋게 봐준다 해도 아웃사이더로 계속 남아야는 거겠지? 나도 실은 이런 세상이라면 아웃사이더가 좋아. 내 입으로 내 말을 할 수 있으니까.

아무렇든 나는 사창가의 여자들에 대해 뭐랄까, 일종의 포한 같은 것이 져버리고 말았던 것 같아. 언제나 어디에서나 그런 골목만 눈에 띄면 화가 나는 거 있지. 왜 화가 나는지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어. 내가 오늘 하고자 한 얘기는 내가 마침내, 드디어, 본격적으로 사창가 순례를 하고야 말았다는 것이었으니까.

그랬어. 작년이었지. 오랫동안 별러온 그곳을 뒤져보기로 작심한 거야. 얼마나 어느 정도나 내가 그 일을 별러왔느냐 하면 말이야. 두 번이나 사창가 방문을 나섰다가 실패한 이후로 나는 매춘의 기원과 역사에 관한 자료라면 있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구해다가 읽었더랬어.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 인간의 생생한 삶의 장면장면들을, 어떻게 책나부랭이를 통해서 이해를 할 수 있겠어. 아니 뭐 이해 정도는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이냐는 거지. 강단의 게으른 선생들 같은 그런 관념들, 쓰레기밖에 더 되겠어. 내 가슴을 찌르고 들어와서 피를 거꾸로 흐르게 하고 마침내는 영혼을 건드려서 휘청거리게 하는 그 어떤 충격도 주지 못한다는 거, 그걸 나는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겨우 깨달은 거야.

그래서 결국 직접 부딪쳐보기로 했던 거지. 취재를 한답시고, 무슨 르포작가라는 명함까지 만들어서, 그러니까 그 골목의 여자들 입장에서 보자면 내가 일종의 사기를 치고 다녔던 거야. 아니 뭐 이런 건 중요한 얘기가 아니고, 중요한 건 말야. 사창이라는 게 참 그렇더라구. 어쩌면 맞아죽거나 잡혀갈 얘기인지도 모르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사기를 치는 명칭이라는 거야, 사창은, 내 생각으로는.

온갖 분야의 공직자들이 거의 세금을 받다시피하는 사실상의 공창이더라는 거지. 이거 말야. 생각하면 참 웃겨. 우리에게 매춘 따위는 없다 하는, 국가에서 대외적으로 선전하고자 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거든. 여기서 난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다시 생각한다는 건 뭐야. 의심한다는 거겠지? 그래, 그거야.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국가가 필요한 것이냐. 그런 생각, 그런 생각이 나를 간헐적으로 괴롭혀. 정말로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국가가 필요한 것일까, 응?

아래 그림은 백신스키의 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