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을 품은 오리, 일 퍼센트가 모자라네?
암컷 오리들은 날마다 알을 낳았다. 누가 어떤 알을 낳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알이 발에 걸리면 귀찮다는 듯이 걷어차서 물속으로 빠트리는 아록이와 다록이의 습성은 여전했다. 물에 빠지지 않고 남아 있는 알은 모두가 흰날이 차지가 되었다. 흰날이 녀석은 마치 이 세상 모든 오리 알은 내가 책임진다는 듯이 알만 보이면 달려가서 부리로 어렵게 덤불까지 밀고 갔다.
그렇게 해서 흰날이는 무려 열네 개나 되는 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인지 흰날이는 더 이상 알을 가져가지 않았다. 이미 가져다놓은 알 품는 일에 완전히 몰입해서 웬만한 일로는 일어나지도 않았다. 밤마다 서리가 내리고, 웅덩이에 살얼음까지 얼어붙고 있었지만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예 안 하고 밖에서 알만 품고 있었다. 먹이를 주면 그때나 겨우 일어설 뿐이었다.
개구리도 잡을 수 없고, 올챙이도 잡을 수 없게 되면서부터 오리의 먹을 것이 상당한 문제로 떠올랐다. 밥을 주자니 그 양이 너무 많아서 코보가 굶어야 할 지경이었다.
고민하고 있는 코보를 본 사서 아줌마가 도서관 옆 식당을 소개해 주었다. 코보는 이 식당에서 매일 한 시간씩 음식 쓰레기 분류하는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잔반을 얻어가기로 했다. 지금까지 돼지농장에서 가져갔기 때문에 완전 공짜로 하면 돼지농장 주인이 오해한다는 식당 주인아저씨의 해명이 있기도 했지만, 그런 해명이 없었어도 코보는 완전 공짜보다는 잠깐이나마 일손을 돕는 게 마음이 편했다.
잔반을 얻어 나르기 시작하면서 코보의 일상은 많이 바빠졌다. 흰날이 녀석의 상태를 지켜봐야 한다는 강박증만 없앨 수 있다면 바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안 지켜볼 수 있단 말인가. 아침이면 눈을 뜨자마자 달려 나갔고, 돌아와서 양치질을 하고 나면 또 궁금해서 달려 나갔다.
밥을 먹다가도 느낌이 이상하면 달려 나갔고, 도서관에 가기 전에는 반드시 십 분 이상씩 울타리 앞에 서서 알을 품고 앉아 있는 흰날이와 눈을 맞추고자 애를 썼고, 도서관에서 돌아오면 또 삼십 분 이상씩 지켜보았고,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코스모스’를 들고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책을 읽는 한편 끊임없이 고개를 들어 흰날이의 상태를 살폈으며, 달이 밝은 날에는 밤에도 밖으로 나와서 덜덜 떨어가며 지켜보곤 했다.
그렇게 지켜보고, 또 지켜보고, 또 지켜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날짜가 흐르는 줄도 의식을 못했다. 어느 한 날 아침 일찍 무심코 문을 열었다가 눈이 후북하게 쌓인 것을 보고 어어, 어어, 했고, 알을 품은 흰날이가 혹시 눈 속에 파묻혔으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 맨발로 뛰쳐나가다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우뚝 멈췄다.
흰날이가 알을 품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지?
그날에야 비로소 그 생각이 들었다.
코보는 고개를 갸웃갸웃 해가며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집히는 날짜가 없었다. 오리가 알을 품었다고 흥분해서 날뛰기만 했지 날짜 적어두는 것을 잊어버렸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 어느 때부터라는 것만 기억났다. 그러고 보니 그 무렵부터 정신이 너무 없이 바빠져서 일기를 쓰는 것도 잊어먹고 있었다.
와아 미치겠다, 어쩌고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 문득 연탄이 들어오던 무렵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코보는 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가서 할머니에게 예금통장을 달라고 했다. 그날 연탄 값을 치르느라 돈을 많이 찾았으니 거기에 날짜가 찍혀 있겠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든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날짜를 겨우 알아낸 결과, 세상에, 삼십 하고도 칠 일이나 지나 있었다.
이게 뭐냐?
코보는 머리를 마구 흔들어대며 오리 울타리 앞으로 갔다.
눈이 십 센티 가까이나 쌓여 있었지만, 신기하게도 흰날이가 알을 품고 앉은 주변에는 눈이 없었다. 날개를 파닥거려서 눈을 쓸어냈거나, 눈이 내릴 때 날개로 받아서 어떻게 처리했거나 하여튼 흰날이 자신이 처리해낸 게 분명해 보였다.
다른 암컷들은 머리를 끊임없이 주억거리며 눈 위를 오락거리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눈이 딴에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흰검이들은 수컷이라고 무게를 잡는 것인지 한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꽤애, 꽤애, 소리나 가끔 한 번씩 내고 있었다.
아록이 다록이는 눈 속에서도 알을 품고 있는 흰날이가 어이없고 가소로워서 비웃는 것 같았고, 흰검이들은 알을 품은 암컷과 알을 안 품은 암컷 중에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판단이 안 서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그들의 말을 풀어보자면 이런 뜻이 되는 셈이었다.
“아이고 미쳤어, 미쳤어, 저게 무슨 꼴이람, 집오리가 알을 품다니, 청둥오리도 아니고 집오리가 새끼도 못 낼 알을 품다니. 세상에 이게 무슨 남부끄러운 일이냐고 응?” 이것은 알을 안 품은 다록이의 말이었다.
“가만 둬봐. 어찌 될지 모르잖아.”이것은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수컷 흰검이의 말이었다.
코보는 울타리 위에 두 손을 얹고 그 위에 턱을 기대고 선 자세로 눈을 잇달아 깜빡거렸다. 자신이 상상으로 번역해본 오리들의 말이 뭔가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안 되는 것도 같고 헷갈렸다.
아록이와 다록이가 희날이의 행동에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예전에는 셋이서 다정하게 나란히 걷곤 했었다. 흰날이가 알을 품기 시작한 뒤로 아록이도 다록이도 흰날이 곁에 다가서지를 않고 있었다. 흰날이는 흰날이대로 알을 품느라 바빠서 다른 오리들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다.
흰검이 원 투 수컷 두 녀석들의 행동 또한 예전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암컷들을 앞세웠거나 뒤에 세웠거나 항상 목을 길게 하늘 쪽으로 빼서 치켜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자세로 끊임없이 움직였었다. 그랬던 녀석들이 흰날이가 알을 품기 시작한 뒤로 움직임이 대폭 줄었다. 움직이다가도 일단 자리에 멈춰서면 그대로 십 분 이상씩 가만히 서서 좌우를 두리번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고민이었다. 삼십칠 일째나 알을 품고 있는 흰날이 저것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병아리는 이십 사오 일이면 알을 깨고 나온다고 했다. 오리는 알이 크고 노른자위도 계란보다 훨씬 진하니까 며칠이 더 걸린다 치더라도 이건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아닌 것이 분명해 보였다.
큰 맘 먹고 한 개를 그냥 깨 봐?
코보는 드디어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할머니도 같은 의견이었다. 아침밥을 먹는 내내 고민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는 코보에게 할머니가 용기를 불어넣었다.
“사람이 가끔은 모진 결단도 할 줄 알아야 한단다.”
“혹시 썩었으면 어떡하지?”
“그때는 그때고, 우선은 그렇게 해봐라, 응?”
할머니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측은해 하는 표정으로 떠듬떠듬 말했다. 코보는 할머니의 그런 표정을 보고 나니 마침내 용기가 났다. 벌떡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한 가지 생각이 별처럼 반짝 머리를 스쳤다. 코보는 허리를 굽혀 마루 밑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망치를 뒤로 감추고 오리 울타리 앞으로 갔다. 울타리 문을 열고, 재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감과 동시에 마치 실수로 눈 위에 미끄러져서 넘어진 것처럼 요란하게 앞으로 넘어졌다. 넘어짐과 동시에 망치를 든 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그 손은 알을 품고 있는 흰날이 녀석의 바로 앞에까지 닿았다. 그대로 끝나면 안 된다, 제발. 코보는 속으로 빌었다.
그 순간 흰날이 녀석이 요란한 소리를 질러대며 금방 하늘로 날아오르기라도 할 듯이 펄쩍 뛰는 자세로 일어섰다. 일어섬과 동시에 온 세상이 깜짝 놀랄 정도의 소리를 질러대며, 날개를 파닥거리며 뒤뚱걸음으로 달아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코보의 손에 들린 망치가 오리 알 한 개를 탁 쳤다.
코보는 그때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느낌으로 봐서 한 개만 맞은 것 같았다. 안심해서 눈을 떴다. 정말이었다. 교묘하고, 절묘하게도 오리 알 한 개가 깨졌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정말이었다. 걱정했던 것이 사실로 나타났다. 알은 썩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냥 썩기만 한 게 아니었다.
알은 흰자위가 거의 없었고, 노른자위를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검게 변색되었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어떤 것이 있었다.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액체가 좌우로 흘러내리면서 그 어떤 것은 점차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머리였다. 아니 머리 같았다. 털이 뽑힌 참새 머리 같았다. 눈이라고 짐작되는 아주 작은 동그란 덩어리도 두 개가 있었다.
이게 뭐냐?
코보는 걱정이 현실로 드러난 데서 오는 슬픔과, 절망과, 실망 못지않게 저 깊은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쿵당쿵당 뛰었다. 온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다.
집오리도 알을 품어서 새끼 오리를 탄생시킬 수 있다고, 그럴 가능성이 열렸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직은 코보 자신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코보는 다른 알을 하나 들고 흔들어보았다. 따뜻했다. 출렁출렁 소리가 났다. 썩었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것을 흔들어도 역시 따뜻한 느낌과 함께 출렁출렁 소리가 났다. 모두가 썩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가능성까지 썩은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있고, 두 눈이 있었다. 생기다 만 것이긴 해도 그 자체가 이미 희망이었다. 가능성이었다.
뭔가 일 퍼센트가 모자란다. 그래서 오리는 알을 새끼로 만들기는 했지만 완성시키지는 못했다. 일 퍼센트, 그것이 무엇이냐. 무엇이지?
오리는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리의 말을 해독할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오리 알을 부화장 같은 데서가 아니라 직접 까게 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오리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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