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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위대한 바보 코보(10)

 별 것도 아니었구나

 

철도다리 아래 모래톱에 앉아 오리들에게 코스모스를 읽어주고 있을 때 그들이 왔다.

 

야 바보.”

 

소리가 먼저 들렸다. 코보는 오리가 그새 다른 소리를 내기 시작했나보다, 생각하고 물에 떠 있는 오리들을 향해 목을 길게 뺐다. 그러자 갑자기 온 몸으로 모래가 끼얹어져 왔다. 동시에 킥킥거리는 소리가 귀청을 뚫었다.

 

왼손잡이, 이빨, 태권브이 그렇게 삼총사가 삼각형 모양으로 서 있었다. 해를 등지고 있었고, 얼굴에 그늘이 생겨 있어서 영화 같은 데 나오는 악당들처럼 보였다.

 

야호, 코보, 코보, 짝짝이 코보 오랜만이다, ? 오랜만이다, 그렇지?”

왼손잡이가 손에 든 쌍절권을 휙휙 내두르면서 지껄였다.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섭섭했는지 너는 모를 거야, 그렇지?”

이빨이 덧니를 드러내며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지껄였다.

 

뒤를 이어 태권브이가 점잖게 이죽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우리를 안 보려고 학교도 안 다니는 건 아니겠지?”

 

삼총사는 코보를 포위하는 형식으로 앉았다. 태권브이가 정면으로 마주보며 앉았고, 이빨이 오른쪽, 왼손잡이가 왼쪽으로 앉았다. 코보는 읽고 있었던 책 코스모스를 가슴에 껴안았다. 저도 모르게 취한 방어 자세인 셈이었다.

 

너 지금 떨고 있냐?”

태권브이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왼손잡이가 코보의 어깨를 손으로 만져보며 지껄였다.

 

정말이네, 떨고 있네.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말을 이빨이 받았다.

안 되지. 곤란하지. 우리도 이젠 중학생씩이나 됐는데 말이야. 이제 곧 고등학생이 될 참인데 말이야. 떨지 마세요, ? 떨지 마아, , 씨 이발 놈아.”

 

태권브이는 말없이 담배를 꺼냈다. 왼손잡이가 즉각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이빨은 계속 지껄였다.

우리가 너를 찾아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썼는지 너는 아마 모를 거야, 그렇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 사람이 남의 돈을 썼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지. 안 그러냐? 어이, 코보야. 안 그러냐고. 말 좀 해봐, ? 개새꺄.”

 

내가 뭐, 갚아야 할 돈 없어. 다 갚았어.”

겨우 한 마디가 나왔다. 코보는 너무 작은 자신의 목소리가 불만스러웠다. 그래서 좀 더 큰소리로 다시 말했다.

나는 개도 물었거든. 사람도 물 수 있어. 나한테 물린 개는 지금도 나를 보면 도망가거든.”

 

악당들은 그 말의 뜻이 얼른 잘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코보는 우쭐해져서 한 마디 더 보태고 나섰다.

사람이 개를 무는 것은 어려워. 아무나 못해.”

 

아항, 그래서 우리 코보님이 나를, 우리를, 히힛, 물어 죽이겠다고?”

태권브이가 비로소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이 지껄였다. 그리고는 미친 듯이 웃어대며 뒤로 발랑 나자빠져 버렸다. 왼손잡이와 이빨은 동시에 벌떡 일어서서 배를 잡고 웃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는 견딜 수 없다는 듯 모래톱에 드러누워 대굴대굴 굴렀다.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코보는 입을 크게 쩍 벌렸다가 오므리며 이빨을 떡떡 마주쳐 보았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뽀야의 경우는 죽거나 다치면 안 되니까 엉덩이를 살짝 물었다고 금방 놓았지만, 악당들은 숫자도 많고 힘도 세니까 죽거나 다치거나 상관할 필요 없이 급소를 물어뜯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장 물어뜯기 좋고 효과도 좋은 부위로는 아무래도 귀나 코나 입술일 것 같았다. 특히 귀의 경우는 물어서 확 낚아채면 조립형 로봇처럼 완전히 분리될 것 같기도 했다.

근데 세 명을 어떻게 처리하지? 하나를 물어뜯고 있을 때 다른 둘이 덤비면 어떻게 하지?

코보는 입을 굳게 다물고, 이마를 찡그렸다. 그 사이에 웃음을 멈추고 일어나서 앉은 태권브이가 점잖게 낮은 목소리로 코보를 불렀다.

 

우리가 언제 너를 때렸었냐? 그런 적 없잖아.”

왼손잡이가 그 말을 받았다.

우리는 사람 때리는 사람이 아니거든. 절대로, 안 그러냐, 코보야?”

그 말을 이빨이 보충하고 나섰다.

근데 너는 왜 우리를 물어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거냐, ?”

 

그들의 주장이 틀리지는 않았다. 코보는 삼총사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다만 그들이 끔찍하고, 징그러웠을 뿐이었다. 끔찍하고 징그러워서 하라는 대로 해주었다. 시작은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고부터였다. 2학기 개학을 하던 날 코보는 실수로 왼손잡이의 조립형 로봇 하나를 밟아서 못쓰게 만들고 말았다.

 

어쩌면 왼손잡이가 그것을 교실 바닥에 놔두고 누가 밟아주기를 유도한 것일 수도 있었다. 비싼 것은 아니었고, 문구점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것이기는 했지만, 가격이 만 원도 넘는 것이어서 코보는 그것을 단번에 사주기가 어려웠다.

돈을 구하기 어려워서 코보는 며칠 뒤를 기약했지만 왼손잡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물어뜯을 듯이 덤볐다. 당장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때 태권브이가 새파랗게 빳빳한 만 원짜리 한 장을 내놓았다. 우선 그 돈으로 해결하고 나중에 갚으라는 얘기였다. 한꺼번에 다 갚을 필요도 없고 하루에 오백 원씩 갚아 나가라는 것이었다. 코보는 그 말을 믿었고,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 돈을 받았다.

 

하루에 오백 원씩 만 원이면 까짓 이십 일이 아닌가. 이십 일 동안만 오백 원씩 군것질을 안 하거나 장보는 돈에서 줄이면 된다는 계산이 금방 나왔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하루에 오백 원씩인 것은 맞았다. 그러나 이십 일이면 끝난다는 코보의 생각은 틀렸다. 공휴일과 일요일 그리고 방학 기간 동안을 제외한 모든 날들이 오백 원씩이었다. 그 바람에 코보는 마치 무슨 입장료라도 내듯이 학교에 갈 때마다 오백 원씩을 끝도 없이 지불해야 했다.

 

어이 코보, 자네가 설마 우리와의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숨어 버렸던 것은 아니겠지, ?”

태권브이가 어른의 말투로 이죽거렸다.

 

우리 코보님께서 그럴 리야 없지.”

왼손잡이가 쌍절권을 흔들어대며 내시 같은 목소리로 추임새를 넣었다. 이빨은 히히,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혀로 코보의 목덜미를 핥았다. 그 느낌이 뱀의 혀 같았다. 코보는 너무도 징그럽고 끔찍해서 온 몸을 웅크렸다. 그래도 다행히 한 마디 말은 나와 주었다.

 

, 나는, 육백 번도 넘게 오백 원씩을 주었어. 내 일기에 다 적혀 있어.”

일기? 너 일기도 쓰냐?”

태권브이가 놀랍다는 투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망치로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었다. 그때 왼손잡이가 킬킬대며 앞으로 나섰다.

 

일기 따위가 무슨, 그딴 건 아무 효과도 없어. 중요한 건 우리의 계약이지. 그때 우리의 계약은 무기한이었단 말이거든. 야 코보, 우리가 그때 무슨 기한을 정했었냐? 아니지? 거봐. 그러니까 그때의 계약은 코보가 죽는 순간까지인 것이지. 이제 알겠어? 일기 따위가 무슨, 그게 무슨 증거가 된다고. 근데 저 오리 새끼들은 뭐냐? 코보 너 오리농장 주인 된 거냐?”

쳐다보지도 마. 저게 어떤 오리라고.”

 

코보는 소리를 꽥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즉각 왼손잡이와 이빨이 어깨를 눌러서 도로 앉혀 놓았다. 태권브이가 매우 흥미롭다는 듯 오리와 코보를 번갈아 쳐다보며 흠, , 소리를 냈다.

오리 저것들 진흙으로 싸서 구워 먹으면 맛있겠다.”

 

이빨이 침을 삼켰다.

맞아, 저거 딱 그때가 된 것 같다, ?”

 

왼손잡이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 코보님께서 삼총사에게 선물하는 것인가 보다, 맞지, ?”

 

이빨이 신기해서 미치겠다는 듯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왼손잡이는 왼손에 든 쌍절권을 휘둘러 보이면서 일어섰다.

야야 그렇게 시시한 방법으로 말고 돌 던지기로 하자.”

 

태권브이가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그 소리에 이빨이 박수를 치고 나섰다.

오우, 좋아, 좋아, 점수 주기로 하면 더 좋겠다. 머리를 정통으로 맞춰서 한 번에 즉살시키면 백 점, 몸통을 맞춰서 기절시키면 오십 점, 날개나 깃털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서 도망가게 하면 마이너스 오 점. 어때?”

 

오우, 훌륭한 아이디어야.”

코보는 다급해졌다. 전화를 살릴까, 자전거를 살까, 고민이 아직 끝나지 않은 돈이 주머니에 있었다. 물 위에 떠서 한가롭게 놀고 있는 오리들은 아직 자기들의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진 것이 너무 많았다. 모두가 뺏길 수 있는 것들이었다. 코보는 달라지도 않은 돈을 준 사서 아줌마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왼손잡이와 이빨은 벌써 돌멩이를 주워 모으고 있었다. 하나, , , 모아놓은 돌멩이 중에 하나를 집어 들고 오리를 향해 팔을 쭉 뻗치며 씨익 웃어대는 태권브이의 입에서 코보는 피를 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입이 아니라 맹수의 입이었고, 독사의 입이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뭐 해. 줘버려. 그까짓 것.

 

남자애의 목소리였다. 여자애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쟤들은 양아치들이라 그것밖에 모르니까 얼른 줘서 보내버려.”

 

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코보는 벌떡 일어섰다. 일어섬과 동시에 바지 뒷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들고 태권브이를 향해 흔들어 보였다.

좋아, 이거 줄게. 이것 먹고 사라져 줘.”

 

쟤가 왜 저래? 뭐냐 그건?”

니들은 돈밖에 모르지? 돈이라면 미치고 환장하지?”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인마.”

 

코보는 봉투를 벌려서 내용물을 슬쩍 보여주었다.

봤냐? 봤지? 이런 돈은 처음 봤을 껄?”

 

너 뭐냐? 은행이라도 털었냐?”

은행 좋아하네. 내가 왜 은행을 터냐. 니들이나 나중에 은행강도 되겠지. , 받아, 얼른.”

 

코보는 봉투를 치켜든 채 태권브이 앞으로 바싹 다가섰다. 태권브이는 놀라서 흠칫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코보는 다시 한 걸음 다가서며 얼른 받아, 하고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질렀다. 태권브이는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손을 내민 뒤에는 또 얼른 봉투를 받아들지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어리둥절한, 살짝 겁을 먹은 것도 같은 태권브이의 당황한 표정이 코보는 재미있어서 한참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사람의 얼굴에서 어떻게 이런 표정이 나올 수가 있지? 하는 의문도 들고, 아하 이럴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 하는 이상하게 뭉클한 감정도 있고, 얘들이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하여튼 오래오래 잊지 못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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