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그 해의 이월, 내 나이 스물여섯, 칠 년여 만에 다시 만난 어머니의 눈에서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그것이었다. 외로움이었다. 여전하시구나. 여전히 외로우시구나.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씩씩하게 보이려고 여전히 고생하시는구나.
“발우 왔냐. 누가 왔다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발우 너였구나.”
어머니는 그때 웃지도 않고, 팔을 벌려서 나를 얼싸안는 자세를 취해 보이지도 않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던 자세 그대로 잠시 멈춰선 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세상 잡사 모든 것을 초월해버린 것처럼 비쳐지기도 하는 어머니의 그 사람을 맞이하는 방식은, 어머니의 은밀한 속내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실제로 대단한 양반이로구나 하고 혼자 속으로 혀를 내두를 수도 있겠지만, 밤이슬에 흠뻑 젖어서도 이글이글 타는 듯이 뜨거운 젖가슴의 비밀을 오래 전에 알아버리고 있는 나로서는 어머니의 그런 태도가 잔정에 연연하지 않는 초월로 여겨지기는커녕 한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으로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밖에서는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그치지 않고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문짝을 덜컹덜컹 흔들어대는 바람 때문인가 보았다. 그쳤는가, 그쳤는가, 딱히 그 소리가 그쳐야 할 이유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 그쳐주기를 바라는, 아니 뚝 그쳐 버리기를 바라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아무런 것도 확정되지 못한 상태의 모호한 감각 속으로 풍경소리가 섞여들면서 무엇인가 나를 사무치게 하고 있었다.
내 육체가 어딘가에서부터 차례차례 절단나고 있는 듯한, 이때까지 내 육체를 떠받치고 있었던 세계가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듯 구슬픈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아가리를 벌리고 마치 기르던 가축을 잡듯이 천천히 느긋하게 나를 잡아먹고 있는 듯한, 그렇게 절단나고, 잡아먹히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짓도 못해야 하는구나 하는 일종의 절망적인 나른한 감상이 한동안 나를 관통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감상이라기보다 어쩌면 차디찬 이성의 목소리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 어머니가 그토록 오랫동안 죽지도 못하고 죽어버려야 한다는 모진 결심조차도 없이 다만 당신의 삶을 주기적으로 안타까워나 하며 이때까지 집요하게 추구해온 그것, 그것은 무엇이었는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그래, 그 해의 그날, 나는 아마도 그런 의문에 사로잡혀서 헉헉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봐야 무슨 소용인가. 그런 식의 막연한 의문으로 무슨 해답을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어머니에게 만일 그때까지 한 번도 언표되거나 노출되지 않은 진실이 있다면, 어머니의 그런 진실은 어차피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한 그것이 내게 진실인 것만은 분명했다.
내가 어머니에 대해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도 못한다면이나 모를까, 적어도 뭔가를 느끼고 생각을 하는 한 나는 어머니의 진실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었다. 어머니가 가령 내 마음을 뚫어보고 그것은 진실이 아니야, 하고 말씀해준다 해도 나는 아마 어머니의 그런 지적에 공감을 하기보다는 어머니의 말씀 자체를 의심하게 될지도 몰랐다. 아, 어머니는 내게 숨기는 것이 있구나, 하고 말이다.
나는 그날 어머니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 역시 내 얼굴을 똑바로는 바라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단 한 체례의 진지한 시선 교환도 없이 서로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의 오랜 슬픔과 슬픔으로 인한 외로움을 알고 있었고, 어머니는 내가 당신의 그것을 읽고 있다는 것을 읽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마주치는 듯 마는 듯 언뜻 스치다가 거둬들이는 단 한 차례의 눈짓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의 다른 어떤 말이나 행동은 필요하지 않았다. 얼굴을 마주대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동안 어떻게 살았느냐, 안녕히 지내셨어요? 어쩌고 인사치례 따위로 속마음을 숨겨야 할 이유는 도대체가 어머니와 나 사이에 없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나의 생활에 대해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나 역시 어머니의 그동안 생활에 대해 하나도 궁금해 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지난 칠 년 동안 어떻게 보내셨는지 하나도 몰랐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어머니 역시 내가 칠 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아는 것이 없었지만 이미 알고 있다는 태도였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진실로 모르는 것이 있다면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정도였다.
내가 아는 한 어머니는 부처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어머니 당신도 그 점을 구태여 숨긴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사람, 하고 말하면 대개 떠오르는 그런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 그것이 어머니의 오랜 꿈이었고 숙제라면 숙제였다. 문제는 어머니를 따르고 추종하는 신도들이 어머니를 가리켜 생불(生佛)이라느니 뭐라느니 자꾸 추켜올린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내게도 좋은 것인가?
내가 좋아서 행하는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진정 좋은 일이 되는 것인가?
오랜 세월 어머니의 심중을 괴롭혀 온 것은 그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것은 거의 문제랄 것도 없었지만, 정말 문제인 것은 두 번째 것이었다. 요컨대 어머니의 고민은, 길에 버려졌거나 대안 없이 가출한 아이들을 당신이 데려다가 기르는 게 어쩌면 그 아이들의 장래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해가 될지도 모르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타고난 제 천성대로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 아이를 공연히 데려다가 엉뚱한 길로 빠지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늘 반성하고 회의하면서도 어머니는 그런 아이들을 만나면 그냥 돌아서지를 못했다. 그 아이를 데려오면 잠시라도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에, 데려오지 않으면 더 큰 후회와 자책으로 괴로워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데려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후회와 자책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동안이나마 마음 편안해했던 것에 대해 복수라도 하듯이 밑도 끝도 없는 후회와 번민이 뒤를 이었다. 내가 잘한 것일까, 잘못한 짓일까, 잘한 일은 아니야, 잘못한 것도 아니지만 잘한 것만도 아니야, 그러면 어째야 하나, 어떻게 해야 옳았던 것인가.
누구에게도 함부로 터놓고 의논할 수 없는 그런 오랜 회의와 번민의 끝에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그날 밤의 천도제였다. 어머니 당신의 조상이 아직 정처를 못 잡고 구천을 헤매는 탓으로 당신이 그와 같은 번뇌망상에 빠져 시달림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날 밤의 천도제를 계획하게 되었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
그러니까 그날 밤의 천도제는 남자를 잘못 만난 까닭에 쫓겨 다닌다고 하는 혜수를 위한 것이긴 했지만 그것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이고, 근간을 따져보면 철두철미 어머니 당신을 위한 것이었던 셈이었다.
“내가 이게 무슨 업을 받고 있는 것인지 모르고 또 모르겠습니다. 스님, 사흘 전에는 웬 사나이가 알몸으로 얼음물 속에서 불에 활활 타는 꿈을 꿨지 뭐겠습니까. 이런 흉한 꿈을 꾸고 나면 나는 열흘 안에 또 밖으로 나가야만 합니다. 나가지 않으면 내가 불에 활활 타는 것 같아서 견뎌낼 수가 없으니 안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엇일까요?”
밤도 깊어 새벽이 다 되었을 즈음, 외부인은 한 명도 없는 천도제를 끝낸 뒤의 법당에서 어머니는 법운 스님에게 매달렸다.
“그래도 어쩌겠습니다. 우선은 일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런지요.”
법운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우렁찼지만 표정에는 곤혹스러움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하긴 그도 사람이었다. 아무리 공부가 깊은 도사라고 해도 사람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일신의 영달에 깊은 관심을 투사하는 일반 신도를 상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일반 신도라면 마음 턱 놓고 가마니를 풀어 곡식을 꺼내듯이 머릿속 생각들을 풀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는 경우가 달랐다. 선(禪)이라든가 깨달음의 문제까지는 몰라도 수양의 깊이와 그 치열함으로 보자면 어머니도 법운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수양의 치열함에 관한 한 어머니가 법운보다 한 수 앞서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대개의 여자들이 그렇듯이, 거의 모든 비구니와 보살이 그렇듯이 무엇을 알아도 모르는 것처럼 어리숙하게 하소연을 하고 자신을 낮추는 데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수많은 행자들이 그렇게 노력을 해도 터득하기 어려운 하심(下心)의 이치를 어머니는 구태여 스승을 두거나 행자 시절을 거치지 않았어도 아프면 저절로 구부러지는 손가락처럼 오래 전에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일심이라니 어떤 일심을 말입니까.”
“길에 버려진 아이들을 만나면 거둬오고 싶어 하는 그 처음 생각 말입니다.”
“스님, 이날까지 내가 데려다가 기른 아이들 치고 한 사람도 번듯하게 제 길을 간 경우가 없습니다. 그래도 일심을 유지해야 한단 말인가요.”
“처음 마음이 움직였을 때의 그 마음을 믿고 따라야지 어쩌겠습니까. 처음 움직인 마음을 놓고 저울질을 하면 더 큰 번뇌망상에 빠질 우려가 있겠으니 말입니다. 초발심이란 언제나 어떤 경우에나 결국은 우리들 중생의 참모습이라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더욱이나 그 아이들이 제 길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봐야할 마땅한 근거도 없는 터이고 말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 아이들을 거둬들이지 않았더라면 더 큰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이 그럴까요.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내 속에서는 말입니다. 어허 이거 참,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는 차츰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알 수 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어머니가 믿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법운 스님도 어머니의 번뇌를 풀어줄 수는 없었다. 하긴 어머니도 법운에게 하소는 하고 있었지만 애당초 무슨 커다란 기대를 갖고 그런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날 밤의 천도제 역시 실질적인 무슨 효력을 바라고 드린 정성은 아니었다. 불공은 각자 나름의 마음에 위안을 얻는 데 목적을 두는 것이지 현실에서의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장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어머니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절박한 심사에서 당신의 조상 천도라도 기원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었다.
“그것들을 내가 거두지만 않았어도, 거두지만 않았어도, 그것들이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것들을 굳이 거둬야 한다는 생각으로 거둔 것도 결국은 만용이었던 것이지요. 자만이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그때 내가 그것들을 거두지 않았다면 또 어떻게 됐을까, 이 문제를 생각하면 글쎄, 아하, 내가 이게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용서하시지요.”
어머니는 그로부터 닷새 뒤에 결국 바랑을 메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열흘 뒤에 거의 탈진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다행히 어린아이를 데려오지는 않았다. 어디 누구의 초상집이나 중병에 걸린 사람의 집에서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돌아온 것일 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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