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死
적당히 비겁하자 충고하는 어느 변호사
두꺼비네 맹꽁이
2007. 2. 22. 04:00
과거사 문제가 시대의 화두로 부상한 요즈음 변호사들의 행보가 볼만하다. 과거사 문제가 명쾌하게 정리돼 버리면 어둠에 잠겼을 때와는 달리 변호사들의 업무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부쩍 초조해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울변협 부회장 유정주씨 명의로 한 지역신문에 실린 미당 서정주에 대한 변론 또한 예사롭지 않다. 유정주씨에 따르면 미당은 고향 고창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고창 사람들만큼은 미당을 놓고 가타부타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한다. 우선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당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하느냐, 그에 대한 호 불호의 감정이 어떠느냐라는 주관적 심정을 떠나서 고창 사람들은 미당에 대한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주관적 심정을 액면 그대로 표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지역 내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와 같은 모양세로, 그를 탄핵하는 것은 삼가 하였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 지역 내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내에 보다 더 강한 모양세로, 더 앞장서서 그를 탄핵하는 것은 반대한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미당 서정주를 비난 혹은 비판하더라도 고창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하지 말고 앞장서 손가락질을 하지도 말자. 각자 속으로는 미당을 못 마땅해 하더라도 그 속내를 밖으로 표출하지는 말자.
이것이 서울변협 부회장 유정주씨 명의로 고창의 한 지역신문에 실린 변론의 주요한 결론이요 간곡한 충고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충대충 적당히 비겁하게 살자는 얘기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양씨의 철권통치 기간 중 그런 일 많이 있었다. 속으로는 대통령 욕하더라도 밖에서는 절대 욕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욕해도 우리는 못 들은 척 귀막고 눈 가리고 열심히 술이나 마시자.
고창을 사랑했으니 미워하지 말자는 유정주씨의 논리대로라면 미당은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다. 한국을 사랑했기에 이민을 가지도 않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즉 과감하고 단호하게 살인을 명령한 전두환씨를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우러러보기도 했다. 뿐인가. '신라초'라는 작품으로 한국의 고대 시절을 찬양하기도 했다. 이만큼 대한민국을 사랑한 사람이니 속내로는 비록 그가 마땅찮더라도 그것을 입밖으로 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모든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대충 눈감고 모르쇠로 넘어가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가?
미당의 행위를 용서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은 차라리 소중하게 경청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적어도 철학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겁하게 눈감고 귀막고 모르는 체 하자는 논리는 너무도 부당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다. 이는 미래를 걸레로 싸서 대충 방치해 두자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미래는 지금 우리의 것이 아니다. 아직 자라나는 중인 아이들의 것이다. 그들의 미래까지 가불해서 소비해야 할 만큼 우리는 지금 궁벽한가?
중국 근대문학의 거목이요 개혁사상가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정쩡한 온정주의로 손을 내밀었다가는 그 손이 덥석 물리기 십상이다. 이완용이며 송병준 등등 그 후손들이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벌이는 재산 찾기 소송은 그들이 뻔뻔해서라기보다 우리가 푼수 같음에서 오는 밑져야 본전식 이벤트에 가깝다.
현대 사회에서 변호사란 회계사나 공인중계사와 마찬가지로 자본을 축으로 움직이는 이익집단 내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적어도 대중들의 변호사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일정 부분 양심과 결부되어 있다는 대중들의 인식이 있었기에 그 사회의 충고자 내지는 조언자를 자임하고 나설 수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바뀌었다. 아니 적어도 바뀌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대한변협 회장의 불만은 우리 시대 변호사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그는 말했다. 여러 말을 했지만 요약하면 하나다. 변호사의 특권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을 중단해달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보장해준 작은 틀 안에서 끼리끼리 크게 먹고 살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것이 오늘날 대다수 변호사들의 모습이다. 이런 사상으로 엉뚱한 충고까지 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고향이기에 나온 충정이라 해도, 사람이 해서 좋은 말이 있고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 있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미당 서정주를 어떻게 생각하냐?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유정주씨의 충고대로라면 비루하게 히죽히죽 웃어넘기거나 혹은 "아 나 지금 바쁜데" 하고 얼른 빠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다음은 유정주 변호사의 글 전문.
未堂 徐廷柱氏에 관련하여
굴욕으로 점철된 근대사에서 反民族·反民主·反統一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역사의 심판을 통하여 새로운 民族正氣를 바로잡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자는 것이다.
이와 궤적을 같이 하여 문학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詩에 관한 한 어느 누구의 추종을 불허하는 末堂 徐廷柱氏가 親日과 권력에 대한 아첨이라는 훼절 때문에 그의 평가에 대한 세인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출생지인 우리 고창에서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미당 문학관이 관계당국의 지원 하에 건립되었고,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관계당국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더 나아가 그에 대하여 우리 고창군 전체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우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뜨거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제의 35년 강점기에 知性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땅히 反日의 깃치아래 모여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여야 할 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충성스러운 皇軍이 되어 대동아의 聖戰에 參戰하여 성스럽게 죽으라고 죽음을 교사하였고, 그리고 군사독재권력의 주변을 맴돈 훼절에 대하여 냉혹한 민족사적 論罪가 있어야 하는데 무슨 관계당국의 기념행사지원이며 대대적인 기념이냐는 주장, 펜을 들어 글을 썼다하면 심금을 울려주는 名詩를 지어냄으로써 우리 문학계에 쌓아올린 금자탑이 얼마나 찬란한데 사람이 살다보면 자칫 범할 수 있는 한때의 흠결을 이유로 그의 문학적 성가를 떨어뜨려서는 아니 되므로 그가 고창사람이라는 것에 긍지를 느끼면서 기념행사도 지원하여야 한다는 주장,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외세의 권력이건, 독재 권력이건, 권력에 아부하며 보신을 일삼아 온 이 땅의 反知性的인 창백한 지식인, 思惟하는 것과 行動하는 것이 서로 다른 사이비 지식인들을 수없이 경험하여온 우리들로서는 그에 대하여 퍼붓는 준엄한 질책에 편승하여 차가운 시선을 던져주는 것이 차라리 論理的 認識에 있어서 마음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高敞人이라는 위치에서 未堂 徐廷柱氏를 약간 변호하고 싶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되는 생명탄생의 고귀함을 노래한 “국화 옆에서¨라는 한국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名詩에 매료된 나머지 그 시인의 어두운 과거사를 덮어두고 싶은 것이 아니다.
35년의 日本强占期때 고통 받았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슬픈 상처에 대한 동정심이 적어서, 試作과 함께 反日을 함께 하다가 일본 영사관 감방에서 순국한 이육사(청포도 작가)와 같은 애국선열에 대한 존경심이 적어서, 親日의 흔적을 갖은 그 시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국민 총동원 연맹의 강제명령에 의하여 親日詩 몇 편을 썼다.¨ 는 그의 自白을 듣고 일제시대 죽지 않고 살다보면 한순간의 변절도 있을 수도 있다는 감상적 이해를 한 나머지 그 시인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매국노가 한 두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일제징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親日詩 몇 편 쓴 것이 무슨 대단한 민족반역죄이며, 군부독재권력에 아부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아첨꾼이 한 둘이 아닌 바에야 군부독재자에게 헌시 한편 봉헌 한 것이 무슨 大罪이냐라는 비교 끝에 그의 변명을 경청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미당 시문학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관광객이 고창에다 떨어뜨리는 짭짤한 관광수입금을 계산한 배금적 사고 때문에 그 시인을 두둔하는 것도 또한 아니다.
그러면 나는 왜 그를 변호하는가? 그는 “선운사 동구¨ 라는 詩를 썼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거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그는 선운사 보다 고창의 산물인 동백꽃을 좋아하였고 동백꽃보다 육자배기를 부르는 평범한 고창사람을 더 좋아한 모양이다.
그가 명성을 날리며 살던 생전에 그는 고창과 고창인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어도 살아가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명사로서 거들먹거리며 살고 있을 때 고창사람의 귀찮은 부탁 때문에 골치 아플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 詩情을 갈고 닦은 고창에 대한 추억과 연정을 글로써 표현한 것이 “선운사 동구¨라고 추측한다.
선운사 주변에 살고 있는 우리고창 사람들이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부르는 육자배기의 음률을 文字로 이기한 것이 “선운사 동구¨라는 詩라고 추측한다.
이 詩의 詩句 뒤에 숨어 있는 詩心은 고창에 대한 사랑이라고 추정된다.
나는 생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 고창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그가 고창을 사랑한다고 직접 증언을 들은 일도 없기 때문에 그의 증언을 테스트하는 거짓말 탐지기를 걸어 본적도 없지만 이 詩는 고창에 대한 사랑과 추억 때문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물론 고창 이 외의 지역에서 고창인 이외의 사람들이 친일과 권력에의 아부라는 훼절을 이유로 역사의 법정에 그를 피고인으로 세워 준엄하게 論罪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이와 같은 냉엄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하여 불분명한 과거를 분명히 함으로서 이 땅의 새로운 세대에게 정기어린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에 대하여도 전폭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未堂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하느냐, 그에 대한 好, 不好의 감정이 어떠느냐라는 主觀的 心情을 떠나서 고창사람들은 未堂에 대한 對外的인 관계에 있어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主觀的 心情을 액면 그대로 표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고창사람들끼리 고창지역 내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와 같은 모양세로, 같은 강도로 그를 탄핵¨ 하는 것은 삼가 하였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 지역 내에서 “다른 지역사람들이 다른 지역 내에 보다 더 강한 모양세로, 더 앞장서서 그를 탄핵¨ 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리고 그의 부끄러운 행적을 규탄하는 사람과 달리 그의 문학이 한국문화에 끼친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고자 고창과 미당 문학관을 찾는 외지인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협조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고창사람들이 “未堂은 훌륭한 분이시다¨라고 선전하고, 그에게 과잉충성 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오로지 단 한가지 이유 즉, 未堂은 고창을 사랑한 고창사람이라는 이유 그것 때문에 그를 약간 변호하고자 이 글을 쓴다.
서울변협 부회장 유정주씨 명의로 한 지역신문에 실린 미당 서정주에 대한 변론 또한 예사롭지 않다. 유정주씨에 따르면 미당은 고향 고창을 무척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소한 고창 사람들만큼은 미당을 놓고 가타부타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한다. 우선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미당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하느냐, 그에 대한 호 불호의 감정이 어떠느냐라는 주관적 심정을 떠나서 고창 사람들은 미당에 대한 대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주관적 심정을 액면 그대로 표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지역 내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와 같은 모양세로, 그를 탄핵하는 것은 삼가 하였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 지역 내에서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 내에 보다 더 강한 모양세로, 더 앞장서서 그를 탄핵하는 것은 반대한다."
이 말을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 된다. 다른 사람들이 미당 서정주를 비난 혹은 비판하더라도 고창 사람들은 거기에 동조하지 말고 앞장서 손가락질을 하지도 말자. 각자 속으로는 미당을 못 마땅해 하더라도 그 속내를 밖으로 표출하지는 말자.
이것이 서울변협 부회장 유정주씨 명의로 고창의 한 지역신문에 실린 변론의 주요한 결론이요 간곡한 충고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충대충 적당히 비겁하게 살자는 얘기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양씨의 철권통치 기간 중 그런 일 많이 있었다. 속으로는 대통령 욕하더라도 밖에서는 절대 욕하지 말자. 다른 사람들이 욕해도 우리는 못 들은 척 귀막고 눈 가리고 열심히 술이나 마시자.
고창을 사랑했으니 미워하지 말자는 유정주씨의 논리대로라면 미당은 한국을 사랑한 사람이다. 한국을 사랑했기에 이민을 가지도 않았고,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 즉 과감하고 단호하게 살인을 명령한 전두환씨를 떠오르는 태양이라고 우러러보기도 했다. 뿐인가. '신라초'라는 작품으로 한국의 고대 시절을 찬양하기도 했다. 이만큼 대한민국을 사랑한 사람이니 속내로는 비록 그가 마땅찮더라도 그것을 입밖으로 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모든 친일 반민족 행위자들을 대충 눈감고 모르쇠로 넘어가 주어야 한다. 그래야 하는가?
미당의 행위를 용서하고 넘어가자는 주장은 차라리 소중하게 경청할 만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적어도 철학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비겁하게 눈감고 귀막고 모르는 체 하자는 논리는 너무도 부당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다. 이는 미래를 걸레로 싸서 대충 방치해 두자는 요구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미래는 지금 우리의 것이 아니다. 아직 자라나는 중인 아이들의 것이다. 그들의 미래까지 가불해서 소비해야 할 만큼 우리는 지금 궁벽한가?
중국 근대문학의 거목이요 개혁사상가 루쉰은 "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어정쩡한 온정주의로 손을 내밀었다가는 그 손이 덥석 물리기 십상이다. 이완용이며 송병준 등등 그 후손들이 대규모 변호인단을 구성해서 벌이는 재산 찾기 소송은 그들이 뻔뻔해서라기보다 우리가 푼수 같음에서 오는 밑져야 본전식 이벤트에 가깝다.
현대 사회에서 변호사란 회계사나 공인중계사와 마찬가지로 자본을 축으로 움직이는 이익집단 내의 한 구성원일 뿐이다. 적어도 대중들의 변호사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되어 있다. 과거에는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가 일정 부분 양심과 결부되어 있다는 대중들의 인식이 있었기에 그 사회의 충고자 내지는 조언자를 자임하고 나설 수도 있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바뀌었다. 아니 적어도 바뀌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얼마 전 새로 취임한 대한변협 회장의 불만은 우리 시대 변호사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극명하게 말해준다. 그는 말했다. 여러 말을 했지만 요약하면 하나다. 변호사의 특권적 지위를 그대로 유지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법개혁을 중단해달라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이 보장해준 작은 틀 안에서 끼리끼리 크게 먹고 살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이것이 오늘날 대다수 변호사들의 모습이다. 이런 사상으로 엉뚱한 충고까지 하고 있다. 그것이 비록 자신의 고향이기에 나온 충정이라 해도, 사람이 해서 좋은 말이 있고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말이 있다.
만약에 누군가 나에게 미당 서정주를 어떻게 생각하냐? 하고 물었을 때, 나는 유정주씨의 충고대로라면 비루하게 히죽히죽 웃어넘기거나 혹은 "아 나 지금 바쁜데" 하고 얼른 빠져 나와야 한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다음은 유정주 변호사의 글 전문.
未堂 徐廷柱氏에 관련하여
굴욕으로 점철된 근대사에서 反民族·反民主·反統一의 찌꺼기를 제거하는 역사의 심판을 통하여 새로운 民族正氣를 바로잡아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자는 것이다.
이와 궤적을 같이 하여 문학에서 가장 높은 단계인 詩에 관한 한 어느 누구의 추종을 불허하는 末堂 徐廷柱氏가 親日과 권력에 대한 아첨이라는 훼절 때문에 그의 평가에 대한 세인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출생지인 우리 고창에서 문학적 성취를 기리는 미당 문학관이 관계당국의 지원 하에 건립되었고, 그를 기념하는 행사가 관계당국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가 더 나아가 그에 대하여 우리 고창군 전체의 입장에서 어떻게 대우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뜨거운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제의 35년 강점기에 知性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땅히 反日의 깃치아래 모여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여야 할 때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충성스러운 皇軍이 되어 대동아의 聖戰에 參戰하여 성스럽게 죽으라고 죽음을 교사하였고, 그리고 군사독재권력의 주변을 맴돈 훼절에 대하여 냉혹한 민족사적 論罪가 있어야 하는데 무슨 관계당국의 기념행사지원이며 대대적인 기념이냐는 주장, 펜을 들어 글을 썼다하면 심금을 울려주는 名詩를 지어냄으로써 우리 문학계에 쌓아올린 금자탑이 얼마나 찬란한데 사람이 살다보면 자칫 범할 수 있는 한때의 흠결을 이유로 그의 문학적 성가를 떨어뜨려서는 아니 되므로 그가 고창사람이라는 것에 긍지를 느끼면서 기념행사도 지원하여야 한다는 주장, 모두 나름대로 근거가 있고 합리적인 설명을 하고 있다.
외세의 권력이건, 독재 권력이건, 권력에 아부하며 보신을 일삼아 온 이 땅의 反知性的인 창백한 지식인, 思惟하는 것과 行動하는 것이 서로 다른 사이비 지식인들을 수없이 경험하여온 우리들로서는 그에 대하여 퍼붓는 준엄한 질책에 편승하여 차가운 시선을 던져주는 것이 차라리 論理的 認識에 있어서 마음 편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高敞人이라는 위치에서 未堂 徐廷柱氏를 약간 변호하고 싶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로 시작되는 생명탄생의 고귀함을 노래한 “국화 옆에서¨라는 한국의 현대시를 대표하는 名詩에 매료된 나머지 그 시인의 어두운 과거사를 덮어두고 싶은 것이 아니다.
35년의 日本强占期때 고통 받았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의 슬픈 상처에 대한 동정심이 적어서, 試作과 함께 反日을 함께 하다가 일본 영사관 감방에서 순국한 이육사(청포도 작가)와 같은 애국선열에 대한 존경심이 적어서, 親日의 흔적을 갖은 그 시인을 존경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 징용에 끌려가지 않기 위하여 국민 총동원 연맹의 강제명령에 의하여 親日詩 몇 편을 썼다.¨ 는 그의 自白을 듣고 일제시대 죽지 않고 살다보면 한순간의 변절도 있을 수도 있다는 감상적 이해를 한 나머지 그 시인을 동정하는 것도 아니다.
당시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매국노가 한 두 사람이 아닌 바에야 일제징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親日詩 몇 편 쓴 것이 무슨 대단한 민족반역죄이며, 군부독재권력에 아부하며 부귀영화를 누린 아첨꾼이 한 둘이 아닌 바에야 군부독재자에게 헌시 한편 봉헌 한 것이 무슨 大罪이냐라는 비교 끝에 그의 변명을 경청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 미당 시문학관을 관람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관광객이 고창에다 떨어뜨리는 짭짤한 관광수입금을 계산한 배금적 사고 때문에 그 시인을 두둔하는 것도 또한 아니다.
그러면 나는 왜 그를 변호하는가? 그는 “선운사 동구¨ 라는 詩를 썼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거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그는 선운사 보다 고창의 산물인 동백꽃을 좋아하였고 동백꽃보다 육자배기를 부르는 평범한 고창사람을 더 좋아한 모양이다.
그가 명성을 날리며 살던 생전에 그는 고창과 고창인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어도 살아가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명사로서 거들먹거리며 살고 있을 때 고창사람의 귀찮은 부탁 때문에 골치 아플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태어나 詩情을 갈고 닦은 고창에 대한 추억과 연정을 글로써 표현한 것이 “선운사 동구¨라고 추측한다.
선운사 주변에 살고 있는 우리고창 사람들이 콧소리로 흥얼거리며 부르는 육자배기의 음률을 文字로 이기한 것이 “선운사 동구¨라는 詩라고 추측한다.
이 詩의 詩句 뒤에 숨어 있는 詩心은 고창에 대한 사랑이라고 추정된다.
나는 생전에 그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 고창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없고, 그가 고창을 사랑한다고 직접 증언을 들은 일도 없기 때문에 그의 증언을 테스트하는 거짓말 탐지기를 걸어 본적도 없지만 이 詩는 고창에 대한 사랑과 추억 때문에 지어진 것이 분명하다고 하겠다.
물론 고창 이 외의 지역에서 고창인 이외의 사람들이 친일과 권력에의 아부라는 훼절을 이유로 역사의 법정에 그를 피고인으로 세워 준엄하게 論罪하는 것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고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또 이와 같은 냉엄하고 철저한 검증을 통하여 불분명한 과거를 분명히 함으로서 이 땅의 새로운 세대에게 정기어린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에 대하여도 전폭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未堂에 대한 어떠한 평가를 하느냐, 그에 대한 好, 不好의 감정이 어떠느냐라는 主觀的 心情을 떠나서 고창사람들은 未堂에 대한 對外的인 관계에 있어서는 각자 가지고 있는 主觀的 心情을 액면 그대로 표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 고창사람들끼리 고창지역 내에서는 “다른 지역 사람들이 다른 지역에서와 같은 모양세로, 같은 강도로 그를 탄핵¨ 하는 것은 삼가 하였으면 한다.
더욱이 우리 고창 사람들끼리 고창 지역 내에서 “다른 지역사람들이 다른 지역 내에 보다 더 강한 모양세로, 더 앞장서서 그를 탄핵¨ 하는 것은 반대한다.
그리고 그의 부끄러운 행적을 규탄하는 사람과 달리 그의 문학이 한국문화에 끼친 업적을 기리고 기념하고자 고창과 미당 문학관을 찾는 외지인들을 너그럽게 이해하고 협조하는 아량을 베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 고창사람들이 “未堂은 훌륭한 분이시다¨라고 선전하고, 그에게 과잉충성 하라는 이야기는 절대 아님을 분명히 밝혀둔다.
오로지 단 한가지 이유 즉, 未堂은 고창을 사랑한 고창사람이라는 이유 그것 때문에 그를 약간 변호하고자 이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