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비네 맹꽁이 2007. 1. 21. 17:22
 

누군가 사람이 다녀간 뒤의 공기는 어제의 그것이 아니기 마련이다. 동쪽을 봐도 서쪽을 봐도 내가 채워지지는 않는다. 잠이나 자고자 해도 이런 날에는 잠도 제가 먼저 알고 외출 중이기 십상이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분명한 머리카락을 발견하고 한참이나 그것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집착이다. 무엇에 대한 무엇의 집착이라 말할 것조차 없다. 나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내가 내 감정을 못 잊어서 잡으려고 잡으려고 헛된 몸짓을 해보는 것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를 잊거나 버리는 방법으로는 영화보기가 제일이다. 타인의 감정과 에너지를 빌려 나를 추방하는 이 전략은 누구에게 권할 것은 못 된다 해도 내게는 썩 잘 맞는다.

 모딜리아니를 골랐다. 두 번인가 아니 세 번째다. 시작은 다소 가벼운 익살과 농담이었으나 끝은 준엄한 사랑 이야기다. 자유는 이 사랑 속에 내재해 있다. 자유한 영혼이 준엄한 사랑을 잉태한 형국이라고나 할꺼나.

 가난뱅이에 바람둥이 모딜리아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그 무엇도 없다. 소질이 있어 그림물감을 만지작거리는 하지만 그것도 그리 중요하지는 않다. 그에게 그나마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자유다. 그것도 관념적인 자유가 아니라 자유라는 말을 언급할 필요도 없는 근원적 자유다. 이런 형태의 자유는 거의 모든 가난뱅이들의 특징이면서 또한 바람둥이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모딜리아니는 그 둘을 다 갖췄으니 그야말로 자유하다 하겠다.

 시끌적한 어느 모임에서 원없이 실컷 잘난 체를 하는 모딜리아니, 이런 자리라면 어디에서나 그렇듯이 한 여학생이 그를 지켜보고, 그 또한 그녀를 본다. 그리고 한 마디.

 “내 작업실로 와 주면.......”

 어쩌고 저쩌고 뻔한 미끼가 던져지고, 그녀는 그게 미끼인 줄 알면서도 문다. 물지 않을 수가 없다. 그가 던진 미끼는 실은 그녀에게서 나온 것이었으므로. 그리하여 그녀 그에게로 가고, 그는 그녀의 초상을 그리는데 눈이 없다.

 “왜 눈은 안 그리셨어요?”

 “너무 멀어서 그릴 수가 없었소.”

 여자는 웃고, 남자는 여자의 눈을 본다는 핑계로 다가서고, 이 세상 모든 화가들의 직업적 특징이라 할 만한 해부학적 절차가 끝난 뒤에 그녀는 임신을 하는데 아이를 갖게 되기 전 모딜리아니의 한 마디.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는 날 당신의 눈을 그릴 수 있다는, 자신의 이 한 마디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딜리아니는 알고 있었을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영혼을 알게 된다는 것의 엄중함을?

 영화는 이제 종교적 숭고의 색채를 띠게 된다. 굳이 영혼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녀의 혹은 그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고 만져지는 듯하고 느껴진다. 그 어떤 절대적 존재도 상정해본 적이 없는 모딜리아니에게 그녀는 하늘이 되고 땅이 되고 신이 되고 그 밖의 모든 것이 되어버린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두 손으로 가만히 끌어안고 뒤로 약간 기대는 듯이 앉아 있는 여자의 얼굴에 흐르는 행복한 슬픔을 놓치고 만다면 그는 그녀의 남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슬픔이 슬픔의 껍질을 깨고 행복으로 전이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체험한 그는 마침내 그녀의 눈을 그리게 되는데, 그런데 그렇게 그녀의 영혼을 보고 나니 그녀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다.

 아니 그것은 그녀에게 해주는 뭔가라기보다 모딜리아니 자신에게 필요한 무엇인지도 모른다. 결혼이라는 것을 부르쥬아들의 놀음 정도로 생각해 왔던 남자, 그가 이제 결혼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시청을 달려간다. 자기 마음을 그녀에게 주고 싶은데 마음을 꺼내서 보여줄 수는 없고 그렇다고 입으로 사랑 어쩌고 하는 것도 마음에 차지를 않고 뭔가 확실한 증거를 확보해야겠는데 그것이 결혼증명서라 여겼던 것.

 우여곡절 끝에 결혼증명서를 받아든 모딜리아니, 이렇게도 기분이 좋은데 그냥 갈 수야 있나. 그래서 술집으로 들어가서 자축을 하고,

 그런데 이게 한 잔을 마셔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고 두 잔을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다. 그래서 한 잔 더, 한 잔 더. 시간이 얼마든지 있다 하고 마셔대는데 드디어 취하기 시작한다. 술이란 취하면 적당히 포장된 나는 사라지고 저 바닥의 내가 얼굴을 내미는 법. 쓸데없는 자랑도 하고 싶어지고 뭐 그러는 법.

 술이 취한 모딜리아니에게 최고의 자랑거리는 역시 결혼증명서, 그것을 손을 들고 흔들어대며 소리를 질러대는데 그것이 이렇다.

 “이봐 주인. 나 오늘 부자가 되었어.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고. 이게 뭔 줄 아나? 보물이야 보물, 보물이라고.”

 그 종이쪽지의 정체야 당연히 아무도 모른다. 오직 모딜리아니 자신만이 알고 있는 그 종이쪽지와 큰소리를 두 명의 강도 예비자들이 멀리서 지켜본다. 저게 뭘까? 글쎄, 오늘날로 말하자면 무기명양도성채권증서 뭐 그런 것쯤 되려나? 그러면 얼마짜리? 일억? 십억? 아니야 그 정도로 저렇게까지 미쳐버릴 수는 없지. 맞아. 저거 우리 것으로 만들자.

 곤들만들 완전히 취해버린 모딜리아니, 그래도 결혼증명서는 여전히 최고의 보물이라 손에 꽉 쥐고 비틀비틀 여자에게로 가는데 뒤를 따르던 예비 강도들이 드디어 강도로 돌변을 한다. 때리고 걷어차고 밟아도 결혼증명서는 손에서 떨어지지 않고, 그래서 그야말로 죽도로 얻어맞아야 하는 모딜.

 그리하는 그는 정말로, 정말로 피투성이가 된 채로 아내에게 기어가서 그녀의 품에 안겨서 죽어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 그의 아내, 쟌느, 그녀는 아파트 오층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창틀에 걸터앉아 슬픔이 행복으로 전이되는 표정인 채로 뒤로 슬쩍, 몸을 젖히는 듯하면서 추락, 그리고 끝.

 

 그런데 보물이란 무엇일까. 많은 보물찾기 이야기가 있다. 그 많은 보물찾기 이야기에 등장하는 보물은 열이 하나같이 금이거나 보석이거나 채권이거나 뭐 그런 따위들이다. 보물 하면 물리적인 것부터 떠올리는 우리의 이런 관념은 태어나면서부터 찍혀 있었던 것일까. 꼬리뼈처럼? 그래서 강도들이 결혼증명서마저도 그런 걸로 착각하고 살인도 하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