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자살금지

때가 되나보다

두꺼비네 맹꽁이 2007. 1. 4. 13:37

 

 

자빠지면 코 닿는 거리

여름에는 해수욕장이 되는 옆에 동네 바닷가 마을 앞 모래밭에서

낮에는 모래조각을 하고 밤에는 장작불을 피운다고

그것이 캠프파이어라는 것인데 그것 사그라들면 거기에 고구마를 구워먹는다고,

장작을 트럭으로 두 개나 쏟아부었고 군고구마용 고구마를 또 트럭으로 두 개나 쏟아붓는다고

당근으로 소주도 있고 막걸리도 있고 포도주도 복분자도 무엇무엇 어쩌고 다 있다고

어쩌면 저기 어디 서울이랑 부산이랑 또 어쩌고 저쩐 곳으로부터 이쁘디이쁜 여류들도 무더기로 올 거라고 그러니 가자고, 가자고, 가자고,

하는데 안 간다고, 안 간다고, 안 간다고

뿌리치고 홀로 칡술이나 홀짝이는 이러는 나는 대체로 무기력이거나 귀차으니즘이거나 뭐 그런 것이거나 그런 것이냐?

 

그렇다면 이건 뭐냐 , 이제 때가 오는 것이냐.

오고 있는 것이야?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래 머물렀다.

행자는 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거늘.

게을렀다.

낯선 어느 길모퉁이에서 다리 쭉 뻗고 달이나 별이나 그런 것들을 보다가 죽을 수 있다면

그때나 나는 아마 행복해 하려나. 

이것은 그저 그런 것일뿐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아닐 것이다.

 

내 몸에는 아마 집시의 피가 흐르는 것인가보다.

늘 어디로 가고 싶다.

그런데 지금, 여기서 벌써 십 년이다.

야, 이렇게도 많이를 한 곳에 있을 수도 있었다니.

커다란 버스를 개조해서 사방팔방 다녔으면 좋겠다는 계획 아닌 계획으로 흥분했던 시절,

아니 그것은 너무나 부르조와틱하다 해서 포기하고 고물트럭을 한 대 끌고 다니며 고물장사 흉내를 내보자는 시절,

아니 아니 그것은 너무 기계스러워서 포기하고 그냥 도보로 다니며 먹을 것 떨어지면 아무 데나 품을 팔자는 생각으로 흥분했던 시절,

등등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 참, 그것들 다 어디로 가버린 것이냐.

 

아닌게 아니라 내 몸의 피는 집시의 그것을 닮았다.

조부께서는 이 마을 저 마을

저 마을 이 마을로 엉덩이를 옮겨다니며 서당 훈장을 하시다가 거의 객사를 하셨으니 참 행복한 죽음이다. 그 행복의 피가 내 몸을 흐르고 있는데 어쩌랴.

그런데, 그런데 문제가 있구나.

 

누군가 이것들을 보아줄 이 있었으면 좋겠다.

마당에 매화며 복숭아며 초본식물이며 구근 등등 어쩌고 해서 약 천 여 포기의 생명이 있고 연못에 빨간 물고기와 하얀 수련 따위들이 있으며

비디오테잎이 천 여개. 책나부랭이가 이삼 천, 그리고 음반이며 무엇무엇 어쩌고 저쩌고,

이런 것들을 걍 거미줄이나 치게 하는 것만은 차마 못할 일이지 싶다.

그렇다고 어디어디에 기증 어쩌고는 또 싸가지가 없어 내키지를 않는다.

 

이 집은 노가다 삼 년을 해서 그 돈으로 내가 산 것이니 확실하게 내 것이라고 말해도 괜찮다.

지만 명의는 내가 아니다.

많거나 적거나 재산 따위로 스스로를 비루하게 만들지 말자는 게 내게 배달된 말하자면 일종의 정언명령이다.

해서 동생 명의로 등기를 했다

내 동생은 싸가지가 아주 없지는 않아서 멋대로 팔아치운다거나 어쩌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집에 와서 살아볼 이 어디 없느냐.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내주지는 않는다.

등등 따위 이런 내용의 광고를 내는 생각을 밤새 해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이 생각은 하마 진행중이다. 광고를 낼까, 말까. 좀 웃기지 않을까. 등등 따위들.

  

그런데, 여기까지 이렇게 풀어놓고 보니,

이건 사실상의 엄살이다.

나쁜넘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바람 피우듯이 이런 엄살이나 살살 피우고 있다니

아니다 이런 레벨이면 나쁜넘 정도가 아니라 주길넘 컨셉이다. 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