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푸드의 위력
공부라는 게 이게 참 끝이 없다. 하긴 끝이 있다면 공부라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공부란 모두가 알듯이 한자로 工夫로 표기된다. 이 공부를 중국어로 쿵푸라 하는데 쿵푸란 또 모두가 알듯이 무술의 일종이다.
무술은 예나 지금이나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큰 목적을 갖고 있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 세상 모든 스포츠와 잡기들이 그렇듯이 무술 또한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계통의 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넘실거린다. 이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그야말로 피나는 노력을 하게 된다.
똑같은 행위를 천 번 만 번 아니 수십만 번 되풀이해서 몸이 바로 기술 자체가 되는 경지에까지 도달해야만 한다. 그 경지에 도달했다 해서 멈추면 도로아미타불이다. 그래서 날마다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고 거기에서 약간의 변형을 만들어내는데 그 일을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야만 한다. 공부란 이렇게도 제 손안에 있는 것을 멀고 멀고 또 먼 것으로 인식해서 날마다 새롭게 보는 마음가짐, 아마도 그런 것이지 싶다.
농사가 대부분 기계화되면서 흘리는 낱알들이 조금 과장을 하자면 모래알처럼 많은 시대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오며 가며 조금씩 주워온 것들이 제법 된다. 별 생각없이 그저 아깝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주워온 이것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니련만 생뚱하게 고민거리를 만들어놓고 며칠 궁리를 하다가 닭을 기르기로 했다.
여러 마리는 부담스럽겠고 해서 딱 세 마리를 시장에서 삼천원씩 구천원에 사다가 토끼장에 넣었는데 이것들 봐라, 토끼와 닭은 죽이 제법 맞는가보다. 처음에는 토끼들이 이게 웬 손님인가 싶은지 닭다리 근처에 머리를 들이대고, 그러면 닭은 두어 걸음 물러섰다가 부리로 토끼를 살짝 쪼아보는데 그러면 토끼가 펄쩍 뛴다. 그리고는 그만, 그대로 친구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건 뭐냐. 열심히 주워온 낱알들을 닭에게 준다고 줬는데 닭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닭 먹으라고 준 낱알들을 닭은 쳐다보지도 않는데 엉뚱하게도 토끼들이 달려들어 정신없이 먹어치운다. 아니 토끼가 풀만 먹는게 아니었단 말여?
어안이 벙벙해서 그저 보고만 있는데 이놈의 닭들이 참 가관이다. 토끼들이 너무도 맛있게 먹어대는 낱알의 정체가 궁금했던지 닭들이 낱알들을 콕콕 쪼아본다. 그리고는 그뿐이다. 이건 내가 먹는 음식이 아니잖어, 하고는 도로 뱉아내고 밥 달라고 칭얼대기만 한다.
이게 대체 뭔 조화란 말이냐. 궁리를 하고 또 해보니 아 그렇구나, 싶어진다. 녀석들이 태어나서 줄창 공장에서 나온 배합사료만 먹어온 까닭에 낱알들을 도무지 알아보지를 못하는 거다. 그렇다면 쌀을 줘봐? 하고 쌀을 주는데 이 또한 토끼들만 살판이 나서 먹어댈 뿐 닭들은 여전히 양반네 시치미 떼 뜻이 하늘이나 본다. 밥을 줘 봐도 마찬가지. 심지어는 배추쪼가리 하나 쪼아먹을 줄을 모른다.
계산을 해보면 아마도 최소한 이삼백 대 이상 배합사료만을 먹어왔을 것이다. 조상에 조상에 조상을 수백 번 거슬러 올라가노라면 이윽고 잡식을 즐기는 닭들을 만나게 되겠지만, 어쨌든 오늘날의 닭들은 공장에서 나온 일종의 먹기 쉬운 패스트푸드에나 익숙할 뿐 깔깔한 자연식이나 선식 따위는 도무지 관심이 없는 거다.
먹기 쉬운 패스트푸드가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된다는 뉴스를 간간 접하는 요즘이다. 요새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하는 광우병도 결국은 먹이의 문제다. 그리고 나중에 언제인가는 닭들도 조류독감 뿐만이 아닌 광우병 비슷한 질병으로 닭 자신은 물론 사람까지 고생스럽게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