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너무 낯선 고민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 지금도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모르겠네.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개와 함께 살기로 했었는지, 내가 무
슨 생각으로 강아지 한 마리를 사려고 했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모르겠네.
아니, 아니지. 그때의 생각을 모른다고 할 수야 없는 일이겠지. 맞아. 애초에 그런
생각을 했던 건 분명해. 집에 사람이 너무 없으니까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는 날도
있다는 거, 그래서 어떤 날은 전화가 왔을 때 입이 안 떨어져서 허둥거리기도 한다
는 거, 그래서 개라도 한 마리 같이 살면 그 녀석과 싸움도 하고 뭐 그러면서 입을
아주 잠재우지만은 않을 거라는 거, 맞아. 그거야. 분명히 그거였어.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사려고 시장에 갔는데 마침 동생을 만났던 거야. 동생 왈, 요새
강아지를 왜 사요. 아는 데 가서 한 마리 얻으면 되는데, 그러는 거였던 거야. 이유인즉 개
값이 뭣값이라 새끼를 낳은 집에서 팔기는 너무 억울하고, 그래 인심이라도 쓸 생각으로 기
르고 싶은 사람이 있음 준다는 거야. 그래서 한 마리를, 암컷을 기르면 소문이 또 이상하게
날세라--오, 맙소사, 이 소심함이라니--수컷으로 한 마리를, 이제 갓 젖을 뗀 고 귀여운 녀
석을 식구로 맞이했던 거란 말이거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새로운 식구가 생겼으면 이름이 있어야 하는 거라. 이름 그까짓 거 없
으면 또 어쩔까마는, 그래도, 굳이 관례를 따라서가 아니라, 어쨌든 내가 그를 부를 때의 일
정한 호칭은 있어야 서로가 불편함이 없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이름을 짓기로 했는데 말야.
첨에는 촌스럽게 그냥 버꾸라고 할까? 했었지. 옛날에 나 어릴 적에 흔히 개를 그렇게 불렀
거든. 쬐금 새련됐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메리니 해피니 그렇게도 엉뚱한 이름을 짓기도
했지만, 대개는 색깔에 따라서 꺼멍이니 흰둥이니 뭐니 대충 그렇게 불렀단 거야.
그렇지만 내 개는 그럴 수야 있나. 암만 생각해도 그럴 수는 없더라고. 적어도 내가 식구라
고 생각하고, 식구의 개념으로 들여온 녀석인데, 쬐금 오버를 하자면 시집온 녀석인데, 흐,
그래서 고민고민, 고민 끝에 마루, 마루라고 하기로 했는데 어떤 사람이 대뜸 그러는 거야.
마루? 마루는 연속극에 나오는 사람 이름인데?
에거, 내가 연속극에 취미가 있어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여하튼 내 마루는 그 마루가 아
니라 산의 능선을 가리키는 산마루, 바람이 불어 파도가 칠 때의 맨 꼭대기 지점을 가리키
는 물마루, 뭐 대충 그런 뜻이란 말이거든. 왜 그런 뜻을 찾아서 써먹기로 했느냐 하면, 마
루란 조금 거창하게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물이나 현상의 기준을 이르는 거라, 해서
내 딴에는 개를 보며 나를 보겠다는 뭐 그런 어마어마(?)한 의미부여를 했던 거지 머.
여하튼 말야. 그런데 말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인생에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일들
이 좌에서 우에서 앞에서 어디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쯤이야 뭐 상식이니 거론할 필요
도 없다지만 정말이지 이건 너무도 뜻밖인 거 있지.
뭔 말이냐 하면, 이 녀석이 어찌나 귀여운지 방에서 내내 같이 잤거든. 한 보름인가를 그렇
게 같이 잤어. 그런데 무슨놈의 개가 그렇게 빨리도 커버리냐. 첨에는 오줌을 눠도 쬐금씩이
서 별 귀찮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그런데 이거 자꾸 사정이 달라지는 거야. 어떤 날은 오줌
뿐만이 아니라 큰 거를 내가 그냥 맨발로 물컹 밟아버리기도 하고. 아무리 똥개라지만 너
이럴 수가 있냐, 하고 소리소리 질러봐야 뭐하겠어. 툭하면 신발이다 걸레다 아무 거나 물고
내 옆으로 와서는 그게 무슨 자랑스러운 사냥거리라도 된다고 미친 듯이 흔들어대는 거, 그
것까지야 뭐 보는 재미도 있고 좋다 이거야. 하지만 오줌, 똥, 그것만은 참고 견디고 치우는
데도 한계가 있더라는 거지.
모르겠다. 너 나가. 나가서 살아. 하고는 매정하게 밖으로 내처버리지 않았겠어? 아 물론
집은 만들어서 내쳤지. 그런데 이 녀석이 자꾸 우는 거야. 그래서 하루만에 다시 방으로 들
였거든. 그리고는 다시 하루만에 밖으로 내놓고. 그렇게 방향을 못 잡고 허둥거리기를 며칠
이나 했는지 모르겠어. 그러다가 하나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거든. 기온이 영도 이하로 내려
가면 방으로 들이고, 그럭저럭 따뜻하면 밖으로 내놓는다는 뭐 그런 원칙.
그런다고 문제가 다 끝났을까? 아니지. 끝났다면 이런 얘길 뭐하러 하겠어. 이제부터가 진
짜 고민이야. 방에 들여놓으면 녀석은 수시로 하품을 하는데 말야. 꼭 하마 같은 거 있지?
하마처럼 입을 완전히 쩍 벌리고 길게 하품을 하는 거야. 그리고는 자. 머리를 고개 속으로
이상하게 쑤셔박고 쿨쿨 코를 골며 자는 거야. 자다가 한 번씩 눈을 뜨고는 또 하마처럼 하
품을 하고, 그리고는 또 자고.
그런데 밖으로 내놓으면, 덜덜 떨지. 날씨가 별로 춥지 않을 때도 그냥 덜덜 떨면서 이곳저
곳 기웃거리며 쏘다니는 거야. 쏘다니다가 내가 보고 있을라치면 벼락같이 달려와. 어찌나 반
갑게 쏜살같이 달려오는지 넘어지고 엎어지고 웃기지도 않아. 녀석이 나한테 달려오는 이유
는 내가 좋아서인 것만은 아니야. 요컨대 저를 방으로 들여달라는 거야.
나는 아직 모르겠어. 어떻게 해주는 게 마루한테 좋은 건지. 뭐가 그 녀석에게 진정한 행복
인지. 내가 일방적으로 내 취향만을 고집해서 말하자면 밖에서 떨며 쏘다니는 게 행복에 가
까울 것 같기도 하거든. 어려운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현대인의 관점으로 보자면 따뜻
한 방에 들여놓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밖으로 내몰아야 하느냐 하는 질문이 생길 법도 하
지만 말야.
그렇지만, 나는 그 대목에서 또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단 말야. 사람이든 동물이든 길을
들인다는 거, 혹은 길들여진다는 거. 그리하여 자의식은 사라지고 자율성도 사라진 채 오직
관성에 의해 자동인형처럼 움직이게 되는 사태. 사람이든 동물이든 생명체에게 이것만큼 큰
비극도 없을 거라는 거. 내 생각이 틀린 걸까? 그냥 마루를 따뜻한 방안에 들여놓고 늘어지
게 하품이나 하다가 늙어가라고 해야 하는 걸까? 아,
이 중차대하 시기에 나는 지금 이게 고민이라고, 고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