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자살금지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1)

두꺼비네 맹꽁이 2003. 7. 20. 05:20



오후 4시 30분쯤. 수원에 사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
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자신의 전화기를 건네준다.
어떻게 이 번호를 알았을까. 하긴 여기저기 전화를 해
서 물어봤겠지. 그런데 왜, 무슨 일로 굳이 그렇게까
지 해서 전화를 해야만 했는가?

"저도 조금 전에 왔는데요. 어머니가 위독하시네요."


"위독이라니. 퇴원하신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무슨
소리라냐?"

동생도 아직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모양이다. 오전 10
시 무렵에 저도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급히 학교로
달려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차를 몰았다는 것이다. 때
문에 동생도 아는 것이라곤 고작 세벽 4시에 다시 입
원을 하셨다는 것 정도였다.

내가 알고 있는 어머니의 입원 사유는 위염이었다. 약
물과다 복용이 원인이라고 했다. 약은 독이라는 말도
있듯이, 독성이 강한 약을 너무 많이 드신 까닭으로
위벽이 헐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
니었다. 우리 어머니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약물 남
용은 농촌에 계시는 모든 어머니들의 공통사항이었
다. 농약에 중독되고, 노동에 중독되고, 내복약에 중
독된 채로 당신의 마지막 근력까지 노동에 투자하는
게 오늘의 농촌 어머니들이다.

무슨 몹쓸 죄를 짓고 그렇게 농촌으로 쫓겨난 것도 아
니련만, 도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수확을 위해 달이 떴는지 해가 졌는지도 모른 채
로 그저 밭으로, 밭으로만 달려나간다. 아이고 죽겠
다, 하는 소리가 당신도 모르게 입에서 나오는 시간,
그 시간이 겨우 퇴근시간이 되는 농촌의 어머니들은,
자리에 누우면 여기저기 쑤시고 결리고 편한 데가 한
곳도 없는 까닭으로 틈만 나면 또 보건소로 달려간
다.

약값이 비쌀 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내 몸뚱
이 편하자고 약먹을 돈 있으면 새끼들 공책이라도 사
주지', 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던 어머니들이 오늘
에 와서는 '천원짜리 두 장만 들고 나가도 사나흘은
충분'한 까닭으로 아예 중독이 되어버렸다. 심지어는
약을 먹기 위해 밥을 먹는다는 말씀을 아주 자랑스럽
게(?) 하시기도 한다. 살려고 먹는 것이지 먹을려고
사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자식들이 나서서 무슨 약을 그렇게 드시냐고 걱정이라
도 할라치면 "너는 내가 빨리 죽어버리기를 바라
냐?"고 섭섭해하신다.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보건소에서, 어머니들이 그토록 외경시하
고 존경하는 국가기관에서 주는 약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다. 그런 어머니들의 기준으로 보자면 세상
이 그만큼 좋아졌다.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좋아진 세상 덕택으로 위벽이
모두 헐어버렸다. 무지한 나는 처음에 위벽이 헐었다
는 말을 듣고서 이런 의문을 가졌었다. 술을 드시는
것도 아닌데 무슨놈의 위가 헐었을까 하고. 어쨌든 내
가 아는 어머니의 입원 사유는 위염이었고, 위염은 당
장 그렇게 위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병명은 아니
었다.

나는 그렇게 알고 현장을 따라 충주로 왔었다. 그리
고 사흘 전에 고창의 동생에게 전화를 했을 때는, 어
머니는 벌써 퇴원을 하셨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
다. 그런데 수원의 동생이 고창에 와서 어머니의 위독
함을 알리는 전화를 하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이란 말이냐.

"알았다. 지금 바로 내려가마."

무엇을 어떻게 물어보고 어쩔 겨를도 없이 나는 전화
를 끊고 하늘을 보았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전화기를
빌려준 사람이 한 마디 충고를 했다. "아니 무슨 전화
를 그렇게 금방 끊어버린다요, 얼른 다시 해보시오.
가더라도 내용이나 알고 가야제."

전화는 무슨, 뿌리치고 서둘러 거리로 나서는데 다리
가 후들후들 떨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다. 위독하다
는 것, 소설이나 연극 혹은 영화에서나 접했던 그 말
을 내가 직접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 이거 어쩌
나, 지금 돌아가시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만 머릿속
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런 속에서도 나는,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
는 일이지만 택시를 탈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채로 버
스 터미널로 달려가서 표를 끊고 버스가 출발하는 시
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적게 벌어서 적게 쓰는 것이 행복에 가깝다는 식의 개
똥철학을 이십여 년 동안 만지작거려온 나는 어지간
한 거리는 걸어서 간다. 시간을 봐야 할 정도로 바쁠
때는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거기서 더 바쁘면 버스
나 혹은 기차를 탄다. 누구와 긴급하게 통화해야 할
일이 없는 까닭으로 휴대전화기도 없다. 그 바람에 주
변의 몇몇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
는 바 아니지만 이것 또한 내게는 일종의 중독인 까닭
으로 어쩔 수가 없다.

굳이 정리를 해보자면 빨리빨리가 아니라 천천히 생각
을 하면서 갈 때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고, 또 그것
자체가 삶의 의미를 증폭시킨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
게 살아 왔던 것인데, 어쨌든 나는 그날도 그렇게 천
천히 생각을 하며 버스를 기다리고 버스를 갈아타며
어린아이의 걸음마처럼 느리게 조금씩 어머니가 위독
하신 상태로 입원해 계시는 고창으로 다가가고 있었
다. 충주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정읍으로, 정읍에
서 다시 고창행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9시 막차가 금
방 떠나버렸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택시를
탈 생각은 해보지 못한 채로 동생에게 나를 태워가러
올 수 있겠는지 물어보는 전화를 하고 있었다.

"지금 병원을 전주로 옮기려고 준비하는 중이에요."

고창에서는 우리 어머니의 생명을 포기했다는 얘기였
다. 도대체 우리 어머니의 체내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단 말이냐. 고생을 천형으로 알고 세상에
대해 별다른 저항도 거부의 의사도 없이 그저 눈물이
나 잠깐씩 비치며 순한 소처럼 살아온 사람의 마지막
이 꼭 이런 식이어야만 한단 말인가.

터미널 대합실에 비치된 텔레비전에서 9시 뉴스가 나
오고 있었다. 어느 젊은 어머니가 아이들을 차례차례
아파트 높은 곳에서 밖으로 내던지고 마지막으로 자신
도 투신자살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이
어지는 납치 살해에 관한 이야기. 카드빚 때문에 자살
한 어느 남자의 이야기, 역시 카드빚 때문에 부녀자들
만을 상대로 강도 살인을 직업처럼 해온 또다른 남
자. 기차에서 잠자는 사람을 흉기를 마구 찔러 살해하
고 체포된 어느 노숙자. 교통사고로 일가족이 몰사했
다는 뉴스.

목숨이 마치 한밤중 거리를 뒹구는 휴지조각 같다는
느낌인 채로 나는 다시 9시 30분에 있다는 전주행 막
차를 기다리는 참인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는 지금 살아 있는 것일까? 혹시 일 분 뒤에, 아니 삼
십 초 뒤에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아 이 불확실한 목숨을, 이 불확실한 세상을 어떻
게 함부로 대할 것이냐. 어떻게 진지한 사고도 없이
기분에 따라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임기웅변이나 할
수 있단 말이냐. 윤동주의 절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없이' 살아가기에도 턱없이 모자라고 숨
가쁜 생명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