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연애의 풍경

나의 상상은 건강하고 안녕한 것일까?

두꺼비네 맹꽁이 2003. 3. 12. 01:44

아, 이게 뭐냐.

꿈을 꾸었던 것 같다. 한 편의 백일몽……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혼이 어리
둥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아무래도 무엇인가 나른한 몽유(夢遊)라도 겪고
난 뒤의 기분 같기도 하다.

한숨 자둬야겠다. 낮잠이다. 아니다. 아직은 아침이다. 이제 겨우 해가 떠오
르는 시간이니, 낮잠이라 하기는 좀 미안스러운(?) 그런 잠이다.

어수선하다. 주방이고 방이고 모든 공간이 다 어수선하다. 한바탕 잔치라도
벌인 것 같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귀찮다. 아니다. 귀찮다기보다는
뭐랄까, 그냥 그대로 놔두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으로 내
육체를, 영혼을 가만히 담궈놓고 싶어지는, 불은 켠 채로 어지러진 것들은
또 그런 상태 그대로 함께, 더불어 잠들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이라면 말이
좀 될는지 모르겠다.

말이야 되건 말건 무슨 상관이냐. 어쨌든 나는 침대로 간다. 침실이라고 말
하기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비디오 테이프와 책들이 널려진 한쪽으로 침대
가 있는 아주 작은 공간, 그런데 이 침대가 조금 낯설다.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다. 나는 결코 이불을 개키는 법이 없는데, 그런데 이불은 개켜져 있고, 이
불이 개켜진 그 위로 뭔가가 다소곳이 앉아 있다는 묘한 기분, 이 기분의 정
체는 또 뭐냐?

하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천성이 게을러 이불을 게키는 법이 거의
없지만, 어쩌다 미친 듯이 한 번쯤 그렇게 해본 것일 수도 있겠지. 그렇게,
편한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이불을 들춘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뛰어올
라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을 거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지, 그야말로 어쩐지
이불을 먼저 들고 가만히 들어가야만 할 것 같아서,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
그런데 이게 뭐냐.

나는 분명 남자이고, 머리카락은 오 센티가 채 안 되는 짧은 것인데, 그런
데 무려 이십 센티미터도 넘어 보이는 머리카락 두 올이 이불에 묻어 있는
거다. 이게 뭐냐? 어떻게 된 것이냐. 누구의 것이냐.

당연하게도 잠은 싸악 달아나고,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뜬 채로 사방을 둘러
본다. 마치 거기 어디에 누군가 숨어 있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하지만 떠올
라오는 얼굴은 없고, 마치 거리의 화가가 스케치해놓은 종이 속의 실루엣처
럼 다소 긴 머리의 소녀? 여자? 여인? 아,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어
쨌든 그런 이미지가 눈앞에서 어른거릴 뿐이다.

담배를 피워물고 앉아 생각을 해본다. 누굴까. 누구지?

그제서야 간밤의 일들이 하나씩 둘씩 명료하게 떠오른다. 전주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그리고 또 고창에서 각 한 사람씩, 그리고 나, 그렇게 사람 넷이서
삼겹살을 반찬으로 밥을 먹었고, 세 사람은 술을 안 하는 까닭에 나 혼자서
소주 두 병을 비웠고, 그렇게 저렇게 새벽 3시 무렵까지 이런 얘기 저런 얘
기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한 얘기를 끝도 없이 나누다가 잠을 한숨씩이라
도 자두자는 생각으로 잠자리에 들었다는 거,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지금, 그 세 사람의 얼굴이 하나도 안 떠오른다.
다만 이미지로만 존재할 뿐인 거다.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은 나와 성별이
같았고, 두 사람은 성별이 다른 까닭으로 성별이 같은 사람끼리 두 명씩 다
른 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는 거, 나는 남자인 까닭으로, 나와 성별이 같은
사람 하나는 나와 같이 바깥 쪽의 방에서 누웠고, 나와 성별이 다른 두 사람
은 좀 더 깊은 곳의, 그러니까 내 침실(?)의 작은 침대를 쓰게 되었다는 거,
거기까지만 명료할 뿐 세세한 부분은 그림이 없이 그냥 이미지로만 남아 있
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건 뭐냐. 나는 심각하다. 아주 심각하다. 내 침대의 내 이불에
묻어 있는, 내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되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두 올
의 머리카락, 이것이 지금 나를 심각하게 하는 거다.

담배 하나를 끝에까지 다 피워없애고, 가만히, 조심스럽게, 마치 함부로 다
루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이 숨소리까지 멈춰가며 머리카락 한 올을 들어올
린다. 확실하다. 확실하게 내 것이 아니고, 나와는 성별이 다른 누군가의 몸
에서 나온 거다. 그렇다면 누구냐?

아니, 그것보다도, 이 냄새는 또 뭐냐. 이건 체취다. 몸에서 나온 냄새. 가
지런히 개켜진 이불에 남아 있는 이것, 이 체취가 또 나를 확 정신나게 한
다. 아니다. 어쩌면 이 체취는 실제가 아니라 나의 착각인지도 모른다. 나와
는 성별이 다른 누군가의 머리카락으로부더 발원한 착각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느냐.

그렇지만 또, 이 신선한 체취는 결코 착각이 아니라 실제일 수도 있지 않은
가? 그것이 실제가 아니라고, 착각이라고 무엇으로 주장할 수 있느냔 말이
다. 파스트르 쥐스킨스트의 <향수>라는 소설이 생각난다.

그 소설에서 주인공 남자는 뭐랄까. 노틀담의 곱추에 나오는 그 곱추만큼
이나 보편성이 결여된 외모를 한, 이를테면 혐오감을 자아낼만큼으로 못 생
긴 남자로 묘사된다. 그래서 그는 연애고 결혼이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여자가 그를 발견하는 순간 달아나 버리는데 무얼 할 수 있으랴. 그런데 이
남자가 어느 날 우연히, 정말로 우연하게 여인의 체취를 맡고서는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서, 말하자면 향기의 비밀을 찾아나선다는 거다. 수많은 여인
의 뒤를 미행하고, 침실을 엿보기도 하며,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세상의 모
든 여인들이 탐을 내는 향수를 개발해낸다는 그런 내용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참 그렇다. 여인의 체취란, 남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것은 아주 묘하고 또 묘한 거다. 과학자들은 그 향기가 나오는 신체의 부위
가 어디인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놓기도 하지만, 향기의 출처야 어디가 되
었건, 어쨌거나 남자는 여인의 체취 앞에 서면 종종 눈앞이 아득해지고, 심
장에 무슨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멍해지기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체취가,
다른 곳도 아닌 내 이불에서 나고 있으니 말이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어떻거나 말거나, 나는 또한, 이 향기를, 체취를 놓치고 싶지가 않은 거다.
그것이 설령 착각이라 해도, 착각이건 뭐건 어쨌든 내가 그것을 느끼는 한
그것은 실제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나는 가만히 이불을 들추고, 잠시 서 있
다가는 돌아서서 불을 끄고, 다시 이불을 들추고, 거칠게 다루면 행여 그 향
기가 달아날새라 가만히 들추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자야지. 이제부터 쿨쿨 잠을 자야지. 그런데 잠은 오지 않고, 시시각각 나는
점점 더 말똥말똥해져 간다. 이불을 확 뒤집어쓰고 잠을 청해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말똥말똥해져 간다. 이걸 어쩐단 말이냐. 끙끙 앓고
있는 참인데 전화벨이 울린다.

"저요, 지금 언니랑 언니집에 있거든요."

아, 이제야 알겠다. 누구인지 알겠다. 얼굴이 떠오르고, 걸음걸이가 떠오른
다. 그러나 역시, 얼굴의 세세한 부분은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 나와는 성별이 다른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구
의 머리가 어떤 색깔이었고 얼마나 길었는지, 나는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이
렇게도 나는, 부분보다는 전체만을 보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살아왔던 거다.
이것은 뭐냐.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

나는 다시 이불을 젖히고 밖으로 나온다. 커피 한 잔을 끓여 손에 들고 사
뭇 심각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거울 속의 나, 그 속에서 정신의 한 갈래
를 찾아보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명색이 소설을 쓴다고 달려든 자가 부
분은 하나도 보지를 못한 채 전체만을 보고 있었단 말이다. 이 비통한 발견
이 오늘 나를 괴롭게 하고, 또한 기쁘게 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한, 아까
이불에서 느낀 <여인>의 체취를, 그 향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하릴없
이, 참으로 하릴없이 다시금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대낮의 이불 속에서 내가 무엇을 생각할지, 무엇을 상상하게 될는지는 나도
아직은 모른다. 모르긴 하지만,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하다. 나의 이러한
감성을-- 그렇다, 이것은 감성이다--해방시켜야 한다는 거. 해방을 시키되
결코 천박하지 않게, 천박하지 않은 방향으로 해방시켜야 한다는 거,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다. 감성을 해방시킨답시고 천박하게 나가버린다면, 그것은
해방이 아니라 또 하나의 감옥, 이중의 감옥이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상상은 그럭저럭 건강한 것인가? 안녕한 것인가? 건강
은커녕, 안녕은커녕 혹시 자기기만은 아닌가? 묻고 싶구나. 대답이 없을 줄
뻔이 알면서도, 내가 나에게 묻고 싶구나.

새겨야 할 잠언 하나--우리를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것은 기쁨도 아니요
행복도 아니다. 우리를 진정 깊은 곳으로 안내하는 것은 슬픔이요 불행이라
는 거, 이것을 잊지는 말자.
행복이란 때로 지독히도 천박한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