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한번 더 한번만 더

특별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별한 사람

두꺼비네 맹꽁이 2002. 12. 15. 18:37


공사현장을 다니다 보면 벼라별 사람과 조우하게 된다는 얘기는 지난 번에이미 했으니 생략하고 막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공존이 아니라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덤비는 별나게도 착각에 빠진 사람들은 대개가 가진 자들이거나 권력의 언저리를 맴도는 날파리들이라는 점은 그러나 한 번 더 상기하고 넘어가자.

세상에는 별나고도 별난 사람들이 많고도 많지만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짜 별종 중에 별종이다. 그는 군소정당의 지구당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이 사람 저 사람 여러 국회의원에게 붙어 특별보좌관이라는 명함을 뿌렸거나 혹은 뿌리고 있는 중이다. 보좌관은 보좌관인데 특별보좌관 즉 우리가 흔히 듣는 그 <특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특별보좌관이라면 아무래도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하는 직책일 터이다. 그놈의 특별한 일이란 물론 평범하게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은 할 수가 없거나, 못하거나, 혹은 할 수 있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그놈의 특별한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특별보좌관 자신도 자기가 하는 일의 성격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특별보좌관께서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사글세방을 살아야 할 정도로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에게 무척 친절해서 툭하면 술을 사기도 하고, 아이들 갖다 주라고 과자부스러기를 사서 들려주기도 한다.

순진한 사람은 대개가 가난하다는 거, 아, 이 서글픈 진리를 우리는 여기서 한 번 되새겨보고 넘어가자. 이 사람들은 대개가 남의 말을 잘 듣고, 자기는 먹을 것이 없으면서도 남의 먹을 것을 걱정하는가 하면, 열심히 땀흘려 일하고 당연히 받아야 할 임금을 몇 달씩이나 못 받아서 홧김에 쫓아갔다가도 그 집이 궁색하다고 여겨지면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치기는커녕 오히려 쌀을 사주고 나오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그러니까 착하고 또 착해서 남의 돈이라면 십원도 떼먹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이 공사현장이라면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특별보좌관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자주 술을 사기도 하고 과자부스러기를 사서 들려주기도 하는 것이다. 왜? 왜냐고는 아직 묻지 말자. 어쨌든 특별보좌관답게 그는 사교성이 뛰어나고 말솜씨 또한 <포마드>를 바른 옛날 신사들의 머릿결처럼 반지르해서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곧잘 감격하게 되고 며칠 뒤에는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그가 즐겨 쓰는 레퍼토리는 많고도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로 "정치인은 가난한 사람들 곁에서 그들의 애환을 끊임없이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그래서 말야. 나는 <노가다>를 사랑하는 거야. 당신 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알기 위해서 말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보라구. 나 같은 정치인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말야.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들 살아보자구. 응?"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았다고 여겨지면 그때부터 그는 일종의 선생으로 나서기 시작한다. 아니다. 선생이라기보다는 지도자라는 표현이 적합하겠다. 너희는 세상이 누구의 어떤 힘에 의해 돌아가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나한테서 배워야한다는 것. 그는 실제로 정치판이든 무엇이든 대단히 많은 까십성 지식을 갖고 있기도 하다. 특별보좌관이니만치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리하여 착하고 순진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차차로 그를 우러러보게 되고, 나중에는 복종의 자세를 취하기까지에 이른다. 그것을 카리스마라고 하던가 어쩌던가. 하여튼 그때쯤 되면 그는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에 그 사람들을 태워 싣고 다니며 드라이브를 시켜주기도 하고, 자신의 어여쁜 부인이 밥을 해놓고 기다리는 집으로 데려가서 먹어라 불러라 밥을 먹이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계획대로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나간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는 진짜 카리스마를 행사하기 시작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락바락 고함을 질러 상대를 쩔쩔매게 하는가 하면 중대한 실수가 있어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식으로 그 사람을 아주 쥐락펴락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급하게 아주 급하게 현금을 써야 할 일이 발생했다고 죽는 소리를 해서 그 착하고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 돈을 떼어먹겠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야 이거 내가 말야. 선거철이 다가오니까 돈 쓸 일은 너무 많고 현금동원은 어렵고 형편이 아주 말이 아니네. 그래서 말인데 말이야. 자네 사글세 살지? 이렇게 하자. 그 방을 내놓고 말야. 우리집으로 이사를 와라. 우리 형님이 부동산 임대업을 하시잖냐. 너 원룸이란 데서 살아봤어? 그거 아주 끝내준다?"

이리하여 한 사람 두 사람, 한 가구 두 가구, 그가 지정해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몇 명이, 몇 가구가 그런 식으로 이사를 하게 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왜 그러는 것이냐고? 맞다. 이제 그런 질문이 필요하다.

이른바 접전지역이라는 곳에서는, 단 몇십표 차이로 국회의원 당선자가 결정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 어떤 경우에는 몇십까지도 아니고 열표 이내에서 등락이 갈라지는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 상기하자.

특별보좌관께서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이주시키고 어떤 이득을 취하는가는, 거기까지는 묻지 말기로 하자. 그런 이상한 직업도 있다는 것을, 지금은 그가 야당이면서도 여당 이상의 파워를 행사하는 정당에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거기까지는 덤으로 아니 참고로 알아두자.

가난하고 순진한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다. 세상이 아주 멸망해버리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사라지게 될까? 만약에 사라진다면, 그러면 특별보좌관이라는 직책은 어떻게 되나? 그것도 사라지려나? 사라진다 해도, 또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존재하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