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의 섬들2/한번 더 한번만 더

희망의 원리를 파괴하는 거대언론의 거대한 역기능

두꺼비네 맹꽁이 2002. 11. 28. 02:23
1

우리나라에서 나이와 성별 지역, 그리고 학력 경력 등등 이런 쓸데없는 것들을 따지지 않는 유일한 직종이 있다면 아마도 건설공사 현장일 것이다.

예외적인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누구라도 현장에 찾아와서 일을 하고 싶다 하면 어느 분야로든 소개를 받게 되어 있다. 여자는 여자에 맞는 일이 있고 남자는 남자에 맞는 일이 있으며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나이 든 사람은 또 거기에 맞는 일이 언제라도 마치 그 사람을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맡겨지는 것이다.

그렇게 들어와서 일단 일을 시작하게 되면 어느 지역 출신에 어떤 경력을 가졌건 서로가 금방 이물없는 사이로 발전해간다. 처음에는 입을 꾹 다물고 사람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나>와 <너>의 벽이 존재하지 않는 까닭으로 이내 자신을 풀어놓게 되는 것이다.

물론 특수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끝내 자신을 숨기고 있다가 어느 날 소리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권위주의 시대에 이른바 시국사범들이 그러했었다. 어쨌든 건설공사 현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벼라별 경력자들이 모여든다. 이런저런 개인적인 이유로 사람이 싫어졌거나 혹은 사람을 피해야 할 사람들이, 마치 시냇물이 흘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바닷물과 섞여지듯이 그렇게 <사람들> 속으로 섞여들어간다.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는 사람도 물론 없지는 않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자유에의 갈망이라 한다면 좀 과장된 표현이 될는지는 모르겠다. 이십여 년 이상 건설공사 현장을 드나든 내 개인적인 눈으로 볼 때 적어도 현장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 특별한 것을 나는 자유라고 본다.

자유가 부담스러운 사람들, 이를테면 자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건설공사 현장을 다만 하나의 일시적인 호구지책의 장으로 파악한다. 자유의 냄새를 맡아버린 사람들은 결코 현장을 떠나는 법이 없이 눌러앉아 자기만의 독특한 세계를 거기서 만들어나간다. 과거의 좁아터진 골방 같은 세상이 공사현장에서는 끝도 없이 한도 없이 확장돼가는 느낌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수십 년씩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 몇 개씩을 받아도 알 수 없는 것들이 현장에서는 순식간에 내 것이 되기도 한다. 워낙 다양한 경력자들이 모여 있는 까닭으로 얘기를 풀어놓다 보면 이것과 저것이 섞여지고 저것과 이것이 다시 섞여지면서 전혀 뜻밖의 결론이 나와있곤 한다. 요컨대 사회의 겉면과 이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특수한 렌즈가 현장에는 부지기수로 널려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렌즈는 보고자 하는 사람의 눈에만 발견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생각해보라. 중앙부처의 국장급 경력자가 플라스틱 바구니 공장의 사출공 경력자와 아무런 사심없이 마주앉아 소주잔을 부딪칠 수 있는 자리가 현장이 아니면 또 어디에 있겠는가를, 젊어 한때 객기로 미스코리아 뭣뭣에도 뽑혔던 여자가 펑퍼짐한 <몸빼바지>에 시멘트가루를 만지작거리며 사내들의 음담패설을 능숙하게 받아치는 모습을 현장이 아닌 그 어디에서 또 볼 수 있겠가를.

나는 개인적으로 장관급 경력자를 현장에서 만나본 적은 아직 없다. 대통령급 경력자도 물론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차관급 이하 고위 공직 경력자들은 심심찮게 보아왔고, 국회의원이니 판사니 검사니에 그들의 사모님들도 더러 보아왔다. 그들을 통해서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희망>이라는 것일 게다. 신문이라든가 텔레비전을 통해서 그런 직업의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절망을 하지만, 현장에서 어쩌다 하나씩 발견되는 그들을 볼 때 나의 절망은 희망으로 치환되곤 한다. 이것을 나는 소박하게 말해서 희망의 원리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 소박한 희망의 원리를 파괴하는 집단이 우리 사회에는 온존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다른 이름이 아니라 지도급 이름으로, 희망의 이름으로 희망을 파괴하며 온존한다.

2

"내가 정말 못살겠네. 무슨 희망을 어떻게 갖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그것을 몰라서 못살겠어."

간식 시간이다. 즐거운 간식 시간, 먹는다는 즐거움이 아니라, 모여앉아 잡담을 할 수 있어서 즐거운 시간이다. 못 먹어서 포한이 진 사람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있는가. 적어도 공사현장 주변에서 그런 사람은 발견되지 않는다. 어쨌든 수다떨기에 좋은, 그래서 즐거운 시간이다. 그 좋은 시간에 현장 경력 육개월째인 마씨가 한쪽 구석에서 혼잣말로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고 나선다.

그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하청업체에서 부사장을 하다가 벼락을 맞은 듯 갑자기 백수가 되어버린 사람이다. 대기업이라 해서 어마어마한 기업인 줄 알았던 <대기업>이 거품처럼 가볍고도 허무하게 공중분해되어 버린 까닭이다. 56세. 누구 말마따나 인생의 끝을 기다리고나 있기에는 너무 빠르고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거나 어중간한 나이. 그러나 그는 새로 시작했다.

백수생활 내내 신문만 뒤적거리다가 쫓기듯이 새벽에 거리로 나섰다나 어쨌다나. 그 새벽에 무슨 환장할 복권이라도 살 일이 있어서 나선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부터 문득문득 마누라의 숨소리조차도 무서워져서, 그러니까 하기 좋은 말로 풀이하자면 자의반 타의반 그렇게 정말로 쫓겨난 것이었다. 허구헌날 신문이나 만지작거리는 못난이,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그렇게 입버릇처럼 남편을 지겨워하던 마누라는 신문을 아예 끊어버렸다.

날마다 들어오던 신문이 안 들어오니까, 그는 갑자기 또 한 번 할 일을 읽어버렸다는 기분이었다. 제1면의 잘난 정치가들 얼굴에서부터 저 맨 끝에 잘나가는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까지 하나도 안 빼고 무슨 고래심줄이라도 씹어먹듯 샅샅이 뒤적거리다 보면 한나절이 금방금방이었는데 이제 그러한 행복이 날아가버린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는 마누라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이며, 또한 얼마나 지겨운 존재인가를 알았다. 곁들여서 자기가 얼마나 무능하며 준비성 없는 인간인지 알게도 되었다.

명색이 부사장이나 했으면서도 마누라 차 한 대 못사준 것은 고사하고, 허름한 산동네 스물한평 빌라를 집이라고 갖고 있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밤에 잠을 못이루고 뒤척거리던 그는 별이 빛나는 신새벽에 탁발을 나서는 중처럼 아무 할 일도 없으면서 거리로 나섰다. 그렇게 해서 거리의 인력시장을 알게 되었고, 공사현장을 알게도 되었다.

크거나 작거나 부사장이라는 명함을 가졌던 경력으로 막노동을 한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집에서 신문이나 뒤적거리며 눈치밥을 먹던 때를 돌아보면 끔찍하다고, 그때와 비교하면 천 배는 낫다고, 행복이 무엇인가를 이제야 알겠노라고 가끔씩 미소를 짓곤 했다.

처음 와서부터 내내 말도 잘 안 하고, 무엇을 시켜도 무엇을 시켰는지를 모르는 까닭으로 스스로 주눅이 들어 술자리에서조차 스스로를 소외시키던 그가 이제는 제법 묻지 않은 말도 꺼낸다. 그런데 그 말이라는 것이 매번 혼잣말이어서, 난해한 논문이라도 들여다보듯 각별히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단 한 마디도 알아들 수가 없다.

지난 며칠 동안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만 하더니 오늘에서야 드디어 사실을 말해준다. 사실을 말할 수 있을만큼 상황이 명백해지고, 명백해짐과 동시에 종료되었기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우리 마누라가 말야. 얼마나 지독한지 말야.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신문을 말야. 둘도 아니고 단 하나밖에 없는 그 취미를 말야. 꼴도 보기 싫다고 딱 끊어 버렸었거던. 그런데 말야. 한 열흘 전쯤에 말야. 신문을 다시 들어오도록 신청한 거야. 그것도 두 개씩이나. 나는 이게 웬 서비스인가 했어. 정말로 난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집에만 처박혀 있을 때는 꼴도 보기 싫어서 신문을 끊어버렸지만 이제 어쨌든 활동을 하게 되니까, 그런 나를 위해 그렇게 신문을 다시 볼 수 있도록 했나보다고, 그런데 말야. 하, 나 이거 참......."

견물생심이라고 했겠다.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대한민국에서 발행부수가 최고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그 거대한 신문사에서 21단 기어가 장착된 자전거다 뭐다 경품을 내걸고 구독자확보 사업을 벌이는 중인데 마씨의 부인이 그 덫에 걸렸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마씨의 집에는 자전거를 탈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마씨의 부인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알면서도 공짜라 하니까, 옆집에서도 신청을 하고 하니까 얼결에 그냥 신청을 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자전거 한 대가 공짜로 생겼다고, 마씨의 부인은 그날 밤 남편에게 자랑을 했다. 그리고는 그때서야 비로소 집에 자전거를 탈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심사가 꼬일대로 꼬인 마씨는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고, 그 부인은 다음날 자전거를 반납하고자 신문지국을 찾아갔다. 그러자 지국에서는, 자전거를 조립하느라 소요된 인건비로 일금 일만원을 청구했다. 졸지에 일금 일만원이 날아가버린 셈이었다.

돈 만원 그까짓 것, 부부가 화기애애할 때라면 정말이지 그까짓 것 아무것도 아닌 푼돈이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어디 그러한가. 마씨는 속에서 뭔가가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누라가 딱히 미워서는 아니었다. 마누라가 아니라 지독하게도 미운 뭔가가 집안에 도사리고 앉아 자신을 고문하고 있다는 느낌인 채로 그는 집에 있는 술이란 술은 모두 꺼내서 마셔 버렸다. 그리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말일세. 그날 이후로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그래서 집에도 못들어가고 요새 계속 여관방 신세를 지고 있네."

돈 만원 때문에 집안 살림 태반을 부숴버린 남자, 아닌게 아니라 그가 집으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그렇게, 쫓겨난 자의 얼굴인 채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사회의 이런저런 각종 사행심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해야 할 신문이, 스스로 사행심을 선도하고 있으니 무엇을 희망이라 하고 무엇을 절망이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들어주는 이도 별로 없는 얘기를 그는 혼자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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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더러운 것들이 신문이랍시고 만들어내며 계속 이 사회의 리더를 자임하는 한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 거야. 없는 거라구. 내 말이 엄살인가? 엄살처럼 들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