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보 코보(32 최종회차)
나쁜 놈, 그래서 좋은 놈
코보는 도서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거칠게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마음이 바빠서 예의고 뭐고 차릴 정신이 없었다. 사서 아줌마가 뜨악한 표정으로 코보를 살폈다. 코보는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대학을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대학? 학교 다니고 싶어? 그래, 잘 생각했어, 그럼, 학교는 다녀야지.”
“학교는 안 다녀요. 대학을 다니려 하는 거예요.”
“무슨 소리야? 대학이라니?”
코보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학을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그러니까 학교는 싫고, 대학은 가고 싶다, 그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오리의 말을 번역하고 싶어서요. 학교에서는 그런 공부 할 수 없으니까요.”
“오리? 오리라, 흐흠,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교는 건너 뛰겠다? 흐흠, 좋아. 방법이 있지. 아주 좋은 방법이. 대신 나를 아줌마라고 하지 않고 누나라고 불러줄래?”
“누나요?”
“응.”
“그렇게 안 불러주면 안 가르쳐 주고요?”
“당연하지.”
“그래도 안 해요. 못 해요. 엄마라면 또 모를까.”
큰일났다. 왜, 어쩌다가 엄마 소리가 나와 버렸지?
코보는 당황해서 시선을 돌렸다. 사서 아줌마도 엄마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엄마라니? 내가?”
사서 아줌마는 마치 낚시 바늘에 걸린 물고기를 낚아채듯이 아주 순간적으로 재빠르게 짧은 비명 같은 소리를 냈다.
“아니 저, 그게 아니고요. 안 가르쳐주시면 저 혼자 알아낼 거예요.”
코보는 얼버무렸다. 그러면서도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온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나쁜 놈.”
사서 아줌마는 코보의 머리통에 꿀밤 하나를 먹였다.
“제가 진짜 나쁜 놈인 거예요?”
코보는 진지했다. 진지한 코보의 표정을 사서 아줌마가 살폈다.
“응? 으흥, 그래서 좋은 놈이라고.”
사서 아줌마가 그러거나 말거나, 코보는 벌써 대학의 연구실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하고 있었고,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교에서 오리의 말을 번역하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만약에 없다면 어떻게 하지? 총장님한테 그런 연구실을 만들어 달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대학도 다니다가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코보의 눈앞에서 암컷 오리 흰날이가 알을 품고 있었다. 아록이와 다록이는 자기들도 알을 품겠다고 검불을 주워 모으고 있었고, 수컷 흰검이 원 투 두 마리는 하늘을 향해 꽤애꽤애 부드러운 소리를 내며 느긋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어쨌든 대학은 말이야. 다녀볼 필요가 있어, 그런 것 같아.”
코보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벌떡 일어섰다.
“대학 공부를 하려면 일단 검정고시를 봐야 해. 그거 알지? 중학교랑 고등학교 과정을 마쳐야 한다는 거.”
사서 아줌마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발길을 붙잡고 있었지만, 마음이 급해진 코보는 거칠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까짓 검정고시, 나도 알거든요. 일 년이면 된다니까요.”
재빠르게 걷고 있는 코보의 입에서 말이 저절로 술술 나오고 있었다. 마치 사서 아줌마가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요. 문제는 내가 이제 곧 위대한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아셨어요?”
도서관을 빠져 나온 뒤에도 코보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혼잣말이 아니었다. 중얼거리는 것도 아니었다. 하늘을 보고 하는 소리도 아니었고, 땅을 보고 하는 말도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볼 수 없는, 오직 한 사람 코보 자신만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을 향해서 코보는 천천히, 침착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리의 말을 알아듣고, 그 말을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인 거예요, 코보는, 이제 곧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되는 거라니깐요.”
잰걸음으로 달리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온 코보는 오랫동안 쓰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일기장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숨을 한 번 길게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천천히 뿜어낸 다음 빈자리에 이렇게 썼다.
오늘의 맹세.
나는 바보다. 오래 전부터 바보였다. 앞으로도 계속 바보 할 거다. 그래서 위대한 바보, 위대한 바보 코보가 될 거다. 잊지 말자. 죽는다 해도 잊지 말고 지키자.
쓰기를 마친 코보는 또 한 번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천천히 내뿜은 다음 일기장을 덮어 책상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책상 옆으로 마치 버림받다시피 처박혀 있던 라면상자를 끄집어 당겨서 먼지를 털어낸 다음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교과서를 한 권, 두 권 천천히 꺼내들기 시작했다. 위대한 바보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