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보 코보(28)
물속에 알을 낳는 오리
“어이, 코보.”
장마가 끝나고, 날씨가 밥솥에서 나오는 수증기만큼이나 뜨겁게 축축해진 뒤로 촉새 아줌마가 이상해졌다. 코보를 부를 때면 ‘코보야’가 아니고 항상 앞에 ‘어이’를 넣고, 잠시 뜸을 들이다가 ‘코보’소리를 보태곤 했다. 그 바람에 ‘어이’와 ‘코보’가 따로 있어서, 코보를 부르는 소리인지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촉새 아줌마가 그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코보를 부를 때는 언제나 뒷집에 새로 이사 온 젊은 아줌마가 붙어 있었다.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붙어 있다고 해야만 말이 될 정도로,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이기라도 한 듯이 바싹 붙어 있었다. 항상 팔짱을 끼고 있었고,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지 볼 때마다 소곤소곤 정답게 말을 섞고 있어서, 두 사람이 혹시 연애라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코보는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다.
“우리 이 사람이 말이야.”
촉새 아줌마는 코보를 쳐다보며, 턱으로 뒷집 젊은 아줌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코보, 자네 집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많이 불편하다, 이런 말이거든.”
“네?”
“개가 똥을 누면 사람이 치우듯이, 오리가 똥을 누면 사람이 치워야 말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말이지. 온 동네가 오리똥 냄새 때문에 살 수가 없다, 파리는 또 얼마나 꼬이고, 응? 이게 사람으로서 할 일이냐, 이런 말이야, 내 말은. 응?”
간단하게 한 마디만 해도 알아들을 것을, 촉새 아줌마는 그렇게도 빙빙 돌리고 꼬아서 말했다. 그 바람에 코보는 한참이나 연구를 하고서야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꿈에서도 생각지 못한 복병이 나타난 셈이었다.
사실로 오리 울타리 안은 지저분했다. 파리도 많았다. 코보는 그것을 보면서도 크게 의식을 못했었다. 촉새 아줌마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즉시 웅덩이 밖의 배설물들을 긁어내고, 웅덩이 내부도 물을 갈아주는 등의 청소를 하기로 했다.
약수터와 연결된 호스에서는 항상 그만큼의 물이 잴잴잴 보기 좋게 흘러 나왔다.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지면 조급증이 날 테고, 너무 콸콸 쏟아지면 저걸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 테지만, 잴잴잴 흘러나오니까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귀에 들리는 소리 또한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었다.
코보는 호스에 다른 호스를 연결해서 약수터 물을 마당으로 돌리고 웅덩이 안의 물을 퍼내기 시작했다. 웅덩이 안에는 이상한 흙이 십 센티도 넘게 쌓여 있었다. 처음에는 흙이라고 생각했지만, 흙이 웅덩이에 들어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것은 흙이 아니라 오리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바보들아, 똥 누는 일을 밖에서 봐야지 물속에서 보냐?”
코보는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오리들은 자기들도 할 말이 있다는 듯 꽥꽥꽥 소리를 내며 한쪽으로 몰렸다가 다시 다른 쪽으로 몰려가기를 되풀이했다.
“뭐냐. 너희들이 뭘 잘 했다고, 응? 뭐가 불만이냐고.”
웅덩이의 물을 다 퍼낸 코보는 삽으로 오니를 퍼내기 시작했다. 마당으로 일단 퍼내서 물이 빠지고 마르면 동네 밖에 논이나 밭에 거름용으로 내다 쌓아놓을 생각이었다. 한 삽을 퍼내고, 두 삽을 퍼내고, 세 번째 삽을 넣다가 그것을 발견했다. 오니를 뒤집어써서 더럽기는 했지만 타원형이 뚜렷한 그것은, 그것은 틀림없는 알이었다.
한 개가 아니었다. 하나를 집어 들고 이게 뭐냐, 세상에, 세상에,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보면 또 하나가 있고, 또 하나가 있었다. 그렇다면 저 시커먼 오니 속에도 있지 않을까, 해서 두 손으로 오니를 뒤집어본 결과 정말이었다. 오니 속에서 두 개가 더 나왔다. 이렇게 해서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알이 웅덩이 속에 마치 누군가가 실수로 버려놓은 듯이, 감춰놓은 듯이 발견되었다.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할머니.”
코보는 오리 알 다섯 개를 품에 안고 종종걸음을 쳤다. 입이 저절로 할머니를 불러대고 있었다. 할머니 외에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할머니 앞에 앉아서도 할머니 소리만 나올 뿐이었다. 할머니는 어안이 벙벙해서, 보이지도 않는 손주를 본다고 고개를 한껏 쳐들고 좌우를 둘러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못했다. 코보는 할머니의 그런 모습에 그만 애가 타서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오리가 알을 낳았어. 오리가 알을 낳았어.”
이번에도 같은 소리만 반복해서 나왔다. 할머니는 그 소리만으로도 알 것은 다 알았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어디, 어디 보자.”
코보는 오리 알 한 개를 할머니의 벌린 손바닥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또 한 개를 내려놓았다. 잠시 뒤에 또 한 개를 내려놓으려다 그만두고 할머니의 다른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품에 있는 오리 알을 만져보게 했다. 오리 알 세 개를 한꺼번에 잡기에는 할머니의 손이 너무 작았다.
“정말이네. 오리 알이네. 아이고 우리 왕자님이 큰 일 했다, 큰 일 했어.”
이어서 할머니는 깨질지도 모른다면서 오리 알 두 개를 방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코보는 다른 세 개도 방바닥에 내려놓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자세히 보니 색깔이 약간 달라 보였다. 세 개는 전체적으로 뽀얀 색이었지만, 다른 두 개는 살짝 푸른빛이 돌았다.
“어어, 이거 왜 이러지? 벌써 썩은 것일까?”
“왜, 색이 달라?”
“네. 두 개가 파래요.”
“오리는 닭하고 틀려서 자기 색깔이 있는 알을 낳는단다.”
“어? 정말?”
“그렇대두.”
코보는 연거푸 와아, 와아, 소리를 내며 오리 알을 보고, 또 보았다. 그것을 깨서 먹는다는 게 너무 아깝고 미안했다. 그래서 그날은 그대로 두고 보기만 하고, 다음날 아침에는 그 맛이 너무도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두 눈 딱 감고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기름을 둘렀다.
이어서 오리 알을 깼다. 전체적으로 뽀얀 빛이 감도는 하나와 푸른빛이 도는 것 하나 그렇게 두 개를 깼다. 둘 다 썩지는 않았다. 그리고 확실히 달랐다. 할머니가 엉뚱한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고,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과장을 하지도 않았다는 게 금방 밝혀졌다. 오리 알은 한약이라고 했던 구멍가게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오리 알은 계란에 비해 흰자위가 아주 진했다.
계란은 깨서 조금만 기울이면 금방 쏟아져 나오지만, 오리 알은 흰자위가 아주 걸쭉하고 끈적임도 강해서 껍질에 붙은 채로 잘 떨어지지를 않았다. 노른자위도 계란에 비해 노란빛이 훨씬 진해 보였다. 그리고 맛은, 계란에 비해 약간 비린내가 있다는 느낌이어서, 알을 먹으면서도 생선을 먹는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남은 오리 알은 촉새 아줌마와 촉새 아줌마의 ‘애인’으로 짐작되는 젊은 아줌마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마지막 한 개는 사서 아줌마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촉새 아줌마는 “살다 보니 이런 선물을 받는 날도 있다”면서 죽는다고 웃어댔고, 사서 아줌마는 “감격이네. 감격이네.” 소리만 몇 번이나 하다가는 엉뚱하게도 눈물을 주룩 흘렸다.
“다음에 또 드릴게요.”
코보는 촉새 아줌마와 사서 아줌마에게 별 생각도 없이 그런 약속을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오리는 그 뒤로도 계속 알을 낳기는 했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자유주의자들인 모양이었다. 똥을 아무 데서나 찍, 소리를 내며 시원스럽게 내놓듯이, 알을 낳는 것도 꼭 그런 모양새였다.
물 위에 떠서 신나게 놀던 중에 문득 가만히 알을 낳아 버리는가 하면, 물 밖의 흙 위에 알을 낳았다가도 자기들의 보행에 방해가 되면 넓적한 부리로 밀어내거나 발로 차서 물속에 처박아 버리고 있었고, 어떤 날은 두 개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달랑 한 개만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아예 없기도 했다.
아예 한 개도 없는 날에는 실망으로 입맛만 다시고, 한 개만 달랑 있는 날은 할머니에게 드리고, 두 개를 낳은 날은 할머니 한 개 코보 한 개, 이렇게 나누다 보니 촉새 아줌마건 사서 아줌마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한 달 가까이나 지나서야 촉새 아줌마와 사서 아줌마에게 오리 알 약속을 했다는 생각이 나기는 했지만, 오리가 알을 안 낳는 날이 너무 많아서 어쩔 수 없다고, 선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없어서 안 하는 거라고 애써 생각하며 그 일은 그만 잊어버리려고 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