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위대한 바보 코보(25)

두꺼비네 맹꽁이 2021. 5. 4. 11:44

준공식 날의 새로운 공부

 

착공식은 생략했지만 준공식도 생략해서는 안 된다고 초아가 우겨서 준공식을 하기로 했다. 마음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초아는 수다스럽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널리 알렸다.

 

좁은 마당이 꽉 찼다. 마루에도 사람이 앉았고, 방에도 앉았다. 오래 전부터 할머니와 알고 지내 왔거나, 연배가 비슷한 할머니들이 방에 앉았고, 보다 젊은 아줌마들은 마루에 앉았다. 마당에는 남자들과 아이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래봐야 스무 명을 겨우 넘는 정도였지만, 직업이 없어서 하루 종일 골목을 서성이거나, 손님도 없는 구멍가게를 지키며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사람은 다 모인 것 같았다. 밤에 일하고 낮에 노는 사람도 거지반 다 모였다. 며칠 전에 새로 이사 왔다는 낯선 여자도 보였다.

 

사서 아줌마는 떡시루를 먼저 보내고 본인은 나중에 왔다. 사회복지사 아줌마는 손수 방울토마토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촉새 아줌마는 모처럼 신이 나서 돼지갈비를 스무 근도 넘게 쪄 냈다. 그랬으면서도 자랑은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없는 돈에 돼지갈비를 스무 근이나 쪄 냈다고, 앞으로 두 달은 굶어야겠다고 우는 소리로 자랑을 했겠지만, 이번에는 전혀 그런 자랑이 없이 그저 누군가 물어보는 말에 스무 근이라고, 그렇게 심상한 어투의 설명이나 하고 있을 뿐이었다.

 

뽀야는 자기가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이 사람들 사이를 정신없이 헤매고 다니며 갈비를 얻어먹었다. 울타리 속의 오리들은 자기들이 주인공인 줄도 모르고 꽤꽤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도망 다니느라 바빴다. 물 위에서 한가롭게 놀던 중에 갑자기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요란스런 소리를 내며 한 곳으로 몰려갔다. 물 밖으로 나와서 날개 속에 머리를 처박고 졸다가도 갑자기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인지 또 그렇게 한 곳으로 몰려가곤 했다. 그래봐야 울타리 안에서 어디로 얼마나 도망갈 수 있을까마는, 오리들은 그렇게 자꾸 몰려다니기라도 하는 것이 아무 짓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초아는 이곳저곳 사람들 사이를 부지런히 쏘다니며 상황을 살피는 연방 지휘를 했다. 태권브이 일당 세 명은 초아의 지휘에 따라 음식 접시를 날랐고, 코보는 술이 필요한 어른들 앞을 찾아다니며 술을 따랐다.

 

허허 이것 참, 살다가 별 이상한 술잔을 다 받아보네, ?”

담뱃가게를 겸하는 구멍가게 할아버지가 술 한 잔을 받고 나서 히죽히죽 웃고, 술을 마시고 나서도 또 웃었다.

 

오리라, 오리한테 집을 지어준 기념식을 한다, 허헛 참 거.”

 

그때부터 사람들의 관심이 오리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의 잡담이나 가끔 하며 갈비나 뜯던 사람들이 갑자기 오리가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몇 사람은 오리를 구경한다고 자리를 일어서고 있었고, 몇 사람은 오리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늘어놓고 있었고, 또 몇 사람은 오리나 혹은 오리 알이 사람의 어디어디에 좋다는 등의 한의학적 지식을 쏟아내고 있었다.

 

목화로 뽑아낸 목실로 오리 알을 꽁꽁 묶어서 말이지. 이글이글한 잉걸불에 구워놓으면 그 맛이 아 참, 기막히지. 그럼. 계란과는 비교가 안 되요, 그러엄.”

 

그 말이 코보의 귀에 쏙 들어왔다. 오리가 알을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오리는 왜 자기들이 직접 새끼를 까지 못하느냐고 할머니에게 여쭤보면서도 자기가 키우는 오리도 알을 낳을 수 있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키우는 오리가 알을 낳는 건 너무도 당연한 일 같았다.

 

나는 정말로 바보인가 봐.

코보는 내심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도 중요한 일을, 너무도 당연한 일을 왜 그렇게도 까맣게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렇긴 해도 한편으로는 신이 났다.

 

오리가 알을 낳는다, 이제 곧 알을 낳게 될 것이다.

 

오리가 알을 낳으면 할아버지의 말씀처럼 목실로 꽁꽁 묶어서 불에 구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에 두 개 낳으면 할머니 한 개, 코보 한 개. 하루에 하나만 낳으면 첫날은 할머니, 그 다음 날은 코보. 그렇게 계획도 세웠다. 그러자 갑자기 어떤 녀석이 알을 낳을 수 있는 암컷인지 궁금해졌다.

 

할아버지, 혹시요. 어떤 녀석이 암컷이고, 또 수컷인지 알 수 있으세요?”

 

구멍가게 할아버지는 금방 일어서서 오리 울타리 앞으로 갔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것이 암컷, 저것도 암컷, 저것은 수컷, 하고 지목해 나갔다.

 

암컷 세 마리에 수컷이 두 마리라는 얘기였다. 뽀야에게 엉덩이를 물린 녀석도 수컷이었다. 그러고 보니 외모가 제법 화려했다. 소리도 확실히 달랐다. 성악으로 말하자면 소프라노에 가까웠다. 그러면서도 감기에 걸려 목이 쇤 것처럼 아주 높지가 않고 탁했다. 반면에 암컷은 성악으로 말하자면 테너에 가까웠다. 그것도 얌전한 테너가 아니라 제멋대로 쩌렁쩌렁 활달하게 고함을 지르는 테너였다.

 

이상했다. 왜 수컷은 소리가 얌전한 편에 들고 암컷은 제멋대로 활달한 편에 드는 것일까. 코보는 그게 아주 재미있었다. 재미있어서 새삼스럽게 보고, 또 보았다.

 

오리는 개구리가 보약이란다.”

할아버지가 새로운 정보를 내놓았다.

 

개구리가요?”

그럼, 개구리만한 음식이 없지, 오리한테는.”

 

오호, 개구리라, 개구리.

 

코보는 날마다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는 자신을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도 개구리는 더러 잡았었다. 그때는 아무 쓸 데도 없으면서 개구리를 잡아놓고 나중에 처리할 방법을 몰라 허둥지둥하다가 슬그머니 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쓸 데가 생겼다. 얼마든지 잡아도 나중에 난감할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앞으로는 먹을 것 걱정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지금까지는 오리가 먹는 것이 별로 많지 않아서 밥을 한 숟가락씩 덜어서 물에 말아 주곤 했지만,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오리를 언제까지나 그렇게 밥을 먹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개구리를 잡아다 주면, 식량 걱정도 덜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