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위대한 바보 코보(23)

두꺼비네 맹꽁이 2021. 4. 30. 11:11

너무 엉뚱하게 알아버린 진실

 

촉새 아줌마는 미용실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막 나오는 중인 촉새 아줌마를 코보가 먼저 보았다. 보기는 했지만 고개를 숙인 채 후딱 지나가려고 했다.

야 코보.”

걸렸다.

 

넌 아줌마가 밉냐? 아니면 무서워?”

아뇨.”

근데 왜 눈 감고 그냥 도망치려고 해.”

도망은 무슨, 못 봤어요.”

그러지 말고 나랑 얘기 좀 하자, ?”

 

코보는 손을 잡혔다. 얼결에 빼내려 했지만, 표정을 보고는 금방 힘이 빠졌다. 예전의 촉새 아줌마가 아니었다. 예전의 촉새 아줌마가 뺀질뺀질한 낯짝에 찢어진 눈꼬리로 정나미 떨어지게 사람을 노려보는 자세였다면, 지금의 촉새 아줌마는 뭔가에 걸려 달팍 넘어진 채로 그냥은 일어설 수가 없다고, 그래서 손 좀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의 그것이었다.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뭐 먹을래.”

촉새 아줌마는 벌써 좌우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였다. 코보는 몸을 뒤로 빼기는 했지만 손을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렇게까지 매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두 사람 사이에 뭔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짜장면이요.”

불쑥 한 마디가 나왔다. 길 건너에 짜장면 집이 있었다.

 

탕수육 먹을래?”

자리에 앉자마자 촉새 아줌마의 입이 열렸다.

 

아뇨. 짜장면이면 돼요.”

되긴 뭐가 돼. 탕수육 먹자.”

아니라니깐요, 짜장면이면 된다니깐요.”

 

여기 짜장면 둘이요.”

소리 높여 외치고 나서 촉새 아줌마는 물을 마셨다. 물 한 컵을 다 마셨다. 그리고도 갈증이 남았다는 듯 한 컵 더 마셨다.

코보야.”

?”

아줌마는 초아가 없으면 못 살아. 너도 알지?”

왜요?”

 

왜긴. 이날 이때까지 초아 하나 크는 걸 보며 살아 왔는걸. 학교 못 다니겠다고, 유학 가겠다고 할 때는 내가 한 달 내내 잠도 못 잤어. 그러면서도 보냈거든. 앞날은 내 것이 아니라 초아 자신의 것이니까. 그래서 보냈던 거야. 그런데 그놈의 유학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 줄이야. 내가 요새는 내 발등을 찧느라 잠을 못 잔다. 그렇게도 똑똑하던 애가 그렇게도 이상한 바보가 되어 버리다니.”

 

촉새 아줌마의 목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그러다가 기어이 울먹이는 소리가 되더니 눈물까지 나왔다. 눈물 뒤에는 콧물이 흘렀고, 그 속으로 다시 한숨 소리가 섞여 들었다.

귀한 자식일수록 개똥밭에 굴려야 한다 해서 이년, 저년, 그렇게 욕도 하고 했지만, 아줌마의 본심은 절대로 그것이 아니란다. 알지? 너도 알 거야.”

 

눈물에, 콧물에, 한숨소리까지 뒤섞인 촉새 아줌마의 입은 계속 움직였다. 주문한 짜장면이 나왔지만 그것조차 의식을 못했다.

초아가 코보를 엄청 좋아하니까, 그래서 아줌마가 너한테 부탁하고 싶은 거란다. 코보는 초아랑 많이 다르지 않아? 그렇지? 우선 집을 떠날 생각이 없고, 그렇지? 코보도 역시 초아를 많이 좋아하고, 그렇지?”

 

근데 아줌마.”

? 그래 말해봐.”

저 이거, 짜장면 먹고 싶거든요.”

, , 그렇네. 그래, 먹어, 어서. 먹자. 그래, 먹자.”

 

드디어 짜장면을 비비기 시작했다. 코보의 입에서는 잇달아 침이 넘어갔다. 얼마 만에 맡아보는 짜장면 냄새인지 몰랐다. 촉새 아줌마가 다 비빈 짜장면 그릇을 들고 코보의 그릇에 절반 이상을 덜어주었다. 그 손길이 코보는 고맙고, 반갑고, 그리고 뭉클해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보고 있자니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코보는 후딱 고개를 숙이고 후루룩 짭짭, 짜장면을 먹어대기 시작했다.

 

코보야.”

?”

촉새 아줌마는 사람을 불러놓고 말이 없었다. 짜장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고 오물거리다가 다시 불렀다.

코보야.”

?”

 

아줌마도 이런 말이 얼토당토않다는 건 아는데, 아는데 말이야. 너희 둘이 결혼하면 안 될까? 코보가 초아한테 결혼하자고 매달리면 안 될까?”

이게 뭔 소리냐?

코보는 짜장면 한 젓가락을 입에 넣다 말고 동작 그만 상태로 들어갔다.

 

그래라, ? 너희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너만한 나이에 결혼하셨고, 안 될 이유가 없는 것이거든. 너희 할머니는 벌써 전에 좋다고 하셨고, 나도 이제는 좋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으니까, 그렇게 하자, ?”

아니 그럼 그게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었단 말인가?

코보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꼿꼿하게 앉은 자세로 물끄러미 촉새 아주마를 응시했다. 정신이 아주 나간 사람 같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어디서 또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코보는 눈을 갸름하게 뜨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그래, 생각났다. 꿈이다. 꿈속에서 보았던 촉새 아줌마의 모습을 현실에서 다시 보고 있었다. 다른 것은 단어와 문장뿐이었다. 꿈에서 촉새 아줌마는 잡아다오, 잡아다오, 그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꿈에서 잡아다오’, 소리가 현실에서는 결혼하자고 해라로 바뀌었을 뿐 그 간절한 목소리는 같았다. 절박한 표정도 같아 보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날 밤 꿈에 나왔던 초아의 모습과 그 목소리도 꿈만은 아니었던 것인가?

코보는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어 보았다. 촉새 아줌마는 사라지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자세 그대로 코보를 보고 있었다.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아줌마.”

? 그래, 말해봐.”

초아 누나는 아빠 엄마를 만나고 싶은 거예요.”

아빠 엄마를? 죽은 사람을 어떻게 만나?”

그래서 유학을 간 거예요. 학교에서는 그런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유학을 가면, 거기서는 다른 것을 배우니까, 그러면 아빠 엄마를 만나는 방법을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고요.”

 

하이구 참 내. 죽은 사람을 만나서 뭐하게?”

왜 자살했는지, 그것을 여쭤보고 싶은가 보던데요.”

자살? 자살이라니?”

촉새 아줌마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완전히 경악해 버린 것 같았다. 그 한 마디 비명을 질러놓고는 자신의 목소리에 자신이 놀라기라도 한 듯 입을 쩍 벌린 채 좌우사방을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다가 천장을 향해 눈을 한참이나 끔뻑거리고, 그러다가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그, 그것을 어떻게…….”

자살이 맞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코보의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치기 시작했다. 눈앞이 캄캄했다가 부시게 반짝거렸다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 몇 개의 낱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똑똑하고 계산 잘하는 이모.

이모가 맡아서 관리하는 돈.

사망보험금.

택시운전기사 아빠.

 

모두가 초아의 입에서 나온 말들이었다. 꿈에서가 아니라 생시에 한 말들이었다. 꿈에서 들었던 말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택시운전기사인 아빠가 왜 늦은 밤에 다섯 살밖에 안 된 딸을 집에 두고 아내와 단둘이서 차를 몰고 춘천까지 가다가 사고를 내고 죽었을까.

꿈에서 들었던 말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나는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코보는 어쨌든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코보 자신이 생각해낸 말이 아니었다.

 

, 안 되겠다. 오늘은 이만 가자.”

촉새 아줌마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어대며 일어섰다. 황망하게 서두르는 그 모습이 흡사 어디로 도망을 치려는 사람 같기도 하고, 집에 있는 감춰둔 무슨 보물상자 같은 것을 얼른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바빠진 사람의 조바심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