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보 코보(17)
가슴 속을 흐르는 일흔 개의 강
멀리서 소쩍새 소리가 들렸다. 소쩍새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할머니는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평소에는 한 시간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지만, 소쩍새 소리가 들리는 밤이면 온 밤을 꼬박 한숨도 못 자고 아침을 맞이하곤 했다.
그런 날은 코보도 역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 소리가 무서워서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귀를 막았어도 그 소리가 들리면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무덤을 더듬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소쩍새 소리가 정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서움이 아니라 친구 같았다. 그때부터 코보는 가만히 누운 채로 어둠 속을 말똥말똥 쳐다보며 소쩍새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코보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쪽에서 ‘소쩍’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쪽에서 ‘소쩌억’하거나, 한쪽에서 ‘소쩌억’ 하고 소리를 내면 다른 쪽에서 ‘소쩍’ 한다는 것을 알면서부터 코보는 밤만 되면 은근히 소쩍새 소리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암수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어둠 속에서 서로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쪽이 암컷일까. 어떤 소리가 수컷의 것일까. 쟤들은 왜 저렇게 늘 떨어져서 밤만 되면 서로를 찾고 있는 것일까. 혹시 눈이 안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밤만 되면 서로를 볼 수 없는 무슨 지독한 운명이라도 타고 난 것일까.
코보의 상상은 깊어져 갔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아침이 와 있곤 했다.
“할머니.”
“오냐.”
“할머니는 왜 소쩍새 소리가 들리면 잠을 못 자?”
“잠을 안 자도 가슴이 성성하게 살아서 흐르니까, 마른 강에 물이 철철 넘쳐흐르니까, 그래서 안 자는 거지. 그래서 잠을 안 자도 괜찮은 거지.”
“에이, 또 어려운 책 같은 얘기, 그런 어려운 얘기 말고오.”
“지금은 어려워도 나중엔 다 쉬운 얘기가 되는 거란다. 코보도 먼 훗날 손주가 그렇게 물어보면 이렇게밖에는 말을 못할 걸?”
“그걸 어떻게 알아?”
“알지 왜 몰라. 너 다섯 살 때는 지금 같은 얘기 하나도 못했거든. 말이라고 해봐야 밥줘, 배고파, 똥 마려워, 할머니, 할머니, 그런 소리밖에는 뭐, 할 줄 아는 말이 있었어야지. 그러던 사람이 지금은 이렇게 어렵다는 말도 하고, 소쩍새 소리에 잠 못 자는 이유가 뭐냐고 목마른 강아지처럼 칭얼대기도 하고, 히히, 참 많이 컸다, 우리 코보.”
코보는 입을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이잉, 소리를 내며 할머니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갑자기 모든 게 확실해졌다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미래가 지금 바로 여기 이 할머니의 가슴에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몸부림이라도 치고 싶어졌다.
“젖 주랴?”
할머니는 가슴을 풀어헤쳤다. 코보는 젖꼭지를 입에 물었다. 상자 안에서 오리가 자기도 뭣 좀 달라는 듯이 꽤꽤, 소리를 냈다. 한 마리가 소리를 내자 또 한 마리가 꽤꽤 하고, 곧이어 다른 녀석들도 꽤꽤, 하고 있었다.
코보는 가만히 엎드린 채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리의 소리가 서로 달랐다. 처음 두 마리는 같은 소리였지만 나중에 세 마리의 소리가 약간 달랐다. 누군가 만약에 그 소리를 글자로 써 보라고 한다면 그냥 다 같이 꽤꽤, 했다고 써야 할 테지만, 귀에 들리는 소리는 다 같은 꽤꽤가 아니라 다른 울림이 있었다.
그림물감으로 진한 빨간색을 칠해놓고 그 위에 약한 노란색을 덧칠했을 때만큼이나 잘 보이지는 않으면서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그런 다른 소리, 그 다른 소리를 구별해 내느라고 코보는 한참 동안이나 숨쉬기조차 멈춰야 했다.
소리가 약간 다른 두 마리가 암컷일까? 아니면 수컷인가?
아직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생각이었다. 해놓고 보니 신기하고, 뭔가 보물이라도 새롭게 얻은 기분이었다. 오리 다섯 마리가 모두 암컷이거나 수컷은 아닐 것 같았다. 틀림없이 몇 마리는 성별이 같을 것이고, 또 몇 마리는 다를 것이다.
남자가 두세 마리인가, 아니면 여자가 두세 마리인가.
다시 멀리서 소쩍새 소리가 들렸다. 한쪽에서 소쩍, 하고 다른 한쪽에서 소쩌억, 한 뒤에 다시 다른 쪽에서 소쩍, 하고 있었다. 코보는 할머니의 젖에서 입을 떼고 모로 누웠다. 모로 누운 채로 손을 뻗어 할머니의 젖가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할머니.”
“오냐.”
“할머니도 초아 누나만한 때가 있었지, 응? 그렇지?
“그걸 말이라고.”
“그러면 할머니도 그 나이 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
“하늘에 해가 전과는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면, 그러면 사람은 누구나 허물을 벗고 다른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거란다.”
“해가 달라져? 어떻게?”
“해는 변하지 않아도 그것을 보는 사람 마음은 변하니까 달라 보이는 거지.”
“그럼 초아 누나는 지금 하늘에 해가 다르게 보이는 걸까?”
“사람은 누구나 그런 때를 지나는 거니까.”
코보는 다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빠졌다. 초아가 변했다. 틀림없이 변했다. 하긴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을 때, 엉뚱하게도 무슨 유학을 간다고 했을 때, 그리고 간다는 말도 없이 새벽에 집을 나가버렸을 때, 그때 이미 변해 있었기는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무섭게 변할 건 또 뭐람. 코보는 새삼 촉새 아줌마가 불쌍했다.
“할머니.”
“오냐.”
“아까 낮에, 낮에 있지. 촉새 아줌마가 뭐라고 했어?”
“아무 말도 안 했어.”
“방으로 들어와서 할머니에게 뭐라고뭐라고 한참 하던 걸? 그럼 그때 울었던 거야, 혹시?”
“으응. 있지. 그냥 옛날 이야기였어. 자신의 가슴속을 내가 다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한 번 더 풀어헤쳐 놓고 같이 들여다보자는 거였어.”
“가슴속을? 할머니가 다 알아?”
“알지 그럼. 할미가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옆집의 그 애가 갓난쟁이였으니까. 그리고 할미가 봉사 될 무렵에 그 애가 스물한 살이었던가. 그랬으니 볼 것 다 봤고, 다 알지.”
“볼 것 다 봤다고? 그럼 촉새 아줌마가 왜 결혼도 안 하는지, 그것도 다 알겠네?”
“으음. 안다고 하면 말해 달라고 할 테니 모른다고 해야겠다.”
“왜에?”
코보는 놀랐다. 순간적으로 이상한 배심감도 느꼈다. 하지만 할머니의 다음 말을 듣고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소중한 사람한테도 말할 수 없는 게 있는 법이거든. 자기 자신의 일이라 해도 모른다고 해야만 할 경우가 있는 거란다. 그래서 사람인 거지. 남의 일이라면 더욱더 말할 수 없는 것이지.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아아, 그렇구나.
코보는 혼자 속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전부터 촉새 아줌마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다. 목소리가 남자 같다는 정도가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 말 못할 비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초아 누나는 그 비밀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그렇게 매섭게 자기 이모를 다그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확실히 그랬다. 초아는 자기 이모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랑하니까, 너무도 깊이 사랑하니까, 그래서 나온 어떤 결단이 초아를 그렇게 냉정하고 무섭게 보이도록 했을 것이라고 코보는 생각했다. 생각을 그런 쪽으로 정리하고 나니 문득 태권브이 일당이 떠올랐다.
돈 봉투를 통째로 주는데도 얼른 받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뭔가 살짝 겁을 먹은 표정 같기도 했던, 간신히 어떻게 돈 봉투를 받아 들고는 이죽거리는 소리 한 마디 없이 도망이라도 치듯이 등을 돌리던, 그때 보여준 태권브이의 당혹스런 표정을 코보는 잊을 수 없었다.
“코보야.”
소쩍새 소리가 또 한 번 방안을 맴돌고 난 직후였다. 할머니가 뭔가를 결심했다는 투로 불렀다. 그 목소리의 울림이 심상치 않았다. 코보는 긴장해서 입으로는 대답을 못하고 얼굴을 할머니의 옆구리에 바싹 들이대는 방식의 대답을 했다.
“사람에게는 일흔 개의 강이 있단다. 자기 안에 있으면서도 자기가 건너야 하는 오묘한 강인데 말이다. 태어나서 스물한 개의 강을 건너지. 그래서 사람이 태어나면 스물한 날 동안 잡인의 출입을 금하는 것이란다. 죽을 때는 마흔아홉 개의 강을 건너는 것이라서,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마흔아홉 날을 경건한 자세로 큰소리 내지 않고 기도를 하는 거란다.”
“왜 태어날 때 건너는 강보다 죽을 때 건너는 강이 더 많아?”
“태어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어려운 것이니까.”
죽는 것이 더 어렵다.
코보는 그 말을 입 안에 넣고 굴려 보았다. 죽지 못해 산다고 푸념을 늘어놓던 어느 날의 촉새 아줌마가 떠올랐다.
“할머니.”
“오냐.”
“그럼 촉새 아줌마는 가슴에 강이 다른 사람보다 하나가 적은 거예요? 그래서 결혼을 못 하는 거예요?”
“하나가 더 많은 것일 수도 있지.”
“으응.”
이제 정리가 되었다. 많거나, 적거나. 아아, 그래서 촉새 아줌마의 목소리가 그렇게 남자 같은가 보구나.
코보는 다음날 초아에게 그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해도 될까 안 될까, 하는 문제를 놓고 혼자 속으로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그러다가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고 말았다. 고민을 너무 오래 했던 탓일까. 엉뚱하게도 깨진 달걀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오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