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바보 코보(2)
말하는 오리
마당으로 들어서려 하는 순간 촉새 아줌마네 개 뽀야가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망태기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귀신같은 녀석이었다. 달려온 뽀야는 그대로 껑충 뛰어 망태기를 물었다.
오래 전에 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었다고 하는, 모시로 얼기설기 엮어서 그물처럼 생긴 망태기는 질겼다. 질긴 망태기 그물에 이빨이 걸린 채로 대롱대롱 매달린 꼴이 돼버린 뽀야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상자 안에서는 새끼 오리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오리 소리와 개 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앉은걸음으로 금방 밖으로 나올 기세였다. 코보는 얼른 망태기를 부려놓고 뽀야를 주먹으로 한 대 쥐어박았다. 뽀야는 깨갱, 소리를 내고서도 돌아가지는 않고 망태기 속의 보이지도 않는 오리를 향해 멍멍, 짖어대다가 낑낑, 소리를 내다가 다시 혀를 날름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는 등 어쩔 줄 몰라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어매, 오리를 사 왔나 보네?”
할머니는 그새 앉은걸음으로 마루에까지 나왔다. 코보는 망태기 속의 상자를 꺼내 품에 안고 달려갔다. 출렁거리는 상자 안에서 오리들이 죽는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할머니, 이거요. 그냥 오리가 아니에요.”
“오리가 오리지, 그냥 오리가 아닌 오리는 또 뭘까?”
“말하는 오리에요. 정말이에요.”
“그야 할미도 알지. 지금도 말하네 뭘, 빼액빽 하고.”
“에이 그런 소리 말고요. 진짜 말을 한다니까요.”
“말은 다 진짜 말이지 가짜 말도 있을까. 사람이 사람 말을 하듯이 새는 새의 말을 하고, 오리는 오리의 말을 하는 거지.”
“네?”
“그러니까, 그건 그렇고, 오늘 저녁하고 내일, 모레 아침, 점심까지 그렇게 사흘 동안 김치만 놓고 밥을 먹어야 한다는 거지? 말하는 오리 덕분에?”
“네? 어우 참 이상하네.”
코보는 연거푸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억울하다는 느낌이었다. 뭐가 왜 억울한 것인지 알 수는 없었다. 장보러 갔다가 장볼 돈으로 오리를 샀다. 이것은 사실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할 일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만 것 같았다.
정말로 이상하네 이거?
코보는 상자 속의 오리를 들여다보았다. 넓적한 부리에 까만 눈동자의 오리 머리 다섯 개가 일제히 저마다의 입으로 떠들어대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하듯이 오리는 오리의 말을 한다. 할머니의 말씀이 옳은 것 같았다.
그럼 내가 속은 것인가?
코보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걸레를 빨아다가 방을 닦으면서도 생각을 했고, 반찬이 김치 하나뿐인 밥을 먹으면서도 생각을 했고, 설거지를 마치고 할머니의 다리를 주물러드리면서도 생각을 했다.
반찬거리 살 돈으로 오리를 산 건은 확실히 뭔가에 속았던 것 같았다. 하지만 오리의 말을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여섯 번이나 들었다. 여자 오리와 남자 오리가 번갈아서 간절하게 절박한 목소리를 냈다. 지금도 그 목소리를 누가 만일 따라 해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절대로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에 속아서 오리를 사온 게 아니었다.
“할미가 어렸을 때는 말이다. 그때는 할미의 아버지가 장에 갔다가 오는 길에 도깨비와 씨름을 하시곤 했단다.”
전등을 끄고 텔레비전을 켰다가 금방 도로 끄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했다. 백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였다. 코보는 건성으로 듣고, 건성으로 질문을 했다.
“언제요? 그래서요?”
“가끔, 밤이면 그랬단다. 어떤 날은 도깨비와의 씨름에 이겨서 온 동네가 떠나갈 듯이 노래를 하고 들어오셨지. 또 어떤 날은 도깨비에게 져서 온 몸이 흙탕인 채로 풀이 죽어서 들어오시기도 했고 말이다.” “도깨비가 정말 있는 거예요?”
“그때는 정말로 있다고 믿었지.”
“지금은요?”
“지금은, 글쎄, 없다고는 생각 안 하지.”
“에이, 그게 뭐예요.”
“있느냐, 없느냐,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그때는 말이다. 텔레비전도 없고, 라디오도 없었거든.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고 있었단다. 비가 올지 안 올지, 바람이 크게 불어올지 작게 불어올지. 다 알고 있었어. 그때는 사람들이 하늘에 별이나 땅에 나무들이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거든.”
“별이 말을 한다고요?”
코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나무가 말을 해요?”
“사람이 사람의 말을 하듯이, 모두가 자기의 말을 하는 거란다. 그러니까 별이 별의 말을 하고, 나무가 나무의 말을 하는 거야 당연하지. 그 모든 것들의 말을 사람이 옛날에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알아들을 수 있었단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안 된다는,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인 거지.”
코보는 벌떡 일어나서 앉았다. 앉아서 한참을 생각하고 있다가는 할머니의 귀에 대고 나직이 속삭였다.
“그럼 오리의 말을 사람이 알아들을 수도 있는 거죠, 그쵸?”
“그건 모르지.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 무엇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것인지, 그런 것들을 먼저 알아야 오리의 말을 정말로 들었는지 아닌지 말할 수 있는 거지.”
“이잉, 너무 어려워. 할머니는 어려운 책 같아.”
코보는 실망해서 도로 얼른 이불 속으로 들어가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문득 한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무거워졌다.
그럼 이게 뭐야? 내가 오리의 말을 알아듣고 싶어 했다고? 그것도 간절히? 나는 할머니의 다리가 얼른 낫기를 간절히 바랬는데, 그런데 오리의 말을 듣고 싶어 했다고? 그럼 이게 뭐야, 어떻게 되는 거야?
코보는 그 질문을 할머니에게 하고 싶었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입이 딱 달라붙어버린 것 같았다. 입뿐만 아니라 온 몸이 다 굳어 버렸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차츰 숨을 쉬는 것도 어려워졌다.
할머니는 그새 잠이 든 것 같았다. 부드럽게 들리던 숨소리가 코고는 소리로 바뀌어 갔다. 상자 속에서 오리가 이따금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짹짹, 하고 새끼 오리 같지 않은 이상한 소리를 내기도 했다. 어쩌면 오리는 꿈속에서 오리가 아닌 다른 새로 변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코보는 생각했다.
그럼 그 다른 새는 뭐지? 왜 눈에 안 보이는 거지?
코보는 왼쪽으로 돌아누웠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돌아눕기를 반복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도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