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죽으려던 내가 소녀를 만나(19)

두꺼비네 맹꽁이 2021. 2. 18. 12:13

어머니

 

어머니와 나의 연은 다리 밑에서 맺어졌다고 했다. 사실내막은 처음부터 내가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그랬다. 다리 밑에서 만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 자체는 아무 중요할 이유가 없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만났는가 따위에는 관심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발견하고 연을 맺게 되는 것은 사람의 일임이 분명하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오직 사람만의 일이겠느냐.”

 

사람과 사람의 인연에 관한 어머니의 관점은 애매하고 복잡했다. 어떤 날은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셨다는 인연생기설을 예로 들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산신령이나 혹은 조상신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어느 쪽이 되었건 어머니와 나의 만남은 일단 어머니 자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어머니가 없었다면 나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었다.

 

어머니는 은사골의 일심암에서 나고 자라고 밥을 벌어먹는 방식까지도 그곳에서 익혔다. 어머니에게 살아가는 모든 방식을 전수해준 어머니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나이 스물다섯이 되던 해에 칠십팔 세로 세상을 마쳤다. 어머니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어머니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아버지가 친부인지조차 사실은 명확하지 않았다. 어쨌든 스물일곱, 다리 밑에서 사내아이 하나를 발견한 그 해의 어머니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나는 다섯 살. 하지만 그게 그때의 정확한 내 나이라는 근거는 없었다. 어머니가 그렇게 판단하고 그렇다고 하니까 나는 그저 그렇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내게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어머니가 나를 발견하고 업어서 은사골로 데려갔는지 걸려서 갔는지,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서로 연을 맺게 되었는지 나는 아무런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렴풋이나마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내가 일심암에 처음 들어갔을 때 나보다는 더 큰 사내아이가 두 명 더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 그들은 무슨 까닭에서인지 내가 일심암에 한식구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머니는 사라진 그들을 찾는다고 며칠씩이나 내 손을 잡고 근처의 숲을 그야말로 이 잡듯이 뒤지다가는 당귀밭 앞에 쭈그리고 앉아 업보로구나, 업보, 하고 중얼거리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내뿜기를 되풀이했다.

그때 어머니의 곁에 나도 같이 숨을 깊이 들이마시다가 온 몸을 가득 채우는 듯한 당귀의 강렬한 향기에 깜짝 놀라 어머니에게로 뛰어들어 젖가슴을 더듬었던 것이 아마도 어머니와 나 사이의 은밀한 유대감의 출발이었을 것이다. 희미하게나마 기억할 수 있는 당시의 정황은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어느 구멍에서 나와 거기에 버려져 있었는가? 어머니는 전날에 악몽을 꾸고 무엇인가의 완강한 힘에 떠다밀리 듯이 밖으로 나갔다가 나를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다리, 다리 아래였다. 삶에서 죽음으로, 또는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다리, 그 다리 아래, 어쩌면 거기 어딘가에 물고기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수면으로 펄쩍 뛰어 오르는 물고기의 비늘 가득 햇살이 쏟아지면서 은빛 섬광이 눈을 시리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기억이 없다. 다리 밑에 있었으면서도 물고기는커녕 햇살 한 오라기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때 나는 아마 반은 죽어 있었던 것이었을 게다. 어느 철부지 연놈이 새끼를 낳아 기르다가 포기하고 거기에 버렸는가, 하고, 안개가 자욱하거나 빗방울이 추적거릴 때, 혹은 햇살이 너무도 날카로워서 감정이 격해질 때는 가끔 그런 원망 투의 의문도 가졌었지만, 오래지 않아 섹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부터 그런 의문은 시나브로 사라졌다.

사람의 섹스는 다른 동물과는 달라서 새끼를 낳는 데에만 목적을 두지는 않는다는, 그러므로 사람의 탄생은 순전히 우연적인 현상일 뿐이라는 그런 애늙은이 같은 생각을 갖게 되면서 나는 나 자신의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나 자신의 생에 대해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하는가 하는 문제, 하다못해 연필로 대충 그렸다가 지워버린 희미한 밑그림이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왜 그런 기억조차 없이 그저 캄캄하기만한가 하는 문제가 나를 괴롭혔다.

 

그렇다. 나는 나에 대해 아무런 것도 알지 못했다. 나는 누구인가, 하고 내가 나에게 물으면 나는 할 말이 하나도 없었다. 답변할 말이 너무도 궁색해서 쩔쩔매다가 대충 그냥 덮어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머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뿐만 아니라 누님에 대해서도, 열일곱에 아이를 낳은 누이에 대해서도, 한때 나의 정혼녀였던 죽은 뻥튀기 장사의 딸, 그녀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도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도 또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하객은 한 명도 없이 단 둘이서만 결혼식을 올렸으나 이제는 떠나간 나의 아내, 뒤통수를 치고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저에 대한 나의 전폭적인 믿음이 배반의 근거였다는 말로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 후배, 그리고 내가 죽이려고 했으나 끝내 죽이지 못한 오토바이의 그 사내 등등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대통령이라든가 유엔의 사무총장에 대해서조차도 나는 쓸데없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독 나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것도 알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가?

 

부처는커녕 부처의 꼬리에도 근접하기 어렵거나 아예 글렀다는 증거이겠지.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자면 그랬다.

 

사람은 자기를 모르는 법이다. 타인에 대해서는 잘 알아도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것도 모르는 게 사람인 것이야.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부처가 되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어머니는 나를 위로하고 안심시키고자 그런 말씀을 하신 거였지만, 알고 보면 그 말은 사실 어머니 당신이 겪고 있는 아픔의 우회적인 토로이기도 했다. 나는 어머니에 대해 거기까지도 알고 있었다.

어둠의 무게가 깊어지면 누가 잠에서 깨어날 새라 가만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뜨락을 서성거리며 바로 앞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은밀한 속내를 털어놓듯이 나직나직 중얼거리던 어머니의 무수한 나날들을, 어머니 자신은 자신의 일이라서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는 부분까지도 나는 죄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겠어. 내가 전생에 무슨 큰일을 저지르고 이 세상으로 이렇게 쫓겨와 있는 것인지 내가 나를 모르겠어…….”

 

어머니는 당신이 원래는 이 세상에 거처할 사람이 아니고 저기 어디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무엇인가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범하고 이 세상으로 쫓겨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마치 탁발승의 목탁 소리처럼 가슴에 담고 있었다.

달빛이 특히 날카롭게 창호지를 뚫고 들어오는 밤이면 어머니는 그 달이 소나무와 잣나무 가지에 걸려 찢어지다가 마침내는 물위에 뜬 나뭇잎처럼 어룽거리는 그림자로 변해버린 한참 뒤에까지도 방으로 들어올 줄을 몰랐다.

그렇게 밤을 다 보내버리고 멀리서 닭이 우는 신새벽에야 깜빡 정신을 차렸다는 듯, 조용하면서도 다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밤이슬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고 이불 속으로 들어올 때의 어머니는, 그 젖가슴은, 이제 막 얼음물에서 나온 사람처럼 으슬으슬 떨면서도 모닥불 속의 알불처럼 이글이글 타는 듯한 그 어떤 악착스러움이 있었다. 그런 느낌이 내게로 전해졌다.

 

물렁물렁하면서도 단단하고, 섬뜩하리만치 차가우면서도 만지면 내가 그만 타버리는 듯이 뜨거운 어떤 것, 회고하건대 어머니의 그런 말 못할 고통이랄까 결핍은 내가 다섯 살, 그러니까 어머니와 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던 그 해, 어머니의 나이 스물일곱 살 이후로 마치 어머니라는 존재 차체가 외로움의 거대한 덩어리인 것처럼 어머니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어머니 자신도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악독한 힘에 의해 어머니는 여자로서의 보편적인 삶을 압류당하고 있었던 셈이었다.

열병과도 같은 악몽이 주기적으로 어머니의 잠자리를 공격했다. 어떤 날은 벌거벗은 사내가 불이 훨훨 타는 아궁이에서 뛰쳐나와 내가 너의 조상이다, 조상이란 말이다, 하면서 어머니의 목을 조르기도 했고, 어떤 날은 죽은 갓난아기가 검은 비닐봉지에 담겨 꽁꽁 묶인 채로 절구통 속에 버려져 있다가 어머니의 기척을 느끼고는 봉투를 뚫고 방그레 웃는 얼굴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악몽을 겪을 때마다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고 어쩔 겨를조차도 없이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하기로 예정되었던 것처럼 서둘러 바랑을 걸메고 탁발을 나섰다. 말이 좋아서 탁발이지 그것은 차라리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일종의 방황이었다. 방황의 끝에는 언제나 어머니를 붙잡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것은 이제 막 숨을 거둔 누군가의 주검일 수도 있고, 신통한 점괘를 필요로 하는 불행에 빠진 가족일 수도 있었으며, 버려졌거나 또는 스스로 집을 나와 주인 없는 개처럼 얻어맞으며 남루한 목숨을 지탱하는 어린아이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천수경을 읊어주기도 하고 점을 쳐서 불행에 빠진 가족에게 일시적이나마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고, 버려진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와서 아들이나 혹은 딸을 삼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앞길을 위해 한바탕 신명의 땀을 쏟아내고 나면, 그제야 어머니는 지독한 악몽의 가위눌림에서 벗어나 올바른 정신으로 세수도 하고 밥도 먹고 비교적 평온한 마음으로 밤에 잠도 잘 자고 그럴 수가 있어지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암자에는 아이들이 적어도 두세 명은 있었고, 어떤 때는 네다섯 명씩이 한데 어울려 싸움을 하는 둥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 가운데는 오 년을 넘어 십 년 이상씩 산 속에서의 고적한 생활을 느긋하게 견디다가 여자인 경우 어느 날 불쑥 임신을 해서 어머니를 이중으로 슬프게 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들어와서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인사도 없이 빠져나갔고, 성미가 유난히 급하거나 활동적인 아이는 한 달을 채 견디지 못하고 소문 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무슨 고아원도 아니고 산중의 절간에 웬 놈의 아이들이 그렇게도 자주 들고나고 하느냐고 사람들은 가끔 어머니를 이상하게 보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런 이상한 눈길은 곧 어머니에 대한 칭송의 소리로 바뀌어갔다.

그리고 소문은 소문을 낳아서, 어디어디에 자비롭고 영험한 거의 생불에 가까운 보살이 있다더라 하는 다분히 과장된 소문을 불변의 이정표처럼 믿고 싶어 하는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를 찾아왔다.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도착한 뒤에는 또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몰라서 불안에 떠는 많은 사람들이 어머니에게 자기 자신의 과거를 묻고, 미래를 묻고, 현재의 위치가 어디인가를 묻고 그리고는 어머니의 신통한 점괘에 혀를 내두르면서, 어머니를 가리켜 극락에서 잠시 돌아와 중생을 구제하고 있는 참으로 보살다운 보살이라고 입술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을 했다.

 

그러나 그런 칭송은 어머니의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칭송이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어머니의 말하지 못할 외로움과 슬픔은 깊어져 갔다. 그렇다고 어머니 자신이 나서서 그런 칭찬은 이제 그만해 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가 그런 당부를 하고 나서면 사람들은 더욱더 어머니를 칭송하고 심지어는 정말로 부처라도 대면한 양 우러러보기까지 하는 까닭에 어머니는 입이 있어도 그 입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몰라. 나를 모르면서 안다고 생각들을 해. 아는 것처럼 얘기들을 해.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들에게 그걸 지적해줄 수가 없어. 당신들은 나를 모른다고, 모르면서 아는 것처럼 얘기하지 말라고, 그러면 안 된다고, 그것이야말로 죄업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지만 그러나 안 돼. 입이 떨어지지를 않아.”

 

어머니의 그런 혼잣말의 의미를 내가 처음부터 알아듣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나는 어머니가 무슨 염불(念佛)을 하신다고 생각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달이 밝은 날 저녁 완자문을 통해 들려오는 어머니의 혼잣말은 금강경이나 반야심경을 독송할 때의 그것 같았다.

때로는 길게 때로는 짧게, 글자의 받침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받침이 없고, 받침이 없어야 할 자리에는 또 받침이 있는 듯한, 그렇게 분절되고 해체되는 목소리를 가령 글자 그래도 받아서 적어놓고 들여다보면 무슨 얘기인지 알아볼 수 없는 어지러운 기호의 나열로 끝나버리기 십상이지만, 그러나 거기에 숨은 몇 개의 원칙만 알고 귀를 기울이면 이내 알아듣고 고개가 절로 끄덕거려지는 그런 염불, 그런 혼잣말이 내 가슴에 화선지를 먹어드는 먹물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랬다. 필경은 어머니의 살 냄새와 그리고 젖가슴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겠지만, 나는 그렇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어느 때인가부터, 어머니의 행동에 집중적인 관심을 갖고 그 암호를 해독하는 기술을 스스로 터득해내고 있었을 것이었다.

어머니가 잠을 못 이루고 달빛에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날 새벽이면 어머니의 몸이 으레 불처럼 뜨거워져 있게 된다는 것을 한 번, 두 번,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서 내 몸의 일부처럼 인식하게 돼버린 나는 언제부터인지 그렇게 하늘에 달빛이 살인적으로 쏟아지는 밤만 되었다 하면 모든 감각기관을 열어놓고 어머니를 골똘히 연구하곤 했다.

 

평소에 만지는 어머니의 젖가슴은 밋밋하고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불처럼 뜨거워진 날의 젖가슴은 마치 어머니의 그 뜨거움이 내게로 순식간에 전이되어 버린 듯 나도 덩달아 뜨거워지면서 타는 불꽃처럼 온 몸이 마구 팽창하는 공포감이랄까 희열이랄까, 아무렇든 두려우면서도 결코 두렵다고만은 말할 수 없는 어떤 강렬한 느낌에 대한 열망이 아마도 나로 하여금 어머니의 암호풀이에 몰두하도록 유도했을 것이었다.

거의 매번,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머니와 잠자리를 같이 했던 그 시절의 달빛이 섬뜩한 밤이면 버릇처럼 언제나 밤이슬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고 이불 속으로 들어오는 어머니와 똑같이, 습관적으로 젖가슴을 더듬고 있는 나를 어느 순간 졸라서 죽여버릴 듯이 꽉 껴안은 채로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가 느닷없이 푸우, 하고 뿜어내며 부르르 떨곤 하던 어머니의 그 절망적인 숨소리처럼, 나도 또한 독하디 독한 술을 두 눈 질끈 감고 단숨에 마셔버린 뒤의 그것처럼 가슴이 활활 타서 재가 되어버리는 듯한 그런 절망적인 희열을 마다하지 않고 즐겨 체험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누님조차도 어머니의 말하지 못하는 절망에 대해서는 몰랐다. 모르는 것 같았다.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남자인 나보다 많은 것을 알 수도 있겠지만,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같은 여자기 때문에 오히려 모를 수밖에 없는 것도 더러 있는가보다고 나는 생각했다. 아무렇든 나는 마치 어머니의 속에까지 들어갔다가 나온 것처럼 어머니를 깊이 알고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당신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리라.

이제야 생각나는 것이지만, 그 무렵에 내가 머리를 깎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가 반대한 이유도 어쩌면 그것 때문이었는지 몰랐다. 일찌감치 장가가서 애 낳고 소나 기르며 있는 듯이 없는 듯이 평안하게 살아가라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런 말씀을 하시던 어머니의 그 날 그 말씀의 이면에 어쩌면 그런 것이 깔려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당신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것, 어머니 당신에게는 혹시 어떤 수줍음이거나 수치감이었을지도 모르는 부분을 내가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어머니는 그토록 완강한 목소리로 머리를 깎아봐야 도로가 된다고 반대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머니는 정말로 나를 떠나보내고 싶었던 것이었을까. 혹시 좀 더 가까이에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가 만일 그때 머리를 깎았다면, 은선암은 비구가 아닌 비구니의 도량이었으므로 머리를 깎는 순간 비구가 돼버리는 나는 부득이 어머니의 곁을 떠나야만 했을 것이다.

 

반대로 그때 만일 결혼을 해서 은선암 근처에 움막이라도 짓고 살았다면, 그때부터는 좋거나 싫거나 불심 깊은 남자 우바새(優婆塞)의 자격을 갖게 되는 나는 어머니를 떠났으면서도 떠나지 않은 것처럼 은선암을 무시로 드나들 수 있을 것이었다.